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썰을 풀다

'위대한 가이드' 박명수가 인도에서 인종차별 당했다? '칭챙총'에 대한 고찰과 인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내로남불

자발적한량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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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가이드' 박명수 일행이 방문한 자이푸르는 어디?

지난 4월 박명수와 신현준이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밟고 있다는 소식을 지인에게 들었습니다. 검색해봤더니 '위대한 가이드'라는 프로그램 촬영차 인도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있더군요. 그래서 과연 어떻게 방송될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잊고 지내다가 작년 8월 역시 인도를 방문했던 친구가 저랑 같이 갔던 곳 나온다면서 클립을 몇 개 보내줬습니다. 그러면서 보내준 영상 중 하나가 바로 기사에 보도된 '박명수 인도 인종차별' 논란입니다.

 

박명수 등 '위대한 가이드' 일행이 방문한 곳은 인도 북부의 자이푸르(Jaipur). 자이푸르와 인도의 수도 델리,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Agra)와 함께 골든트라이앵글이라고 부릅니다. 인도도 워낙 넓은 나라라 콜카타, 뭄바이, 바라나시 등 알려진 지역들은 비행기를 타고 다시 이동해야 하지만, 자이푸르, 아그라 정도는 델리에서 차량을 통해 이동이 가능한 지역들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한국과 인도는 인천-델리 노선이 유일하게 직항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도여행 초심자들에게는 제격인 여행루트입니다. 

 

라자스탄(Rajasthan) 주의 주도인 자이푸르는 인도에서 10번째로 큰 도시이며, 인구는 대략 300만. '핑크시티'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영화 '김종욱 찾기'에 나온 '블루시티' 조드푸르(Jodhpur), '화이트시티' 우다이푸르, '골드시티' 자이살메르와 함께 4색도시라고 불리죠. 델리와 가까워서 '골드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거리는 약 450km, 서울-부산 정도의 거리입니다. 고속도로 기준으로 약 5시간 정도가 소요되구요.

 

라자스탄 주가 인도에서 남한의 3.4배 달하는 인도에서 가장 큰 주이고, 그 중에서도 자이푸르가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지이긴 하지만 의외로 파크 하얏트 및 그랜드 하얏트, JW 메리어트, 콘래드 등 글로벌 호텔 체인의 럭셔리 5성급 호텔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나마 있는 게 힐튼 자이푸르, 자이푸르 메리어트, 하얏트 플레이스 자이푸르·하얏트 리젠시 자이푸르 정도.

하지만 인도 럭셔리 호텔 체인인 릴라(The Leela), 랄리트(The Lalit) 및 미국 기반의 호텔 체인 래디슨 블루(Radisson Blu) 등이 있고, 무엇보다 250년 넘은 궁전을 개조해 인도는 물론 세계 최고의 헤리티지 호텔로 수 차례 선정된 라즈 팰리스(The Raj Palace) 호텔이 있죠. 

 

우리나라로 비교해보면 전주와 자이푸르가 상당히 겹친다는 느낌이 듭니다. 라지푸트족이 세운 자이푸르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고, 하와 마할, 잔타르 만타르, 앰버 팰리스(암베르성), 시티 팰리스, 잘 마할 등 주요 관광지도 역사적 성격이 강한... 그런데 그렇다고 막 부산, 대구, 광주, 인천 같은 대도시 느낌은 아닌 것이 콜카타, 첸나이, 뭄바이, 벵갈루루보단 작은 것이랑도 비슷하고. 수도와 크게 멀지도 않고 뭐 여러모로.. 

 

박명수가 들은 인종비하 발언 '칭챙총'은?

