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인생/Classic Music

모차르트의 자장가(Wiegenlied) K. 350, 사실은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니라구요? (feat. 플리스 / 플라이쉬만)

자발적한량 202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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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중략) 달님은 영창으로~ (중략) 잘자라 우리아가'. '모차르트의 자장가'로 알려진 작품번호 K. 350의 이 노래는 브람스의 자장가, 슈베르트의 자장가 등과 함께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장가일 겁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사실은 모차르트가 만든 노래가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이 노래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독일의 옛 민요에서 발췌하여 1780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작품번호도 모차르트의 작품을 시대 순으로 정리해 붙이는 쾨헬 번호(K.)를 사용해왔죠.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이것이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자장가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죠.

 

1799년 오펜바흐(Offenbach)의 음악출판사 Musikverlag Johann André(현재 Musikhaus André)는 모차르트의 미망인 콘스탄체에게서 모차르트가 남긴 모든 초고 악보를 구입합니다. 270개가 넘는 이 악보들 중에는 '돈 조반니'(Don Giovanni, K. 527),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K. 620) 등도 있었죠. 이때 '모차르트의 자장가'로 알려진 곡의 악보 역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출판사의 2대 사장이었던 요한 안톤 안드레(Johann Anton André)는 이 곡이 정말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 맞는지 의문을 가졌고, 모차르트의 미망인 콘스탄체를 비롯해 콘스탄체의 재혼남이자 자기 아내의 전남편 모차르트의 진가를 세상에 드러내는데 평생을 바친 덴마크의 외교관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과 수 차례 서신을 통해 의논한 끝에 이 곡을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출판하지 않았죠.

 

여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1795년 안드레의 출판사가 출판한 요한 안톤 프리드리히 플라이쉬만(Johann Anton Friedrich Fleischmann, 1766.7.19 ~ 1798.11.30)의 곡에서 이 곡과 동일한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 하지만 이 곡은 니센이 쓴 모차르트의 첫번째 전기 부록에 실리게 됩니다. 니센은 외교관에서 은퇴한 후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로 이주해 모차르트의 전기를 집필하다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고, 이후 콘스탄체는 의사이자 음악애호가였던 요한 하인리히 포이어슈타인(Johann Heinrich Feuerstein)를 고용해 1798년 모차르트의 전기를 펴냈는데, 바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장가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후 1862년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이자 음악사학자인 루트비히 폰 쾨헬이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모차르트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정렬하여 'Chronologisch-Thematisches Verzeichniss sämmtlicher Tonwerke Wolfgang Amade Mozarts'이란 이름으로 출판했는데, 여기서 해당 곡은 K. 350의 쾨헬번호를 지정받게 됩니다. 흔히들 쾨헬이 모차르트가 복사해 둔 악보를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오인해 이를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출판하면서 오해가 시작됐다고들 하지만, 진짜 문제의 발단은 쾨헬이 아니라 니센이 쓴 모차르트의 전기. 쾨헬 역시 자신이 펴낸 책에서 출처를 니센이 쓴 모차르트의 전기 속 부록이라고 명시해 둔 것이 이를 뒷받침하죠. 이후 베토벤 연구의 선구자이자 브람스의 평생 친구였던 음악가 구스타브 노테봄(Martin Gustav Nottebohm)은 모차르트 작품에서 찾을 수 없는 도입부 등의 오류 등으로 지적하고 새롭게 구절을 변경한 뒤 이를 출간함(1877)으로써 모차르트의 작품 진위 여부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모차르트 사후 100주년이었던 1891년, 모차르트의 자장가에 대한 진위 여부 논란이 불거집니다. 1896년, 독일가곡 전문 음악학자인 막스 프리들렌더(Max Friedlaender, 1852.10.12 ~ 1934.5.2)는 함부르크 대학교의 도서관에서 한 악보를 발견합니다. 여기에는 '고터의 자장가'라는 제목으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고터 (Friedrich Wilhelm Gotter, 1746.9.3 ~ 1797.3.18)의 시에 베르나르드 플리스(Bernhard Flies, 1770 ~ 1851)가 작곡해 1796년 발행되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자, 여기서부터는 'Peters Music Library 1896, 3rd year' 연감 pp. 69-71에 프리들렌더가 써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리들렌더는 1) 고터의 시가 모차르트 사후 4년인 1795년에 출판된 고터의 희곡 '에스더(Esther)'에 수록된 점, 2) 모차르트가 죽은 지 37년이 지나도록 모차르트가 직접 작곡한 작품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고, 원본을 구할 수 없던 상태에서 1829년 니센이 쓴 모차르트의 전기에 등장한 점.

 

또한 모차르트의 탄생 100주년인 1856년 그의 전기를 쓴 독일의 고고학자 겸 문헌학자 오토 얀(Otto Jahn)의 제자이자 그의 전기를 수정해 3판과 4판을 출간한 헤르만 다이터스(Hermann Deiters)이 이 곡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여동생은 이 곡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고 니센이 적은 편지의 일부였죠. 이러한 점들을 근거로 플리들렌더는 이 작품은 베르나르드 플리스가 1795년 혹은 1796년 만든 노래이며, 이는 요한 안톤 프리드리히 플라이쉬만(Johann Anton Friedrich Fleischmann)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적었죠. 참고로 쾨헬이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도별로 정리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간 모아둔 모차르트와 관련된 필사본 및 편지들을 모두 넘긴 사람이 바로 오토 얀.

 

하지만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의 논문 <Das Wiegenlied "von Mozart">(Goretzki, Elfriede; Krickeberg, Dieter)에서는 플리들렌더가 놓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바로 고터의 희곡 중 이 노래에 사용된 부분이 1795년 발표된 'Esther' 외에 1789년 발표된 'Esther in the Weimar Literature Circle'에도 동일하게 등장한다는 것이었죠. 또한 고터와 플라이쉬만 간의 긴밀한 관계 또한 언급했습니다. 시인과 작곡가로서 두 사람은 계약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죠. 그 외에도 박자 기호 및 1789년 원고에 적힌 희곡에 대한 언급 등 여러가지 부분들로 비춰볼 때 반대로 플라이쉬만이 이 곡을 처음 만들었고, 이에 영향을 받아 플리스가 우리에게 알려진 곡을 만들었다고 결론짓습니다.

즉,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모차르트의 자장가'는 모차르트의 곡이 아닌 플리스의 곡이 맞지만, 이는 플라이쉬만의 작품을 이른바 '샘플링'하여 만든 것으로, 엄밀히 따졌을 때 플라이쉬만이 아 곡의 초석을 만든 것이라고 정리가 됩니다.

 

워낙 오랜 시간동안 모차르트의 자장가로 유명세를 탔기 때문에 현재도 한국 등에서는 이를 '모차르트의 자장가'로 부르고 있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이 곡을 이미 'Flies: Wiegenlied (Previously Attributed to Mozart) - Schlafe, mein Prinzchen, schlaf ein'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구요. 어찌보면 플라이쉬만 입장에서는 살짝 억울할 수도 있겠죠?

 

오늘의 포스팅은 소프라노 조수미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김수연, 비올리스트 웬 시아오 쳉(Wen Xiao Zheng), 첼리스트 클라우스-디터 브란트(Klaus-Dieter Brandt), 콘트라베이시스트 성민제,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퍼 박/에브게니 보자노프(Evgeni Bozhanov), 기타리스트 이정민 등과 함께 한 앨범 'Ich liebe dich'(2010, Deutsche Grammophon)에 수록된 곡을 들으면서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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