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을 꿈꾸며/프랑스

프랑스 근현대사의 증인 개선문과 샹젤리제거리

자발적한량 2009.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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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샹젤리제만큼 한 거리의 이름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진 예는 없을 것입니다. 길이 1.9km, 폭 71m인 샹젤리제는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까지의 길을 지칭하는데, 나폴레옹 3세 때인 19세기 후반 파리의 부호들과 정치인, 예술가들이 개인 저택을 갖게 되면서 세련된 취향과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레스토랑과 명 브랜드, 화랑들이 들어서면서 일약 세계적인 거리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모파상의 <벨 아미>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의 소설에 등장하며 거의 신화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샹젤리제라는 거리 이름은 용사들의 영혼이 머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장소 이름입니다. 샹젤리제 거리는 지금은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이나 영화관 혹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사와 관광 안내소 등이 자리잡고 있는 대중적인 장소가 되었지만, 아직도 카페 등이 남아 있어 옛날 모습을 일러줍니다.


 개선문과 콩코드 광장 사이의 중간 지점에 롱 포엥이라는 교차로가 있고 이 교차로를 따라 각각 최고급 오트 쿠튀르 부티크들이 늘어서 있는 두 개의 거리가 시작됩니다. 그 중 하나는 센느 강 쪽으로 나있는 몽테뉴 가이고 두 번째는 프랑스 대통령 궁인 엘리제 궁부터 시작되는 포부르 생토노레 가가 그것입니다. 롱 포엥 교차로를 지나 콩코드 광장 쪽으로 내려오면 좌우로 마로니에가 우거진 영국식 정원이 펼쳐집니다. 왼쪽은 엘리제 궁이며 오른쪽은 1900년 만국박람회를 치렀던 그랑 팔레와 프티 팔레입니다. 지금도 미술 전시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가 열리는데 프티 팔레는 보수 중이고, 그랑 팔레에서는 특별 전시회가 열립니다.


개선문은 전체 높이가 50m이고 폭은 45m입니다. 뤼드가 조각한 4개의 조각이 각 기둥 앞뒤에 장식되어 있는데, 가장 유명하고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를 받는 작품인 개선문을 바라보며 오른쪽 기둥에 올라가 있는'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혁명 당시인 1792년 의용군의 출정을 기념하는 조각이며 프랑스 애국가 이름이기도 합니다.


 개선문 내부의 벽에는 660명의 장군들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는데, 이름 밑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장군들은 전장에서 전사한 장군들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평생 이 개선문을 저주하며 살았는데, 장군이었던 그의 아버지 이름이 명단에서 빠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선문은 옥상까지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과 함께 파리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랍니다. 특히 라 데팡스 신시가지와 이른바 그랑 닥스 즉, 바스티유에서 시작되어 파리 도심을 가로질러 교외까지 이어지는 ‘대축’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합니다.


 국경일만 되면 높이가 30m 정도 되는 개선문 중간에는 대형 삼색기가 걸립니다. 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 국사 퍼레이드가 열리는 곳도 이곳이며 프랑스 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인 프랑스 일주 자전거 경주인‘투르 드 프랑스’ 의 종착점이기도 합니다.


 개선문이 세워질 당시에는 문 주위로 다섯 개의 도로만 형성되어 있었을 뿐, 지금처럼 12개의 대로가 방사선 모양으로 형성된 것은 나폴레옹 3세 때 파리 지사를 지낸 오스만의 도시 계획 때입니다. 다섯 개의 길을 갖고 있을 때부터 별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흔히 '에투알 광장'으로 불렸고 지금도 정식 명칭은 샤를르 드골 광장이지만 에투알 광장으로도 불립니다. 샹젤리제를 포함해 12개의 도로가 형성되어 있는 광장은 콩코드 광장과 함께 파리 어느 방향으로도 틀어갈 수 있는 교통의 중심축입니다.


 나폴레옹은 1806년 4월 18일자 행정령에 서명함으로써 파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개선문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 후 3년 뒤인 1809년이 되어서야 장 프랑수아 샬그랭의 안이 채택되어 공사가 시작되죠. 하지만 1815년 백일천하를 끝으로 나폴레옹 시대가 끝나자 왕정복고기 동안에는 공사가 중단됩니다. 개선문은 그 후 30년이 흘러 1836년 루이 필립 시대에 들어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자신이 건립을 명령한 개선문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죠. 개선문이 겨우 기초만 놓였을 때인 1810년 새로 황비가 된 마리 루이즈가 파리로 입성하는 날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천과 나무로 미리 완성될 개선문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야만 했고 그가 죽은 후인 1840년에야 그의 재를 담은 관이 개선문을 지나 앵발리드로 가게 됩니다.


 개선문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지켜본 프랑스 근현대사의 증인이기도 합니다. 1885년 빅토르 위고가 서거하자 개선문을 통과해 팡테옹으로 들어갔고, 1921년에는 개선문 밑에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무명 용사비가 들어서고 2년 후인 1923년부터 24시간 ‘추모의 화염’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불은 가스 장치를 통해 지금도 365일 24시간 타오르고 있죠. 하지만 프랑스 인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개선문은 아마도 1944년 8월 26일, 개선문을 지나 나치 점령으로부터 해방된 파리로 들어오는 드골 장군의 행진 모습일 것입니다. 물론 그로부터 4년 전 메르세데츠-벤츠에 몸을 실은 아돌프 히틀러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이곳을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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