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패로 왕조를 세우려던 두산베어스의 꿈이 무너졌습니다. 2017 타이거뱅크 KBO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KIA 타이거즈로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2009년 우승 이후 8년 만이자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것인데요. 플레이오프에서 NC다이노스를 물리치고 한국시리즈로 올라온 두산베어스. 두산과 기아 두팀 다 프로야구 원년 구단이지만 단 한차례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적이 없었기에 이번 '단군매치'는 무척이나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두산은 25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있었던 1차전에서 니퍼트를 앞세워 5-3 승리를 거두며 기선을 제압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기아의 기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2차전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둔 후 두산의 홈인 서울 잠실야구장으로 올라와 3, 4차전을 6-3, 5-1로 연이어 승리하며 챔피언 등극에 1승만을 남겨놓았었죠.
그리고 어제, 잠실에서 한국시리즈를 끝내려는 기아와 광주로 내려가고자 안간힘을 쓰는 두산의 5차전이 있었습니다. 두산의 선발 라인업은 민병헌(우익수)-오재원(2루수)-박건우(중견수)-김재환(좌익수)-오재일(1루수)-에반스(지명타자)-최주환(3루수)-양의지(포수)-류지혁(유격수) 순이었고, 기아의 라인업은 이명기(우익수)-김주찬(1루수)-버나디나(중견수)-최형우(좌익수)-나지완(지명타자)-안치홍(2루수)-이범호(3루수)-김민식(포수)-김선빈(유격수) 순으로 4차전과 동일했습니다.
1, 2회에서는 양팀 모두 찾아온 찬스를 놓치며 치열한 접전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3회초에서 버나디나가 1타점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은데 이어 이범호가 자신의 한국시리즈 첫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장식하며 순식간에 5-0으로 도망갔죠. 이후 6회에서는 2점을 더 보태 7-0을 만들었구요. 제 지인들은 저보고 오늘 야구 보면 암걸릴테니 그냥 끄라고 조언했습니다만, 전 두산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한국시리즈를 끝내진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7회말 양의지·대타 정진호·민병헌·오재원이 4타자 연속 안타를 때리며 2점을 뽑아냈고, 박건우가 사구로 출루하며 무사 만루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오재일·에반스가 적시타를 날리며 타점을 보탰고, 최주환 역시 유격수 땅볼로 타점을 올려 순식간에 7-6을 만들었죠.
독이 오른 두산이 턱 밑까지 따라왔던 순간, 기아의 선택은 바로 2차전 완봉승의 주인공인 양현종이었습니다. 잠실에서 한국시리즈를 끝내버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 투수 기용이었는데요. 두산은 기아의 실책에 힘입어 1사 만루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결국 양현종을 상대로 득점을 올리진 못했습니다. 양의지와 교체된 박세혁이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고, 2사에서 타석에 들어선 김재호가 초구를 쳐 플라이 아웃 당하며 허무하게 무릎을 꿇어버린 것이죠. 결국 2017 KBO 한국시리즈는 기아타이거즈가 4승 1패로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기아는 10승부터 80승 고지를 모두 선점한 것을 비롯해 KBO 리그 역사상 최장기간 1위를 유지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시즌 내내 강한 면모를 보여왔습니다. 2015년 김기태 감독을 영입하며 리빌딩 작업에 들어간 기아는 FA 시장에 나온 양현종과 나지완을 붙잡은 것을 비롯해 최형우를 4년 100억 원에 영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올해를 노리고 일찌감치 안치홍, 김선빈, 임기영 등에게 군복무를 마치게 했고 과감한 2군 투자를 감행했죠. 외국인 선수 쪽에서도 헥터 노에시를 붙잡은 것을 비롯해 이번 시즌 새로 영입한 팻 딘, 로저 버나디나가 훌륭한 성적을 냈습니다. 그 뿐인가요? 두 차례의 트레이드를 통해 SK와이번스에서 포수 김민식과 외야수 이명기를, 넥센히어로즈에서 마무리 투수 김세현을 영입하는 등 우승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죠. 지난 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한데 이어 올해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차지한 기아타이거즈. 한국시리즈에 11번 진출해 11번 우승한 그 저력이 무척이나 대단합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두산의 기가 꺾였던 것은 바로 2차전이었습니다. 1승도 챙긴 마당에 한번 졌다고 무슨 기가 꺾이겠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양현종이 9이닝동안 11탈삼진에 단 4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며 완봉승을 달성하는 모습을 본 뒤 약간 움찔했거든요. 두산 선수들 입장에선 경기 막바지 허용한 1점이 너무나도 아쉬웠을 거구요. 결국 양현종은 2차전 완봉승과 5차전 세이브에 힘입어 기자단 74표 중 48표로 시리즈 MVP에 선정되었죠. 스팅어 차 가져가서 좋겠네요.
프로 스포츠인데 돈 얘기를 안할 수가 없죠. 기아는 통합 우승을 차지한 덕에 대략 34억 원 가량의 배당금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그룹 차원에서 별도로 주는 우승 보너스까지 포함하면 약 45억 원 정도의 보너스가 확보된다고 하네요. 작년 싱글벙글했던 두산 선수들의 표정을 올해 기아 선수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아쉬움 가득한 잔을 들어야 하는 두산에겐 또 하나의 아쉬운 소식이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얘기가 하도 많이 나와서 모르는 분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요. 오늘 오전 한화이글스가 신임 감독을 발표하는데, 이미 한용덕 감독 - 장종훈 수석코치 체제로 내정된 사실이 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그간 한화 프런트진의 행보를 보면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나 외부 감독 체제가 아닌, 현재 포스트시즌 일정을 소화 중인 구단 내의 인물이 신임 감독으로 부임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했는데요. 한화 출신에 두산을 3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끈 한용덕 수석코치 외에는 답이 없었죠. 이렇게 두산은 한용덕 코치를 보내게 되었네요.
두산 팬 입장에서 한국시리즈 패배는 무척이나 아쉽지만, 기아가 보여준 경기력은 두산을 이기고 트로피를 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기아타이거즈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내년 시즌을 위해 두산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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