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육군 내 동성애 군인 색출 및 처벌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시간에 맞춰 인천국제공항에서 시민단체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와 시민 10여명이 기습시위를 열었는데, 경호원과 활동가, 취재진이 엉키면서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죠. 그 과정에서 장준규 총장이 인터넷언론 '뉴스타파' 피디의 손목을 꺾고 질문을 제지하고, 또 다른 취재기자를 손으로 밀쳐내 기자의 카메라가 망가지기도 하는 일이 발생했구요.
육군 내에서 벌어진 '동성애 사냥'
논란은 육군 중앙수사단(이하 중수단)이 지난 2월과 3월에 걸쳐 전 부대를 대상으로 수사를 벌여 육군에 복무 중인 동성애가 군인 40~50명을 특정해 수사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이 수사는 애시당초 중수단이 올해 초 SNS에 현역 병사와 간부가 성관계를 맺는 영상이 유출되자 수사를 하던 중 피의자가 동성애자임을 인지하고선 이를 통해 파악한 또다른 동성애자 군인들을 추궁하는 방식으로 확대된 것인데요. 이러한 사실은 4월 13일 군인권센터가 서울 서대문구 이한열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폭로를 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육군에 동성애자 군인의 색출과 처벌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중수단이 동성애자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함정 수사를 하고 조사 과정에서 첫경험 시기, 성행위 여부에 대한 질문, 포르노 취향, 사정 위치와 같은 성희롱적 질문과 성 정체성[4] 인지 시기에 대한 질문과 성 정체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발언과 함께 아웃팅 협박 등 인권침해를 저지른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4월 17일,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 수사의 결과로 A대위가 처음 구속되었습니다. A대위는 전역을 불과 한 달도 안 남긴 상황에서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 위반으로 구속되었는데요. 24일 육군 보통군사법원은 A대위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군사법원은 A대위에게 유죄 판결을 하며 "장교로서 하급자를 선도하고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병사, 하사, 중사 등 성행위 대상을 물색하고 일과시간 중 병영 내에서 하급자에 대해 수차례 추행 행위를 하는 등 건전한 생활 및 군 기강 확립을 저해한 점이 인정된다"며 "피고인이 반성하고 성실히 군 복무를 수행한 점, 동료 및 국회의원 등 국민이 선처를 호소했고 초범인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사유를 밝혔습니다. 군형법 92조의6은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장교, 준사관, 부사관 및 병을 뜻함)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A대위의 형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면 그는 군인사법 제40조에 따라 현역에서 제적됩니다.
재판에서 A대위는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맺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합의에 의한 것이고, 관계 장소도 사적 공간"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육군 측은 "A대위는 사적 공간이 아닌 부대 내 독신자 숙소에서 다른 동성과 성관계를 했다"며 "이 밖에도 일과 시간에 병영 내에서 하급자를 추행한 혐의가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A대위는 선고 결과에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된 것으로 알려졌구요.
논란의 중심, 군형법 제92조의6
우선 해당 수사 자체에 대한 논란. 군인권센터에서는 "애시당초 육군이 수사를 벌이게 된 것은 SNS에 퍼진 영상 때문인데, 우리가 식별한 A대위 포함 수사 대상자 18명 중 육군이 발견한 동영상 유포에 관련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며 사실상 '별건 수사'를 벌였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두 번째로는 군형법 제92조의6 조항 폐지에 대한 논란. 이 조항은 2012년 유엔국가별 보편적 정례검토(UPR)를 비롯해 2015년 11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폐지 권고를 받은바 있습니다. 이 조항이 과거 미군의 군법에서 유래한 것이며 미군도 현재는 폐지한 법 조항이라는 것이 군인권센터의 설명인데요. 지난해 주한 미8군 부사령관에 부임한 태미 스미스 준장은 최초의 레즈비언 미군 장성이기도 합니다. 국제앰네스티도 이번 판결 직후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행위 또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박해받아서는 안 된다"며 이번 판결이 부당하다는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죠.
