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악학도가 바라본 류재준 난파음악상 수상거부 논란과 홍난파

Posted by 자발적한량
2013.09.12 03:23 내가 밟고 있는 땅/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류재준 난파음악상 수상거부, 친일행위에 둔감한 음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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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계에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제46대 난파음악상 수상자로 선정된 류재준씨가 수상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난파기념사업회는 이에 따라 소프라노 임선혜씨를 수상자로 변경하였습니다. 음악을 전공했기에 난파음악상이 음악인에게 어떠한 권위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는 류재준씨의 수상 거부에 존경 섞인 박수를 보내며, 한편으로는 이번 논란을 무척이나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20세기초 일제강점기 당시의 작곡가였던 작곡가 난파 홍영후는 '퐁당퐁당', '고향의 봄', '고향생각'과 같은 수 많은 동요와 더불어 '성불사의 밤', 그리고 일제 치하 민족의 아픔을 표현한 '봉선화'와 같은 가곡을 작곡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입니다. 1941년에 사망한 '한국의 슈베르트' 홍난파는 광복 후 그에게 문화 훈장이 추서되었고, 난파기념사업회가 설립된 이후 1968년 그를 기리는 난파음악상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상은 1회 정경화를 시작으로 백건우, 정명훈, 장영주, 조수미, 장한나, 손열음 등 현재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음악가들이 수상하였습니다.  또한 현재 단국대학교의 음악대학 건물은 '난파음악관'이라고 명명되어 있으며, 유족에게서 기증받은 그의 유품 약 420여 점을 전시하는 '난파 홍영후 전시실'을 올해 3월 단국대 장호성 총장과 홍난파의 조카인 홍건유 전 포스코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었습니다.



현대고, 서울대 작곡과와 폴란드의 크라코프 음악원을 졸업한 작곡가 류재준은 서울국제음악제와 카잘스페스티벌인코리아의 예술감독, 앙상블 오푸스의 예술감독, 폴란드 고주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작곡가로 활동 중이며, 2007년부터 낙소스와 계약을 맺어 그의 작품이 출반되고 있습니다. 현대음악의 거장인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할 만큼 음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죠.


작곡가 류재준씨가 밝힌 가장 큰 수상거부 이유는 '홍난파의 친일 행적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친일파 음악인의 이름으로 상을 받고 싶지 않고, 이전 수상자 중 일부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 있어서 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류재준씨. 그는 이에 덧붙여 "음악 선배로서 홍난파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친일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행적 자체를 부인하는 듯한 음악상의 요강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수상 거부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난파 홍영후의 또 다른 이름 모리가와 준. 난파 홍영후가 민족음악개량운동에 앞장서며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사람이었다면, 모리가와 준은 친일음악운동에 앞장 선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친일행위가 시작된 것은 1937년 6월부터 있었던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입니다. 당시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사회 각계 181명의 지식인들이 검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18명이 전향성명서를 쓰고 변절한 뒤 친일단체인 대동민우회에 가입합니다. 이 속에 바로 현제명과 홍난파가 있었습니다. 1938년 8월 16일 <기독신문>에 실린 변절한 이들의 전향성명서를 하단에 접어둡니다. 


