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을 꿈꾸며/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 도시에서 느껴지는 르네상스의 향기

자발적한량 2008.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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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로는 플로렌스라고 하는 인구 38만의 피렌체는 로마에서 북쪽으로 약 23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탈리아 지도를 놓고 보면 밀라노와 로마 사이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시 중심부로는 아르노 강이 흘러 내려갑니다. 아르노 강 인근의 저지대에는 신흥 공업지대로 상공업의 중심지입니다. 아르노 강 인근의 도로와 아펜니노 산맥을 넘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피렌체를 흔히 두오모 성당의 원래 이름인 '꽃의 성모 마리아'로 기억하며 많은 이들이 꽃의 도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피렌체는 예술의 도시로써 무엇보다 이탈리아 천재들의 열정과 세계관이 마음껏 만개했던 르네상스의 도시입니다.


 아르노강의 북쪽, 피렌체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 산타마리아 델피오레 대성당이라고도 부르는 이 곳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지도적 구실을 한 피렌체에 어울리는 대성당의 실현을 대망하던 시의 결의에 따라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착공되었습니다. 공사 도중에 그가 죽자 조토에 이어 A.피사노가 공사를 인계받아, 그 동안 조토가 새로 계획하였던 정면 오른쪽의 대종탑을 거의 완성하였습니다. 또한 그 뒤를 이어받은 프란체스코 탈렌티는 1357년 이래 건물 규모의 확장을 추진하여 1421년경에는 폭 42 m의 삼랑식 회당부와 지름이 이와 맞먹는 광대한 8각 평면의 내진, 그리고 여기서 세 방향으로 내물린 제실을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시민의 기대를 모았던 대원개의 공사는 그것이 광대한 내진 전체를 덮는 구상이었던 만큼 많은 기술적 어려움을 수반하여 착공이 늦어졌는데, 겨우 현상설계의 응모작품 가운데서 뽑힌 F.브루넬레스키의 설계를 바탕으로 그의 지휘하에 1420년에 작업이 개시되었다고 합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우선 내진 위에 지름이 이와 맞먹는 8각의 탕부르를 두고, 그 위에 8각 첨두형의 독특한 2중 구조를 가진 대원개를 올리는 방법을 고안하여, 1434년에는 정탑 부분만 남기고 이 난공사를 마쳤습니다.


 전체적인 양식은 이탈리아 식 고딕입니다. 성당을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보면 성당의 엄청난 규모와 백, 적, 녹 삼색의 대리석들이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길이 153m, 폭 90m이며 궁륭 꼭대기까지의 높이 역시 90m입니다. 성당 정면 오른쪽에 돔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어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무려 463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므로 어린아이들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즌 중에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서두르는 것이 좋습니다. 이곳에서는 피렌체 시가지 전체를 조망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성당 내부는 의외로 간결하고 소박합니다. 조르지오 바사리와 프레데리코 주카리가 그린 궁륭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최후의 심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오모 성당은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13~14세기 당시 피렌체의 부와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조반니 세례당은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에 자리잡고 있어 이에 부속된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건축으로, 그 역사는 로마시대에 세워진 마르스 신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4세기경에 건조되었던 소성당이 1060∼1150년경에 재건된 것으로, 8각형 플랜의 바실리카 성당입니다. 백색과 녹색 대리석으로 장식한 이 세례당은 서쪽을 제외한 세 방향에 문이나 있습니다. 바로 이 세 개의 문이 전 세계 예술 애호가들을 열광하게 하는 곳이며 피렌체를 수호하는 성인 세례 요한을 기리는 8각 예배당의 입출구입니다.


 현재 세례당의 남문은 안드레아 피사노가 1330년에 만든 문으로 세례 요한의 일생을 묘사했습니다. 문의 테두리는나머지 두 문을 만든 기베르티의 아들이 후일 제작한 것입니다. 북문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콩쿠르를 통해 선발된 로렌조 기베르티가 1424년에 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놀라운 조화와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 개의 문 중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격찬한 세 번째 동문 역시 1452년 기베르티가 만든 문입니다. 구약을 묘사한 작품으로 현재의 문은 복제한 문이며 원본은 두오모 박물관에 있습니다. 후일 로댕의 대작 <지옥의 문>에 영향을 준 작품입니다. 지름 25m의 실내 바닥은 백색과 녹색 대리석으로 장식했고 13세기 작품인 천장 모자이크는 최후의 심판과 영계의 서열, 창세기, 요셉의 일생, 성모와 예수님의 일생, 세례 요한같은 성인들의 일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르노강 위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1345년에 건설되었으며 로마시대의 마지막 다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4년 연합군의 추격을 받던 독일군이 강 양쪽 기슭의 집을 모두 파괴했으나 베키오 다리만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원래 이 다리에는 푸줏간, 대장간, 가죽 처리장 등이 있었는데 1593년에 페르디난도 1세가 시끄럽고 악취가 난다며 모두 추방하였고 대신 금세공업자들이 다리 위의 상점에 세들었습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베키오 다리의 금세공 상점들은 다양한 보석을 판매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판매하는 수공예 제품들은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피렌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단테입니다.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문호로 작품 중 '신곡'이 가장 유명하죠. 그가 9세 때 베아트리체를 만났던 베키오 다리를 비롯해 베아트리체의 집이 있었던 토스카나 은행, 그리고 그의 생가였던 곳에 마련된 기념관을 통해 단테의 생을 조금이나마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두오모와 시뇨리아 광장 사이, 좁은 골목길에 단테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는데다. 지난 1865년 피렌체 시가 600주년 기념으로 조성한 곳으로 그의 생가 안에 작은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부근 거리에는 신곡의 구절을 새긴 40여 개의 석판을 붙였고 산타 그로체 교회에는 그의 가묘를 만들어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실제 묘는 라벤나라는 곳에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참고로, 이탈리아 전역에는 단테가 잠시 머물렀던 집등이 모두 생가라는 이름을 붙여 그 갯수가 꽤나 많다고 합니다.


