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트로트계의 대부 송대관, 국민들에게 '해뜰날' 남긴 채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어머니의 기일에 떠나가다
한국 트로트의 대부 송대관, 심장마비로 사망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한국 트로트계의 산 증인이자 대부인 송대관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8세. 故 송대관의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습니다. 발인은 오는 9일 9시 30분,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에 마련됩니다.
故 송대관은 과거 담도암으로 수술을 받았다가 최근 완치 판정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다른 지병 역시 없던 것으로 전해졌구요. 그런데 아내인 이정심 씨는 인터뷰에서 "어제 남편이 설사를 계속해 기력이 없어 응급실에 왔는데, 오자마자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남편이 나한테 말(유언) 한마디 못하고 떠났다"고 오열했다고 하죠. 이에 몇몇 언론들이 뭐 갑작스러운 설사는 심장마비의 전조 증상이라느니 뭔 기사같지도 않은 기사를 기자랍시고 쓰고 앉아 있는데... 어쨌든 고인의 사인은 심장마비. 죽음 앞에선 58년의 노래 인생도 속절없습니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에서 태어난 故 송대관은 서울로 상경 도중 가수 김상희의 남편인 류훈근 당시 KBS PD의 소개를 통해 KBS 트로트 가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트로트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이후 무명생활을 보내던 그를 그야말로 빵 뜨게 해준 노래는 1975년 발표된 '해뜰날'. 말그대로 송대관의 인생에 햇볕을 준 노래였죠. 이 노래를 통해 온갖 상을 휩쓸고 그해 가수왕 자리까지 차지합니다.
이후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가 대중들 앞에서 사라진 송대관은 1989년 '혼자랍니다'로 재기에 성공한 이후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큰 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 히트곡을 계속해 터뜨렸고, 1998년 '네박자', 2003년 '유행가' 까지 히트시키며 그야말로 최고의 트로트 가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냅니다.
전 세대를 따지자면 듀스, 서태지와아이들 세대보다 뒤인 H.O.T., god 세대이지만, 당시 음악프로들은 아이돌 외에도 트로트 가수들을 출연시키는 것이 관례였고, 전국노래자랑 등의 무대가 있었기 때문에 송대관을 비롯한 트로트 가수들의 무대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접하면서 친숙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가족들끼리 노래방을 갔다하면 여지없이 나오는 레파토리는 나훈아, 남진, 송대관, 태진아 등등 이었으니까요.
특히 당시 송대관, 현철, 태진아, 설운도 이 네 사람은 '트로트 4대 천왕'이라고 불렸습니다.이모부 중에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로 인해 말을 하지 못하게 되신 분이 계신데, 송대관이 TV에 나왔다 하면 박수를 치셨죠. 바로 송대관이 전라도를 대표하는 트로트 가수였기 때문. 당시 설운도와 현철은 경상도, 태진아는 충청도를 대표하며 이 네 사람의 인기는 중장년층에게 정말 후끈했습니다.
제가 서울고등학교 관악반이었던 시절, 그리고 6사단 군악대에서 대민행사를 나갔을 때 트로트 메들리를 연주하면 빠지지 않는 곡이 송대관의 '헤뜰날' '네박자'. 일단 분위기는 먹고 들어가는 곡이죠. 특히 '해뜰날'은 당시 석유 파동으로 지쳐있던 시대 분위기를 타고 대중들에게 그야말로 한 방에 먹힌 노래입니다. 후에 미국의 록 그룹인 J.Geils Band가 '해뜰날'을 표절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6주간 차지했던 히트곡 'Centerfold'를 만들었다는 의혹까지 있을 정도.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해뜰날'의 여성 코러스 주인공이 바로 '아모르 파티'의 주인공 김연자라는 사실.
