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밟고 있는 땅/기독교 이야기

[스크랩]이웃이 죽었는데, 편히 예배가 드려집니까?

자발적한량 2009. 2. 24.

오마이뉴스 까르르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http://blog.ohmynews.com/specialin/25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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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고 믿었지요. 그러던 것이 제 2바티칸 공회의에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선언을 하였고,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옥신각신했지요. 그런데 최근의 한국을 보면, ‘과연 교회 안에 구원이 있을까’라는 얘기가 나오는 형편입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가 제대로 가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겠지요. 세계 교회들은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는데, 한국 교회들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교인들을 가둬두려고 하지요. 종교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자유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는 경제정치의 위기뿐 아니라 종교와 철학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삶을 끌어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종교와 철학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갈 길을 몰라 헤매고 있습니다. 특히, 개신교는 한국 사회에 깊게 발을 들여놓았고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월 18일,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님을 2월 18일에 만나 뵙고 한국 개신교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님

  -목회자로서 현재 개신교 상황을 어떻게 느끼시나요?


 “한국을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경제라는 건, 사실 이제까지 나타난 사상 가운데 가장 천박하고 철학 같지 않은 토대를 지닌 사상이에요. 효율성 있는 것만 남게 하고 나머지는 죄다 잘라버리고 제거하겠다는, 천박한 탐욕을 덧씌운 사상이거든요. 고객에게 굉장한 손실을 입히면서도 금융권들은 엄청난 보너스를 챙기고 자기들끼리 호의호식을 즐기는 게 다 드러나고 있잖아요. 이런 껍데기 같은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에서 심판받고 있죠.


 
다른 나라에서 버리는 것을 한국은 아주 환영하면서 바짝 달려가고 있는 갑갑한 현실이에요. 한국의 사상기반이 크게 한번 흔들려서 거듭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를 휩쓴 탐욕과 돈의 문화, 이거는 아주 적그리스도적인 사상이고 기독교하고 정반대되는 사상입니다. 이런 것들이 기독교국가에서 성찰 없이 일어났습니다만 그것을 크게 반성해야 되고 진정한 기독교도 거듭나야 하는 거죠.


 
“자체정화가 안 되면 개신교는 국민들에게 버림받을 것”


 
한국 교회가 큰 위기입니다. 100년 밖에 안 된 개신교는 벌써 노쇠현상이 왔어요. 이 땅에 들어 온지 100년 동안 개신교는 굉장히 빠른 성장을 했지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성장이에요. 너무 빨리 성장을 하다 보니 성장병에 걸렸어요. 모든 걸 숫자와 크기로 말하는 병이죠. 돈이 얼마나 많이 모이느냐, 사람이 몇이냐, 이런 걸로만 평가하는 무서운 병에 걸린 거죠.


 
교회에 적대적인 분들이 급격하게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특히 젊은 층들이 다 교회를 떠나고 있어요. 예전부터 교회 다니는 분들에 의해서만 개신교가 유지되는 형국이라서 굉장한 위기감을 느낍니다. 이 위기를 약으로 삼으면 아주 견실해져서 사회를 비추는 등대역할을 할 것이고 자기반성을 안 해서 자체정화가 안 되면 개신교는 국민들에게 버림을 받겠죠. 지금 시점에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반성하고 다시 거듭나지 않으면,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가 정치 권력화 되었습니다.


 “정치와 너무 유착되었지요. 한국의 역사 중에 있었던 장로대통령들이 다 시원찮았어요. 이승만 장로는 혁명에 의해서 쫓겨났고 김영삼 장로는 나라를 IMF에 맡겨버렸죠. 지금 이명박 장로는 전체 기독교는 아니지만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전적으로 일어나서 돕고 있습니다. ‘고소영’ 내각에 교회가 들어가듯이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개신교가 정치에 아주 유착하고 있죠. 자기들이 세상을 잡았다는 식으로 가고 있는 건데, 역사에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패거리정치를 하듯이 지역연고주의를 하듯이, 같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권력을 얻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하나님의 뜻, 예수 그리스도 가신 길을 따라가면서 예수의 삶을 살고 실천해야 해요. 종교를 떠나서 좋은 세상을 바라고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가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책무에요.


 
기독교정신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랑의 정신이에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 편에 서고 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란 말이에요. 로마의 권력에 저항하였고 정치범을 살해하는 십자가에 돌아가셨지요. 민중의 편,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는 게 기독교지요. 그게 기독교인의 삶인데 그렇지 못한 현실입니다.


