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교수 자택에서 목 매 숨진 채 발견, 시대를 앞서갔던 선구자의 죽음

Posted by 자발적한량
2017.09.05 22:30 일상생활/썰을 풀다


슬픈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오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즐거운 사라'를 비롯해 '가자 장미여관으로'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등 마광수 교수의 책을 인상 깊게 읽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故 마광수 교수는 5일 낮 1시51분경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가족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마 교수는 그동안 우울증 약물을 복용하는 등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마광수 교수는 정년퇴임 전부터 우울증으로 인해 고생을 해왔고, 평소에도 "힘들다" "죽겠다" "죽어간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마광수 교수는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등 6편의 시가 추천되며 등단했습니다. 불과 28세의 나이로 홍익대 교수에 임용되었고, 33세에 연세대로 자리를 옮기는 등 천재로 불리기도 했죠.


그런데 마광수 교수의 인생은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송두리채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사라'는 성 문제를 음지의 영역에서 공론화 시켜야 위선적인 성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마광수 교수가 1991년 발표한 소설인데, 주인공인 여대생 '사라'가 성 경험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변태적 성행위와 스승·제자간의 성관계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예술과 외설의 구분, 창작과 표현의 자유로 논쟁이 번졌죠. 그리고 그는 이듬해인 1992년 10월 음란물 제작·반포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구속된 후 각 문화예술계에서 그에 대한 구명운동을 벌였지만, 3년의 재판 끝에 1995년 6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죠.




하지만 1998년 특별사면을 받으면서 마광수 교수는 다시 연세대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필화사건 이후로도 작품활동은 계속 벌였지만 자기검열로 인해 과거처럼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지 못했구요.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비롯한 음란물을 올린 혐의로 약식기소되고, 제자의 시를 자신의 시집에 실었다가 사과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이 계속 이어졌죠. 그리고 2016년 8월 정년퇴임을 했는데, 과거 해직 경력으로 인해 명예교수 직함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동료 교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도 하구요. 




한편, SNS 등에서 마광수 교수의 죽음을 조롱하는 글들이 많이 발견되어 무척 가슴이 아픕니다. "어차피 우리학교에서 마광수 수업듣는 애들 없었다. 잘 죽었네" "마광수씨 야설 논란으로 감방 간거 사법부에서 잘했다고 본다" 등. 특히 일베충들이 열심이라고 하죠? 제게 마광수 교수는 엄숙주의에 옥죄어 사는 이 나라에서 저평가된 시대적 선구자였습니다. 다시 한번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오늘 포스팅을 마칩니다.


오늘의 키워드

#마광수 교수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 #마광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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