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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민당 총재·일본 총리 이시바 시게루, 그에 대한 모든 것

자발적한량 2024. 9. 28.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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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4전 5기'로 자민당 신임 총재에 당선된 비주류  

27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제28대 자민당 총재에 당선됐습니다. 자민당이 현재 일본 중의원 다수당이기 때문에 이시바 시게루 신임 자민당 총재는 오는 10월 1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표결을 거쳐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뒤를 잇는 제102대 일본총리내각대신으로 선출됩니다. 오랜 기간 비주류의 길을 걸었던 이시바가 정치자금 스캔들로 벼랑 끝에 놓인 자민당과 일본을 이끄는 드라마가 쓰여지게 됐네요.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있었던 제28대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이 181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154표를 얻으며 결선에 올랐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아들이자 이번 선거에서 '3강'으로 평가됐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136표에 그쳐 1차 투표에서 낙선했죠. 하지만 2차 투표에서 21표 차로 짜릿한 역전에 성공하며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5수'만에 정점에 오르게 된 이시바 시게루.

 

이시바 시게루는 누구?

1959년 2월 도쿄에서 이시바 시게루는 건설 관료 출신으로 돗토리현 지사 및 참의원, 한국의 행정안전부 장관 격인 자치대신을 역임한 이시바 지로의 아들입니다. 돗토리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의 게이오(慶應)고, 그리고 1979년 게이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했죠.

 

이시바 총재를 정계에 입문시킨 것은 '일본열도 개조론'을 주창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 이 다나카 가쿠에이는 스스로 "다나카 가쿠에이가 없다면 정치가로서 현재 이시바 시게루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시바 신임 자민당 총재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다나카 전 총리와의 인연은 부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아사버 총재의 아버지 이시바 지로는 "다나카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보다 10살 아래인 다나카의 오랜 지기로 정치의 길을 함께 했습니다.

 

1981년 부친이 사망하자 다나카 전 총리는 "장례식에 온 3500명의 돗토리 사람들에게 명함을 들고 인사를 돌아라. 이게 선거의 기본"이라며 정계 입문을 권합니다. 이때 이시바는 "정치를 하지 말라"는 부친의 유언을 어기고 은행을 그만두고 정치의 길에 뛰어들죠. 이시바 총재는 1986년 최연소 기록(만 29세)을 세우며 중의원에 당선돼 현재 40년 가까이 정치권에 몸을 담아온 12선 의원입니다. 방위청 부장관과 방위청 장관(현 방위상), 놀림수산상, 지방창생담당상 등을 지내며 풍부한 내각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죠.

 

이시바는 자민당에서 손꼽히는 '방위통'이자 어릴 적부터 무기 모형 만들기를 좋아했던 '밀리터리 덕후(밀덕)'입니다. 의원회관 진열장에는 전투기 등 각종 무기의 프라모델이 전시되어 있죠. 또한 철도 마니아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의 원조 걸그룹 캔디즈(キャンディーズ)의 팬이자 문학부터 만화까지 폭넓은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도 유명합니다. 2018년 4월 돗토리현 쿠라요시시의 박물관 행사에 마인부우 분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했죠.(...) 아울러 '일본 라면 문화를 진흥하는 의원 연맹' 회장을 맡아 일본 내의 여러 지역을 돌며 라면 부흥에 힘쓰고 있습니다.

 

'방위통'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에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인 이시바 총재는 의원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의원'으로 통합니다. 비서가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을 먹으며 사무실에 틀어박혀 정책 공부를 한다는 일화가 상당히 유명하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한국인에게도 알려진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를 좋아하며, 취미는 독서와 요리. 대학 시절 4년간 계속 먹었다고 할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카레를 꼽습니다. 사케와 와인을 좋아하기도 하구요.

