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4·12 재·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 한 곳의 국회의원을 포함해 기초자치단체장 3곳, 광역의원 7곳, 기초의원 18곳 등 총 29개 선거구에서 실시되어 평균 투표율이 28.6%(148만 8,367명 중 42만 5,426명 투표 참여)를 기록한 4·12 재보선.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지자체장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무소속이,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더민주당 1명, 자유한국당 3명, 국민의당 2명, 무소속 1명이,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더민주당 7명, 국민의당 2명, 바른정당 2명, 무소속 3명이 당선되었다는 개표 결과를 보고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과표를 받은 각 정당들은 '화려한 부활'(자유한국당) '값진 승리'(더민주당), '값진 승리와 무거운 책임감'(국민의당)과 같이 의미부여했지만, 객관적으로 후보 23명 중 절반이 넘는 12명이 당선된 자유한국당의 대승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네요.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에서 선거가 치러진 6개의 지역구에서 모두 승리했습니다. 국회의원(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을 비롯해 광역의원(대구 수성구), 기초의원(대구 달서구, 경북 구미시, 경북 칠곡군, 경북 군위군)에서 전승을 기록했죠. 물론 그 외에도 경기 포천시(지방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경기 용인시 기흥구(광역의원), 부산 강서구(기초의원), 경남 함안군(기초의원), 경남 합천군(기초의원) 등에서 자유한국당이 승리를 거뒀지만, 한 지역을 싹쓸이한 것은 대구·경북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이번 4·12 재보선 결과에서 이른바 TK지역의 민심을 눈 여겨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대구·경북(TK)지역은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전 대통령(경북 구미시)과,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뒤 친구 전두환의 뒤를 이어 대통령을 역임했던 노태우 씨(대구광역시), 탄핵이 되어 쫓겨난 최초의 대통령인 박근혜 씨 등 총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해낸 지역인만큼 그 후광을 힘입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지역이지요. 특히 그 동네에서는 탄신제가 열릴 정도로 박정희가 신격화되어 있기도 하구요. '반신반인(半神半人)' 아닙니까. 그의 딸인 박근혜는 1997년 정치에 입문한 바로 다음해부터 대구 달성군에서 내리 4선의 국회의원을 지냈구요.
바꾸어 말하면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시작된 군사독재 정권의 수혜로 발전이라는 열매를 먹을 수 있었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정권은 노골적으로 TK지역을 발전시켜 왔고, 자연스럽게 전라도 지역은 더딘 발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당시 호남 지역에서 '우리도 한번 대통령 배출해서 좀 잘 살아보자'는 한 섞인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자신들에게 정부가 준 것이라고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등 피비린내나는 비극 뿐이라는 것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동쪽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그 만큼 깊은 피해의식이 쌓일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것이 쌓여가며 깊은 지역갈등의 골이 쌓이게 된 것이죠.
'우리가 언제 해달라고 요구했냐'며 항변을 할 수 있을테지만, 최소한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로 혼란에 빠진 현재의 상황에 최소한 TK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반성감을 갖을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씨가 정계 입문부터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등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정치적 자양분을 주며 키워낸 곳이 바로 TK 아닙니까? 아직까지 '우리 공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다'고 인정 못하겠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요. 그런데 인정 못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번 선거 결과를 보니. 어떻게 자유한국당이 한 지역 싹쓸이를 할 수가 있나요. 정말 제가 어지간하면 이런 지역감정이 깃들어있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번 결과를 보면서 '정말 답이 없는 동네구나'라는 생각 밖에 나지 않네요.
덕분에 자유한국당에서는 "언론을 통해 나타난 외형상의 민심은 자유한국당을 외면하는 듯 보였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침묵했던 유권자들의 선택은 달랐다. 패권주의 세력이나 경험이 부족한 세력에 국정을 맡길 수 없다는 숨은 민심이 자유한국당을 이번 재보선에서 승리로 이끌었다"며 한껏 들뜬 표정입니다. 당 대선후보인 홍준표 후보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극적으로 회복되는 계기"라고 아예 정의를 내려버렸죠. 대구 동구을에서 내리 3선을 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좀 크게 반성을 해야 할 것 같네요. 홍준표 후보의 기준을 대입해보자면 국민적 신뢰는 고사하고 출신·지역구 신뢰도 얻지 못하고 있는 듯 해서요.
이번 재보선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역시 유일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자유한국당 김재원 당선인(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입니다. 2013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문 당시 대화록이 사전유출됐다는 의혹을 문자로 전달받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형님 김재원입니다 (중략) 저는 요즘 어떻게든 형님을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노심초사 중이었는데 (후략)"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비롯해 국회에서 김무성 대표 자리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는 사진으로 이른바 '조폭 정치'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인물입니다. 작년에는 청와대에 들어가 정무수석을 맡기도 한 대표적인 친박 세력이죠. 김재원 당선인은 47.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무소속 성윤환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영태 후보를 따돌리고 여유롭게 국회에 재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TK는 이번 선거로 '박근혜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수인번호 503번, 좋으시겠어요. 구치소 안에서도 선거의 여왕이시네요. 아, 국회로 돌아온 김재원 의원에게 두 가지 축하 인사 전합니다. 하나는 국회로 돌아오시게 된 것, 또 하나는 바른정당으로 떠난 '형님' 김무성 대신 선거기간 자신의 유세를 열심히 도와준 '새로운 형님' 홍준표가 생긴 것을.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앞으로 노심초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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