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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의 대선 출마 자격 여부, 공직선거법 제대로 따져보자

자발적한량 2017.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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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시작된 '반기문 빅뱅', 하지만 시작은 '1일 1논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0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이재명, 안희정, 박원순 등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잠룡들이 산적해있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과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지리멸렬한 새누리당은 답이 없는 상태였죠. 비주류는 당을 쪼개 바른정당으로 쏟아져 나왔지, 그나마 유력한 후보였던 김무성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지, 유승민 의원은 이렇다할 행보를 보이지 않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반기문이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한줄기 빛과 같다고나 할까요. 

본인 역시 이를 알았던터라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기 전부터 계속해서 군불을 지펴왔습니다. 충청대망론이니, 김종필 전 총리의 지원이니 하면서 국내에서 움직임이 있었고, 이에 화답하듯 임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 몸 바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17일 드디어 한국에 입국한 반기문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지지와 비난 양쪽이 모두 뜨거웠죠. 그동안 반기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이슈가 되었습니다. 입국하고 처음으로 들른 편의점에서 프랑스 고급 생수인 에비앙을 집었다가 보좌진의 코치로 국산 생수로 교체한 헤프닝을 비롯해 공항철도 티켓 자판기에다가 1만원 지폐 2장을 우겨넣으려고 해서 '서민 코스프레'에 실패했다는 비아냥이 있었구요. 음성 꽃동네를 방문했을 때는 본인이 턱받이를 한 것을 비롯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눕힌 상태에서 죽을 떠먹인 것 등이 논란이 됐었습니다.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을 때는 '사람사는 세상'을 '사람사는 사회'로 적어 정청래 더민주 전 의원이 "차라리 컨닝페이퍼 베껴쓰라"며 비난했고, 선친의 묘소를 참배하러 갔을 때는 묘소 인근에 뿌려야 할 퇴주잔을 본인이 마셨다는 영상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진도 팽목항에서는 반기문 씨의 수행원들이 사전답사차 미수습자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식당에 왔다가 '차 저 뒤에 있으니까 드시라'고 권한 가족들에게 '타달라'고 했다는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며 논란이 되고 있구요. 하나하나 모두 해명을 내놓긴 했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1일 1논란' '자고나면 논란' 등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미운 털이 박히다시피 한 듯한 반기문 전 사무총장.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는데요. 가장 큰 것은 자신이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 지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 그리고 그 이후 이명박과 박근혜의 눈치를 보며 단 한 차례도 참배를 하지 않는 등 이른바 '노무현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힌 것도 있고, 국제 사회에서는 반기문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박한 편인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세계의 대통령' 등으로 회자되며 폐족이 되어야 할 수구세력들의 구원자로 등판할 가능성이 짙게 보인다는 점(본인의 의지야 어쨌건), 나경원·곽승준·이동관·김숙·박진 등 이명박 정권의 인물들이 반기문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것이 "차기 정권을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하겠다"는 얼마 전 MB의 발언을 떠올리게 해서 소름 끼치게 한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아, 작년만 해도 한일간 위안부 합의 당시 '박비어천가'를 부르며 아베 신조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적극 지지를 표명했다가 촛불집회가 이어지는 국내 정세를 유심히 살핀 뒤 은근슬쩍 선을 긋는 등 별명인 '기름장어'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점도 포함되겠네요.

첫 번째 자격 논란 - UN 총회 결의안 11호...임명직 아닌데다 강제성도 없어


자, 그런데 오늘의 포스팅은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됨됨이나 능력 등을 살펴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반기문에게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있느냐를 살펴보기 위한 글인데요. 최초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불거진 것은 UN 창설 직후인 1946년 1월 24일 개최됐던 제1차 UN 총회에서 결의된 'UN 총회 결의안 11호', 정식 명칭으로 'UN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 때문입니다.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Because a Secretary-General is a confident of many governments, it is desirable that no Member should offer him, at any rate immediately on retirement, any governmental position in which his confidential information might be a source of embarrassment to other Members, and on his part a Secretary-General should refrain from accepting any such position.

(번역) 사무총장은 다수 정부의 신뢰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회원국도 그의 퇴임 직후에 그가 보유한 비밀정보가 다른 회원국의 불쾌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어떠한 정부의 직도 그에게 제안하지 않으며, 사무총장 자신도 그러한 직의 수락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UN 총회 결의안 11호 'UN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

이 결의안에는 'desirable'(바람직한), 'refrain'(삼가다) 등의 표현이 쓰이는 등 법적인 강제성이 있다기보단 권고성 내용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역대 UN 사무총장들은 자연스럽게 논란이 될 소지 자체를 만들지 않아 왔습니다. 자국 대선에 출마한 역대 UN 사무총장은 오스트리아의 쿠르트 발트하임 전 사무총장(4대)과 페루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전 사무총장(5대) 이렇게 2명이 있었는데요. 그나마 이 두 사람도 각각 퇴임 후 5년, 4년 뒤 출마하여 UN 결의 위반 시비가 딱히 일지 않았습니다. '퇴임 직후(immediately on retirement)'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아직까지 결의안 위반 노란에 대해 UN에서 공식적으로 유권 해석을 하진 상태이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론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결의안 자체가 권고성인데다 대통령은 정부에서 제안할 수 있는 임명직이 아닌 선거로 결정되는 선출직이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진짜는 이것, 미션명: 공직선거법 16조 1항을 이겨라 (부제: 선관위는 한국어를 잘 몰라야 갈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UN의 결의안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법입니다. 현재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걸린 올가미는 공직선거법 16조 1항입니다.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거주기간으로 본다.

