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모나리자의 아름다운 미소

Posted by 자발적한량
2009.06.17 12:04 일상탈출을 꿈꾸며/프랑스
 12세기 말 중세 시대의 필립 오귀스트 왕에서 20세기 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까지 8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루브르.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이 장구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런던의 영국 박물관, 바티칸의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유럽 3대 박물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세계 3대 박물관이라고 승격시켜 극찬을 하기도 하죠. 비교를 해보자면, 바티칸박물관은 종교에 관련된 유적들이 많고, 영국 박물관은 딱히 한 부류로 국한시킬 수 없이 종류가 다양하고(나쁘게 말하면 잡다하고), 루브르 박물관은 미술품들이 많습니다. 굳이 특색을 따져보자면요..^^ 


 루브르 박물관 한국어판 관람 안내서!! 와..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어 안내를 접했던 곳은 융프라우와 세느강에서 탄 바토 무슈 뿐이었는데..2004년 당시 주철기 주불 한국 대사, 주불 한국문화원장,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장이 루브르 박물관장 및 관계자를 직접 만나 한국어판 발간을 공식 제안하고 삼성전자 프랑스 법인이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후원하여  성사된 관람 안내서라고 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와 같은 기업체 및 정부의 메세나 활동은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네요. 실제로 세계적인 맥주 제조회사 하이네켄이 화란어판 발간을, 주불 중국 대사관 소속 선전사무소가 중국어판 발간을 후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규격으로 양면에 각 층별 전시관 안내지도 및 관람 정보를 수록하였으며, 불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네덜란드어, 아랍어, 일본어, 중국어에  이어 한국어판이 추가로 발간된 것입니다.  한국어판 안내서 발간은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 관람 편의를 제공함은 물론이고, 특히, 외국의 유명 관광 명소에서 한국어로 된 관람 안내서를 직접 접할 수 있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죠?^^ 참, 대한항공의 협찬으로 음성 안내까지 된다고 합니다!


 루브르박물관은 중앙의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크게 리슐리외관, 쉴리관, 드농관으로나뉩니다. T군 일행은 루브르 박물관 방문이 이날 첫일정이었던 관계로 드농관만을 간략히 보게 되었습니다..ㅠㅠ


 카노바의 작품인 프시케와 큐피드입니다. 한국어판 안내서에는 사랑의 신의 키스로 소생된 프시케라고 적혀있더군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큐피드(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조각이죠. 마술 향수를 맡고 영원히 잠든 프쉬케와 그녀의 영혼을 깨우는 큐피드를 조각한 것입니다.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구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두 노예들. 그 중 사진 속 작품은 죽어가는 노예입니다. 다른 작품은 반항하는 노예죠. 미켈란젤로는 회화보다 조각을 우선시하였던 인물입니다. 루브르에 소장된 조각품들중 최고의 미를 자랑하는 이 노예상을 통해 우리는 조각가로서의 미켈란젤로의 엄청난 힘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고대의 포로들의 조각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 천지창조의 아담이 힘찬 젊은이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면, 죽어가는 노예에서는 생명이 막 꺼지려하고 육체가 죽음을 내맡겨진 순간을 나타낸 것입니다. 치열한 삶에서 오는 고통과 죽음으로써 해방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표현한 것이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회화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봐왔던 미술책에서, 그리고 사회책에서 숱하게 등장했고,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종종 볼 수 있던 작품들이 실제로 제 눈앞에 펼쳐졌지요!


 들라클르와의 작품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그림은 프랑스에서의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화국을 염원하였던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루이 필립왕에 의해 의회 군주제를 낳게 하였는데, 이 그림은 1830년의 "7월 혁명"의 생생한 장면을 화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하였습니다. 가슴을 드러낸채 민중을 이끄는 짧은 머리의 여인은 공화국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고, 억압에 대한 민중들의 자유에의 의지를 힘차고 열정적으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재밌는 사실 한가지는 장총을 든 사람이 바로 화가 자신이고 권총을 들고 있는 꼬마는 레미제라블에서 빵을 훔치먹다가 죽은 가브로슈라는 아이라는 것입니다.


