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을 꿈꾸며/영국

유럽 3대 박물관의 명성을 확인하다, 영국 박물관

자발적한량 2008. 8. 6.
728x90
반응형

 영국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유럽 3대 박물관이라고 지칭되는 곳입니다. 여기서 먼저 한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부분은, 영국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약간 어색한 분들도 계실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대영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곳이지요. 이 명칭에 대해 박종흥 인솔자께서는 'British Museum'에 Great라는 단어도 들어가 있지 않은데 어째서 대영 박물관이라고 불러야 하냐고 되묻더군요. 바로 일본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영국은 한 때 세계를 호령하며 자신들의 나라를 대영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를 본 따 일본 또한 자신들을 대일본제국이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것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이후 아직까지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글을 보시게 되는 여러분들께서도 앞으로는 '대영 박물관'이 아닌 '영국 박물관'이라고 불러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영국 박물관 입구


 영국 박물관은 1759년에 영국 런던시 블룸스버리에 세워졌습니다. 이 곳에는 6만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세계 여러나라의 유물을 지역별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 해에 관광객이 무려 500만 여명이 다녀가는 세계 최대의 인류문화유산의 보고인 영국 박물관은 의사였던 한스 슬로엔 경이 남긴 슬론 컬렉션에 왕실의 소장품과 로버트 고튼 경, 옥스퍼드 백작 로버트 해리의 고서를 함께 모아 설립되었습니다. 1759년 개관 이후 세계 각 국에서 인류의 문화유산을 모아 오늘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고 , 그후 1824년부터 28년간의 세월에 걸쳐 중, 개축된 이 곳은 현재 44개의 이오니아식 원주에 받쳐진 그리스식 건물로 그 장언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계의 위인들이 영국 박물관의 지붕에 모여있습니다..


 루브르나 바티칸이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미술품 위주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면 이에 비해 영국 박물관은 문명사를 조감해 볼 수 있는 유물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잡동사니를 모아 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세기 말에 출현한 신용카드 같은 것도 소장품 목록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동서양 각 지역의 선사 시대 유물부터 최근의 생활상을 돌아볼 수 있는 유물까지 전시하는 영국 박물관이 나름대로 매력적인 곳임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물관 운영을 위한 기부를 받는 기부함


 영국 박물관은 무료 입장입니다. 애초 개관의 목적이 '공공성'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영국의 많은 공공박물관(내셔널갤러리 등)처럼 완전 무료 입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자국의 유물이 일정수 이상 전시되고 있어야 입장료를 받을 수 있다는 국제박물관헌장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즉, 그만큼 타국 유물이 많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인 것이죠. 박물관 곳곳에는 사진처럼 기부를 하는 통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천원짜리도 간간히 눈에 보이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랑스가 이집트에서 빼앗아 온 것을 다시 빼앗은 영국! 로제타석이 그래서 이 곳에..


 제일 먼저 보았던 로제타 석. 검은 현무암으로 만든 비석의 일부였다고 합니다. 나일 강 델타 지역 서부 지방인 로제타에서 프랑스 군대에 의해 발견되어 로제타 석으로 불립니다. 1801년 알렉산드리아 조약에 의해 이집트 원정을 종결한 프랑스 군이 영국에게 인도해 1802년 처음으로 대영 박물관에서 전시되었습니다. 기원전 196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행정령이 고대 그리스 어와 두 가지 종류의 이집트 상형 문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샹폴리옹을 비롯한 이집트 학자들이 기원전 3천년경부터 사용되어 오던 이집트 상형문자 체계와 기원전 7세기부터 민간에서 사용하던 문자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렐리의 비너스!


 BC 4세기에 조각가 Praxiteles가 만든 실제 크기의 나체 비너스상입니다. 터키 남서부의 Knidos에 있는 비너스 신전에 놓여졌었는데, 이전 까지는 남자의 조각상만이 나체의 모습을 띄었기에 매우 중요한 혁신이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는 아마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 변화의 반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렐리의 비너스라고 불리며 루브르 박물관의 밀로의 비너스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입니다.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 여신의 신전인 파르테논은 고대 아테네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신전이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건축가는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였고, 조각은 그 유명한 피디아스가 제자들과 함께 맡았습니다. 19세기 초 엘긴 경에 의해 영국에 들여온 신전의 부조들은 흔히 엘긴 마블이라고 부릅니다. 신전 외부의 상단을 장식하고 있던 돌림 장식의 상당 부분이 들어와 있고 신전 정면의 합각머리를 장식하고 있던 조각들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신전에 있던 장식들


 4년마다 개최되는 범 아테네 축제가 열리는 날 신전에 봉물을 바치기 위해 전사와 젊은 처녀들이 행진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로 그리스 조각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입니다. 대리석을 마치 종이조각 다루듯 자유자재로 다룬 솜씨와 인체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비례를 조화시킨 솜씨는 그리스 예술의 절정기에 제작된 작품임을 일러줍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앗시리아관 입구의 날개달린 인두우 상


아시리아관 입구에서 본 날개달린 인두우 상입니다. 앗시리아의 수도 Kalhu의 아슈르바니팔 2세 궁전 안에 있는, 한쌍의 수호상 중의 하나로, 나머지 하나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부조와 곡선으로 처리된 신화적 형태의 석고상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궁전이나 사원의 출입구에 수호상으로 놓여지곤 했습니다. 이러한 모양의 동물은 앗시리아인들에게 'lamassu' 라고 알려져 있었으며,악의 기운으로보토 보호하거나, 왕의 방을 보호하는 의미의 디자인이었습니다. 다리 사이의 돌을 파내지 않고, 옆면에 다리 4개를부조 처리하고 앞면의 돌에도 다리 2개를 부조 처리하여, 전체적으로 보면 다리가 5개인 것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보면 서있는 듯이 보이나 측면에서 보면 걸어가고 있는 듯한 모양이죠. 몸체의 황소는 힘을 상징하고, 날개는 새의 속도를, 사람의 머리는 지성을 상징합니다. 또한 머리의 모자는 창조자의 신성함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물맷돌..! 다윗도 이걸로?


