김영삼전대통령 서거, 한국 정치사의 큰 별이 지다

Posted by 자발적한량
2015.11.22 19:02 내가 밟고 있는 땅/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김영삼전대통령 서거 YS 양김시대 김대중 민주화운동 상도동계 문민정부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중 오늘 서거했습니다. 향년 87세.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고 한국 정치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의 호처럼 그야말로 민주화 운동의 '거산(巨山)'이었습니다. 정부에서는 故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거행하기로 결정했고 5일장으로 치러지며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됩니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영삼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비서관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인 뒤 이기붕의 권유로 자유당에 입당한 뒤 만26세의 나이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이후 9선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정치인의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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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정치인생은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이 통과되자 자유당을 박차고 나왔고,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측에서 지속적으로 보내온 군정참여 요청을 거절한 후 민주당 청년부장, 신민당 원내부총무, 민정당 대변인, 민중당 원내총무, 신민당 원내총무·대변인, 신민당 총재 등을 지내며 야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군정연장반대 데모를 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하고, 초산테러 사건을 당하기도 하고, 독재정권이 정계축출을 기도하기도 했죠. YH무역 사건과 뉴욕타임스지 발언파문으로 의원직에서 제명되고 가택 연금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은 부마 항쟁의 불씨가 됐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반드시 온다" 발언이 널리 회자됐죠.


12.12군사반란 이후 윤보선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구파 계열의 리더가 된 김영삼. 서울의 봄을 무력으로 탄압한 신군부와 5공은 김영삼을 가택 연금시키고 강요로 정계 은퇴 선언을 발표시키기도 했습니다.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었죠. 오랜 시간동안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그가 발탁한 정치인들은 '상도동계'라는 계파를 이루게 됩니다. 서석재, 김덕룡, 김동영, 최형우, 이재오, 김문수, 손학규, 김무성, 홍사덕 등 무수히 많죠. 참, 故 노무현 대통령도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홍준표, 오세훈도. 서청원도 상도동계의 좌장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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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두 사람은 반독재·반군부·민주화 운동의 동반자이자 영원한 숙적이었죠. 한국 현대사의 정치를 주름잡았던 '양김시대'는 바로 YS와 DJ 두 사람을 부르는 것입니다. 박정희, 전두환에 걸쳐 이어오는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며 때로는 힘을 합쳐 때로는 갈등을 겪으며 지내왔죠. 김대중의 동교동계, 김영삼의 상도동계는 현재까지도 한국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두 사람에게는 바로 자신들 때문에 군사정권을 조기에 종식시키지 못한 책임 또한 존재하는데요. 1987년 6월 항쟁 6·29선언 이후 대통령 직선제로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결국 민주정의당의 노태우가 당선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죠. 대통령을 하겠다는 양김의 양보없는 욕심이 불러온 참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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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에 패해 제2야당이 되는 등 김대중에게 상대적 열세를 보이자 때마침 여소야대 정국에서 위기감을 느꼈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물밑접촉을 한 끝에 1990년 1월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노태우의 민주정의당이 3당합당을 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합니다. '구국의 결단'이라는 주장과 무색하게 박정희 독재정권의 잔존세력, 전두환·노태우 독재정권과 힘을 합친 것이죠. 민주화운동의 지도자가 순식간에 군사정권의 집권여당 대표로 옷을 바꿔입은 순간이었습니다. 대통령 자리에 대한 야욕이 인생을 걸고 싸워온 자신의 적들과 손을 잡게 한 것이죠.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말을 남기고 민자당에 들어간 김영삼. 당의 다수파는 민정계였지만 김영삼이 가진 상징성은 강력했습니다. 내각제 개헌을 고수하던 '6공의 황태자' 박철언을 물리쳤고, 박태준, 이종찬 등도 여유롭게 제치면서 결국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치러진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김대중·정주영 3파전이 벌어졌는데, 김기춘을 필두로 부산시장, 부산시교육감, 부산지검 검사장, 부산상공회의소장, 부산지방경찰청장 등이 모인 자리에서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 등의 발언이 오간 초원복집 사건이 터지며 위기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당시 언론에서 관권선거보단 도청에 초점을 맞췄고, 오히려 영남의 결집을 불러와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정부 이름은 '문민정부'. 5.16 군사쿠데타 이후 32년동안 이어져온 군사정권을 종식시켰다고 평가되긴 하지만, 엄밀히 따졌을 땐 결국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야합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전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문민정부가 걸은 길은 그간의 군사정권과는 달랐습니다. 문민정부가 가져온 많은 변화들을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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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산시킨 것을 비롯해 12.12 군사반란,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수사를 지시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했구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 수감시켰습니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했고, 군사정권이 강제로 국유·국영화한 시설에 대한 민영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조선총독부 청사 해체도 했구요. 반정부성 예술 활동 및 언론의 사회비판도 전면 허용했습니다. 1991년 실시되던 지방자치제도를 확대시켜 시장, 도지사, 군수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직접 선출하게 제도를 개정했구요. 1996년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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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민정부가 불러온 대참사이자 한국 근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 'IMF 외환 위기'. 1997년 12월 3일 IMF로부터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국가부도 사태를 면한 사건인데요.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그룹·진로그룹·한신공영그룹·기아그룹·쌍방울그룹·태일정밀·해태그룹·뉴코아·고려증권·한라그룹·나산그룹·극동건설 등 수많은 기업이 부도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를 당하고, 사업을 접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등 대한민국 전체가 혼란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물론 문민정부 만의 잘못이 아니라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 내려오던 문제들이 한번에 터진 것이긴 한데...문민정부의 실패한 경제정책이 꽤 크긴 했죠. '소통령'으로 불린 차남 김현철씨의 비리, IMF 금융요청 등으로 정권의 말미가 엉망이 된 상태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여당 후보인 이회창 후보를 지원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킵니다. 물론 자신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DJ측과 접촉이 있었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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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민주화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한국 정치사의 거목이었습니다. 비록 김대중과의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노태우의 어부지리 당선을 불러왔고, 3당 합당을 해 군사정권세력과 야합을 하고, IMF 구제금융사건을 초래한 점 등은 있지만요. 공과가 상당히 뚜렷한 인물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에서 1분 정도를 걸어가면 김영삼 대통령 자택이 나옵니다. 근처에 김영삼대통령 기념도서관도 있죠. 고구동산으로 산책을 갔을 때 마주친 적도 몇 번 있습니다.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 살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IMF에 구제금융 요청을 한 11월 22일에 눈을 감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로써 '양김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네요. 이렇게 또 한명의 인물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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