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총선 패배' 인도 여당 BJP, 연정 통해 가까스로 정권 재창출
인구 14억 중 유권자만 약 10억명인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 인도는 지난 4월 14일부터 6주에 걸쳐 7단계로 28개 주와 8개 연방 직할지에서 5년 임기의 연방하원을 뽑는 총선거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인도 선거와 관련해선 정당의 상징 이미지를 사용하는 투표 방식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이야깃거리들이 있지만, 이는 추후 기회를 봐서 따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디 총리가 3번째 취임식을 했다고 해서 그가 이끄는 여당인 인도 인민당(BJP)는 선거에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BJP는 사실상 이번 총선에서 패배했습니다. 연방하원의회 총 543석 중 240석을 얻는 데 그치며 2014년 집권 이후 처음으로 단독 과반에 실패한 것.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분쟁지역에 대놓고 힌두교 사원 '람 만디르'를 짓고 자신이 직접 봉헌식을 주관하는 등 대놓고 힌두 민족주의를 철저히 정치에 활용해왔음에도 말이죠.
하지만 BJP가 주축이 되어 텔구루데삼당(TDP)과 자나타달당(JDU) 등과 함께 구성한 정당연합인 국민민주동맹(NDA)이 달성한 총 의석수는 293석(53.78%). 이렇게 연정을 통해 과반을 넘긴 국민민주동맹에서는 다시 한 번 모디 총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모디 총리는 "우리 동맹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도 정신을 반영한다"며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고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도 NDA 정부였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껏 연정을 추켜세웠죠.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모디 총리, 정권 교체 발판 마련한 INC
하지만 그간 BJP 단독 과반을 통해 국정을 주도하던 것과는 달리 연정을 통해 'Modi 3.0'(인도 국내에서 모디 3기 정부를 부르는 명칭)가 시작된 만큼 의사결정 과정에서 연정 파트너 정당들의 의견을 보다 많이 수렴해야 하고, 이들에게 더 많은 내각장관직을 양보해야 하며, 강경한 힌두 민족주의(힌두트바) 대신 국내외 이슬람과의 관계 개선, 성장 위주의 친기업 정책 대신 분배 위주 민생 안정 정책을 추진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이로써 모디 총리는 그의 정치인생 중 가장 강력한 정치적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가 구자라트 주 총리를 지내던 시절부터 이번 총선 전까지 항상 BJP가 단독 과반을 유지하던 이른바 '온실' 속에서 리더십과 행정력을 발휘해왔던 터라 딱히 내부 조율, 연정 협상 등 정치력을 보여줄 일이 딱히 많지 않았는데요. 이제 그는 여지껏 딱히 꺼내둘 필요가 있었던 협상력과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 만약 있다면 말이죠.워낙 자신의 행보에 확신이 가득찬 독단적 성향을 보여온 정치인이기 때문에...
이와 반대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간디와 네루의 주도로 설립된 독립운동 조직에서 독립 이후 정당으로 모습을 바꾼 뒤 인도 공화국 가장 오랜 기간 집권해오다 2014년부터 충격적인 총선 참패를 두 차례나 당하면서 심각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던 인도국민회의(INC)는 단독으론 99석을 획득한 것을 비롯해 INC가 인도공산당(CPI), 암아드미당(AAP) 등의 전국 단위 정당을 비롯해 전인도트리나물회의(AITC), 드라비다진보당(DMK) 등 지역 정당들이 함께 구축한 빅텐트 정당 연합 인도국가발전포괄연합(INDIA)은 233석(42.91%)로 약진하며 BJP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됐죠.