자, 본론으로 돌아가서, 박명수 등은 자이푸르의 바푸 바자르(Bapu Bazaar)를 방문합니다. 말 그대로 바푸 시장이죠. 인도, 특히 라자스탄 지역 전통 보석제품 및 수공예품, 의류, 액세서리 등을 판매합니다. 남대문시장 생각하시면 아무래도 쉽겠죠? 가이드로 나선 인도 출신 방송인, 사업가 럭키(아비셰크 굽타)가 멤버들에게 용돈을 나눠준 후 팀별로 쇼핑을 해보라고 제안을 하죠.

 

박명수가 럭키와 한 팀이 되어 쇼핑에 나선 가운데 두 사람은 한 신발 가게에 들어갑니다. 직원들이 호객에 나섰고 박명수는 신발을 신어보며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돌연 박명수를 향해 '코리아, 칭챙총'이라는 말을 내뱉고, 박명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를 듣고 놀란 럭키는 상인에게 강하게 항의했죠. 하지만 상인은 뭐가 잘못이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럭키는 박명수를 배려해 신발 가격이 너무 비싸서 항의했다면서 다른 가게로 이동했습니다. 이후 럭키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면서 "이게 인도의 전부라고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대신 사과를 했습니다.

 

칭챙총(Ching Chang Chong). 서양인들이 중국어를 들었을 때 그들의 언어가 마치 '칭챙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에서 착안되어 생긴 표현입니다. 중국어에 유독 닿소리를 발음할 때 공기가 좁은 틈을 치아 쪽으로 통과되면서 발생하는 마찰을 이용해서 내는 소리인'치찰음'이 많은 연유에서죠. 비슷한 것으로는 '챠오밍'내지는 '샤오밍', '샹샹숑샹싱#%!$!@' 등이 있습니다. 모두 중국어를 어설프게 흉내낸 것.

 

칭챙총은 중국어에서 비롯되었지만, 타 지역 사람들 입장에서는 중국인, 한국, 일본인들의 외모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한중일 3국과 대만, 즉 동아시아인들에게 구별없이 사용되는 인종차별 멸칭입니다. 양 손가락으로 양 눈 끝부분을 가늘게 잡아당겨 동양인들의 눈이 작고 길게 찢어진 것을 비하하는 표현인 '칭키 아이즈'(chinky eyes)와 함께 동양인을 비하하는 양대 인종차별적 표현이죠. 지금은 많이 사그러들었지만, 코로나-19 판데믹 시절엔 '코로나' 또한 멸칭으로 사용됐었습니다. 코로나 판데믹의 시작이 중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칭챙총'은 유럽, 북미 일부 방송에서 금지용어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상당히 보편성을 띄고 있는 멸칭입니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결국 교육의 부재로 인한 '무지의 산물'인 요소가 큽니다. 타 문화권에 대한 교육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국제적인 상식에 밝지 못한 일부 국가 사람들은 '칭챙총'이 단순히 중국인을 묘사하는 재미있는 말 정도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것이죠. 즉, '칭챙총'이 단순히 중국어 소리를 묘사하는 것일 뿐 중국의 인종이나 문화의 열등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스웨덴의 어린이 동화 '말괄량이 삐삐'에서도 '칭챙총'이 등장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 여행 유튜브를 보면 종종 알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중동, 동유럽 여행 유튜브 영상 중에는 적대감을 전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정말 무척이나 해맑게 웃으면서 '칭챙총' '칭총'이라고 하면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우리 입장에선 정말 병주고 약주는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첨언을 해 칭챙총과 칭키 아이즈 이외의 인종차별 행위를 언급해보자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니하오'(你好) '셰셰'(谢谢)를 말하거나 쿵푸 동작 흉내를 내는 것 등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선 동아시아 중 중국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탓도 있지만, 한국인 입장에선 국적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중국인 취급을 하면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죠.

게다가 쪼개가면서 빈정거리듯이 말하면 더더욱 그렇구요. 하지만 이 역시 차분히 입장을 바꿔 한국인들 중에서도 서양인을 보면 프랑스인, 러시아인, 헝가리인, 독일인 할 것 없이 바로 영어 인사말을 떠올리는 경우가 상당한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비슷한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빈정거리듯이 이야기할 사람은 없겠지만요.