정치권은 이번 문제에 대해 쥐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 등이 모두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대선 때부터 동성애 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정의당이 유일하게 브리핑을 통해 이번 판결이 왜 반인권적인지를 지적했죠. 또한 김종대 의원의 대표 발의하고 심상정·노회찬·이정미·추혜선·윤소하 의원 등의 정의당 모든 의원들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권미혁 의원, 무소속 김종훈·윤종오 의원을 비롯해 10명이 참여하여 24일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제92조의6은 폭력성과 공연성이 없는 동성 간 성행위까지 처벌함으로써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고, 동성 간 성행위가 이성 간 성행위와 달리 형벌로서 처벌해야 할 정도로 군 기강 및 군전투력 보존에 위해가 전혀 입증되지 않았고, '피해 최소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해당 조항은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아니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만을 처벌하는 규정"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습니다. 하지만 중수단의 수사에 대한 증언들을 들어보면 헌법재판소가 판단한 것과 육군 측이 이 조항을 받아들이는 뉘앙스에서 상당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또한 이 조항대로라면, 동성애자 뿐 아니라 이성간에도 항문성교를 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되는 모호성이 존재하구요.
편견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전체주의의 광기
인터넷상에서는 군형법 92조의6을 폐지시키면 군대 내에 있는 동생들, 아들들이 동성에 의한 강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습니다만, 이 조항이 폐지되더라도 강간, 강제추행과 같이 강제성을 동반한 성적 접촉을 강력히 처벌하는 조항들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또한 군형법이 개정되면 동성애가 군내에 만연하게 되어 군사력 약화 및 군 기강 문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성 소수자들이 성적 정체성을 드러낸 상태에서 복무하는 것이 전면 허용된 미군을 보았을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구요. 하지만 이러한 편견들을 모아모아 마치 사실인마냥 마녀사냥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마치 전체주의로 점철된 나치즘의 광기어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무척이나 우려스럽습니다.
현재 육군에서는, 이러한 여론에 부채질을 하듯 동성애 문제와 강제적인 성추행을 교묘하게 뒤섞어 논점을 흐리고 있습니다. 이번 육군의 동성애자 처벌에 반대하며 군형법 92조의6 조항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성적 지향만을 이유로 국가로부터 범죄의 낙인을 찍히는 차별문제를 개선하자는 것이지 강간·성추행 등을 합법화 혹은 조장하자는 말이 절대 아닌데 말이죠. 게다가 여태껏 제대로 적용되지도 않아 사문화된 조항을 이용해 성소수자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육군의 행태는 시대착오적인 만행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대내 이성간 성행위는 '징계', 동성간 성행위는 '형사처벌'...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다
영국은 이미 50년 전에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했고, 지난해 독일은 과거 동성애 처벌법으로 유죄를 받고 피해 받은 성소수자들에게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대한민국에서는 동성애를 이유로 버젓이 법에 의해, 국가에 의해 처벌을 받습니다. 전 7년째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이성애자입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이에 대해 찬/반을 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슨 권리로 타인의 사랑을, 성적 지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요. 고조선이야 뭐야. 제가 바라는 것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면 안되는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성애자와 다르게 차별을 받아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대(병영) 내에서 이성간의 성행위는 정직, 감봉과 같은 징계 처분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대 내에서 동성간의 성행위를 하면 형사처벌을 당합니다. 전 부대 내에서의 동성애를 합법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A대위 같은 경우는 독신자 숙소(BOQ)에서 성행위를 했는데, 이는 엄연히 영내이기 때문에(독신자 숙소는 사적공간이기 때문에 영외라는 군인권센터 측의 주장은 군필자 입장에서 개소리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성간의 성행위와 동등하게 '형사처벌'이 아니라 '징계'로 말이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군형법 92조의6에 의하면 영외에 위치한 관사에서 살고 있는 장교·부사관 부부가 항문성교를 해도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동성애 문제 뿐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성생활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며, 어떤 체위는 되고 어떤 체위는 안된다고 국가가 정해주는 상황인 것이죠.
다시금 말하지만, 영내에 위치한 독신자 숙소에서 성행위를 A대위에 대해서는 분명 징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모두 마찬가지로 적용되야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성애자와 다르게 동성애자만 형사처벌을 당하는 상황은 명백한 차별입니다. 더욱이 영외에서의 성행위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명백한 자율권 침해입니다. 이번 육군의 동성애자 색출 및 처벌 사태는 동성애자를 겨냥해 마치 사냥을 하듯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온갖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하였습니다. 국가의 과도한 통제이자 인권유린 행위이며, 반드시 중단되고 개정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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