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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습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앞으로 보낸 공개 서한을 통해 회담 취소사실을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23일엔 “다음주에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북미정상회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는 평가가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아예 취소를 해버리라고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을 듯 하네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양쪽 모두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회담에 당신이 보여준 시간과 인내, 노력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그곳에 있기를 고대했지만, 애석하게도 당신들의 최근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에 기반하여, 지금 시점에서 이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우리의 핵이 매우 엄청나고 막강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이 절대 사용되지 않기를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며 경고성 발언을 덧붙였죠.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언젠가는 당신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며 여지를 남겨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 번역본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각하(His Excellency)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평양
친애하는 위원장에게,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6월 12일 열릴 예정이었던, 양측 모두가 오랜 기간 추구해왔던 정상회담에 관련한 우리의 최근의 협상(negotiations)과 협의(discussions)와 관련한 당신의 시간과 끈기, 그리고 노력을 무척이나 감사히 여깁니다. 우리는 그 회담이 북한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정보를 접했으나(informed), 그 점은 상관없습니다(irrelevant). 나는 그곳에 당신과 함께 있기를 무척이나 고대했습니다. 슬프게도, 당신이 낸 최신 성명에 담긴 굉장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에 근거해, 나는 지금 이 시점에(at this time), 오랜 기간 계획해온 당신과 만나는 것은 부적절(inappropriate)하다고 느낍니다. 따라서, 싱가포르 회담이 (북ㆍ미) 양측 모두를 위해서, 그러나 세계를 위해서는 해로운 일이지만, 일어나지 않을 것을 이 편지로 대신 전달하도록 해주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핵 능력을 언급하지만, 우리의 것(핵 능력은) 너무도 규모가 크고 강력해서, 나는 그것들이 사용되어야 할 일이 없기를 신께 기도합니다.
나는 우리 둘 사이에서 훌륭한(wonderful)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느꼈고, 결국엔 중요한 것은 그 대화뿐입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매우 고대합니다. 그 사이, 당신이 세 명의 억류자를 풀어주어 그들이 현재 가족과 함께 집에 있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행동(gesture)이었고, 매우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가장 중요한 (북·미) 정상회담에 관련한 마음을 바꾼다면, 주저하지 말고 내게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세요. 세계는, 특히 북한은, 지속가능한 평화와 위대한 번영과 부유함을 이룰 훌륭한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 잃어버린 기회는 역사에서 진정 슬픈 순간입니다.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J 트럼프
갑작스럽게 발표된 회담 무산의 이유에 대해 백악관 관계자들은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비롯한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은 그간 '리비아식 핵폐기안'을 주장해왔는데요. 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 강력한 반발을 보여왔습니다. 지난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데 이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합의를 하지 않을 경우 리비아처럼 끝장날 수 있다"며 북한을 압박하자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며 북미정상회담 재검토를 다시 거론했죠. 이를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북한의 진의를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폼페이오 장관이 핫라인을 통해 북한에 연락을 취했지만 북한이 받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합니다. 또한 17일 워싱턴을 방문했던 류허 중국 국무원 부총리 등으로부터 "북한과 미국의 회담이 힘들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하죠.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 이후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내가 지난 8일 두번째 방북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며 최근 며칠간 싱가포르로의 수송 및 이동 계획 등에 관해 논의하자는 미국 관리들의 거듭된 요청에 북한이 응답하지 않은 것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결정을 하게 한 추가적인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원하는 것은 체제 보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경제원조 등을 강조했을 뿐 확실한 체제보장을 약속하지 않았죠. 카다피의 최후를 지켜본 북한으로선 리비아식 모델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어제 오후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습니다.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면서도 결국은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고자 행동에 나선 것인데요. 하지만 이렇게 회담이 취소되면서 앞으로의 상황을 가늠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로써 지난 3월 8일 한국 특사단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 제안을 수락한 지 77일만에 회담은 안타깝게도 무산되었습니다. 현재로선 말이죠. 결국 이번 북미회담 취소는 미국과 북한의 기선제압용 샅바싸움이 감정싸움으로 번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 북한이 늘 써왔던 '벼랑끝 전술'을 이번엔 미국에서 사용하는 느낌이 강하네요. 일각에서는 미국의 비핵화 로드맵 제1원칙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마저 합의할 가능성이 적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출구 전략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1박4일이라는 무리한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 한미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 소집해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발표의 진의와 대응책을 모색했죠. 문 대통령은 "당혹스럽고 유감"이라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면서도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한 뒤 "정상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비핵화→종전선언→평화체제 구성의 프로세스를 추진해 온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커다란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번 회담 취소 결정에 유감을 표하며, 혹시나 모를 반전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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