여튼 6월 4일 개표와 결과 발표가 이루어졌는데, 6월 5일엔 여당 측 정당연합 NDA에서 회의를 열고 모디 총리의 3기 집권을 승인했으며, 또한 모디 총리는 내각 회의에서 의회 해산을 권고하고 드라우파디 무르무 인도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죠. 이는 인도 내 내각 구성을 위한 절차에 따른 것입니다. 어짜피 의원 내각제를 채택한 인도에서 실질적 업무는 총리가 관장하고,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8천명의 내외빈 앞에서 거행된 모디 3기 내각의 선서식(취임식)
어제(9일)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위치한 대통령 관저인 라슈트라파티 바반(Rashtrapati Bhawan)에서는 모디 총리의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취임식이라기보단 선서식(Swearing-In Ceremony)이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긴 한데, 여튼... 이 자리에서는 모디 총리를 비롯해 '모디 3.0' 내각의 장관 72명이 함께 선서를 했죠. 모디 3기 내각 구성은 하루 전인 8일 국무총리 관저에서 11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통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행사를 위해 델리엔 비상 경계 태세가 데려진 가운데 델리 경찰 내 SWAT와 NSG 특공대가 대통령 관저 및 기타 전략적 장치 주변에 배치됐고, 행사 당일을 비롯해 그 이후로도 며칠간 델리를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했습니다. 레슨하러 한국의 한남동 같은 대사관 밀집 외교 구역인 차나캬푸리에 갔더니 총을 든 군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더군요.
오후 7시 15분 시작된 선서식에는 '이웃 우선 정책'의 일환으로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 몰디브, 부탄, 모리셔스, 세이셸 등 7개국 정상이 외빈으로 참석했고, 내빈은 각종 전문가와 문화예술인 등 무려 8,0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참고로 보도에 의하면 이 내빈 8,000명은 모디 총리가 며칠 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고려해 간소하게 초대한 인원이라고...ㅋㅋ...
내빈을 살펴보면 첸나이 철도 사업부의 준고속열차(최고 180km/h) 수석 기관차 조종사 아이쉬와라 S 메논, 아시아 최초의 여성 기관차 조종사 수레카 야다브, 인도 중앙 행정구역 센트럴 비스타 재개발 프로젝트에 기여한 환경미화원, 트랜스젠더 직원, 노동자들, 2023년 우타라칸트주 터널 붕괴 당시 16일 만에 근로자 41명을 전원 구조하는데 도움을 준 광부들, 저명한 종교 지도자, 변호사, 의사, 예술가, 정치인 등. 발리우드 스타인 샤룩 칸, 악쉐이 쿠마르, 아제이 데브간, 아닐 카푸르, 비크란트 매시, 아누팜 케르, 캉가나 라나우트 등 많은 발리우드 스타들도 선서식에 참석했습니다.
참고로 인도에서의 선서식은 주 총리(CM)의 경우 주지사가, 연방 총리(PM)와 연방 장관의 경우 대통령이, 대통령의 경우 대법원장이 이를 주관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인도의 정치 권력 구조와 헌법의 권위를 상징하죠. 이들의 선서는 인도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취임선서는 헌법 제60조에 명시되어 있죠. 선서는 2개로 나뉘어 있는데, 하나는 직책에 대한 충성 맹세(the oath of allegiance for post)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밀 맹세(the oath of secrecy)입니다.
이날 델리의 온도는 40도를 넘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뜨거웠지만, 라슈트라파티 바반은 인파로 인해 더욱 더웠을 겁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 결과에 따라 출범하는 정부의 출범식에 참석한다는 자부심이 워낙 강한 만큼 크게 문제되진 않았겠죠. 그런데 단상 위에 덩그러이 설치된 에어컨은 뭔가 좀 어색하죠?
모디 총리가 취임 선서를 시작하자 객석에선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모디 총리는 이 자리에서 "나는 법이 제정한 대로 인도 헌법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충성을 다하며, 인도의 주권과 완전성을 수호할 것을 신의 이름으로 엄숙히 맹세합니다. 그리고 나는 연방 총리로서 나의 의무를 충실하고 성실하게 수행할 것이며, 두려움이나 호의, 애정이나 악의 없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게 권리를 행사할 것입니다"라는 충성 선서와 함께 "나는 연방 총리로서 고려 대상이 되거나 나에게 알려지게 된 모든 문제에 대해 누구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소통하거나 공개하지 않을 것을 신의 이름으로 엄숙히 맹세합니다"라며 비밀 선서까지 마쳤죠. 이라고 이후 꽤나 긴 시간동안 내각 장관들 역시 각자의 선서를 했습니다.
이로써 모디 총리는 간디와 함께 인도의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는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에 이어 총리직을 세 번이나 역임한 두 번째 인물이 되었습니다. 과연 모디 3기 내각은 5년동안 인도를 어떠한 모습으로 바꿔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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