수양동우회 사건 전향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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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 후 모리가와 준으로 창씨 개명을 한 홍난파는 음악을 통해 일제와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 결성된 조선 최대의 친일음악단체인 조선음악협회에 가입합니다. 더군다나 23명의 평의원 중 단 7명 뿐이었던 조선인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황국정신을 되새기며', '부인애국의 노래', '애마진군가', '태평양행진곡' 등 일제를 찬양하는 곡과 '희망의 아침', '지나사변과 음악' 등의 글을 썼습니다. 홍난파의 변절에 대해 딸 홍정임 여사의 해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 나던 날, 저의 아빠는 종로경찰서에 갇히셔서 옥고를 치르고 계셨습니다. 이름을 지어줄 아빠가 안 계신 저는 姙 (임) 자돌림에다 丁축년에 태어났다고 丁 (정) 자를 붙여서 丁姙(정임)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옥을 드나드시면서 아버지께 흰 옷을 넣어드리는 어머니는 번번이 피투성이 되어 나오는 아버지의 옷을 받아들면서 이렇게 애청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분은 몸이 약하신데 제가 대신 감옥에 들어가면 안 되느냐고." 일본 경찰은 조롱된 어조로 "당신도 콩밥이 먹고 싶어?" 하며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감옥살이에 시달리신 저의 아버지는 '늑막염' 이라는 무서운 병을 재발 시키면서 72일 만에 석방이 되셨습니다. 석방을 시킨다는 조건부로 "일본에 협조한다는 글과 곡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압력의 쇠사슬에 묶이신 나의 아버지는 최후의 3년을 (석방이후) 병마에 시달리면서 강제에 못 이겨 한 두 차례 일본에 협조하는 글을 쓰셔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문하고 싶은 것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름도 모를 수 많은 독립군들과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은 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사랑하는 가족이 없어서 그리 목숨을 바쳤고, 몸이 성해서 일제에 끝까지 저항하며 그들에게 협력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참고로 홍난파가 변절한 계기인 수양동호회 사건 당시 최윤세·이기윤은 일본의 혹독한 고문에 의해 옥사했고, 김성업은 불구가 되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난파 홍영후는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협력한 친일행위자이며, 특히나 음악인이었던 그는 '예술'을 친일의 도구로 사용한 민족의 반역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번 논란에 대해 난파음악상을 주관하는 경기도음악협회의 오현규 회장은 "선정 소식에 경력 자료를 확인해 주고 프로필 사진을 새로 보내줬던 류씨가 뒤늦게 거부의 뜻을 밝혀 당황스럽다"며 되려 "음악은 정치를 떠나 음악 그 자체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18회 난파음악상 수상자이자 현재 수원시향의 상임지휘를 맡고 있는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역시 "음악인을 장려해 주는 상이 아직 많지 않은 실정에서 난파음악상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예술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예술과 예술가는 분리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시대와 예술은 분명 연동관계에 있습니다. 홍난파의 수 많은 작품들이 우리나라 음악계에 길이 남을지라도, 홍난파가 친일행위를 헀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홍난파를 기리는 난파음악상. 홍난파의 반민족행위를 '정치를 떠나 음악 그 자체', '정지 쟁점화' 등 정치적 행위로만 국한시키는 역사적 인식을 지닌 이들이 우리나라 음악계를 지탱하고 있다뇨.


그동안 난파음악상을 수상한 음악인들에게 비난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많은 음악인들이 이 상을 수상했을 당시 홍난파의 친일 전력에 대해 알려진 바도 없었죠. 하지만 그러한 친일 전력을 인지한 뒤 수상을 거부한 류재준씨에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 덕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음악학도로서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교학사 교과서 논란과 같은 역사 왜곡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러한 시점에서 난파 홍영후의 변절 행위를 '정치적 행위'라는 수식어로 국한시키는 일부 음악계 인사들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민족이 가장 커다란 아픔을 겪던 시대를 살아가던 한 예술가. 민족의 아픔을 노래했지만, 오히려 그랬던 그가 변절했습니다. 자신의 동료들의 목숨이 꺼져가는 촛불과 같았던 순간. 어떠한 이유를 붙이더라도 그 행위가 덮어질 수 없습니다. 이유를 붙이며 덮으려 했기에 대한민국에 친일의 뿌리가 뽑히지 않았고, 잡초처럼 살아남아 되려 울 밑에 선 봉선화를 뒤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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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도사
    • 2013.09.12 10:55 신고
    흥미로운 글 잘 봤습니다. 음악을 음악 자체로만 본다라... 민족의 탄압을 떠나 일제식민지는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새 역사 교과서가 떠오르는군요. 올바른 토양에 올바른 올바른 가지가 자라듯, 올바른 시발점이 선행되어야 그 권위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를 이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잘못된 역사를 살고 있다면 그 미래는 지나간 과거를 부정되어지게 되는 미래를 살것입니다. 그만큼 역사는 중요하죠
    • 교학사 교과서와 같은 역사왜곡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순간에 터진 사건이라 더욱 눈길이 갑니다.
