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안동 경북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부릅니다. 예로부터 사대부들이 많이 모여 살았고, 조선시대에는 경상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현재도 충효와 예절의 고장으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고, 무언가 '사대부'다운 분위기가 나는 도시입니다. 안동이 자랑하는, 그리고 대표적인 서원으로 뽑히는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을 모시는 서원인데요. 안동에 가면 퇴계 이황의 발자취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퇴계태실의 대문인 성림문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퇴계태실. 성림문이라는 이름의 대문을 지나고 나면 이곳에서부터 퇴계태실입니다. 어머니 박씨 부인이 퇴계 선생을 낳을 때 공자가 방문 안에 들어오시는 꿈을 꾸었던 까닭에 그 집 문을 성림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방이 퇴계 이황이 태어난 태실입니다.
이 집은 퇴계 이황의 조부 이계양이 조선 단종 2년(1454)에 지은 것입니다. 후에 퇴계가 1501년 11월에 이 집에서 태어났다 하여 '퇴계태실'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본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입니다. 본채의 중앙에 삼면을 계자난간으로 둘러 누형식으로 독특하게 꾸민 곳이 퇴계태실입니다.
노송정, 온천정사라고 써진 편액이 보입니다.
동남쪽 모서리에 마루를 두어 큰사랑과 작은 사랑이 분리되어 있는데, 마루 위쪽에 온천정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본채 동쪽에는 'ㅡ'자형 건물인 노송정이 자리하고 있고, 그 우측에 사당이 있습니다.
으리으리하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퇴계태실
이 건물은 약 60여년 전에 고쳐지어졌다고 하나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풍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태실과 같은 독특한 방은 상류주택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집 전체를 일명 노송정 종택이라 부릅니다.
퇴계종택, 경사북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의 종택으로 원래 건물은 없어졌으나 1929년 선생의 13대 사손 하정공이 옛 종택의 규모를 참작하여 지금의 터에 새로 지은 것입니다. 종택의 오른쪽에는 추월한수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종택 입구의 열녀문
퇴계종택 입구에는 열녀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열녀는 퇴계 손부 권씨입니다. 즉 이안도의 부인입니다. 손부는 남편이 일찍 죽자 홑옷 거적자리에서 밤낮으로 울음을 다섯 달동안 그치지 않았는데, 그런 상태에서 3년상을 마치고 병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이후 밥을 입에 대지 않고 좁쌀미음으로 연명하면서 머리를 빗질하지 않은 채 23년을 띠를 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내가 죽지 못하고 명을 이어가는 것은 다만 후사 때문이다. 만일 후사를 세우지 못하고 죽으면 저승에서 무슨 낯으로 그이를 대할 것인가!"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종택 내부의 사당
결국 후사는 조카 억으로 결정되었고, 억이 혼인하여 며느리와 함께 들어오는 날 손부는 목욕 재계한 후 소복을 입고 자결을 하였습니다. 열녀 정려는 초상 중에 내려왔고, 부인의 시신은 열녀문을 나와 발인되었습니다. 종택의 열녀문은 이런 연유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의 15대 종손 이동은 옹께서 거주하고 계십니다.
이 집은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자형으로, 대문과 정자 그리고 사당 등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높은 석축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을 섞어서 지었습니다. 사대부집의 공간영역을 갖추고 있으며 솟을대문과 정자 등 품위와 규모를 갖춘 종가로 전통 생활도구도 비교적 잘 남아있습니다.
추월한수정
이 정자는 창설재 권두경이 조선 숙종 을미년(1715)에 퇴계문인 후예의 도움을 받아 종택 옆에 짓고 이름을 추월한수정이라고 하였습니다. 1907년 일본의 침략으로 혼란한 시기에 건물이 불에 타 없어졌으며 그 후 1926년 상주 도남서원에서 도회를 열고 전국적으로 400여 유림과 문중이 비용을 모아 현재의 건물로 중건하였습니다. 이 정자 안에는 여러 개의 현판이 있습니다. 그 중 "도학연원방"은 퇴계의 경사상과 도학이 이곳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소박한 묘
퇴계 이황의 묘소입니다. 70세 되던 1570년 12월 8일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유서에서 조정에서 내려주는 예장을 사양할 것, 비석을 세우지 말고 조그마한 돌의 전면에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라고만 쓰고 자신이 소박하게 지은 명문을 새기라 하였습니다. 이런 유언에 따라 조성된 퇴계의 묘소는 영남 유림의 검소하고 절제된 묘 치장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시간 안배가 잘못되어 정작 도산서원과 하회마을은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태실과 종택, 묘소만 보더라도 안동의 큰 자랑거리인 퇴계 이황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퇴계 선생의 후손 한명이 안동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입니다. 다음 이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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