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 그것이알고싶다 노진규 죽음과 파벌 싸움에 답할 차례

Posted by 자발적한량
2018.04.08 20:28 내가 밟고 있는 땅/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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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 사태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박지우·김보름·노선영이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3분 03초 76의 기록으로 8개팀 중 7위에 그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죠. 하지만 경기 중반부터 빠르게 치고 나간 김보름과 박지우 두 사람과 맨 뒤에 있던 노선영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태로 레이스를 이어가며 팀워크 논란이 일었습니다.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자들조차 당시 벌어진 상황을 지적하고 나섰죠.



경기 이후, 선수는 물론이고 코치들마저 홀로 남겨져 고개를 숙인채 울고 있던 노선영에게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노선영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넨 단 한사람은 네덜란드 국적의 밥데용 대표팀 코치. 그리고 김보름이 인터뷰에서 보인 태도로 국민들은 폭발하고 말았죠. 노선영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을 비롯해 비웃음을 날리는 모습을 보였거든요. 청와대 국민청원에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한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역대 청원 최단 속도로 답변요건 20만 명을 돌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빙상연맹)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백철기 감독이 "왜 노선영을 중간에 끼워서 가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대표팀이 더 좋은 기록을 내려면 선영이가 맨 뒤에서 따라가는 게 맞다고 보고 전략을 수정했다"며 해명을 내놓고 김보름 선수가 울음을 터뜨렸지만 네티즌들은 악어의 눈물이라며 비난을 이어갔죠. 게다가 감기몸살 때문에 기자회견을 참석하지 못했다는 노선영 선수가 SBS와의 인터뷰에서 기자회견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논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여론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노선영은 23일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훈련을 마치고 일부 취재진에게 "올림픽이 아직 안 끝나서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올림픽이 끝나면 말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지만 경기가 열린 24일에도 믹스트존에 나타나지 않았고, 올림픽이 끝난 이후 언론들이 접촉을 시도했지만 "나중에 말할 때가 되면 연락을 드리겠다"며 접촉을 피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김보름은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눈물을 흘리며 관객들에게 절을 올리는 김보름의 모습에 동정론이 일기 시작했죠. 문재인 대통령까지 SNS를 통해 "메달보다 값진 교훈을 함께 얻었을 것이다. 올림픽이 남다른 의미로 남기를 바란다"며 축하의 말을 보냈었죠. 3월말 김보름이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신과 입원치료까지 받게 됐다는 소식에 동정론이 정점을 찍었고, 어느새 우리 기억 속에서 논란은 잊혀져 갔습니다.




그런데 지난 4일, 한겨레가 팀추월 왕따 논란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 당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노선영이 SBS 취재진과 함께 강릉의 한 카페에서 함께 있었다는 보도를 통해 노선영과 SBS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마침 노선영은 올림픽 폐막 이후 다른 언론과의 접촉은 피하면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는 출연하면서 언론 사이에서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었죠. 하지만 SBS 측은 "과거 빙상연맹의 어처구니없는 행정 처리로 노선영에게 1,500m 출전권이 없어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뻔 했을 때 첫 보도를 하면서부터 형성된 신뢰 관계에 의한 정상적인 취재활동"이라며 이를 반박하며 기사 정정을 요구했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제 저녁(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겨울왕국의 그늘-논란의 빙상연맹'편을 통해 팀추월 왕따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노선영은 방송에서 "경기 직후는 그냥 창피했다. 수치스러웠다"며 "인터뷰 내용 자체가 제가 못 따라가서 못 탔다는 식으로 들렸다. 나만 몰랐던 어떤 작전이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며 김보름의 인터뷰를 언급했습니다.



또한 당시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나는 이미 찍혀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들어간 그 첫 날, 나는 투명 인간이었다. 선수들도 내가 말하기 전에 말 걸지 않았다. 지도자들이 선동하는 느낌이었다. 빙상연맹과 교수님한테 잘못 보인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교수님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아서 미움을 샀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털어놓았는데요. 여기서 노선영이 언급한 '찍혀 있는 상황'은 올림픽 전 노선영이 "지난해 12월 10일 월드컵 4차 시기 이후 팀추월 남녀 대표팀이 단 한 차례도 함께 훈련하지 않았다"며 이승훈, 정재원, 김보름 3명이 태릉이 아닌 한체대에서 따로 훈련을 하고 있는 상황을 폭로한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사태의 중심으로 지목된 사람은 전명규 대한빙상연맹 부회장. 한국체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전 부회장은 '한국 쇼트트랙의 대부'로 불리며 한국 빙상의 전설을 일궈낸 사람입니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15년간 대표팅 사령탑을 맡으며 무려 780 여개의 메달을 획득해 한국을 쇼트트랙 강국으로 만들었죠. 이준호, 김기훈, 모지수, 김동성, 김소희, 전이경, 안현수(빅토르 안), 최은경 등의 쇼트트랙 선수들을 비롯해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차민규 등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도 전명규 부회장의 지도 아래 탄생한 스타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명규 부회장은 빙상연맹 파벌 싸움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2006년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빅토르안의 아버지 안기원 씨가 소동을 벌였을 때부터 2010년 이정수 짬짜미 파문 등 한체대·비한체대 간의 파벌 싸움이 터질 때마다 빠짐없이 언급됐죠. 전 부회장은 짬짜미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빙상연맹 부회장에서 물러났다가 2012년에 복귀합니다. 하지만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또 다시 파벌 논란이 이슈가 되며 '성적 부진'을 이유로 다시금 사퇴를 하죠. 그리고 3년만인 2017년 다시금 빙상연맹 부회장으로 복귀하며 평창올림픽을 준비해왔습니다.



