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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먼저 T군이 반성할 것은 올해 T군 역시 씰을 못샀다는 겁니다..ㅠㅠ 반성반성! 구세군 자선냄비는 소액의 돈을 넣었지만..내년에는 꼭 사도록 해야겠네요!
영국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되고 19세기 말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천성이 착하고 어린이를 좋아하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벨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 가는 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던 중 연말을 기해 매일 같이 쌓이는 많은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이 많은 우편물에 동전 한닢짜리 "씰"을 붙여 보내도록 한다면 판매되는 자금으로 결핵으로 꺼져가는 수많은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904년 12월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으며 국왕인 크리스챤 9세도 적극 지원에 나서 그의 소박한 착상은 처음부터 많은 덴마크 사람들의 참여로 씰 모금 운동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자 곧 스웨덴, 독일 및 노르웨이 등 주변국이 뒤따르고 1915년에는 루마니아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동양권에서는 1910년 필리핀이 처음으로 씰을 발행하였으며 이어 일본에서는 1925년 12월에 자연요양사라는 민간잡지사가 처음으로 씰을 발행하였고 1926년부터 결핵예방회에서 본격적으로
씰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여러 곳곳에서 씰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1925년 이후로는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이태리 등 여러 유럽국가와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 및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의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므로서 사랑과 나 눔의 실천운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일제치하에서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이 처음으로 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893년 11월10일 당시 처음으로 평양에서 서양의학과 기독교를 전한 감리교 부부 선교사 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과 로젯타 셔우드 홀을 부모로 서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가난한 결핵환자들과 일반 서민들을 돌보고 깨우치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캐나다에서 의학공 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25년부터 해주 구세병원에서 일하다가 1928년 해주 결핵요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셔우드 홀은 1932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면서 발행동기를 첫째, 한국사람들에게 결 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둘째, 만인을 항결핵운동에 참여시키는 것 즉 씰 값을 싸게 하여 부자 나 가난한 사람이 모두 사도록 하고 셋째는 재정적 뒷받침을 너무나도 필요로 하는 결핵퇴치사업 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고 회상하였습니다. 1932년 이후 1940년 까지 9차례에 걸쳐 씰이 발행되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그는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일본 헌병대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되어 씰 발행도 중단되었습니다. 셔우드 홀은 1991년 4월 5일 캐나다 벤쿠버에서 98세로 타계하였고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부모가 묻혀 있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그해 9월19일 역시 그곳에서 타계한 부인 메리안 홀 역시 같은 장소에 안장되었습니다.
8.15 해방 후에는 1949년 과거 해주에서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가 주동이 되어 "한국 복십자회"에서 씰을 발행하였고 1952년 "한국 기독 의사회"에서 씰을 발행하였으나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범국민적인 성금 운동으로 착수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된 이후입니다. 그 후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여 왔는데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와 학생등 온 국민이 이 운동에 기꺼이 참여함으로 점차 결핵퇴치 재원모금운동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1963년도에는 극장모금이, 1964년에는 고궁 입장료에 첨가되는 모금 이 시작되기도 하였으나, 극장모금은 73년에, 고궁모금은 71년에 각각 중단되었습니다. 1974년에는 행정개혁위원회의 건의로 크리스마스 씰 모금 허가 액수가 대폭 감액되고 대신에 " 우표첨가 모금"이 체신부 주관으로 실시되었으나 한번으로 끝났습니다. 1980년부터 씰 모금 허가액이 다시 증가되면서 이에 따른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 해 씰 모금운동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도에는 우리 나라 우표 100주년을 맞아 체신부가 84년 10월 22일부터 10월 31일 까지 개최하는 "국제우표전시회"에서 과년도 씰을 일반에 게 판매하여 씰 수집가의 수집열에 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1988년에는 "세계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를 세종문화회관에서 11월 3일부터 11월 8일까지 개최하였으며 같은 해
한국조폐공사에서는 화폐박물관 개관 때 "크리스마스 씰 상설 전시대"를 마련하여 한국의 씰에 관한 역사적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서울에서 개최된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가 각 지방으로 이동 전시되었으며 그 동안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를 위하여 수집된 각국의 씰과 우리의 씰의 뿌리를 조명하여 정리한 "세계의 크리스마스 씰"이라는 씰도감을 발행하였으며, 우리 나라 씰 이외에 13개국의 씰을 수집하여 수집첩을 발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홍보용 CF를 처음 제작하여 방송국의 협찬으로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에는 "세계 크리스마스 씰" 영문판을 발간하여 각 회원국에 배포하였으며 일부는 IUATLD에 기금확보를 위해서 기증하였습니다. 88, 89, 90, 92, 95, 96년에는 세계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계속 1위에 입상한 바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보내는 방법 두번째! 구세군 자선냄비 보시면 적은 돈이라도 꼭 기부하세요..^^ 종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져요~^^
