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제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지난 4·10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을 앞세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창당한 신생정당 조국혁신당은 여당인 국민의힘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 결과 국민의힘은 108석을 차지하며 개헌저지선을 간신히 사수했고, 더불어민주당은 171석, 조국혁신당은 12석, 개혁신당과 진보당이 각각 3석, 새로운미래와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이 각각 1석을 차지했죠.
자, 그런데 오늘은 정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주제는 환경, 정확히는 선거운동복에 대한 이야기. 선거운동 과정에서 사용된 의류 및 소품은 야구점퍼, 바람막이, 모자, 장갑, 어깨띠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에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올해 4·10 총선의 경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13일에 불과했습니다.
일회용 선거운동복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비영리스타트업 기업인 웨어마이폴에 따르면 이번 제22대 총선을 위해 제작되어 사용된 후 버려진 선거운동복은 약 3만2,593벌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거운동복 외에도 각종 소품들을 더하면 그 양은 훨씬 많아지겠죠?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후보와 후보의 가족 1명, 선거사무장과 선거사무원만 후보의 사진·이름·기호 및 소속 정당명 등을 기재한 윗옷과 어깨띠, 마스크나 장갑, 모자 등의 소품을 입거나 지닐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선거사무원은 선거구 내 읍·면·동수의 3배수에 5를 더한 수 이내로 둘 수 있죠. 예를 들어 볼까요? 서울특별시의 선거구 중 동이 가장 많은 곳이 17개 동이 있는 종로구인데, 후보자와 후보자 가족 1명, 선거사무장 그리고 선거사무원 56명까지 총 59명이 종로구에서 출마한 후보 캠프에서 선거운동복을 입을 수 있는 인원인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실제로 제작된 선거용 소품들은 이를 착용할 수 있는 인원 이상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비용 보전청구 증빙자료에 따르면 서울 48개 선거구의 후보들이 제작한 선거운동복은 5,464벌입니다. 후보당 평균 56.9벌을 제작한 셈이 되는데요.
아까 59명이 선거운동복을 입을 수 있는 최대인원이라고 언급했던 종로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최재형 국민의힘 후보의 경우 야구점퍼는 87벌, 모자는 80벌, 장갑은 130개를 제작했습니다. 또한 최대 29명이 선거용품을 사용할 수 있는 서울 구로구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태영호 국민의힘 후보는 바람막이 55벌과 야구점버 2벌, 당선된 윤건영 의원은 윗옷 50벌을 바람막이 53벌, 패딩 1벌 등 선거운동복 104벌을 제작했습니다.
이렇게 선거운동복이 남아돌게 제작하는 이유 첫 번째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누가 어떤 옷을 입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최재엽 웨어마이폴 운영위원장은 “선거운동기간에 임박해서 공천이 확정된 후보들은 선거운동복 등 소품을 급히 제작하다 보니 선거사무원의 치수 등을 파악하지 못하고 수량을 여유있게 주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어짜피 유효투표 수의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 10% 이상 15% 미만이면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금으로 보전이 되니까 아낌없이 그냥 쓰는거죠. 자기 돈이면 그렇게 하겠나요? 아마 '아나바다 운동'을 하겠죠.
이렇게 선거운동 기간 사용된 '13일'된 선거운동복들은 선거가 끝난 뒤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그 이유는 옷의 재질이 혼방 섬유인 경우가 많고, 게다가 옷에 부착된 문구 등을 분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웨어마이폴이 제22대 총선 이후 20일동안 17개 후보 캠프 선거운동복 412벌을 확보해 재질을 분석한 결과 폴리에스테르, 면, 또는 T/C(폴리에스테르 65% 면 35%) 등이라고 합니다. 혼방 원단은 원재료로 되돌리기 힘들 뿐 아니라 문구와 숫자를 150도의 고열로 옷에 고정을 시키는 과정에서 옷감에 변형이 일어나 떼어내기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유니폼 마킹 많이 해보셔서 잘 아시죠?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차선은 재사용입니다. 즉,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용된 선거운동복을 다음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지방선거, 보궐선거 등에서 사용하는 것인데요. 일단 이를 위해선 선거 결과에 따라 매 선거마다 바뀌는 기호를 선거운동복에서 빼야 하고, 당 내에서 치수만 맞다면 돌려 입을 수 있도록 선거구와 후보 이름 등을 넣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매 선거마다 선거운동복을 제작하는 나라는 대만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태국이나 캄보디아 등이 정당명과 기호까지만 기입된 선거운동복을 입고, 대부분 국가의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정장 차림에 어깨띠를 두르거나 피켓을 드는 정도로 선거운동복을 대신하죠.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정작 정당 및 후보자들은 부정적입니다. 상대 후보자가 '깔맞춤'해서 번지르르하게 맞춰입고 선거유세를 하는데,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이를 간소화하면 소위 '없어보이는' 모양새가 되는거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심지어 일정 득표율을 기록하면 나라에서 세금으로 비용 보전까지 해주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굳이 아낄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럼 이런 선거운동복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대로 버려져 쓰레기로 폐기되거나, 폐의류업자들의 손에 헐값에 넘어가 제3세계 등으로 팔려 나갑니다. 해외를 여행하시다가 쌩뚱맞게 한국어가 적힌 옷들을 뜬금없이 보신 분들 꽤 있으시죠? 저도 친구들과 함께 인도여행을 하면서 윤석열, 안철수 선거운동원(?)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인도에서도 뉴델리나 뭄바이 등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작은 도시로 가면 갈수록 이런 옷들을 쉽게 볼 수 있죠.
서울 서대문구 마포갑에 출마했던 김혜미 녹색정의당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웨어마이폴에서 시민들이 입지 않는 옷을 모아 제작한 '리사이클링 선거운동복'을 비롯해 무공해 트럭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로웨이스트 선거운동' 후보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등 거대양당 등이 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최재엽 웨어마이폴 운영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일회용 선거용 소품이 과다 생산 및 사용된다"며 "이번에 버려진 선거운동복 등을 업사이클해 국회의원들이 다시 구입하도록 하는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제22대 총선에 등록된 후보는 693명이었는데요. 과연 대한민국의 정당 및 정치인들이 이러한 활동에 얼마나 호응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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