 
교인들이 많은 대형교회가 힘껏 밀어줘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이 잘하면 좋은데, 오히려 기독교에 반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가진 자, 재벌만 챙기다보니 없는 사람들을 마구 내치는 정책들만 쏟아내고 있잖아요. 하나님의 뜻에 정면 위배되죠.  


대선 전,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를 비롯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장로대통령'을 지지하였다 @오마이뉴스

 
“장로라서 무조건 돕는다? 예수신앙의 배반”


 
장로라서 무조건 돕는다? 예수신앙의 배반이죠. 어떤 누구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되는데 권력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은 겁니다. 대통령을 거기에 올려놓고 그에게 줄 서겠다. 이미 하나님을 포기한 거예요.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섬기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매력을 주는 것들, 돈, 권력, 좋은 지위를 보장해주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것이 기독교신앙의 근본이에요.


 
하나님은 제쳐두고 장로가 대통령이니까 거기 줄서 권력의 맛을 나도 느껴보자고 달려드는 것은 더러운 쉬파리 떼지,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쉬파리가 된 권력을 지향하는 거짓기독교인들과 참 기독교인들이 나눠질 때라고 생각합니다. 거짓과 참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요.“


 
-교회를 정화,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목사를 관뒀겠죠. 저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2000년의 역사동안 지금보다 더 혹독한 터널들을 거쳐냈습니다. 중세라는 어두운 터널도 거쳐냈고 위기 때마다 자정하는 힘이 생겨서 개혁해 온 저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저력이 생기지 않으면 예수는 죽은 거고 기독교로서 가치는 없겠죠. 허무하게 기독교가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개신교의 잘못된 점들을 알고 있습니다. 부끄럽고 대신 사죄를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빙자해서 권력에 눈이 멀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정치세력들을 나무라시는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미 기독교인들이 아닙니다. 기독교를 팔아먹는 변절자들이지, 신앙인들이 아닙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아주 적대를 하시는 분들에게 조금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리자면, 예수를 따르려는 기독교인들도 있다는 걸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힘과 권력을 가지고 대다수의 머리에 올라선 기독교와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참 신앙 기독교를 분류하고 싶어요. 진리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항상 소수죠. 어려운 길입니다. 작은 문으로 가라, 멸망으로 가는 길은 넓고 크지만 진리로 가는 길은 작은 문이라고 예수는 말씀하셨어요. 신앙인들이 가야하는 길은 권력과 돈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 있지요. 그런 길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죠. 교회가 대형화되는 거부터 뭔가 냄새가 나는 겁니다.


 
참 기독교신앙은 시대가 어두울 때 더 드러난다고 생각을 해요. 유신정권, 군사독재시절을 지내오면서 기독교는 가장 선두에 서서 어둠을 이겨낸 역사를 가지고 있거든요. 노동운동, 시민운동, 빈민 운동, 여러 사회 운동들이 많이 있지만 전부 빨갱이로 매도되고 운동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시절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토대가 종교였고 기독교였습니다. 종교인들이 사회의 위기들을 타개하려고 했고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의 꽃을 피어왔었죠.


 
종교는 어려움이 없으면 항상 타락합니다. 공식처럼 되었어요. 어느 정도 민주화된 시기를 거치면서 핍박과 어려움이 없어지니까 힘과 돈, 권력으로 든 것을 판단하게 되었지요. 큰 교회들이 기 펴는 세상이죠. 그런 교회가 개신교의 대표로 부각되고 언권을 쥐게 되었죠. 가진 몫이 크니까요.


 
시대가 어두워지면 위험을 불사하고 바른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무릅쓸 생각도 안하지요. 이럴 때, 참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은 빛이 나게 되어있죠.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증언을 하고 세상으로 나오니까요. 그런 면에서 그동안 민주화되고 좋아졌다지만, 오히려 반 그리스도적인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참 신앙을 수호하는 의로운 신자들이 이럴 때 또 힘을 모으고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 좀 고난이 되겠죠.“


 
“형제자매가 죽었는데, 편히 예배가 드려집니까?”