      어떠한 업적을 세웠더라도 '친일'이라는 민족반역 행위는 감안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친일행위는 정치가 아닙니다....친일파를 배척하는것을 정치적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네요...민족을 배반하는게 정치 와 무슨 상관이있다고...결국 친일행위는 우익 이다 라는 공식이 성립되는건가요?
  3. 홍난파 핑계다. 이중섭 그는 끝까지 창시개명
    을 안했다. 하기나름 아닌가?
  4. 홍난파가 친일정치 음악을 했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로든지..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얼마나..많은 조선인들이 전쟁에 희생됐었는 데..예술은 예술로 봐달라..이건 있을 수도 없는 반민족행위는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왜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을 위해서..
    • 정현철
    • 2013.09.12 22:02 신고
    시대의 불운이자 아픔을 변절자 반역자로 엮어내는 생각이 너무 치기어리네요. 님은 손가락 하나만 비틀어도 본인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있나요? 고문앞에 죽으면 착하고 고문끝에 굴복하면 나쁜 인간인가요? 시대의 아픔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까.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건,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함부로 그 시대를 비난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국민이 자기가 사는 곳이 일본인줄 알고 살던 시대에요. 독립운동이라고 해봤자 눈에 띄지도 않는 소수에 불과했던, 그야말로 일본속에서 그들은 살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던 지난 시대의 아픔을 현 세대가 과연 뭘 알고 비난하는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군요.
      • 스파르
      • 2013.09.12 22:49 신고
      저도 아마 그상황에서 변절하지 않을수 있었을까자신없습니다~~누구나 변절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아니라 변절자의 이름이 거룩히 기억되는 나라가 되선 안되겠지요 그런 분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상이 주어져선 곤란하겠죠? 그럼 이땅의 후손들도 그렇게 살아갈겁니다 나라를 위해목숨바친자들의 후손은 처참한
      삶을 사는데~~누가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 하겠습니까~~박정희 그도 인간이기에살기위해 혹은 욕망땜에 변절할수 있었을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분의 기념비가 세워지고 국민의 영웅으로 그 자녀가 대통령으로~~이런 세상이 되어선 안되겠지요
      이건 아니겠죠 ㅜㅜ
    • 초이
    • 2013.09.12 22:38 신고
    정현철/ 그쪽이 쓴 글들과같은 논리의 글들을 읽을때마다 느끼는건 그렇기때문에 대한민국에서의 친일청산이 요원하다는 점입니다. 온갖 고초와 고문을 겪고 가족과 재산을 희생해 가며 독립운동하신 분들을 부정하는 듯해서요. 속된 말로 다시 외세에게 점령당하는 시대가 오면 어느누가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며 저항하겠습니까? 같은 민족에게도 무시당할텐데 말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공동체든 배신자의 처벌은 가장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현철
      • 2013.09.12 22:46 신고
      독립운동하신분들을 부정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배신자의 처벌이라...
      아예 독립운동가 이외에 일제시대를 살았던 한민족 모두를 처벌하는건 어떠신가요. 감히 나라가 팔렸는데 반항 한번 안하고 착실히 잘 산 죄, 일제가 세운 학교 병원 법원 공장 다니면서 그들의 녹을 먹은 죄, 일본이 만든 제품을 먹고 마시고 누리면서 독립운동 한번 안한 죄,일본이 조국이라 생각하며 일본어를 배우고 이름을 바꾼 죄를 물어야죠. 그러면 님이 원하시는 가장 엄격한 잣대가 될거 같군요.
