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을 꿈꾸며/프랑스

유럽을 상징하는 조형물 에펠탑, 파리의 밤하늘을 수놓다

자발적한량 200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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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무엇이냐"고 유럽인들에게 물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펠 탑이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에펠 탑은 이렇게 파리나 프랑스의 상징이 아니라 이젠 유럽을 상징하는 탑이 되어 있습니다. 300m높이의 에펠 탑은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과 같은 해에 열린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후일 방송 안테나가 올라가 24m 정도 높아졌죠. 철탑이기 때문에 기후에 따라 약 15cm 정도 높이가 변합니다.


 3개 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올라가 볼 수도 있습니다. 입장은 유료이며 2층까지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습니다. 1층의 높이는 57m, 중간 층인 2층은 115m, 가장 높은 3층은 276m입니다. 건설자인 귀스타브 에펠이 지어 그의 이름을 따 에펠 탑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높은 3층에 올라가면 밀납 인형으로 제작한 에펠과 토마스 에디슨이 만나 담소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쾌청한 날은 60km까지 전망이 가능하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일몰 한 시간 전에 볼 수 있죠. 무게는 약 9,700t 정도이고 7년마다 한 번씩 56t 가량의 방청 페인트를 칠합니다. 언뜻 보면 한 가지 색으로 칠한 것처럼 보이지만 층마다 약간씩 다르가도 합니다. 지상에서 보았을 때 탑이 더욱 높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일층에는 가장 진한 색이 칠해져 있고 3층은 가장 밝은 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한 잡지에서 항공사 여승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해외 여행지 중 남자로부터 가장 프로포즈를 받고 싶은 장소로 에펠 탑이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비단 한국인들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에펠 탑 인근에서는 웨딩 드레스를 입고 사진 촬영을 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에펠 탑이지만 그만큼 사연도 많습니다. 우선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처음 에펠 탑을 설계한 사람은 귀스타브 에펠이 아니었습니다. 만국박람회 공모전에 탑을 설계해 응모한 사람은 에펠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던 쾌슐랭과 누기에였죠. 이들의 안이 당선되자 자신의 이름을 덧붙이는 조건으로 에펠은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그 후 에펠은 오직 자신의 이름만 거명되도록 일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에펠 역시 뛰어난 공학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미 하노이에 철교를 놓았고 미국 맨하탄에 있는 바르톨디의 작품인 자유의 여신상 내부의 골조를 제작한 이도 에펠이라고 합니다.


 처음 에펠 탑 건립이 공표되자 모파상, 베를렌느, 르 콩트 드 릴르, 구노 등 문인과 음악가들은 물론이고 오페라 하우스를 지은 갸르니에 등 건축가들은 일제히 '300인 성명' 이라는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300m였기 때문에 300명을 모은 것입니다. 그래서 건립 당시에는 20년간 사용한 후 철거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고도로 인해 에펠 탑은 무선 전신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철거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세계 최초로 라디오 방송 전파가 발송된 곳이 에펠 탑이기도 합니다. 또 이미 세월이 흘러 300인 성명을 낸 사람들 중 생존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게다가 피사로, 들로네, 아폴리네르, 피카소, 뒤피 등 많은 현대 화가와 시인들은 그들의 작품 속에서 에펠탑을 묘사하며 새로운 시대를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식당에서 우연히 작곡가 구노를 만난 에펠은 그를 거의 억지로 끌다시피 해서 자신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에펠의 사무실은 다름 아닌 에펠 탑 맨 꼭대기 276m에 있었죠. 에펠은 이곳을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없는 것이 없이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피아노도 있었죠. 구노는 당시 파리의 하늘에 올라가 피아노 즉흥곡을 연주해 주었고 이는 그가 생각을 고쳤다는 증거였습니다. 가장 최근에 에펠 탑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인물은 다름 아닌 14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었습니다. 측근들과 있을 때면 가끔씩 에펠 탑 이야기를 꺼내면서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에펠 탑을 허물라는 성명 같은 것을 발표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유명해져 있기 때문이죠. 유료 입장을 하는 전 세계 관광 명소 중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이 바로 에펠탑입니다. 1년에 약 650만 명이 돈을 내고 탑에 올라간다고 합니다. 관광철이 되면 하루에 3만 명 정도가 한꺼번에 몰려 한 두 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올라갈 수 있을 정도죠. 게다가 에펠 탑은 SNTE, 즉 신 에펠탑 회사라는 민간 기업의 사유 재산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에펠 탑에 올라간 총 인원은 약 2억 명으로 추산됩니다.