방송에서 빙상 관계자들은 전명규 부회장을 '절대 권력자'라고 부르며 "연맹 직원들의 인사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없다. 밉보이면 아웃이다" "연맹 안에 부회장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분과 관계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부회장의 권력이 계속 유지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네덜란드의 에릭 바우만 감독도 마찬가지. 그는 "마피아 같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전명규 중심으로 간다. 제 방식으로 선수 훈련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빙상연맹은 내 아이디어를 지지해주지 않았다. 모두 전 교수 영향을 받았다. 시도하고 싶은 부분은 제지당했다"고 털어놓았죠. 



전명규 부회장의 영향력은 대학은 물론이고 실업팀에까지 미쳤다고 합니다. 전 국가대표 선수는 "말 안 듣는 선수가 없다. 대학 졸업을 해야 하는데 졸업을 안 시켜 주는 경우도 있다"며 "교수가 실업 팀도 정해준다. 교수님 입김이 안 통하는 곳이 없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전명규 부회장이 빙상연맹 직원을 통해 '누군가를 비판하는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녹취 파일도 공개됐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에서 전명규 부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접촉해봤지만 허사였는데요. 전 부회장은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억울함을 토로했었습니다.


전명규와 안티 전명규, 한체대와 비한체대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사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체대가 20년 동안 빙상계에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다가 좋은 선수들을 키워내고 스카우트하고 하니까 과거의 독과점을 누리지 못하는 쪽에서 시기하고 파벌싸움으로 몰고 갔다. 


시기와 질투, 심지어 협박도 많이 받았다. 대부분 선수기용에 대한 불만이었다. 심지어 건달들이 봉고차를 타고 몰려와 위협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항상 최선의 선택을 위해 선수기용에서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다. 물론 로비와 유혹이 있었지만 한 푼도 받은 적 없고, 커피 한잔도 사양한다고 말을 한다.



실제로 문화계는 물론 체육계도 접수하고 싶어했던 최순실이 득세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 이후 빙상연맹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벌여 전명규 부회장을 그야말로 탈탈 털었으나 먼지 하나 나온 것이 없었긴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한체대 - 비한체대 파벌 싸움에서 절대선, 절대악은 없습니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빠질 수 없이 등장했던 '돈'의 규칙을 깨버린 전명규 부회장의 등장, 이로 인한 구세력인 비한체대파와 신세력인 한체대파의 싸움. 그리고 어느덧 과거 비한체대파의 잘못을 답습하는 한체대파... 적폐를 깨고 등장한 새로운 세력이 어느새 또 하나의 적폐로 자리잡은 것이죠.



파벌 싸움에 대해선 각자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지만, 전명규 부회장이 피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팀플레이라는 미명 하에 메달 획득만을 위해 희생이 강요되는 전명규식 지도법. 이날 방송에서는 노선영의 동생이자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故 노진규가 언급되었는데요. 두 선수의 어머니는 "경기 중 어깨를 다치고 병원에서 양성 종양 진단을 받았다. 200만분의 1은 악성으로 갈수도 있다. 전 교수와의 통화에서 난 수술부터 하자 했지만 전 교수가 '양성이라 하지 않냐' '올림픽이 달려있는데 어떻게 수술을 하려 하냐' '올림픽 끝나고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 빙상 관계자는 "자기가 잘 되려면 메달을 따야 했다. 누가 희생하든 메달을 따는게 목표라 얘기 한다. 그 당시 나머지 선수들은 기량이 안돼서 노진규가 필요했던 거다"라고 밝혔는데요. 故 노진규는 소치 동계올림픽을 한 달 가량 앞두고 팔꿈치가 부러져 골절 수술을 하면서 종양 제거 수술도 함께 받았는데, 이미 종양이 양성에서 악성으로 변해 있었고 골육종 진단을 받기에 이릅니다. 이후 항암치료를 했지만 암은 폐로 전이됐고, 끝내 2016년 4월 25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됐죠.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십년 넘도록 이어진 빙상계의 문제점을 다룬 점은 환영할 만 합니다. 하지만 한체대 - 비한체대 파벌 싸움에 대해서는 약간 취재의 깊이가 얕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이 의미있는 것은, 열정과 도전으로 가득해야 할 올림픽이 메달만을 바라보고 무조건적인 희생이 만연한 한국빙상계를 고치는데 밀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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