      • 스파르
      • 2013.09.12 23:00 신고
      현철씨 일반국민과 공인들 지도자급들과는 다르죠~~나찌에 협력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주요인물들 몇백명이 나찌종결후 처형당했습니다 안 그러면 후손들도 그렇게 하니까~~
      후진국 스런 우리조국은 아직 그걸 못하고 있어요
      친일파들이 부자로 떵떵거리는 나라~~
      그런나라에 현철씨 살고계셔서 행복하시겠습니다
      • 초이
      • 2013.09.12 23:21 신고
      현철씨가 예를 든 그러한 점들 때문입니다. 홍난파와 같은 사람들과 일반인들의 친일 잣대를 어떻게 적용 해야 할 것인가? 반대로 실제로 독립운동하신 분들을 어떻게 판가름하고 보상해줘야 할것인가? 그렇기에 더욱 답답한 것은 홍난파와 같은 사람들의 과오가 제대로 평가되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음에도 권위있는 상들에 이름이 버젓이 대표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역사의 가정이긴 하지만 반민특위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논의되고 활동했을 수 있었다면 제가 말한 엄격한 잣대도 모든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을 정도로 성숙했겠죠. 그런 시도 자체가 좌절된 것이 심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정현철
      • 2013.09.13 04:03 신고
      홍난파님은 한국이 낳은 최고의 음악가시고 그 공을 인정받아
      권위있는 상의 대표 이름을 올라계십니다. 초이씨.
      난파 선생님이 어떠한 옥고를 치르셨는지, 어떠한 협박을 받아 회유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님이나 주인장은 자세히 모릅니다. 음악을 금지당하거나 가족의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동료들이 처단되거나.. 그 어떤 피치 못할 협박을 당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잠시동안의 실수를 가지고 위대한 한 음악가의 인생과 위대한 업적 모두를 폄하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아..
      • 2013.09.13 07:08 신고
      정현철/ 잠시 잠깐의 실수라... 당시 친일동호회들이 얼마나 웃긴 작태였는지 남아있는 기사보면 알 수 있을텐데요..
      37~45년이 잠시잠깐의 실수입니까?
      • 초이
      • 2013.09.13 10:05 신고
      역시나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군요. 홍난파를 친일행적과 음악적 성과를 모두 감안해도 한국이 낳은 최고의 음악가라 생각하시는 현철씨의 생각과 아무리 공이 크다고 해도 배신행위는 용납되어서는 않된다는 저의 생각사이에서 말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저의 생각은 근본주의라고 비판을 받겠고 현철씨의 생각은 수정주의라고 비판을 받겠군요.

      하지만, 다시한번 빈약한 가정이라도 들어 어필하고 싶은 생각은 그 당시 같은 상황에서 끝까지 신념을 지켜 옥사하신 분들의 박탈된 기회를 전 더 크게 생각하고 싶네요. 그 분들의 음악적 재능이 일제 식민지 치하가 아니였다면 더욱 크게 꽃피웠으리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가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변절을 해서 음악적 성과를 남긴 사람과 신념을 지키다 그 재능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모든 걸 박탈당하신 분들을 비교한다면.... 과연 홍난파의 업적이 대단하다고 인정하더라도 떳떳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요?
      • 정현철
      • 2013.09.13 15:31 신고
      하야/ 홍난파 선생님이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제대로 아시길.
      초이/ 누가 더 낫다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신 분들이나
      고문에 져 버린 분들이나 모두가 시대의 아픔입니다. 초이님의 주장에
      홍난파님께서 정말 가슴아프게 우실 것입니다.
      • 초이
      • 2013.09.13 20:36 신고
      정현철 / 아니죠, 시대의 아픔이라고 뭉뚱그려서 넘어가면 안됩니다. 비교하고 따져봐야 하죠. 아프고 힘들더라도 그렇게 조금씩 친일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가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 이런 과정이 해방후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잖습니까? 한번도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했잖습니까?

      적절한 예는 아니겠으나 칸트의 법철학을 보면 내일 지구가 망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감옥안의 사형수는 전부 사형시켜야 법과 원칙이 세워진다는 논지의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많은 논의를 거쳐 다른 사상들이 이어져왔지만, 아직도 법철학사에서는 항상 등장하는 논점중의 하나라고 볼수있죠.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볼때 유독 친일문제는 아직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원칙조차도 없는게 대한민국의 현실이죠.

      지금 제가 하는 말들과 정현철씨의 말들이 서로가 불만스럽더라도 친일과 반민족행위는 그렇게 덮고 가면 않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논쟁은 공식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많은 사실들과 관점을 가지고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현재의 대한민국에선 가능할것 같진 않습니다만...
  5. 신라의 씨를 말렸어야 했다.