 그로의 작품 일라우 전쟁터의 나폴레옹입니다. 안토니 장 그로는 다비드의 제자였다고 하네요. 나폴레옹 시대의 종군화가로 전투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재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중 나폴레옹 군대의 패전의 깃점이 된 일라우 전투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종군 화가였던 그로는 나폴레옹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작품을 자세히 관찰하면 작가의 진정한 관심이 나폴레옹 개인의 영광보다는 전쟁의 비참함을 고발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리코의 작품 메뒤즈호의 뗏목. 이 그림은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인 참사를 묘사한 것인데, 1819년 범선 메듀스호가 세네갈에 파견되었다가 도중에 파선되어 149명이 익사하고 15명이 목숨을 건졌는데, 또 다시 5명이 육지에서 사망하여 결국 10명만이 생명을 건진 최대의 참사였습니다. 식량이 떨어진 생존자들은 마지막 남은 포도주와 죽은 동료들의 시체로 연명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비보를 전해듣고, 제리코가 마지막 15명이 등대를 발견하면서 구원을 요청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극적인 상황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루브르에서도 걸작으로 꼽힙니다.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황제 대관식입니다. 1804년 12월 2일 파리의 노틀담 성당에서 거행된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위대함과 당시의 막강했던 그의 파워를 말해주는 듯 이 작품은 그 크기면에서, 화려함에서, 웅장함에서 보는 사람을 압도하였습니다. 교황마저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게 한 나폴레옹은 황제의 관 대신 로마시대 황제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썼습니다. 이 그림의 장면은 황후인 조세핀이 나폴레옹으로부터 황후관을 받아쓰는 장면입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이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조세핀의 위쪽에 있는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실제로는 조세핀을 인정하지 않아 대관식에 참여하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그림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있다네요. 참, 이 그림은 베르사유 궁전 편에서 다시 한번 언급될 예정입니다!


 베로네제가 그린 가나의 결혼식. 루브르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중 가장 큰 그림입니다. 베로네제는 베네치아의 상업 귀족들의 호화로운 풍속도를 즐겨 그렸던 화가입니다. 곤돌라의 도시 베니스는 16세기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해상 도시였죠. 풍요로왔던 당시의 생활상을 이 그림을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음악가, 하인들, 광대들, 개, 화려한 능라를 걸친 손님들 등 가운데에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제자들이 보입니다. 화가는 비올라를 연주하는 악사로 자신을 그려넣었다고 하네요. 베니스는 물의 도시라 습기가 많았는데, 이렇게 큰 캔버스가 뒤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을 겁니다.


 자, 드디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수수께끼의 미소를 띤 이 작품의 모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친구 조콘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성애와 이상적인 여성에 대한 다빈치의 열망이 승화된 작품으로 일설에는 동성연애자였던 다빈치의 이 작품은 여성과 남성을 섞어놓은 것, 혹은 그 자신의 자화상이라고도 합니다. 윤곽선을 뚜렷이 그리지 않고 빛과 그늘로 흐릿하게 선을 그리는 기법에 의하여 모나리자는 천의 얼굴을 가진 신비의 여인이 된 것입니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더군요. 루브르의 작품들 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던 곳이었습니다. 며칠전에 누드 모나리자 그림이 발견됐다고 뉴스가 나왔죠?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입니다. 기원이 알려진 드문 경우에 속하는 조각품으로써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중 가장 유명한 작품중의 하나입니다. 에게해 북동쪽 까비르 신전의 수많이 쌓여있는 돌더미 속에서 발굴된 이 작품은 전함의 뱃머리에 달려 있던 것입니다. 날개 달린 여신 사모트라스가 해전에서의 승리를 상징하는 힘찬 모습을 보내주고 있는데, 그 비상하는 듯한 동세와 날개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여인의 모습 등에서 헬레니즘 문화의 특징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두팔뿐 아니라 머리마저도 원형을 찾지 못하였는데 다만, 오른손만 1850년 추가 발견되어 이 조각 옆에 유리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있기있는 작품 중 하나죠. 밀로의 비너스는 2000년 가까이 시클라르섬에 묻혀 있다가 1820년 발굴되었습니다. 이 대리석 조각품은 3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상체와 하체가 둔부의 옷의 두꺼운 주름속과 왼발의 두꺼운 주름 속에서 결합되었으며 왼발의 무릎부분 일부는 앞에서 끼워 맞추어 넣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완벽한 동세, 세부 내용까지 해부학적으로 완전히 사실주의적인 이 작품은 당시의 예술이 그리스 고전주의로 돌아가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헬레니즘 경향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표현하는 대상 인물이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옷의 주름 위에 떠오르는 듯한 인상을 주는 반나신의 여인의 아름다움으로 보아 아프로디테상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추측이 정설이라고 합니다. 이 조각 작품의 곁에는 비너스상의 잘려나간 두 팔을 복원하기 위해 루브르의 연구팀이 팔들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여 조립하려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설명으로는 오른팔은 허벅지 위에, 왼손은 사과를 들고 있었으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헛된 것이 되어버렸고, 어떤 모양의 팔을 가져다가 붙여봐도 오히려 비너스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선의 율동을 파괴시키므로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지금 루브르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는 센느 강변은 12세기 말, 바이킹 족들의 침입이 잦아 군사적 목적으로 세운 중세식 성이 있던 자리입니다. 14세기 들어 샤를르 5세 때, 루브르는 처음으로 왕궁으로 사용되죠. 이 때부터 왕의 진귀한 귀중품과 도서들이 루브르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화려한 거실과 집무실들이 마련됩니다. 하지만 샤를르 5세가 서거하자 프랑스 궁정과 귀족들은 루브르 궁을 버리고 남쪽의 루아르 강 쪽으로 내려갔고 이로 인해 루브르 궁은 다시 원래대로 군사적 목적으로 쓰이게 됩니다. 이 중세 성은 다시 파리로 돌아온 프랑수아 1세에 의해 1545년 헐리기 시작해 지금과 같은 모습의 르네상스 식 성이 건립됩니다. 이후 프랑스 절대 왕정이 막을 내리는 루이 16세 때까지 역대 모든 프랑스 왕들은 어떤 식으로든 궁에 자신들의 치세 흔적을 남기게 되죠. 나폴레옹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랑스가 대혁명의 와중이었던 1793년 루브르 궁은 무제움, 즉 박물관으로 선포되면서 왕족, 귀족, 성직자들이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들을 보관하게 됩니다. 나폴레옹의 제정 때는 잠시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선포되면서 전쟁에서 노획한 유물들이 엄청난 양으로 루브르에 들어옵니다. 루브르 궁은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 때 들어 지금과 같은 위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리볼리 가에 면한 건물이 완성될 뿐만 아니라 내부도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획기적으로 전시 공간을 늘이게 되죠.