영국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되고 19세기 말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천성이 착하고 어린이를 좋아하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벨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 가는 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던 중 연말을 기해 매일 같이 쌓이는 많은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이 많은 우편물에 동전 한닢짜리 "씰"을 붙여 보내도록 한다면 판매되는 자금으로 결핵으로 꺼져가는 수많은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904년 12월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으며 국왕인 크리스챤 9세도 적극 지원에 나서 그의 소박한 착상은 처음부터 많은 덴마크 사람들의 참여로 씰 모금 운동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자 곧 스웨덴, 독일 및 노르웨이 등 주변국이 뒤따르고 1915년에는 루마니아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동양권에서는 1910년 필리핀이 처음으로 씰을 발행하였으며 이어 일본에서는 1925년 12월에 자연요양사라는 민간잡지사가 처음으로 씰을 발행하였고 1926년부터 결핵예방회에서 본격적으로
씰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여러 곳곳에서 씰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1925년 이후로는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이태리 등 여러 유럽국가와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 및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의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므로서 사랑과 나 눔의 실천운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일제치하에서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이 처음으로 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893년 11월10일 당시 처음으로 평양에서 서양의학과 기독교를 전한 감리교 부부 선교사 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과 로젯타 셔우드 홀을 부모로 서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가난한 결핵환자들과 일반 서민들을 돌보고 깨우치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캐나다에서 의학공 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25년부터 해주 구세병원에서 일하다가 1928년 해주 결핵요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셔우드 홀은 1932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면서 발행동기를 첫째, 한국사람들에게 결 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둘째, 만인을 항결핵운동에 참여시키는 것 즉 씰 값을 싸게 하여 부자 나 가난한 사람이 모두 사도록 하고 셋째는 재정적 뒷받침을 너무나도 필요로 하는 결핵퇴치사업 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고 회상하였습니다. 1932년 이후 1940년 까지 9차례에 걸쳐 씰이 발행되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그는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일본 헌병대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되어 씰 발행도 중단되었습니다. 셔우드 홀은 1991년 4월 5일 캐나다 벤쿠버에서 98세로 타계하였고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부모가 묻혀 있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그해 9월19일 역시 그곳에서 타계한 부인 메리안 홀 역시 같은 장소에 안장되었습니다.
8.15 해방 후에는 1949년 과거 해주에서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가 주동이 되어 "한국 복십자회"에서 씰을 발행하였고 1952년 "한국 기독 의사회"에서 씰을 발행하였으나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범국민적인 성금 운동으로 착수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된 이후입니다. 그 후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여 왔는데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와 학생등 온 국민이 이 운동에 기꺼이 참여함으로 점차 결핵퇴치 재원모금운동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1963년도에는 극장모금이, 1964년에는 고궁 입장료에 첨가되는 모금 이 시작되기도 하였으나, 극장모금은 73년에, 고궁모금은 71년에 각각 중단되었습니다. 1974년에는 행정개혁위원회의 건의로 크리스마스 씰 모금 허가 액수가 대폭 감액되고 대신에 " 우표첨가 모금"이 체신부 주관으로 실시되었으나 한번으로 끝났습니다. 1980년부터 씰 모금 허가액이 다시 증가되면서 이에 따른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 해 씰 모금운동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도에는 우리 나라 우표 100주년을 맞아 체신부가 84년 10월 22일부터 10월 31일 까지 개최하는 "국제우표전시회"에서 과년도 씰을 일반에 게 판매하여 씰 수집가의 수집열에 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1988년에는 "세계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를 세종문화회관에서 11월 3일부터 11월 8일까지 개최하였으며 같은 해
한국조폐공사에서는 화폐박물관 개관 때 "크리스마스 씰 상설 전시대"를 마련하여 한국의 씰에 관한 역사적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서울에서 개최된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가 각 지방으로 이동 전시되었으며 그 동안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를 위하여 수집된 각국의 씰과 우리의 씰의 뿌리를 조명하여 정리한 "세계의 크리스마스 씰"이라는 씰도감을 발행하였으며, 우리 나라 씰 이외에 13개국의 씰을 수집하여 수집첩을 발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홍보용 CF를 처음 제작하여 방송국의 협찬으로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에는 "세계 크리스마스 씰" 영문판을 발간하여 각 회원국에 배포하였으며 일부는 IUATLD에 기금확보를 위해서 기증하였습니다. 88, 89, 90, 92, 95, 96년에는 세계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계속 1위에 입상한 바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보내는 방법 두번째! 구세군 자선냄비 보시면 적은 돈이라도 꼭 기부하세요..^^ 종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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