인생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태진아, 홀로 남기고 떠나가다
송대관을 언급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태진아죠. 두 사람은 마치 '톰과 제리' '덤 앤 더머' '월레스와 그로밋'같은 사이였습니다. 최고의 절친이면서도 라이벌인 요상한 관계. 서로 방송에서는 슬슬 까기 바쁘지만, 알고보면 태진아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송대관이 도움을 줬던 것을 비롯해서 서로 자가용을 빌리는 등 정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죠. 그야말로 찐친.
빈소를 방문한 태진아는 "형님이 하늘나라 가셨기 때문에 방송에서 내가 '송대관 보고 있나' '송대관 내가 업어서 키운 보조 가수야' 예를 들자면 이런 얘기도 과연 편하게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고…"라며 말문을 흐렸습니다. 두 사람은 애초 5월에 합동 디너쇼를 약속했었다고 하죠. 태진아의 아들인 가수 이루 역시 "어릴 적부터 항상 다정하게 대해주셨던 큰아버지 송대관 선생님, 너무나 갑작스럽게 떠나셔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라며 애통해 했습니다.
네티즌들은 지난 1월 19일 방송된 KBS '전국노래자랑' 서울 성동구 편에 출연한 송대관의 방송 분에 주목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며 밝게 인사한 후 '자깁이 형님'을 열창한 송대관이었는데, 네티즌들은 '목소리가 침하지 않고 기력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다'라며 안타까워했죠. 비보를 접한 이후엔 "이날 어딘가가 안 좋아 보이는 느낌이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아픈 게 눈에 보인다", "생전 마지막 방송이 될 줄이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애도 물결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자, 돌아와보죠. 트로트계의 거목이었던만큼 애도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빈소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을 비롯해 가수 주현미, 설운도, 임영웅, 손태진, 이무송, 노사연, 이승기, 유재석 등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가득했고, 혜은이, 태진아, 이자연, 강진, 오정태, 이숙, 서지오, 장윤정, 김민희, 박성온, 붐, 박지현, 김범룡, 홍지윤, 최수호 등 선후배 가수들이 조문했습니다.
한편 송대관의 사망 관련 기사 중에서는 과거 송대관이 방송에 출연해 위 절제 수술을 받은 사실과 미국 생활 10년 동안 가게 6개를 운영했다면서 "돈과 명예 모두 가져볼 만큼 가져봤다. 모은 돈을 잃고 힘들게 살아봤던 때도 있다"고 말한 것, 2013년 아내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사기 혐의에 휘말렸다가 2015년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500억원대 재산이 모두 은행에 넘어간 사실, 송대관이 개인 회생 절차를 밟은 뒤 160억 가량의 빚을 변제했고, 월세살이를 하며 버는 돈 대부분을 빚 상환에 사용하고 있는 사실 등이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송대관은 '잘못한 부인과 왜 같이 사냐'는 질문에 "아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없었다"며 "아내와 함께 편하고 안심할 수 있는 생활을 하는 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며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낸 바 있죠. 일부 네티즌들은 아내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장르는 다르지만 음악이라는 공통점은 가진, 아니 그냥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며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삶이 무에 있을까요? 순서 없고, 장르 없고, 그저 왔다가 가는 거죠. 만약 故 송대관이 다시 태어난다면, 이른바 '광대'의 삶을 다시 선택하지 않을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뭔가 더 마음이 짠한 것은 2016년 2월 7일 사망한 송대관의 모친 국갑술 씨와 기일이 같아진 것. 마침 국갑술 씨가 세상을 떠난 것은 송대관이 아내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사기 혐의 등에 휘말려 어마어마한 빚을 떠안게 된 후 월세살이를 하며 힘든 시기를 보낼 당시라 더욱 안타까움을 주고 있죠.
당시 송대관은 "늘 그립다. 항상 죄송하다. 뭘 다 못 해준 것만 생각난다. 죄송한 건 늘 곁에 있어 주지 못하고 간간이 얼굴 보여드린 것이다. 만나 뵙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조금 더 있다가 가라. 뭐가 그리 바쁘냐?’라며 못 가게 소매를 잡던 어머니가 떠오른다"며 그리움을 표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