 탑은 2층까지만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225명의 조립공들이 2년 2개월 5일 만에 에펠탑을 세웠는데, 18,038개의 조각을 대략 250만 개의 리벳으로 조립했습니다. 공사를 위해 에펠이 그린 도면만 무려 5,300장에 달했습니다. 하루하루 높아 가는 에펠탑을 보는 것은 당시 파리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기쁨이었다고 합니다. 건립 당시 공사비는 850만 프랑이 들었는데, 이를 현 환율로 계산하면 대략 2,100만 유로 정도가 들어간 셈이네요. 네 기둥은 정확하게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고 기둥 사이의 거리는 네 변 모두 125m입니다. 북쪽 기둥 밑에 부르델이 조각한 에펠의 금빛 흉상이 서 있습니다. 2층에는 에펠 탑 박물관과 함께 기념품 가게, 식당, 카페 등이 자리잡고 있구요. 가장 높은 3층에 올라가기 전에 이곳에서 화장실을 들러가는 것이 좋습니다. 화장실 사용은 물론 유료인데, 3층에도 있긴 하지만 바람으로 인해 좌우로 약 8cm쯤 흔들리는 화장실보다는 아무래도 2층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나을 겁니다^^;


 지금까지 에펠 탑에서 뛰어내린 370명 중 두 명만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철책의 높이가 높아졌고 그물이 새로 쳐졌습니다. 조금 기다려야 하긴 하지만 어쨌든 언제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내려올 때는 더욱 그러하죠..사진 속 모습은 에펠탑에서 내려본 앵발리드입니다. 루이 14세가 부상당한 군인이나 은퇴한 노병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죠. 프랑스 대혁명 당시 시민들이 무기를 탈취해 간 곳이기도 하구요. 


 샤이오궁입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죠. 에펠탑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다행히 시간이 약간 남아 샤이오궁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사진이 바로 샤이오궁에서 찍은 에펠탑이랍니다.


 이것도 샤이오궁에서 찍은 에펠탑..어떤가요? 제일 전망이 좋지 않나요?ㅎㅎ


 이 사진은 세느강 유람선을 타고 찍은 에펠탑입니다. 야경을 볼 수 있는 첫번째 바토무슈를 타게 되었죠..ㅎㅎ 원래 에펠탑은 밤이 되면 조명을 켜 금색으로 변하죠. 그런데 2008년 6월 30일부터 약 2달간 이렇게 파란색이었습니다. 왜냐구요? 프랑스가 유럽연합의 순회의장국이 되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연합 순회의장이 된 것을 기념해서 유럽연합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 불을 밝힌 것이랍니다. 외무부 장관 베르나르 쿠쓰네르가 30일 밤 11시 전등 점화식을 했고, 파리의 '철의 여인'인 에펠탑은 12개의 별이 박힌 파란색 바탕의 옷을 갈아입게 되었죠.


 1985년부터 시작된 에펠탑 조명은 원래 한개의 전조등과 한개의 반짝이는 등으로 장식되었었으나 2000년 밀레니엄 행사를 위해 약 20,000 개의 반짝이는 작은 조명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후 크고 작은 국가 행사때마다 다채로운 조명등 장식을 선보여왔습니다.

 파란 조명의 에펠탑도 아름다운데, 11시가 되자, 수천 수만개의 전구가 에펠탑을 수놓았습니다. 마치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유람선 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 장면을 넋을 잃고 지켜보았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장면이답니다. 사진으로 촬영하지 못해서 안타까울 뿐..T군의 디카 배터리는 저 사진을 마지막으로 잠들었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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