  6. 홍난파가 친일행위를 잠깐하다 죽은걸로 아는데...
    극심한 고문속에서 전향서를 제출한것 아닌가요?
    친일에 관해서는 할말없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변절자가 된 자신또한 고통속에서 삶을 마감한걸로 알고있습니다만....???
  7.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윗글에도 있는것처럼 그 시대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병든 몸을 이끌며 끝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을 우리는 영원히 기리고 끝없이 존경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래 고생했던 분들과 그 후손들은 지금도 독립운동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가고요. 친일파 후손들 잘살고 있습니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 훌륭한 결정이라 생각하빈다.
  8. 나는 이럿게 본다. 우리가 자유 대한민국에 사는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다. 개인이 왜국에 점령당해 사는 운명이였다면 왜 조선이나 대한민국에 태어나지 못하고 불행한 세상에 태어났었는지. 어려운 세상에 태어 난것도 모자라 개인이 불구가 되더라도 모진 고문을 견디라고 하는데 조선 민중중 그 비인간적인 고문에 견딘 사람이 얼마나 되었던가. 그 시대에 태어나 조선의 문화를 이었던지 DNA만 이었던지 다 우리 조상이 견딘 힘든 고초였다.
  9. 그렇게 태어난 것도 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고보니 그런 상황이였고 그 모든 것은 우리나라를 점령당하게 한 위정자들의 잘못이였다.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던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잘못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고문을견디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추운 만주벌판을 전전한 분들은 영웅으로 대접해야 한다. 우리나라 내부의 개인이 어쩔 수없이 선택하게된 상황을 가지고 나뿐놈이라고 매도하는 이런 상황은 이제 두자.
  10. 또한 그 어려운 외지 생활을 하며 왜국에 대항한 분이 있지만 처음부터 나라의 단물만 빨고 왜놈 점령시에도 부귀를 가진 진짜 친일파들은 역사에서 두고 두고 욕을 하도록 해야한다. 그런 자들의 재물로 우리나라에 산다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일부 매국노를 구분하고 나머지 협박에 어쩔 수없는 협조한 사람들은 구분하여 정리해야한다.
  11. 또 하나, 남을 친일파로 매도하면 민주 벌판은 구경도 못한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평생을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한 지사 편으로 여기거나 지사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인데 그런 느낌은 인류의 DNA에 있는 동물적인 버릇이므로 이를 억제하는 것이 인간적이고 문명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 결론은 다 같은 불쌍한 피 지배국민으로 살은 조상을 편 갈르지 말자는 것이다. 시간 있으면 독립운독한 분들의 묘비나 한번씩 읽어봐라. 나라 사랑은 저절로 생긴다.
  12. 학교에서 약한 교우를 괴롭히는 자 편에 서서 남을 괴롭히면 머리 끝이 곤두서며 척추를관통하는 어떤 히열을 느끼는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은 어떤 사람이나 느끼는 것으로 우리 몸 속에 있는 나쁜 버릇이다. 그렇다고 이런 동물적인 희열을 글을 통해서 자주 느끼는 자들은 또한 아주 동물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것을 자주적으로 억제 할 줄 아는 것이 문명인이다. 이런 글을 쓰면 느끼는 뿌듯함 이런 것도 같은 악마적인 것임을 알아야한다.
    • 많은 댓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무지랭이님 말씀대로 난파 홍영후의 친일행적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칩시다. 하지만 친일행위를 한 사람의 이름을 따 상까지 만들어가며 그를 우러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독일에서 광고인이나 언론인에게 상준다고 '괴벨스상' 안만들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주신 비유는 못봐줄 정도군요. 좀 그럴싸한 비유를 가져와주셨으면 합니다.
    • kfinc2001
    • 2013.09.14 00:35 신고
    이 양반 서두에 자신이 음학도라고 소개했는데 이 블러그는 음악도의 블러그가 아닌 정치 지망생으로 날개짓하는 자의 연습장 같은 생각이드는건 제2의 누구누구처럼 정치의 마당으로 날고픈 야망으로 가들찬 날개짓같아 씁쓸한 생각만 드네. 그냥 차라리 정당으로 들어가서 그 야망의 아이디어를 못난 기성 정치인들에게 새콤한 이야기를들려주면서 낡은 정치인들의 귀를 쫑긋하게 해주면 어떨까.
