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밟고 있는 땅/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서거 15주기 추도식 엄수, '지금의 실천이 내일의 역사입니다'

자발적한량 2024.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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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과 생태문화공원 특설무대에서는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5주기 추도식이 엄수되었습니다. 30도가 넘는 초여름 날씨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팬클럽이었던 노사모 회원들을 비롯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는 많은 시민들이 봉하마을로 모여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여야 지도부와 김진표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22대 국회의원 당선자 등 정치권 인사들도 대거 추도식에 참석했습니다.

 

'지금의 실천이 내일의 역사입니다'라는 주제 아래 정준희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은 국민의례로 시작해 공식 추도사, 추도식 주제영상 상영, 시민 추도사, 추모 공연, 이사장 감사말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송기인 신부는 추도사를 통해 "이제 우리는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 편견과 아집, 탐욕을 벗고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행복한 좋은 세상, 사람 사는 세상, 대동의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송기인 신부는 노무현 대통령과 1982년 미 문화원 방화사건때 송기인 신부와 운동권의 후견인과 변호사로 처음 만났고,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에게 세례를 준, 노무현의 정신적 지주이자 문재인의 멘토, 부산·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입니다. 초대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죠. 다음은 송기인 신부의 추도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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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어느결에 1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자전거에 태우고 봉하 들판을 달렸던 당신의 손녀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손수 심은 나무들은 무성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게 잊혀가고 흐릿해지기 마련인데. 세월이 갈수록 당신을 향한 그리움은 깊어집니다. 꾸밈없는 모습과 정겨운 목소리는 더욱 도렷해집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부르신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그리움만큼이나 부끄럽습니다. 당신께서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세상은 한 걸음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삶은 나아져야 아는데. 당신이 가신 뒤 오히려 세상은 더 각박해지고 거칠어졌습니다.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 시민이어서 자랑스러운 세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이 땅의 민중이 피땀으로 이루어 낸 민주화의 찬란한 역정은 지금에 이르러 뒷걸음질하면서 홀대당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자식처럼 사랑하고 어버이처럼 모셨던 이 땅의 민중들은 지금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괴물이 되어 무한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댑니다. 독단과 독선, 오만으로 소통이 막히고 정치가 실종됐습니다.
 
대통령께서 꿈꾸던,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존중받는 세상,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고르게 주어진 세상, 그러한 세상을 무도한 권력과 허망한 정치가 가로막았습니다.
 
저잣거리의 무뢰배보다 못한 정치판이 좋은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당신의 꿈, 다 함께 잘 사는 대동의 세상을 지키고 이루지 못한 채 지금 이 자리에 선 우리는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새롭게, 올곧게 거듭나려 합니다.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서, 세상의 주인으로서 자세를 가다듬고 당신께서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겠다고 다짐합니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 위에서 당신께서 남긴 정신을 따르려 합니다. 진정 우리가 잘 사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서 찬찬히 새겨보면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愚公移山 - 당신의 생각대로 더디지만 진득하게 걸어가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이제 우리는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 편견과 아집, 탐욕을 벗고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행복한 좋은 세상, 사람 사는 세상, 대동의 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정치판에서, 경제판에서, 문화판에서 열린 가슴으로 소통하면서 개인의 영달보다 이웃의 평화와 나라의 발전을 앞세우겠습니다.
 
"여러분은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가? 지금 여러분의 생각과 실천이 내일의 역사가 될 것이다."
 
당신의 뜨거운 절규를 오늘 이 자리에서 가슴에 아로새기며 소아를 벗고 대의의 길로 성큼성큼 나아가겠습니다. 다시 당신 앞에서는 날 떳떳할 수 있게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시공을 달리하고 있는 그곳, 주님의 뜰에서
유스토 노 대통령님 평화로우소서.
 
2024년 5월 23일. 송기인

 

시민추도사를 맡은 배우 명계남은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며 "작은 차별성에 집중하기보다 동질성에 주목하며 우리 모두 어깨 걸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했습니다. 명계남은 노무현 대통령의 팬클럽 노사모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고,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본인 또한 봉하마을로 이사를 와서 주민이 되었죠.  개인적으로 명계남의 추도사는 듣는 저를 매우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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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님,
님 안 계신 지 15번째 5월입니다.
그새 저는 님의 이승 나이보다 10년을 넘어 살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님의 말씀입니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올 때마다 이를 지켜내는 것은 시민이다, 우리다, 깨어있는 시민이다
자긍심으로 지치지 않는 강물이 되겠다 하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님 때문에 눈이 높아진 우리는 오히려 우리 안에서 작은 차이를 만들고 꼬집으며 동력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기 일쑤여서 민주주의는 시시때때로 위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전진을 더디게 만드는 데 우리가 스스로 한몫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여 님 앞에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대통령님 야단쳐 주십시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민주주의는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서 사상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결과에 승복하고 패자에게는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그래서 이견과 이해관계를 통합해 나가는 정치 기술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지키지 못하는 님의 말씀임니다. 야단쳐 주십시오.

