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도 북부 지역의 축제인 로리(Lohri)입니다. 펀자브, 잠무, 히마찰 프라데시 주 등에서는 공식 공휴일이며, 델리와 하리아나 주에서는 공휴일은 아니지만 로리를 즐기고 기념 행사를 갖죠. 로리의 날짜는 약 70년마다 바뀌는데, 21세기에 들어선 일반적으로 1월 13일 혹은 14일이 로리가 됩니다. 참, 또 다른 인도의 축제인 마카르 산크란티(Makar Sankranti) 하루 전 날에 해당되기도 합니다.
로리는 '작은설'이라고 불렸던 한국의 동지에 해당하는 축제입니다. 하지로부터 짧아졌던 해가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듯 힌두력에서는 로리를 기점으로 겨울이 정점을 맞이하고 봄이 다가오기 때문이죠. 농경 문화에서 해의 길이는 정말 중요했습니다. 인도 역시 마찬가지. 또한 겨울 작물을 뜻하는 라비 작물(rabi crops)의 수확에 감사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날 각 커뮤니티에서는 모닥불을 지피고 여기에 땅콩과 옥수수, 쌀 등을 던져 넣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이 모닥불은 로리 이후 길어질 해를 의미하기도 해서 태양와 불을 숭배하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크고 작은 마을은 물론이고,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도 공터에 커다란 모닥불을 만들어 놓고 행사를 갖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로리 행사에서 모닥불을 둘러싸고 불려지는 펀잡어로 된 한 노래의 가사를 보면, 태양신에게 겨울의 추위가 자신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할 만큼 많은 열을 보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 인도인들은 불을 피우면 불꽃이 태양에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로리 축제 이후부터 햇빛이 더욱 따뜻해지면서 추위를 몰아낸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펀자브 지역에서는 로리 며칠 전, 마을 여자들이 모여 각 가정을 방문하며 노래를 부르며 소똥 케이크를 얻으러 다닙니다. 마치 할로윈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한 집에 모아두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인도의 시골 가정에서 연료로 사용되는 이 말린 소똥 케이크를 태우면 곤충과 모기를 쫓을 수 있고, 공기 정화 효과가 있다고도 하죠. 과거 인도인들은 육식동물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생활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불을 피웠는데, 어린 소년 소녀들이 정글에서 장작을 모아왔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소똥 케이크를 모으러 다니는 놀이의 유래죠.
로리에 관한 설화가 한 가지 더 있는데, 이것은 '둘라 바티'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라이 압둘라 바티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무굴제국의 '카라반'(대상)을 약탈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를 나눠주던 의적이었는데, 무굴 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 1세의 하렘으로 강제로 끌려가던 두 브라만 소녀 문드리와 순드리를 구출한 뒤 보호하다가 자신의 딸인 것처럼 그녀들을 화려하게 결혼시켰다고 하죠.
로리 축제날 아이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둘라 바티와 순드리, 문드리의 이야기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데, 한 사람이 노래하고 다른 사람들은 '호!'라고 합창하는 방식입니다. 이 노래가 끝나면 아이들이 방문한 집의 어른은 아이들 무리에게 간식과 돈을 주죠. 이 노래는 자매와 달의 명예를 보호하고, 그들을 모욕하려는 자들을 처벌하라고 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로리의 핵심 음식은 1월에 수확한 사탕수수로 만든 제품들로, 우리나라의 깨강정과 상당히 흡사한 가작(Gajak), 사탕수수 즙으로 만든 비정제설탕인 재거리(Jaggery 혹은 Gud)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롱 다 사그(Sarson da saag)라는 펀자브 전통 음식을 납작하게 만든 옥수수빵인 마키 키 로티(Makki ki roti)와 함께 먹기도 합니다.
이 행사를 보고 있으면 불현듯 떠오르는 한국의 전통놀이가 있습니다. 바로 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는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 이젠 거의 사라진 풍속이지만, 해충과 쥐를 퇴치하기 위해 논둑이나 밭둑에 불을 지르고 돌아다니며 노는 이 쥐불놀이의 의미 역시 액운과 재앙을 태워주고 다음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죠. 가만 보면 한국과 인도는 겹치는 부분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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