 
-종교가 사회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흔히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왜 종교인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관심을 갖느냐 얘기를 하죠. 군사독재와 싸울 때, 종교인들이 광주항쟁이나 여러 가지 정권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지적을 하면, 꼭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있다고, 그러한 얘기하지 말라고 했죠. 그런 사람들은 뒤에서 정권과 결탁해서 그린벨트 불하받고 자기 이득을 챙기면서 바른 증언에 꼭 제동을 걸었지요. 지금은 그런 얘기 못 할 거예요. 아예 욕심을 드러내놓고 정치행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한국기독교총연합 주최로 열린 '사학법 재개정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에서 참석자들이 통성기도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있지만, 요즘 현대사회에서 완전히 분리되어있지 않아요. 종교인들도 세금내고 투표하면서 정치에 참여하게 되죠. 저는 묵시적으로 동조하느냐, 아니면 비판적으로 거기에 참여하느냐 구분만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잘못 가는 사회 정치에 침묵을 하면서 동조하는 세력과 비판하고 증언하는 세력이 있을 뿐이지요,


 
아무 말 안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꼭 종교정치 분리를 얘기하면서, 목사는 교회 안에서 예배만 하지, 왜 거리로 나가서 집회를 하느냐고 묻지요. 그런 분들에게 거꾸로 묻고 싶어요. 당신은 형제자매가 죽고 아프고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편하게 예배가 드려집니까. 예배라는 건 아주 숭고한 겁니다. 최고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거거든요.


 
자기 주변에 고통 받는 사람이 없어야지 기쁜 예배가 되지 않겠어요. 숱하게 아픔을 겪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보지 않고 문 닫아 놓고 혼자 기뻐서 날뛰는 예배를 드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미친놈이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어졌을 때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거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완전한 예배는 참다운 세상이 와야지만 흔쾌하게 드릴 수 있는 건지도 모르지요. 지금은 그런 예배의 그림자일 뿐이죠. 형제자매가 눈물을 흘리면 거기로 달려가서 함께하고 그 아픔에 나눠야 형제자매를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얘기하셨어요. 형제와 불화한 것이 있으면 화해하고 와서 제물을 드려라.


 
세상이 어떻든지 상관하지 않고 나만 감사하다고 예배를 드리면 그건 예배가 아니고 불경한 행위에요. 내 주변의 형제들 눈에서 눈물이 가셔야지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겁니다. 세상이 아파죽겠는데, 자기만 할렐루야. 손뼉치고 웃고 떠드는 건 예배가 아닙니다.


 
참 예배를 드리려고 애를 쓰고 교인들이 참 신앙을 회복하면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도 함께 해결될 수 있고 정말 살기 좋게, 서로를 위하고 존경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예수를 배반하면서 살기 때문에 지탄받는 개신교가 되는 겁니다.“


 
“예수를 배반하면서 살기 때문에 개신교가 지탄받아”


 
-예수를 따르기보다 큰 교회에서 편히 살고 싶은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하죠. 꼭 물질이 풍요해야 잘산다고 하는데, 잘못된 표현입니다. 잘 산다는 말은 그런 것 이상의 말이죠. 잘산다는 건 그야말로 인간답게 살고 서로 돌보면서 누구하나 소외되지 않고 흐뭇하게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는 게 잘사는 거지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나만 풍요롭겠다, 이런 삶을 잘 산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큰 교회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모인다는 얘기고 좋은 점이 많이 있죠. 큰 교회 교인이 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풀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아이들 육아부터 해서 교회에 수련관이나 목 좋은 곳에 땅을 사서 나중에 요양원, 공동묘지까지도 서비스해주죠. 거기에다 커다란 이권의 언저리에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죠. 교회의 울타리에 들어가면 콩고물을 얻을 수 있는 거죠.


 
대형교회에 왜 나가는지 조사를 해봤더니, 제일 큰 동기가 사회 상층부의 사람들하고도 친교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큰 교회가면 국회의원, 장관들 만나서 나도 출세의 언저리에 낄 수 있겠다는 욕심이 덩어리가 되어서 대형 교회를 이뤘고 교인들이 그것을 원했죠.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기도회 @들꽃향린교회


 
과연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물질을 추구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인가 생각해 봐야할 때에요. 예수는 십자가를 지셨는데 말로는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 반대방향으로 가는 건 이율배반적 활동이죠. 기독교인 일반의 정서가 세상을 비판하고 욕하면서도 자신은 탐욕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어요.


 
말로는 사회를 개혁한다는 기독교인들도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려는 작은 교회들이 주변에 많은데도 안 갑니다. 이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회변화에 힘을 쓰는지라 일요일만은 조금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힘쓰고 일 한다지만 결국 엉뚱한 곳에 가서 돈 바치고 위로를 구하고 있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대형교회 한울타리에 들어가 있는 한 한국교회가 새롭게 될 수 없죠.


