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제 주체와 태종 이방원, 육룡이나르샤의 실제 역사는?

Posted by 자발적한량
2016.02.23 21:58 일상생활/썰을 풀다

무휼 육룡이나르샤 영락제 주체 이방원 조선권지국사 역사 조선왕조실록 밀본

지금껏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본방사수 중인 SBS 드라마 '육룡이나르샤'. 제가 워낙 역사 속 실존인물인 이방원을 좋아해서이기도 하고...어느 나라나 단골 소재로 회자되는 시대가 있듯 아마 한국에서는 고려 후반과 조선 초기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cf.드라마 '용의눈물' '정도전' '육룡이나르샤' '뿌리깊은 나무' '대풍수' '대왕세종' 등) 어제와 오늘 방송된 '육룡이나르샤'에서는 정도전(김명민)의 계략에 빠져 곤경에 처한 정안대군 이방원(유아인)이 거제로 내려가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훗날 영락제로 즉위하는 주체를 만나는 장면이 방송되었습니다. 극 중에서 주체는 조선 사신단 전원을 추포하고 이방원의 멱살을 잡질 않는 등 겁박을 하며 또 이에 질세라 이방원은 "죽고싶냐"고 응수하더니 급기야 무휼이 맞짱을 뜨는 장면까지 등장하는데요. 자, 그럼 한 번 이 에피소드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실제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죠.



우선 이방원은 사실 명나라에 두 차례 방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1388년 고려 우왕 14년 때인데요. 

(전략) 창왕이 이색과 첨서 밀직(僉書密直) 이숭인(李崇仁)을 보내어 경사(京師)에 가서 정조(正朝)를 하례하고, 또 왕관(王官)으로 국사(國事) 감독하기를 청하였다. 태조가 이색을 칭찬하면서 말하기를, "이 노인은 의기가 있다." 하였다. 이색은 태조의 위엄과 덕망이 날로 성하여, 조정과 민간에서 마음이 그에게 돌아감으로써, 자기가 돌아오기 전에 변고가 있을까 두려워하여 태조의 아들 하나를 같이 가기[從行]를 청하니, 태조가 전하(殿下)로써 서장관(書狀官)으로 삼았다. (후략)


태조실록 1권, 총서


태조실록이 편찬된 것이 태종 이방원 재위 기간이었기 때문에 실록에 등장하는 '전하'가 이방원입니다. 건국 초기였던 명나라에 당시 문하시중이었던 이색이 직접 사신으로 가게 될 때 사신의 활동을 기록하는 서장관으로 사실은 인질로 명나라를 가죠. 이 명나라 방문은 이방원에게 세상을 보는 시야는 물론 정치감각을 익히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을테구요.



무휼 육룡이나르샤 영락제 주체 이방원 조선권지국사 역사 조선왕조실록 밀본

두 번째 방문은 1394년 조선 태조 3년. 이번에 '육룡이나르샤'에 등장한 사건인데요. 조선은 친명반원 정책을 펼치지만 명나라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조선 길들이기에 나섭니다. 국새를 내려주지 않거나 사신을 몽둥이로 쳐서 초죽음 상태로 만들고, 조선 사신의 입국을 거부하고, 한술 더떠 북벌을 위한 말1만필과 함께 조선인이 왜구로 변장해 노략질을 했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이성계의 장남 혹은 차남을 시켜 친히 잡아 가지고 오게 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그러자 이방원은 자신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겠다고 나섭니다.

태조(太祖)께서 정안군(靖安君)에게 일렀다. "명나라 황제가 만일 묻는 일이 있다면 네가 아니면 대답할 사람이 없다." 정안군이 대답하였다. "종묘와 사직의 크나큰 일을 위해서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이에 태조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말하였다. "너의 체질이 파리하고 허약해서 만리의 먼 길을 탈 없이 갔다가 올 수 있겠는가?" (후략)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6월 1일


분명 명나라는 장남 아니면 차남을 요구했는데 왜 정안군 이방원이 가게 되었을까요? 이미 장남인 이방우는 1년 전 사망을 했고, 차남 이방과를 비롯한 나머지 자식들은 무인출신이었던 것에 비해 이방원은 과거 급제까지 해 지략을 겸비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명나라를 방문해 본 경험도 있으니 딱이었죠. 이방번, 이방석은 너무 어렸으니 논외.



이렇게 해서 명나라에 사신으로 떠난 이방원. KBS2 '정도전'에서는 홍무제 주원장의 앞에 포박을 당한채 겁박당하는 모습이 그려졌죠. 그리고 '육룡이나르샤'에서는 영락제 주체에게 포박을 당한 모습이 나왔구요.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와는 상반된 기록이 존재합니다. 곤욕은커녕 명나라 선비들은 물론 명 황제에게도 우대를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자, 실록에는 어떻게 적혀 있을지 한번 보시죠.