 

박명수에게 친근감을 표시하고 싶었던 그, 무지의 산물이 빚은 논란

박명수를 대신해 항의를 해준 럭키의 행동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한국인의 입장을 대변해 '칭챙총'이란 멸칭을 사용한 인도인에게 잘못됐다는 것을 말해줬으니까요. 하지만 아마 상인은 끝까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럭키는 항의를 하면서 '욕'을 뜻하는 힌디어인 '갈리'(गाली·gaalee)라고 언급했는데, 신발가게 상인의 입장에선 '씨발놈''Mother Fucker'를 뜻하는 '마더쪼드'(motherchod)나 순한 의미으로는 '멍청이', '바보'지만 실제적 의미로는 좀 더 강한 '병신새끼''Asshole' 등을 뜻하는 '쭈띠야'(Chutiya) 등이 욕이지 '칭챙총'은 욕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죠.

 

저 역시도 인도에 살기 시작하면서 '칭챙총'이란 단어를 비롯해 '코로나' 등 온갖 멸칭을 다 들어보기도 했고, 그게 기분 나빠서 어떻게 하면 갚아줄까 하는 생각에 힌디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칭챙총'을 외치는 사람들과 고성을 지르며 싸워본 적도 있고, "왜 이 파키스탄 놈아?"(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북한 같습니다. 그리고 되게 기분 나빠합니다)라고 맞받아친 적도 많죠.

 

하지만 인도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한꺼풀 벗겨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막연히 인도는 빈부격차, 교육격차가 심한 나라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 격차를 실제로 접하고 나면 정말 너무나도 크게 다가옵니다. 오토 혹은 릭샤라고 부르는 삼륜차를 운전하는 사람, 길거리에서 짜이를 파는 사람, 방송에서 나온 시장 상인 등 정말 많은 이들의 교육 수준은 아쉽게도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은 그것에 미치지 못합니다. 글로벌 마인드는 더할 나위없구요. 게다가 인도는 한중일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여행국가도 아니죠.

 

럭키와 같이 국제적인 상식을 갖추고 있거나, 일정 수준 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스럽게도' 칭챙총과 같은 비하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해선 예외) 그들은 '칭챙총'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칭챙총'의 뜻조차 모르고 이를 사용합니다. 이번 '위대한 가이드' 방송 속 박명수 인종차별 논란도 마찬가지. 엄연히 박명수는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손님입니다. 

하지만 해당 인도인은 "코리아?"이러더니 다짜고짜 "칭챙총!"이라고 말하죠. 이것을 굳이 의역하자면, '코리아? 아~ 동아시아인~' 이렇게 말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가게를 찾아온 손님에게 굳이 멸칭을 쓸 이유가 상식적으로 없죠. 자기 나름대로는 친근함을 표현하려고 하는데, 딱히 아는 건 없고 그나마 생각해서 꺼낸 단어가 '칭챙총'인 상황인 것. 이 인도인이 럭키의 항의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해 못하는 제스처를 보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설명을 좀 더 확대해보자면, 네덜란드계 미국인의 이름을 묘사해 '양키'라고 불린 것이 점점 퍼지면서 미국인 전체를 비하하는 단어로 사용됐죠. 하지만 워낙 대중적으로 사용됐기도 하고 결국엔 인종 비하의 의미가 옅어진 상태. 대표적인 예로 '뉴욕 양키즈'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양키스버거'라는 수제버거 브랜드가 있죠.