"지금 당신의 생각과 실천이 바로 내일의 역사가 된다"고 말씀 하셨지요. 무서운 말씀입니다.

네 그래서 이 오월, 다시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깨어있는 시민인가? 조직되어 있는가?
아, 잘 모르겠습니다.

네, 주제넘은 넋두리를 한 듯싶습니다. 당신 때문에 눈이 높아진 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리 엄한 얘기도 함부로 꺼내는 어설픈 용기도 가져봅니다. 용서하십시오.

엊그제 묘역애서 만난 한 참배객께서 저더러 "고향도 아닌 여기로 이사 와서 이렇게 매일 무얼 하고 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마땅한 대답을 못 찾은 제 입에서 불쑥 나온 대답은 "대통령께서 언제 불쑥 일어나실지 몰라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요. 그분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흔들리고 우리끼리 날 세우고 생채기를 낼 때면 더욱 대통령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더없이 따뜻하지만, 차가운 이성이 압도하던 당신. 잘못하면 사과하고, 잘났지만 겸손하며, 좋아한다고 하면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던 당신. 무엇보다 사랑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 대놓고 지지해도 쪽팔리지 않게 해 준 사람. 더 사랑하지 못해 미안해지게 하는 사람.

내 힘으로, 우리가 모여 더 나은 세상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일깨운 사람. 사느라 시들어 버린 열정을 되살려 준 사람. 내가 얼마나 뜨거운 사람인지 알게 해 준 사람.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이 기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해 준 사람.

그리고 그리고, 다시없는 지독한 슬픔을 알게 한 사람. 당신을 너무 믿어서 습관처럼 어떤 고난도 혼자서 알아서 잘 이겨내시리라 편하게 생각해 버린 것을 천추의 한이 되게 만든 사람, 당신. 당신의 마지막 오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미워서 환장하게 한 사람.

그리고 그리고. 다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이 되어 준 사람. 15년을 버티게 해 준 사람. 더없이 고마운 사람. 외로운 사람. 그리운 사람, 당신.

대통령님 지낼 만하신가요? 우리 생각은 하시나요? 때때로 보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그립기는 한가요?

괴로운 일을 당할 때면,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내가 하는 선택은 당신이 매 순간 해야 했던 선택의 무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님이 넘기신 말과 글을 수백 번 옮겨 쓰고 읽고 보고 듣고 다시 들여다보고, 그러고 나면 그러고 나면 마음이 좀 가라앉습니다. 그러면 살아 볼 용기를 다시 내봅니다. 언제나 지금도 님은, 부족한 제게 삶의 기준이며 지표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다시 시간이 쌓이고 세월은 쉼 없이 오가겠지요.
20년 30년이 지나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당신은 내 가장 찬란한 시절로 남을 것입니다. 그럼요.
그때도 저는 말할 것입니다.
당신의 국민이어서 행복했노라고.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노짱.

2024년 5월 23일. 명계남 올림

추모공연은 노무현재단 후원회원과 전국의 시민들로 구성된 '150인 시민합창단'이 고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불렀습니다. 지난 4월 18일부터 노무현시민센터 문화예술학교에서는 음악을 통한 시민활동 프로그램 <액션콰이어 시민합창>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분들 역시 다수 포함됐죠.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대한민국은 불확실한 세계 정세와 저출산, 지방소멸 등으로 불안하고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내일의 역사를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통합과 상생의 정치,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원칙과 상식이 승리하는 세상을 위해 깨어있는 시민 모두가 힘을 보태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한편 이날 한 자리에 모인 여야는 노무현 정신에 대한 해석만큼은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을 배반한 대통령에게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보여줘야 한다"며, 총선 민심을 따르라고 거듭 강조했고, 조국혁신당은 노 전 대통령을 향했던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검찰 개혁을 22대 국회에서 완성하겠다"고 다짐한 반면, 국민의힘은 탄핵을 언급한 민주당의 '국회 일방독주'를 비판하며, 진정한 '노무현 정신'은 민생을 위한 협치에 있다고 밝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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