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금·은메달 목에 건 이상화·고다이라 나오!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

Posted by 자발적한량
2018.02.19 06:02 일상생활/썰을 풀다


지난 9일 개막하여 어느덧 전체 일정의 반환점을 돈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역사적인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과 '피겨여왕' 김연아의 성화 점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참석 등의 이슈로 가득했던 개막식에서부터 최민정 선수의 여자 쇼트트랙 1,500m 금메달과 윤성빈 스켈레톤 금메달 등 많은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많은 경기를 챙겨보며 평창 올림픽을 즐기고 있는데요.


어제 '빙속 여제' 이상화의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는 특히나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경기였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이상화는 37초33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는데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으로 처음 올림픽에 나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던 이상화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올림픽이었기에 그 관심도가 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빙속 여제' 이상화의 은빛 질주, 다시금 포디움에 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오빠 이상준 씨를 따라 스케이트를 시작한 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진로를 바꿨던 이상화. 쇼트트랙 연습 도중 스케이트 날에 입 주변을 찍혀 트라우마가 생긴 것 때문이라고 하죠? 국내대회 기록을 하나씩 갈아치우며 나날이 발전한 이상화는 2006 토리노 올림픽에선 5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이에 머물지 않고 남자 선수들과 같은 훈련을 소화하며 기량을 끌어올린 끝에 유럽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밴쿠버·소치 올림픽 연달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역대 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2연패를 차지한 3번째 선수이자 한국 선수 중 동계올림픽 2연패를 이룬 3번째 선수가 됐죠.

 



특히나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신기록을 4번이나 스스로 경신하여 당시 아예 다른 선수들이 금메달을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뉴스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아직까지도 2013년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세운 36초36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세계기록으로 남아있죠. 쇼트트랙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많았지만,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그녀의 롤모델이 되어 줄 만한 선수가 없었기에 이상화의 길은 항상 외로웠을 겁니다.


하지만 이상화 선수는 소치 올림픽 당시 고질적인 발목, 무릎 부상을 비롯해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었습니다. 금메달을 위해 몸을 가볍게 만드는 대신 소화해야 했던 무리한 하체 훈련 등이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사이 세계 곳곳에서 많은 도전자들이 '여제'를 압박해왔죠. 중국의 장훙에게 랭킹 1위를 잠시 내주었지만 다시금 세계선수권을 제패하며 자리를 지켜습니다. 그리고 이상화 선수는 지난해 3월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았고, 무릎은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했죠.



이상화 선수가 부상으로 주춤하던 사이 떠오른 것이 바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 이상화보다 3살 많은 1986년생이지만 24세였던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12위, 28세였던 소치올림픽에서는 5위에 머물렀던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소치 올림픽 이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 빙속계의 전설인 마리안네 팀머 코치를 통해 자세를 교정한 이후 가파른 속도의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국제 및 일본 대회에서 금메달 24개를 목에 걸며 이상화를 압도하기에 이르렀죠. 물론 이상화가 정상적인 컨디션은 아니었지만요.


하지만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달려온 이상화는 "이겨내리라! 지금까지 견뎌온 역경과 한계를" "내일 저녁! 힘껏 응원해 달라, 이번엔 내 차례" "'평창올림픽은 내꺼'라고 말하고 싶다"며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500m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1,000m 출전까지 포기했기에 그 간절함은 배가 되었을테죠.




이상화의 바로 앞 조인 14조에서 레이스를 펼친 고다이라 나오는 36초94로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했습니다. 이윽고 15조의 아웃코스에서 일본의 고 아리사와 함께 레이스를 펼친 이상화. 100m 구간을 31명 중 가장 빠른 10초20으로 주파한 이상화는 후반부 들어 속력을 올렸던 고다이라와 달리 나머지 구간에서 속도를 좁히지 못하고 37초33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경기 후 이상화는 그간 참았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며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간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고통의 순간들, 그리고 조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정상에 서지 못한 아쉬움 등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상화는 울었던 이유에 대해 "금메달을 따지 못해 슬픈 것은 아니었다. 이제 끝났구나, 드디어 끝났구나 싶었고,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였다"고 밝혔죠. 



또한 이상화는 이날 자신의 레이스에 대해 "마지막 코너를 들어갔을 때까지도 온몸으로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세계신기록을 세울 때 느낌이었다. 하지만 너무 빠른 속도를 오랜만에 느껴봐서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가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미 끝났고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값진 경기였던 것 같다"며 덤덤한 모습을 보였죠. 이번 은메달로 이상화는 미국의 보니 블레어 이후 두 번째 500m 3연속 우승에는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역대 3번째로 3회 연속 포디움(시상대)에 올랐죠. 이상화에 앞서 3회 연속 포디움에 오른 선수는 동독의 카린 엥케와 미국의 보니 블레어 두 사람 뿐입니다.



