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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타타그룹(2), 인도 최대의 기업을 사회에 환원한 타타 가문, 타타그룹이 인도의 국민기업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자발적한량 2024.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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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산 순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도 최대 재벌 타타 가문, 왜?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지난 3월 발표한 세계 개인 자산 순위 Top100에는 9위이자 아시아 최고 부호인 무케시 암바니(Mukesh Ambani)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을 비롯해 가우탐 아다니(Gautam Adani) 아다니 그룹 회장, 아시아 최고 여성 부호인 사비트리 진달(Savitri Jindal) 진달 그룹 명예회장, 시브 나다르(Shiv Nadar) HCL 테크놀로지스 명예회장, 딜립 샹비(Dilip Shanghvi) 선 파마슈티컬 회장, 쿠마르 비를라(Kumar Birla) 아디티아 비를라 그룹 회장, 쿠샬 팔 싱(Kushal Pal Singh) DLF 명예회장, 사이러스 푸나왈라 Cyrus Poonawalla) 세룸인스티튜드 창업자 등 총 8명의 인도인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포스팅을 읽으시면 포브스 선정 순위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듯 하네요.

 

지난 1편에서는 타타그룹이 진출해있는 사업 영역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소금에서부터 스타벅스, 패션, 금융, 쥬얼리, 텔레콤, 전자, 인프라, 철강, 자동차, 항공사, 호텔까지. 마치 그 사업영역이 삼성같이 보인다고 해서 흔히들 '인도의 삼성'이라고 부르죠. 사실 삼성은 타타의 사업 규모에 비빌 수도 없지만... 

 

그런데 타타그룹이 한국의 재벌을 비롯해 대부분의 인도 기업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벌인 타타그룹의 전 총수인 라탄 타타 명예회장의 재산이 타기업 총수들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적다는 점. 2022년 IIFL의 인도 부호 순위를 살펴보면 라탄 타타 명예회장의 순자산은 3,800억 루피(약 6조 원)으로 421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순자산(약 16조 원)에 비교해도 한참 미치질 못하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과 김범수 카카오 의장, 홍라희 전 리움 미술관장 수준의 재산입니다. 

 

타타그룹 지주회사 '타타선스'의 지분 구조에 해답이 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타타 가문이 소유한 지주회사인 타타선스(Tata Sons)의 지분이 고작 2.8%에 불과하다는 때문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거대한 기업체의 오너 가문이 가진 지분이 겨우 이것 뿐일까요? 혹시 삼성그룹의 이재용 회장이 불과 1.63%의 삼성전자 지분을 가지고도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 회장 직함을 달고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일까요?

 

인도인들은 타타를 인도의 자랑으로 여깁니다. "인도에서는 타타로 태어나서 타타로 죽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타타가 아무리 문어발식으로 온갖 사업에 진출해도 이를 비난하지 않고, 인도 정부 역시 타타를 지원해줬으면 지원해줬지 규제를 가하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마인드에선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죠?

자, 이렇게 타타그룹이 인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려면 지주회사인 타타선스(Tata Sons)의 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타선스의 지분 중 66%는 Dorabji Tata Trust, Ratan Tata Trust, JRD Tata Trust 등 타타 가문 구성원들이 기부한 자선신탁(philanthropic trusts)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선신탁은 자선단체보다 더 큰 개념으로, 말 그대로 자선을 목적으로 설립된 신탁입니다. 인도에서는 이러한 자선신탁에게 세금을 면제해 줄 뿐만 아니라, 기부 금액에 대해 공제혜택이 주어지죠. 중요한 점은 이 거대한 타타그룹의 최대 주주가 개인 혹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닌 자선신탁이라는 점입니다. 즉, 타타그룹이 창출하는 이익의 66%가 사회에 환원되는 구조라는 거죠. 

 

굳이 CSR 법제화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회 환원하는 타타그룹

2013년 8월 인도는 57년 만에 회사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세계 최초로 법제화시켰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CSR 의무조항 제135조로, 해당 회계연도 기준 순자산 50억 루피(약 800억 원) 이상 또는 총매출 100억 루피(약 1,600억 원) 이상 또는 순이익 5천만 루피(약 8억원) 이상인 기업은 각 회계연도별로 직전 3년간 평균 순이익의 2% 이상을 CSR에 사용해야 하죠. 

 

눈여겨 볼 점은 인도에는 상속세와 증여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애시당초 세법에 상속세와 증여세 항목 자체가 없죠. 원래는 있었지만 경제자유화가 추진됐던 1985년 라지브 간디 내각에서 이를 폐지했습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둔 인도에서 일부 야당 의원이 부자 증세를 목적으로 미국처럼 상속세를 부활하자고 주장했을 때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야당은 사람들이 자녀를 위해 남긴 재산을 빼앗을 계획입니다"라는 말로 '상속세=사망세' 프레임을 만들어 이를 제압한 일화가 있기도 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인도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타가문은 사실상 그 거대한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66%에 달하는 지주회사 타타선스의 지분을 오너일가가 아닌 자선신탁 신탁이 가지고 있다는 점은 정말 놀라울 정도죠. 게다가 각 계열사들이 이익의 4%를 자선사업에 기부하도록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회사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지출하도록 정해진 하는 2%의 2배입니다. 매년 사회에 환원하는 비용만 최소 1억 달러(약 1,15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2021sus 후룬 연구소와 에델기브 재단에서 발표한 세기의 자선가 Top10을 살펴보면 타타그룹의 창립자 잠셋지 타타가 1,024억 달러(한화 약 136.4조원)로 1위에 올랐습니다. 뒤를 이은 것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와 전 부인 멀린다 게이츠(746억 달러)와 영국 제약계의 거물이었던 헨리 웰컴(567억 달러) 등. 