 아시리아는 현재 시리아, 이라크 등의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과거 사용되던 물맷돌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니 다윗이 골리앗에게 날린 물맷돌이 생각나더군요. 거의 동일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가이드께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자사냥..묘사가 꽤나 잘되어 있습니다.


 왕의 방을 장식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조입니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비명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그의 집권 당시에는 앗시리아에 많은 비가 왔고, 사자들이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왕가의 전통 스포츠 였던 '사자 죽이기' 를 매우 좋아했으며, 때때로는 사자를 생포하여 사육하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사자사냥 부조의 죽어가는 사자들의 불쌍한 모습이 무척이나 리얼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람세스 2세의 근엄한 모습..파라오!


 이집트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1층에는 조각이 전시되어 있었고, 미라 등 기타 유물은 2층에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관 입구에 기원전 1270년경 신왕국 제19왕조 때의 왕인 람세스 2세의 두상입니다. 테베의 장례 사원에서 출토되어 1818년에 박물관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미이라의 관..


 슬슬 미라에 관련된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군요. 영국 박물관은 사진에 담기도 힘들 만큼 많은 미이라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보유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에서도 2층에 별도의 전시관을 따로 마련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전시해놓은 미이라 전시관은 각각의 미이라와 그 미이라가 있던 관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놓은 곳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보존이 잘된 정도가 아니고..일어날 거 같은 미이라.


 이곳에는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미이라가 여러 개 있었습니다. 영혼을 카라고 불렀던 이집트 인들은 이 영혼의 거처였던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 미이라를 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건조하고 더운 모래를 파고 장사를 지냈지만, 왕조 이전의 시대부터 사후 세계에 대한 신앙이 생겨나 미이라를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내장을 들어내 카노프라고 하는 4개의 단지에 담고, 자연산 소금으로 육체를 건조시킵니다. 마로 짠 천으로 시신을 감싸고 관에 넣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임산부 미이라..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웅크린 채 미이라로 됐다는..


 특히 신과 인간의 중간자로 여겨졌던 파라오들의 미이라는 대단한 정성이 가해져 오랜 시간 제작되곤 합니다. 특히 시신을 감싸는 천은 얇은 것을 사용해 여러 겹으로 감쌌다고 합니다. 또한 시신 자체도 온갖 부적과 금은 보석으로 치장하곤 했습니다. 여러 겹의 관 속에 들어간 다음 마지막으로 금으로 제작된 마스크가 얼굴에 덮여진 채 돌로 만든 석관 속에 안치됩니다. 테베의 여사제 미이라를 보면 관 외부에 온갖 우상들과 기타 다른 신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한국관의 한옥!


 앗, 이 한옥은? 바로 한국관입니다. 영국 박물관의 한국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20만 파운드를 지원해 2000년 11월 `Korea Foundation Gallery'로 개관했으며, 에드워드 7세관 2층에 120평 규모로 3천 200여 점의 한국 유물을 교대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62년부터 99년까지 문화재 전문위원을 역임한 신영훈 씨가 2000년 영국 박물관에 한옥 사랑방을 신축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백자와 청자!


 12세기 초 고려 시대의 높이 37cm, 전형적인 상감 매화문병의 고려청자부터 신라 왕릉에서 출토된, 서기 5세기에서 7세기경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 시대 신라 금목걸이, 불화, 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한글이 영국 박물관에 써있다니..ㅎㅎ


 전시되어 있는 자료의 수나 크기에 약간 실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애시당초 'Korea' 자체를 모르는 많은 서양인들에게 한국을 홍보할 수 있는 홍보관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 한국관이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하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슬람 경전인 코란.


 다들 나가기 전에 화장실에 간 사이 전 아시아관을 살짝 보았습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입니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란 말이 있죠. 구텐베르크 인쇄 성경도 있다고 하는데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시아관의 유물


 영국 박물관의 수많은 유물들은 약탈당했거나, 약탈에 가까운 헐값에 사들여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화재 약탈과 소장이 모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만일 이런 방식으로라도 수집되지 않았더라면, 계속되는 전쟁과 정치불안 등의 이유로 인해 소실되었을 유물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낮은 발굴수준으로 인해 소중한 문화재가 파괴되어 버렸을지도 모르죠. 또한 이런 유물들이 선진화된 보존기법과 높은 연구수준이 뒷받침 되어서 한 자리에 모여있음으로써 모든 인류에게 큰 지식과 볼거리를 안겨다 주는 것도 긍정적인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시아관의 유물은 대부분 불교 관련 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유물은 제자리에 있어야 가장 큰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은 유물들의 공동묘지라는 말도 있죠. 프랑스에 외규장각 도서 등을 빼앗긴 우리나라도 매우 관련깊은 문제입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