이상화 선수의 이러한 결실 뒤에는 역시 그녀의 뒤에서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가족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IMF 이후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며 오빠 이상준 씨가 동생을 위해 스케이트를 포기했고, 아버지 이우근 씨와 어머니 김인순 씨는 대출을 받아가며 1년에 한 번씩 천만 원을 들여 캐나다에 전지훈련을 보내기도 했죠. 이상화 선수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을 오빠에게 선물로 준 일화는 유명하죠? 이날 경기를 마친 뒤 어머니 김인순 씨는 "우리 딸이 그동안 참 고생했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경기라 부담도 느끼고 힘들어했는데 무척 잘해줬다. 고생을 많이 한 것을 생각하면 감격스럽고 눈물이 나온다"며 소감을 밝힌 한편 "우리 딸, 지금껏 오느라 너무 고생 많았다. 그동안 여러 일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쉬면서 너의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속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화에게 조용히 다가간 고다이라 나오 "잘했어"



한편 이달 네티즌들은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모습에 또 한번의 감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화에 앞서 레이스를 마친 고다이라는 이상화가 레이스를 끝낸 직후 가장 안쪽 라인에 있다가 이상화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는데요. 이때 고다이라는 이상화에게 한국말로 "잘했어"라고 얘기해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고다이라는 울고 있는 이상화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줬고, 이상화는 고다이라에게 안겨서 울다가 이내 눈물을 멈추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그제서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이날 고다이라는 이상화에게 "난 아직도 널 존경한다(I still respect you)"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상화를 향해 "그동안 이상화에게 엄청난 압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를 이겨낸 이상화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도 우러러 볼 것"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나오 선수는 많은 국제대회에서 경쟁을 펼침과 동시에 우정을 쌓아온 사이라고 합니다. 고다이라는 "3년 전 서울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을 위해 서울에 왔다. 당시 내가 1등을 하고 네덜란드로 바로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이상화는 우승을 못해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친절하게 택시를 잡아주고 택시비까지 내줬다. 기분이 좋고 너무 고마웠다. 선수로도 훌륭하다"고 이상화와 얽힌 한 일화를 밝히기도 했죠. 




이상화의 가슴에 오빠를 비롯한 가족이 있었다면 고다이라 나오의 가슴에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다이라와 신슈대 동기이자 소치 올림픽 당시 나란히 일본 국가대표로 빙판 위를 달렸던 일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스미요시 미야코가 지난달 23일 자택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던 적이 있는데요. 당시 가족의 뜻에 따라 사인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평소 많은 고민을 안고 있었고,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었죠. 고다이라는 지난달 도쿄에서 있었던 선수단 결단식에서 "4년 동안 스미요시는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고, 스미요시의 가족들로부터 그녀의 몫까지 열심히 해달라는 격려를 받은 뒤 "스미요시가 내 가슴속에 남아 힘이 돼줄 것이라 생각한다. 올림픽에서 친구를 위해 제대로 내 힘을 발휘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이상화·고다이라 나오 우정의 경쟁, 베이징에서 다시 볼지도



애시당초 이상화와 주변 사람들은 이번 평창 올림픽이 이상화의 마지막 올림픽임을 직·간접적으로 밝혀왔습니다. 이상화가 "조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인 만큼 은퇴를 미루고 준비했다"고 말한 것도, 이상화의 부모님이 "우리 딸의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말한 것도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이상화 선수의 몸 상태도 한 몫 했었고.. 그런데 기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상화 선수가 "다음 기회는 있을 것 같다. 섣부르게 은퇴라고 말할 수 없다. 경기장에서 다시 볼 시간이 있을 것이다"라고 밝힌 것인데요.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이상화 선수가 밝힌 고다이라와의 일화입니다. 지난 2017년 ISU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시리즈 한 대회에서 이상화가 고다이라에게 "평창 끝나고 베이징도 탈 것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고다이라는 "네가 하면 한다"고 대답했다더군요. "그땐 재미있게 나눈 대화인데, 지금 질문을 들으니 일단 올림픽이 끝났으니 쉬고 싶다"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우린 어쩌면 4년 뒤 베이징에서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의 은빛 레이스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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