공직선거법 제16조(피선거권) 제1항

자,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어로 쓰여진 문장 해석은 어렵지 않겠죠. 그럼 이제 한번 살펴봅시다. 첫 번째 문장에서 대통령 피선거권자의 자격은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입니다. '거주하고 있는' 이라는 표현은 현재진행형이군요. ~ing.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주소 등록을 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했던 지난 10년간은 미국 뉴욕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구요.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문장 중 '국내에 주소를 두고'에는 해당되지 않구요. '공무로 파견된 기간'이라는 항목에선 고개가 갸우뚱거려집니다. 대한민국의 외교부 장관이었다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어 미국으로 갔으니. 하지만, 반기문 전 총장은 대사, 영사 등과 같이 한국의 대표 자격으로 정부에 의해 외국에 파견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유엔 사무총장직에 당선되어 그냥 본인의 용무를 수행하러 간 것이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파견'이라는 단어의 뜻 모르시는 분 없겠죠. 결론적으로 공직선거법 제16조 1항에 따르면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대통령 피선거권이 없는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중앙선관위원회에서 이 논란과 관련해 '국내 계속 거주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다'는 엉뚱한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중앙선관위는 "선거법 등을 종합해 볼 때 선거일 현재 5년 이상의 기간을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국내에 계속 거주와 관계없이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즉,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이라는 문구를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적이 있는'이라는 완벽하게 다른 뜻을 가진 문장으로 바꾼 해석을 내린 것입니다. 만약 선관위의 유권해석대로면 한국에서 어렸을 때 6살까지 살다가 외국으로 이민가서 평생을 산 사람도 대통령 출마 자격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엄청 웃긴 상황이 되는 거죠.

선관위는 자신들의 유권해석 근거 중 하나로 1993년 영국에서 1년간 체류했다가 1997년 대선에 출마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피선거권에 대해서도 거주요건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무척이나 미련한 발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국에 1년간 체류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직선거법상 국내에 주소를 두고 외국에 체류한 경우는 국내 거주기간으로 간주되거든요. 선관위가 선거 관련된 입장 발표를 하면서 이런 것 하나 체크도 안하고 막 발표하는 걸 보면...분명 우리가 내는 세금이 아깝게 쓰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것도 아니고, 국내에 주소를 두고 외국에 체류한 것도 아니면서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을까요? 선관위의 해석과는 달리 법조계에서는 '애석하게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는 입장입니다. 국내 거주의 5년 이상 연속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 확실한 반기문 전 총장에게는 피선거권이 없는 것이 맞다는 입장인 거죠. 게다가 유권해석이라는 것이 최종적인 법적 판단이 아닌지라... 선관위 유권해석 믿고 선거운동 했다가 후에 선거법 위반 판결 받은 정치인들이 꽤나 많기 때문에... 만약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출마를 강행한다고 했을 때는 야권의 대선 후보들이 아닌 사법부와의 싸움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이 논란에 대해 기자들이 자체 질문을 하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하죠?

(피선거권 논란에 대해) 그거는 여러분들, 제가 좀 실망스럽습니다. 공직선거법에 보면은, 저는 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아마 어떤 국회의원이나 또 언론에서 문의가 있었을 때 분명히 (출마) 자격이 된다고 몇 번 유권해석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꾸 그 문제를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너무 좀 바람직스럽지 않고 공정한 언론이나 공정한 여론이 아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시 여러분들께 제가 공식적으로 말씀드릴 게 아니고 여러분들께서 중앙선관위에 다시 문의해 보세요. 똑같은 답이 나올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 건 그 제기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자꾸 문제를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문제를 자꾸 일으키는 그런 행태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정당하지 않습니다.

2017년 1월 12일,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귀국 기자회견 中

재밌는 것은 아직까지 그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 반기문은 "이 한 몸 불사지르겠다"고 했지 공식적인 대선출마를 선언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꽃동네, AI 방역현장, 봉하마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진도 팽목항 세월호 현장 방문 등 행보는 엄연한 대선 후보인데,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이런 입장이니... 머릿속에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식으로 간을 열심히 보시던 분도 생각나고.. 여하튼! 우리 모두 국어 공부는 합시다. 그래도 한국인인데...한국어 문장 해석 능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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