    • 제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높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전 제가 음악을 전공한다고 하여 음악만을 머리에 두는 것이 아닌 내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내 생각을 말하고 의견을 나누고자 이 블로그를 하는 것입니다. 정당에서 절 데려가주면 저야 감사하죠. 제가 그정도 수준이 안되는데..ㅎㅎ

      음악도의 블로그에는 피아노 사진 연주 실황 같은 것만 잔뜩 있어야 하는 건가요?
    • 월요증
    • 2013.09.26 23:33 신고
    난파 홍영후 선생은 태생이 몸이 허약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니셨던 다른 독립투사들과 비교하는 것부터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만? 게다가 일제에 적극 협력한 골수앞잡이라면 모를까 고문을 못이겨 어쩔수없이 그런 선택을 한것인데 왜곡된 애국심과 감정에 치우쳐서 전부 친일파로 매도하는것은 음악인으로써의 자세가 아니라고봅니다.
    또한 류재준씨 역시 말은 그리할지 몰라도 실제로 그는 대한민국 내에선 아는 사람만 아는 듣보잡 음악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을 이렇게 알게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 수상거부 사태때문입니다. 단지 상금보다 이름을 날리는것이 더 중요했던 사람에게 애국자 칭호까지 달아주고 덤으로 홍난파 선생의 업적은 '인정한다' 한단어로 축약한 뒤 극소수의 친일행각은 집중조명하는 것을 보며 그 글의 공정성이 심히 의심되었습니다. 다음부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 화요비
      • 2013.10.01 17:32 신고
      앞으로는 독립운동가 자격 받으려면 체력측정이라도 해야 할까보네요..어쩔 수 없는 선택도 아닌 것으로 압니다.
    • 조윤수
    • 2014.07.28 06:18 신고
    잘읽고 깊이 공감하고갑니다. 류재준씨 존경합니다. 음악하는 사람이 음악을 이유로 사회적이슈나 흐름에 눈과 귀를 닫고 사는 게 다반사인데, 이런 글을 보게 되어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집회가 치열했던 시절, 못빠져나가게 단속하는 학생회들에게서 특별사면(?)을 받았던게 음대생이었습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참여한 친구들도 있었지요.
    저는 그래서 이 글이 더 반갑고 감동적입니다.
    예술은 예술가의 정신의 발현입니다.의식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듣기좋은 음악, 아름다운 음악이라 해서 작자의 정신과 무관하게 평가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음식을 대할때 성분이 무엇인지, 유해한지 여부를 따져묻습니다. 맛있고 입에 넘어가기 편한것만 먹지 않습니다. 친일행적과 음악이 무관하다 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면,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기때문입니다.
    • 음악을 하는 사람들 역시 피땀 흘려 얻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죠. 당연한 일입니다.
    • 노래하는율
    • 2015.02.04 14:50 신고
    잘읽고갑니다. 좋은글이네요. 댓글읽으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당시를 살아보지 않아 진짜 홍선생님의 마음을 알길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냥..저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서럽게 살아온 그 시간이 가슴아프네요
    • 효정
    • 2015.09.22 13:49 신고
    어쩔 수 없이 친일한 것은 용서하라. . . ? 그렇다면 모든 친일행위자들은 어쩔수 없이 친일했다면서 당당하게 큰소리 칠것이다. 참략자들을 찬양했던 자들에게 왜 그렇게 너그러운가. 지금 북한정권을 찬양하는 말만 해도 국가보안법으로 단칼에 내려치면서 그보다 더 하게 친일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왜 그렇게 너그러운가..그 이유는 지금의 나라를 장악한 세력들이 바로 그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음악일뿐 정치와는 무관하다? 아 참 이런 개소리가 또 어디 있을까?
    • 하나로
    • 2016.02.02 02:48 신고
    친일 무조건 저도 싫은데요~
    이 사람이 받을수있는 상은 아닌데/.... 언론플레이 쩌네요....
    이걸로 자기를 확 키워버렸네......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기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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