 하지만 세계 최고의 대 루브르 박물관으로 태어나게 된 것은 20세기 말 14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당시 '대 루브르' 계획에 의거해 약 20년 동안 이루어진 공사가 끝난 후입니다. 재무성에서 사용하던 건물이 박물관으로 편입되었고 출입구, 주차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나폴레옹 광장 지하에 자리잡게 되었으며 내부 역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는 등 초 현대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수장고에 보관되던 유물들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고 베르사유 등 야외에 전시되면서 파손 우려가 있던 대형 기념물 조각들 역시 루브르에 들어옵니다. 모든 공사는 나폴레옹 광장에 유리 피라미드를 세운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아이 오밍 페이가 맡았습니다.


 1981년 대통령에 올라 14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던 프랑수아 미테랑의 ‘대 루브르’ 공사를 끝으로 루브르는 마침내 800여 년 동안의 긴 변화를 끝내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이 마지막 공사를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아이 오밍 페이가 담당했다는 것은 이집트 유물에서부터 밀로의 비너스와 모나리자를 거쳐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에 이르는 귀중한 인류의 문화 유산을 보관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이 단순히 프랑스 한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전 인류의 재산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선택이었습니다.


 역 피라미드를 보지 못한 게 아쉽네요..다빈치 코드에서 성배가 있었던..ㅎㅎ 루브르 박물관을 끝으로 유럽 3대 박물관을 모두 방문해본 T군이 되었습니다!! 하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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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워 부럽네여 ㅎㅎㅎ
    보고 있자니 저도 가보고싶네요 ㅜㅜ
    모나리자 .. 패트와매트란 만화영화에서 얼핏 본 기억이 나는데 그윽한 미소 ~.~? ㅎㅎ
  2. 돌아다니다보면 다리가 떨어져나갈 것 같다는...ㅋㅋ 그 루브르 군요. 워낙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진짜 다빈치 코드가 한 몫했어요
    • 나중에 한번 다빈치코드나 천사와 악마 이동경로를 테마로 유럽에 가보고 싶어요..ㅎㅎ
    • redfree
    • 2009.06.23 09:38 신고
    루브르 사진을 보니 꼭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네요. 사진도 잘 보고 설명 잘 들었습니다.
    <가나의 결혼식>설명중에 <레비가의 향연>과 오해하신 설명이 들어있네요. 베로네세의 <최후의 만찬>은 종교재판소의 영향으로 T군님의 설명대로 작가가 이름을 <레비가의 향연>으로 바꾼적이 있답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주워들었을 분 비전문가입니다. ^^
  3. 안녕하세요~
    유럽을 다녀온지 벌써 일년이 다 되어 가는 군요.
    트랙백따라 이곳까지 와서 글을 읽어보니 내가 유럽을 다녀오긴 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ㅎ
    즐거운 여행하신것 같아 좋아보여요~~
    • 키워
    • 2009.06.28 01:34 신고
    형 이런사람이였군요 ㄷㄷㄷㄷ
  4. 반년만에 루브르를 다시금 보게 되네여.
    재미나게도 유리 피라밋 아래에서 찍을때 입고 계셨던 아톰 T셔츠를 저도 갖고 있네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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