과거 주한미국 범죄와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 등으로 반미 감정이 확산됐을 때 구호가 '양키 고 홈'이었죠? 이러한 모습을 직접 목격했던 한국인들이야 '양키'라는 단어가 미국인에 대한 멸칭이었다는 단어의 역사를 알겠지만, 현재 MZ세대 중에서 '양키스버거'를 보면서 '어? 미국인을 비하하는 단어가 왜 미국 수제버거 집 이름으로 사용되지?'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인종차별 논란은 시청률을 위한 '위대한 가이드' 제작진의 노이즈 마케팅

'칭챙총'이란 단어 본래의 의미가 동아시아인 비하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한국인들도 조금은 드러난 겉모습에 대한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 더 나아가서는 타 국가와 문화적 특성 등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과거 '일본에서 왔니?''아니' -> '그럼 중국에서 왔니?''아니' -> '그럼 어디서 왔니?''한국' -> '아~북한?''아니, 남한' -> '그렇구나. 그런데 한국은 어디에 있어?'로 대화가 이어지던 시대가 지났습니다. 메이저 문화라고 말할 순 없지만, BTS, 블랙핑크 등 K-Pop에서 시작된 이른바 'K-컬쳐'는 과거 동아시아와 일부 동남아 국가에 국한되있던 '한류'를 뛰어넘어 'K-드라마' 'K-푸드' 등 갈수록 영향력을 넓혀 나가며 그야말로 '핫한' 문화가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한국인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시선도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뀌었구요.

 

인도의 수도 뉴델리의 관광지들을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다보면 젊은 인도 여성들이 슬쩍 다가와 'Hello, Are you Korean?'이라고 묻는다거나, 심지어는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죠?'라고 묻는 경우까지 빈번히 일어납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친구가 겪은 이야기며, 정말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한국은 그야말로 핫하기 그지 없습니다. 

 

'위대한 가이드'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칭챙총' 단어에 대한 분석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편집 과정 등에서 충분히 전후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자극적으로 해당 장면을 보여주고, 또 이를 열심히 받아적는 언론에서 '박명수가 인도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기사가 쏟아지고, 이를 본 사람들이 '인도 주제에 한국을 비하하는 상황이 말이 되냐'등과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혐오의 굴레가 무척이나 아쉬워 보입니다.

 

만약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봤을 때 인도인 상인이 박명수에게 비하와 멸시의 목적으로 '칭챙총'을 사용했다면 저 역시도 당연히 비난을 했겠죠. 하지만 단순히 '칭챙총'을 사용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인종차별'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너무 머리 꼬리 잘라먹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고 '우리가 칭챙총이라는 멸칭을 듣고도 그런 상황까지 다 이해하고 넘어가야 되냐'라고 물으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유럽 등 서양에서 실제적인 인종차별을 빈번히 당하고, 그에 따른 피해의식이 뇌리 속에 박힌 시대와는 조금 다른 포용성을 갖춰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굳이 '칭챙총'이라는 단어 하나에 예민하게 굴기보단, 어떠한 의도를 갖고 언행을 하는지 살펴보고 판단할 수 있는 여력... 이제 우리 한국도 갖출 수 있지 않나요?

 

거울이 필요한 한국, 우리는 인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왔는가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인도에 살고 있는 한인으로서 한 가지 이슈를 던져 보자면, 인도를 방문한 수많은 유튜버들의 영상 속에 비춰진 인도는 정말이지 불결하고, 매너없고, 바가지 씌우는 것이 예사에, 뭐만 먹었다 하면 배탈나고 뭐 그런 '급 낮은 나라'입니다. 또한 언론에서 많이들 언급하는 '강간의 왕국' 같은 내용까지. 물론 그러한 모습이 분명 있고, 그냥 있다고 하기엔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죠.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이 해외토픽으로 보도되고, 이를 통해 해외에서 한국을 연쇄살인범의 나라, 강간과 살인의 나라라고 생각되는 것은 옳을까요? 우리 역시도 중화요리를 시켜 먹으면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야 오늘 짱깨나 시켜먹자'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진 않나요?