 길거리에 있던 광대..함이 돈을 넣으면 움직입니다..ㅎㅎ


 1298년에 착공하여 몇 번에 걸친 개조 공사를 통해 16세기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1540년에 코시모 공작 1세의 명으로 바사리가 내부를 개조했습니다. 일찍이 피렌체 공화국의 청사였던 건물로, 현재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궁전 오른쪽 입구로 계단을 올라가면 대청으로 들어서게 되며, 대청 양쪽 벽면에는 바사리와 그 일파가 그린 메디치의 전투장면이 있습니다. 3층에는 기를란다요의 로마 영웅들을 표현한 프레스코화가 있으며 그밖에도 마키아벨리 초상화, 프란체스코 1세의 방, 지구의 방 등 옛날 피렌체의 부와 힘을 느끼게 하는 유물들이 많다고 하네요^^


 베키오 궁과 우피치 박물관 앞에 있는 시뇨리아 광장은 13세기부터 피렌체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조각 작품들로 장식하여 말 그대로 야외 박물관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르네상스의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반기독교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기독교 근본주의를 주장한 수도사 사보나롤라를 화형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화형 장소를 나타내는 석판이 있죠. 사진 속의 동상은 메디치 가를 일으킨 코지모 데 메디치의 동상입니다. 지암볼로냐의 1594년 작입니다.


 바다의 신 넵튠, 그리스 신화에선 포세이돈이죠. 암마난티가 넵튠을 주제로 1576년에 대리석과 청동으로 제작한 분수 '폰타나 디 네투노'입니다. 이 분수는 피렌체에서 가장 큰 분수로 메디치 가의 결혼과 토스카나의 해전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적 감각이 떨어져 피렌체 인들에게 큰 사랑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T군이 보기에는 이쁘기만 하던데..^^; 얼마 전에 여기서 어떤 연예인이 화보 찍지 않았었나요? 왠지 여기 같은데..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바치오 바디넬리의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피렌체의 상징동물을 묘사한 도나텔로의 '사자상'과 '유디트와 홀레페르네스' 등 걸작들이 놓여 있어 역시 르네상스의 도시구나 했는데, 이것들은 모조품으로 진품은 모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_-;;;;


 관광명소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마차..^^
 

 산타크로체 대성당. 유럽 전역에서 성행한 고딕양식도 고유의 오랜 전통과 맑은 풍토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극히 적은 예를 제외하면 이 나라 특유의 절충적 작품이 얼마간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성당도 이러한 과도기의 상황 속에서 생긴 건축의 하나입니다. N.피사노의 제자인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를 바탕으로 1294년에 탁발승단의 프란체스코회수도원 성당으로서 착공, 1442년에 완공되었으나 그 동안에 당초의 설계는 계속 변경되었으며, 말기에는 브루넬레스키도 참가하였습니다. 이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단테와 미켈란젤로의 무덤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렌체는 가죽 세공으로도 유명합니다. 귀족, 권력가들의 책상에 놓일 고급문구용품의 필요성에 의해 피렌체에서 가죽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장인의 도시인 피렌체에서도 오리지널 가죽장인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이 가죽 학교는 미래의 장인들을 키워내는 유일한 장소라고 합니다. 산타크로체 성당 뒤편에 자리하고 있더라구요..^^ 이곳은 2차 세계대전 후 프란체스코 수사들과 피렌체의 장인인 고리와 카시니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프란체스코회에 맡겨진 전쟁고아들의 직업 훈련을 하였지만, 1950년대에 들어서 최고의 가죽용품을 찾는 일반인들에게도 공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럽 주둔 미군부대에 물건을 대면서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해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업무용 책상에까지 이 학교의 작품이 올라갔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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