 

인터넷상에 알려진 바와 같이 타타그룹의 사훈은 아니었지만, 타타그룹의 창업자 잠셋지 타타의 모토는 'Humata, Hukhta, Hvarshta'였습니다. 번역하자면 '좋은(선한, 착한)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Good thoughts, good words, good deeds)'인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타타 가문과 같은 파르시(인도에 거주하는 페르시아계 조로아스터교 신도)인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부친이 언급하기도 한 명대사로도 등장하는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윤리적 핵심이 담긴 격언이죠. 

 

타타그룹의 5개 핵심가치는 진실성, 책임, 우수함, 개척, 단일성입니다. 그 중에서도 진실성과 책임, 단일성을 살펴보면 '우리는 행동에 있어서 공정하고, 정직하고, 투명하고 윤리적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대중의 감시를 받아야 합니다(진실성)', '우리는 환경적, 사회적 원칙을 사업에 통합하여,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여러 배로 사람들에게 환원되도록 할 것입니다(책임)', '우리는 직원과 파트너에게 투자하고, 지속적인 학습을 가능하게 하며, 신뢰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배려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할 것입니다(단일성)'라고 설명하고 있죠. 

 

"약속은 약속"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 '타타 나노' 스토리

타타 모터스가 2008년 1월 10일 공개한 뒤 2018년까지 판매했던 소형차 '나노'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노가 출시된 일화가 상당히 유명합니다. 당시 타타그룹 회장이었던 라탄 타타 명예회장은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뭄바이의 번잡한 도로에서 오토바이 한 대에 아이를 앞에 태운 채 운전 중인 한 남성과 아기를 안고 있는 그의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안전 기준과 배출 규정을 충족하고 연료 효율이 높은 국민차를 만들 수 있는지 생각했다고 하죠. 

 

2003년 라탄 타타 회장은 "타타 모터스가 인도인들에게 가장 저렴한 자동차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며 나노의 출시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른바 'Rs 1 lakh카 계획'. 당시 환율로 1렉(10만) 루피는 한화 약 250만 원이었는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기껏해야 스쿠터 대를 붙이거나 불안전한 차를 내놓을 것이라고 비웃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도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인 M800(한화 약 480만원)을 생산하던 업계 1위 마루티 스즈키와 2위 현대차는 이 계획을 두고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죠.

 

하지만 나노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라탄 타타 회장은 "개발 과정에서 철강재와 타이어 등 부품 가격이 크게 올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약속은 약속인 만큼 기본 모델의 출고 가격을 10만루피로 정했다"고 밝히며 "그러나 세금은 별도"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안정성 및 성능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고, 결과적으론 판매 부진이라는 사업적 실패를 받아들여야 했긴 하지만, 10만 루피라는 판매금액을 지켜냈고, 당시의 안전 기준과 법적 환경 기준을 모두 충족했으며, 애시당초 오토바이의 대안으로 고안해 개발된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타타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여줄 수 있었죠.

 

아시아 최고 부호 무케시 암바니, 하지만 인도인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세계 부자 랭킹 5위에 랭크된 적도 있는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 가문의 저택은 뭄바이에 위치한 '안틸라'라는 이름까지 붙여진 건물입니다. 높이 173m에 27층, 방 갯수만 6,000여 개에 초고속 엘리베이터 9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일하는 고용인만 60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고 하죠. 가치는 한화 약 3조 7,880억 원, 한달 전기요금만 2억 원입니다.

 

2018년 장녀 이샤 암바니의 결혼식에 들인 비용이 1,128억 원이었고, 올해 1월 약혼식으로 시작되어 7개월 만에 대장정의 끝을 내린 막내아들인 아난트 암바니의 결혼식에 쓰인 돈은 무려 8,262억 원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세계의 유명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모여들었는데, 암바니 가문은 이를 위해 비행기를 100대 이상 빌렸다고 하죠. 지역 주민 5만여 명에게 만찬을 대접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러한 암바니 가문은 인도에서 존경받는 대상이 아닙니다.

 

당시 많은 인도 국민들은 이들의 모습에 대해 "그들의 재산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벌이는 짓은 정도를 벗어나 우스꽝스럽다. 이 정도로 재력을 과시할 필요는 없다"는 반응을 보였죠. 무케시 암바니가 갖고 있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지분은 44.7%, 그리고 1057년 작은 무역회사로 출발한 릴라이언스가 현재 인도를 대표하는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악명높은 정경유착의 힘이 컸습니다.

 

만약 CJ와 현대차와 대한항공,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이 모두 합쳐진 것과 같은 형태의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정서는 어떨까요? 그런 맥락에서 타타그룹에 대한 신뢰와 사랑, 애정을 보이는 인도 국민들의 모습은 과연 무엇이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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