 

삼성전자 인도 법인, 현대자동차 인도 법인 등 수 많은 한국기업을 비롯해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자리잡고 있는 구르가온(Gurgaon)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공식적으론 구루그램(Gurugram)으로 이름이 바뀌었긴 한데. 인도 내 한인들 대다수가 이 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중에는 100평에 방4개, 욕실 4개, 에어컨 10대, 별도의 메이드룸이 갖춰져 있고, 수영장, 펍, 카페 등이 클럽하우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하주차장에는 슈퍼카들이 즐비합니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와 구르가온에서 운행 중인 전철의 역전은 줄지어선 오토릭샤로 붐비고, 쓰레기도 많고 더러운 환경이 자주 목격되지만, 내부로 들어가 전철을 타보면 한국의 전철과 다를 바 없이 깨끗하고 쾌적합니다. 특히 에어컨이 빵빵해서 피서지가 따로 없죠. 가보진 않았지만 인도 남부의 벵갈루루 지역은 기후와 환경이 미국 캘리포니아를 연상케 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인도가 엄청 좋은 나라다'라고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 기준에서 위생적으로 한참 미치지 못하는 모습도 많고, 전철에서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밀고 들어오는 공공질서 의식도 싫고, 도로 위로 소가 나와 걸어간다고 정체가 발생하는 것도 답답하고, 길을 걷다보면 운전하다 소변이 마렵다고 차를 세워두곤 길가 풀밭에 냅다 오줌을 갈기는 모습도 참 보기 흉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들만을 보여주며 '인도는 더러운 나라' '인도는 구린 나라' 식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돈을 버는 행위에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싸게는 2천원 짜리 맥주부터 비싸게는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 양주를 파는 주류점 앞에 신발도 신지 않은 아이 손을 잡고 다가와서 동냥을 하는 사람이 있는 나라가 인도입니다. 어떤 이는 제가 앞에서 언급한 15억 상당의 아파트를 수십 채씩 갖고 있고, 어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좁은 메이드룸에 살면서 한달에 32만원을 받고 상주 메이드를 하는 나라가 인도입니다.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은만큼 각양각색의 삶을 볼 수 있고, 한국의 70~80년대와 2024년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는 '박명수 인종차별' 영상의 댓글에서 '감히 인도 따위가 한국인을 인종차별해?'와 같은 반응이 상당한 호응을 받는 것을 보면서, 많은 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우리보다 소위 '미개'하고 내리깔 수 있는 나라가 필요하고, 그 중 하나가 인도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재밌는 것은 인도 상위 1%의 인구(약 1,400만 명)가 전체의 40%에 달하는 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2021년 인도의 백만장자 규모는 79만 6,000여 명, 순자산 10만 달러 이상이 무려 1,700만 명이라고 하죠. 그들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고, 그 파도는 넘지 못할 것 같던 인도마저도 젖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니 등 일본제 TV보다 삼성, LG의 TV를 더 높게 평가하고, 떡볶이, 김밥, 양념치킨, 삼겹살을 먹기 위해 한식당을 찾고, 한국인인 저도 잘 모르는 드라마 제목을 언급하며 대화를 시도합니다. 인스타그램에는 BTS의 사진이 가득하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 한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은 학생들, 한국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및 한국기업들이 인도 젊은이들의 꿈의 직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종종 이들로부터 '우리는 한국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한국인들은 인도를 무시하고, 비하하거나 조롱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말문이 막힙니다. 인스타그램의 인도 관련 컨텐츠, 유튜브의 인도 여행기 댓글들을 한국에 관심있는 인도인들이라면 한 번쯤은 보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번역기를 돌릴 것도 없이, 한국인인 저 스스로도 혀를 끌끌 차게 되는 내용의 댓글들이 많습니다. 2024년 지구는 한국인들끼리 한국어로 댓글 단다고 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전후 맥락이 잘려나간 '칭챙총' 단어를 듣고 박명수가 인도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분개하기 전에, 우리 한국인들은 인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인도와 관련해 어떤 식의 여론이 형성되어 왔으며, 과연 한국은 인도를 비하하고 무시해도 되는 나라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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