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신종 만력제..20년 파업한 암군, 임진왜란을 도운 '고려천자 조선황제'

Posted by 자발적한량
2017.01.05 03:31 이것이 나의 인생/역사 속으로

중국 명나라 제13대 황제 만력제 주익균. 묘호는 신종이며 시호는 범천합도철숙돈간광문장무안인지효현황제입니다. 제12대 황제인 융경제의 3남으로, 1572년부터 1620년까지 48년간 재위하면서 역대 명나라 황제 중 가장 오랜 기간동안 통치를 했습니다. 명나라 만력제에게는 2가지 별명이 있는데요. 바로 '명나라 4대 암군'과 '고려천자, 조선황제'입니다.

홍건적의 장수였던 주원장에 의해 세워진 명나라. 중국 역사에는 많은 군주와 황제들이 있었지만 유독 명나라의 주씨 가문에서는 정말 단어 그대로 앞이 막막한 암군이 줄지어 등장했습니다. 명나라를 망친 4대 암군에는 제10대 무종 정덕제, 제11대 세종 가정제, 제13대 신종 만력제, 제15대 희종 천계제를 뽑는데요. 만력제 주익균은 그 중에서도 최악으로 뽑히고 중국 역대 황제를 통틀어서도 최악 중 한 명이라고 불릴 정도입니다. 중국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명나라는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 때 망한 게 아니라 만력제 때 망했다"는 평가를 할 정도니까요.

만력제 하나. 대국 명나라를 망하게 한 암군 중의 암군  

위에서 언급했듯 만력제는 명나라에서 제일 오랜 기간동안 황제 자리에 앉아있었던 황제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통치한 48년의 세월 중 30년간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황제가 파업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죠. 이 타이밍에서 2017년 현재 푸른기와집에서 쌀 축내고 있는 누가 생각납니다만... 만력제 즉위 초만 해도 스승이었던 대학사 장거정과 환관 풍보의 도움을 받으며 그럴 듯하게 국정을 운영해나가죠. 하지만 만력제 즉위 10년이 되는 해에 장거정이 죽자, 그에게 눌려있던 반대파들이 장거정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만력제는 장거정을 부관참시하고 가산을 몰수합니다. 환관 풍보도 궁에서 내쫓죠. 그리고는 자신에게 아부하는 신하를 재상에 앉히고 술과 여자를 밝히며 내탕금(임금의 개인 재산)을 축적하는 데에만 몰두하죠. 황제가 나라를 돌보지 않자 정사는 깊은 수렁에 빠졌고, 나라의 곳간은 점점 비어가는데 만력제의 개인 곳간에는 쌀과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만력제 둘.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고려천자, 조선황제'

만력제가 '고려천자' '조선황제'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임진왜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과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7년 모두 바로 이 만력제의 재위 일인데요. 자신이 통치하는 명나라에 눈꼽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던 만력제는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위기에 빠진 조선을 위해 자신을 비롯한 명나라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조선을 돕습니다.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만력제는 4만의 군사를 이여송에게 내어주며 조선에 파병을 합니다. 비록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승전고를 거듭 울리고 있었지만 육지에서는 임금인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을 와서 요동으로의 망명을 타진할 정도였던 조선에게 명의 지원군은 천군만마와 같았죠. 뿐만 아니라 조선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곡창지대인 산둥 성의 쌀 100만석(약 9만 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정유재란 때도 역시 20만 대군을 파견한 것을 비롯해 내탕금으로 은화 500만냥을,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 조선의 복구를 위해 또다시 내탕금으로 은화 200만냥을 추가로 지원합니다. 당시 명나라는 '만삼대정'이라 불리는 세 차례의 큰 정벌(1592년 임진왜란·발배의 난, 1594년 양응룡의 난)로 인해 국가 재정이 크게 악화된 상황. 명나라를 위해서는 내탕금을 한 푼도 내놓지 않던 그가 조선을 위해선 왜 이래도 지극정성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심지어는 이여송이 이끌고 온 명나라군의 군마 약 1만5천 필이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굶어죽었다고 하죠?

아, 이건 잠시 여담인데 그가 꽂힌 것이 재산 모으기와 조선 돕기 말고 두 가지 더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묘역 조성과 아들 장가 보내기. 22세 때부터 자신의 묘인 정릉 건설에 들어간 국비는 800만 냥으로, 당시 명나라 국가재정 2년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하루 3만명, 연인원 6,500만 명의 인력을 투입했죠. 또한 만력제가 무척이나 아껴 태자를 삼고자 했던 3남 주상순이 결혼할 때 2,400만냥을 썼다고 하네요. 만력제가 이렇게 큰 돈을 들여 혼인을 시킨 주상순은 훗날 이자성의 난 때 사로잡힌 뒤 연회 자리에서 잡아먹히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고보면 만력제는 임진왜란 등 만력3정 비용<자기 묘 건설<아들 결혼식 순으로 돈을 썼군요. 

만력제를 향한 조선 유생들의 끝없는 사랑, 만동묘로 승화하다

여하튼 위와 같은 상황 덕분에 중국 내에서는 만력제에게 '고려천자' '조선황제'라는 별명이 붙게 됩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한반도에서는 수백 년간 제삿밥을 먹게 됩니다. 동방예의지국의 나라에서 절체절명 위기에 처한 자신들을 도와준 이를 가만 놔둘리가요. 1704년(숙종 30년),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그를 제향하기 위해 세워진 화양동서원 안에 신종 만력제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 숭정제를 위해 만동묘라는 사당을 짓게 됩니다. 이름인 만동묘(萬東廟)는 선조의 친필 '만절필동(萬折必東, 황하는 아무리 곡절이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에서 딴 것인데,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사대를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죠. 재조지은(再造之恩, 거의 망하게 된 걸 구해준 은혜)를 잊지 못한다는 의미로 북향으로 지은 것이 특징입니다. 후에는 벼슬의 순서를 노래한 '승경가' 중에서 '임금 위에 만동묘지기'라는 가사가 나올만큼 유교를 앞세운 세도 정치권력의 중심으로 변질돼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지만, 실각 이후 명성왕후 세력에 의해 유생들의 환심을 사는 차원에서 복구되었구요. 심지어는 일제강점기 당시인 1937년까지도 지방 유림들이 비밀계까지 만들어서 일제 몰래 제사를 지내오다 발각되어 1940년에 제사의 맥이 끊겼다고 합니다. 

우리가 베이징 여행을 가면 많이들 가는 명13릉의 '지하궁전'이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만력제의 묘인 정릉인데요. 1956년 발굴되었으나 문화대혁명 당시 '봉건의 잔재' '계급의 적'으로 규정되어 홍위병들에 의해 바위로 찍혀 부숴진 뒤 불태워지게 됩니다. 명이 망하고 청이 건국된 이후에는 물론이거니와 조선과 대한제국마저 사라진 일제강점기까지 한반도에서 제삿밥을 먹은 만력제. 비록 중국 대륙에서는 명나라를 망하게 한 암군이자 계급의 적으로 가루도 남지 않았지만, 한반도에서만큼은 일제강점기까지도 재조지은을 잊지 못한 유생들 덕분에 '고려천자'이자 '조선황제'로 우러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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