태종이 명나라 서울에서 돌아왔다. 남재와 조반도 같이 왔다. 태종이 명나라 서울에 이르니, 황제가 두세 번 인견하였는데, 태종이 소상하게 〈사신 통행에 대하여> 주문(奏聞)하니, 황제가 우대하고 돌려 보냈다. (중략) 명나라 선비들이 태종을 보고 모두 조선 세자라 하면서 대단히 존경하였으며... (후략)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11월 19일


그리하여 이방원은 명의 조선사신 입국거부 조치 및 외교 문제를 해결해오는 성과를 거둡니다. 크아 갓방원 태조실록이 태종 이방원의 치세 속에 편찬된 것을 생각하면 행여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왜곡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洪武 27年 9月 己卯條 旦遣子入貢 (홍무 27년 9월 기묘조 단이 아들을 보내와 조공하였다)


明史 朝鮮列傳 (명사 조선열전)


여기서 단(旦)은 이성계입니다. 과거에는 임금의 이름(휘)에 쓰인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피휘'라는 관습이 있었는데요. 최고존엄 리스펙트 성(成)자와 계(桂)자가 사용빈도가 높은 한자였기 때문에 이성계는 단(旦)으로 개명을 하게 된 것이죠. (참고로 이방원은 피휘없이 그냥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게 했습니다 크아 갓방원)명나라 역사서에도 별 내용없습니다. 결국 이방원이 명나라 조정에서 곤경에 처했다는 것은 야사나 설화 등을 기반으로 한 작가의 상상인 것으로.



무휼 육룡이나르샤 영락제 주체 이방원 조선권지국사 역사 조선왕조실록 밀본

실록에는 영락제 주체와 이방원의 만남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방원의 명나라 입조에 대한 기술 중 연왕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훗날 명나라 3대 황제 태종(후에 성조로 고쳐짐) 또는 영락제로 불리는 주체입니다. 주체와도 역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만남을 가졌죠. 

(전략) 태종이 연부(燕府)를 지날 때는 연왕(燕王)이 친히 대해 보았는데, 곁에 시위하는 군사가 없고 다만 한 사람이 모시고 서 있었다. 온순한 말과 예절로 후하게 대접하고, 모시고 선 사람을 시켜서 술과 음식을 내오게 하였는데, 극히 풍성하고 깨끗하였다. 태종이 연부를 떠나서 도중에 있을 때, 연왕이 서울 〈금릉〉에 조회하기 위하여 편안한 연(轝)을 타고 말을 몰아서 빨리 달려갔다. 태종이 말 위에서 내려 길가에서 인사하니, 연왕이 수레를 멈추고 재빨리 연의 휘장을 열고서 오래도록 온순한 말로 서로 이야기하다가 지나갔다. (후략)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11월 19일


실록 속에 등장하는 연왕(燕王)이 바로 주체입니다. 호위도 대동하지 않은채 이방원과 만나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는 내용인데요. 이로 보아 '육룡이나르샤'에서 이방원 대 주체가 벌이는 한판승부 역시 스토리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작가의 상상인 것으로. 한 가지 근거는 또 있습니다. 주체는 당시 연왕에 봉해진 상태였는데, '연부'를 중심으로 한 그 일대를 다스리는 번왕(제후)였죠. 연부(燕府)의 또 다른 이름은 연경, 북평, 북경. 네, 오늘날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입니다. 그런데 '육룡이나르샤'에서는 요동 지역을 지나가는 도중 주체가 나타나 이방원에게 시비를 걸죠. 굳이 베이징에서 이방원한테 시비걸러 요동까지 갈 이유는 없겠죠.



자, 여기서 슬슬 마무리를 지으면서 불과 8회 밖에 남지 않은 육룡의 발을 잡는 주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명 태조(홍무제) 주원장의 4남이며 위에서 언급했듯이 훗날 명나라 3대 황제로 즉위하며 명 태종, 영락제로 불리는 인물인데요. 여러모로 이방원과 '코드'가 맞는 인물입니다. 이방원이 고려의 무장에서 출발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아들이었듯 주체 역시 홍건적에서 출발해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아들이죠. 장남은 아니었지만 문무를 겸비한 범상치 않은 능력으로 제왕의 면모를 일치감치 보였습니다. 명나라가 원을 물리치고 중원을 차지하게 되자 주체는 연왕에 책봉되어 화북 지역을 총괄하게 됩니다. 


형인 황태자가 죽은 뒤 홍무제 주원장은 연왕 주체를 황태자로 책봉하려 했지만 대신들이 반대하여 결국 황태자의 어린 아들 주윤문을 황태손으로 삼습니다. 이후 주체의 두 형에 이어 홍무제까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주윤문이 즉위해 건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건문제가 주체를 비롯한 숙부들의 군권을 약화시키려고 하자 주체는 1399년 '정난의 변'을 일으켜 조카인 건문제와 4년에 걸친 치열한 내전 끝에 남경을 함락시키고 황제에 오르게 되는 인물이죠. 이방원이 세자가 된 어린 이복동생 방석을 제1차 왕자의 난을 통해 제거하고 형인 회안대군 이방간이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에서도 승리해 왕위에 오른 것과 그림이 꽤나 겹치죠.


무휼 육룡이나르샤 영락제 주체 이방원 조선권지국사 역사 조선왕조실록 밀본

조선 태종 이방원과 명나라 영락제 주체의 우호적인 관계를 이후로도 지속됩니다. 당시 조선 왕은 '임시국왕'과도 같던 '권지고려국사'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1401년 건문제가 태종 이방원을 정식으로 조선국왕에 봉한 것에 이어 1402년 영락제는 자신의 등극을 축하하기 위해 온 하륜에게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주어 돌려보냅니다. 이에 태종은 다시 사신을 보내 건문제로부터 받은 고명과 인장을 환납했죠. 건문제가 아닌 영락제의 정통성을 추켜세운 것으로 동병상련(?)의 처지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묻어나옵니다.



방송 말미에서 정도전의 밀본이 결성되는 모습이 나오면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와의 밑바탕이 되는 이야기를 깔아두는 군요. 이번 회는 갑작스레 너무 판타지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긴 하지만 다음주를 기다려 봅니다. 그나저나...분이(신세경)과 이방원은 어떻게 될까요...? (분이가 이방원의 첩이 되길 기대하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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