 
대형 교회 안에 있으면서 우리가 이 교회를 변화시켜야겠다는 그럴듯한 변명을 대긴 하죠. 하지만 대형교회 구조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게 아니죠. 하나의 멤버십을 즐기는 행동일 뿐이지 새롭게 변하는 신앙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권력지향을 할 수밖에 없는 교회구조에 자기도 한 몫 하면서 겉으로는 비판하는 이중생활을 하는 신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사회를 부패시키는데 핵심이 되고 있죠.“


 
“역사는 항상 소수에 의해서 참이 지켜져”


 
-한국 교회는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종교가 세속과 결탁하고 권력을 좇으면 반드시 타락하게 되어 있어요. 종교가 자기 힘을 과시하려는 순간. 이미 하나님은 떠납니다. 겸손하고 작은 곳에서 하나의 밀알이 되는 게 종교의 참모습입니다. 시대를 밝혀온 정신은 항상 소수에서 출발했다고 봅니다.


 
중세시대에 성직자들은 대형성당을 짓고, 허영을 채우기 위해 면죄부를 발행하고 종교 권력을 집중해서, 서민들을 쥐어짰었지요. 부패한 종교집단이 세상의 권력을 쥐고 흔들 때, 그것에 거스르는 운동이 벌어지죠. 성 프란시스 같은 분들은 탁발운동을 했거든요. 거지차림으로 얻어먹고 수도원생활을 하셨죠. 그때, 탁발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극히 소수였단 말이에요. 지금 가톨릭교회나 개신교교회나 성 프란시스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하지 면죄부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안합니다.


 
역사라는 것은 항상 소수에 의해서 참이 지켜지는 거예요. 독일의 본 회퍼라는 목사님은 나치저항운동에 참여하셨지요. 당시, 독일 교회 대부분은 연방교회라고 해서 히틀러 편에 섰죠. 그렇지만 나치에 반대하는 양심적인 기독교인들이 있었고 고백교회라는 운동을 했거든요 숫자로 보면 한줌밖에 안되었거든요. 지금 독일교회가 히틀러의 연방교회를 이어받았다고 안하죠. 소수였던 고백의 교회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얘기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 때 수많은 사람들이 친일했거든요.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이 소수였죠.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독립정신을 잇는다고 하지 친일정신을 잇는다고 안 하지 않습니까, 정신을 지키고 역사를 잇는 사람은 항상 소수에요.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훗날 기독교인들이 지금 대형교회를 잇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반성해야 합니다.


 
대형교회에는 냄새가 나지만, 구석구석에 숨어서 참 예수의 삶을 살고자하는 빛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아직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분들을 통해서 개신교가 새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 참 기독교가 뭔가 깊이 생각하고 따져볼 수 있는 계기입니다.“  


지금 당신의 이웃들이 울고 있지 않나요 @들꽃향린교회

 
예수를 천국 가는 직항티켓으로 여기는 사람들


 
개신교 안에서는 군사독재 때부터 목요기도회라는 걸 꾸준히 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해왔지요. 목요기도회는 인혁당 등 사회에서 억울한 일들이 생겼을 때, 이런 분들을 초청해서 그분들의 사연을 알리는 창구였지요. 민주화에 기여를 하면서 계속되었던 목요예배가 작년에는  현장에서 ‘촛불교회’로서 계승되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 정의를 갈구하는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열린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목요기도회 전통을 이어서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것에 참회를 하고 예수를 따르겠다는 결단을 새롭게 하는 예배라고 하네요. 복음주의부터 민중 신학까지 종파를 넘어 매주 목요일 저녁에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단체명은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이고 약칭으로 촛불교회이지요. 올해 2월 26일 명동향린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이 사회에서 가장 아픔이 있는 현장을 찾아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 개신교가 다가가 손을 내미려고 하네요.


 
그 동안 교인들은 이웃의 고통에 침묵하였죠. 세계에서 크다는 교회들은 죄다 한국에 있는데, 사람들은 교회하면 진저리를 칩니다. 한국 교회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떠난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종교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윤리사명을 개신교인들이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목회자들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기는커녕 지탄의 대상이 되었기에 사람들은 교회에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 편에 서서 십자가를 졌지만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도 모자라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것까지 빼앗고 있지요. 남이야 굶주리든 말든 오로지 자신에게만 복을 달라고 할 때만 ‘오직 예수’를 부르짖습니다. 예수를 천국 가는 직항티켓쯤으로 여기며 곁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이웃을 외면합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있는걸까요.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지 정말 아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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