 

하나부터 열까지 아베 신조와 달랐던 정적 이시바 시게루, 그리고 한일 관계

이시바 총재와 아베 전 총리는 오랜 정적 관계였습니다. 아베 정권 시절이던 2007년 자민당이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패하자, '아베 퇴진'을 주장한 것을 비롯해 이후 두 차례 자민당 총재에 도전했지만 아베에게 패하며 쓴잔을 삼켜야 했죠. 후에 아베의 후원회인 '벚꽃을 보는 모임'이 후원금 스캔들에 휩싸일 때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구요. 2014년 아베 총리가 이시바 총재에게 '안보법제담당상'을 제안했지만 이시바가 이를 거절하며 둘 사이는 완전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별명이 '자민당 내 야당'일 정도로 아베 총리 집권 당시 당내 문제에 많은 쓴소리를 해왔기 때문에 당내 입지가 넓지 않았고, 당파색이 없어 무파벌로 분류되어 왔죠.

 

한일 관계 및 역사문제에서도 비교적 온건한 목소리를 내는 비둘기파로 평가받으며 아베 전 총리와는 다른 역사 인식을 보여왔습니다. '여자 아베'라고 불릴 정도로 아베 전 총리의 강경 보수 노선을 추종해오며 총리에 당선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과는 사뭇 결이 다르죠. 2019년 한일 무역분쟁 당시 "일본이 전쟁 책임에 대해 제대로 마주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발언하는 등 한일간 역사문제에서 한국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죠. 기시다 총리는 투표 직전에 "다카이치는 나와 정책 방향이 다르다"며 "당원이 지지하는 인물에 투표하겠다"고 발언해 막판에 사실상 이시바의 당선을 도왔습니다. 구(舊) 기시다파의 소속 의원 40여 명이 결선투표에서 이시바에게 투표했구요.

 

이시바의 저서 《보수정치가, 이시바 시게루》에서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잊지 않는다'는 소제목을 단 부분에서 그는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가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무엇을 했는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일본군이 어떤 지배를 했는지 답하지 못했다는 것. 일본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그는 일본군이 공포지배를 하고 주민을 중화계, 말레이시아계, 인도계로 나눠 수용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죠.

 

이시바 총재는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면서 "일국의 문화와 언어, 제도 및 군대를 잃어버리도록 하는 '합병'이 얼마나 상대국 국민의 긍지와 아이덴티티(정체성)에 상처를 주는 것인지, 이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로는 일·한의 진짜 신뢰관계는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적은 것을 비롯해 "양국이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고, "영토, 위안부, 징용공 등 양측 주장에 큰 차이가 있는 과제는 많고 그 근저에 역사 인식 차이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기술한 바 있습니다. 

 

또한 2019년에는 블로그에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직시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적었고, 한 강연회에서는 창씨개명을 언급하며 "한국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가 극우 논란이 있는 '일본회의' 소속이자 2011년 8월 1일,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며 울릉도를 시찰하겠다고 왔던 자민당 의원 일부가 소속되어 있던 '영토에 관한 특명위원회'의 위원장이 바로 이시바 총재였죠. 

 

'순정파' 이시바 시게루의 짝사랑 이야기

이시바 총재가 오랜 시간 짝사랑을 하다 결혼에 성공한 이야기도 정계에서 상당히 유명합니다. 《보수정치가, 이시바 시게루》에 연애담을 털어놓았는데, "선거에 아내가 나오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며 금슬을 자랑했죠. 그의 아내 이시바 요시코(石破佳子)는 게이오대 법학부 동급생으로 헌법과 민법 수업을 함께 들었다고 합니다. "법학서적을 들고 도서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는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는데, 이시바 요시코는 그의 마음을 쉽사리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 마음에 들기 위해 형법 시험 기출문제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졸업을 앞둔 4학년 때 은행 입사를 앞두고 있던 이시바는 용기를 내 "결혼을 전제로 사귀자"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하죠. 그런데 2년 뒤 신문에 실린 이시바 부친의 부고를 본 요시코가 조의 전보를 보냈고 그가 답례 전화를 하면서 인연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83년 결혼했는데, 이후 이시바는 정계 진출에 대해 "아내가 약속 위반이라 말하지 않고 용서해줬다"고 회고하기도 했죠.

 

이번 선거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일본에서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한 이시바 총재. 그는 당선 이후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조기 중의원 해산 시기를 묻는 말에 "아직 총리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고 즉답을 피하면서도 "야당 분들과도 논전을 한 후에 (국민의) 판단을 받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되도록 빨리 심판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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