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있었던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몸소 증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10총선에서 국민들이 보여준 민의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1년 9개월 만이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을 앞두고 수 많은 정치권 원로들과 정치 한 목소리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입을 모아왔습니다. 4·10총선에서 여당이 참패를 하고 '정권심판론'을 내걸었던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대승을 거두면서, 이번 기자회견은 추후 윤석열 정부의 방향성이 총선 이후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각오를 듣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을 한 마디로 요약해보면 '어쨌든 난 원래 하던 대로 하겠다'였습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단 한 톨도 바뀌지 않았다"며 "김건희·채상병 특검 필요한 이유를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설명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여의도로 돌아온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대통령의 김건희 여사, 채 상병 특검에 대한 거부 답변은 국민과 야당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국민과 야당은 '그래도 혹시나 변했겠지'라고 기대했지만, 대통령은 역시나 변하지 않았고 주특기인 변명만 계속 하신다"고 혹평했습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역시 "하나 마나 한 기자회견"이라고 이번 기자회견을 평가절하했습니다. 유 전 의원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성찰하며 남은 3년의 임기를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 없다"며 "앞으로 국정의 동력이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라고 입장을 밝혔죠.
자, 이번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과 채 상병 사건 특검법에 대한 메시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 변화의 기준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이 두 가지 주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죠.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그간 내놨던 입장을 뒤집고 파격적인 메시지를 내놨다면 확실한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하지만 '언감생심'이었죠.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은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고 있다"고 했지만, 이 앞엔 "연초에 케이비에스(KBS) 대담에서도 말씀드렸지만"이라는 대목이 붙어있습니다. 결국 "박절하게 대하기 참 어렵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문제라면 문제고 아쉽다"라는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죠.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 역시 기존 입장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검은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가 의심될 때 하는 것인데 전 정권에서 특수부까지 동원해 치열하게 수사하지 않았느냐"며 '정치 공세'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는 전 정권 당시 '검찰총장의 배우자'였죠. 설령 전 정권이 '탈탈'턴 게 맞다고 쳐도 현재 정권에서 왜 검찰이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쥐고만 있는지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 게다가 관계자 재판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해명한 것과 상충되는 사실관계가 이미 드러난 바 있습니다. 과연 이번 정권에서 성실하게 사건을 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채상병 특검법과 관련해헌 김건희여사 특검법보단 적극적인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안타깝고 참 가슴 아픈 일"이라면서도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먼저 지켜보자"고 언급했습니다. "국민들이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 하면 그때는 제가 특검 하자고 먼저 주장을 하겠다"고 덧붙였는데요.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종섭 전 호주 대사 임명과 관련해 "소환하지 않는 사람을 출국 금지하는 경우는 잘 없다" "출국금지를 두 번 연장하면서도 소환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도 오랜 기간 수사 업무를 해왔지만,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3월 14일 이종섭 전 대사의 출국금지 사실이 MBC를 통해 보도되었을 때 대통령실 관계자가 "공언유착"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한 것과 동일하죠.
"경찰과 공수처의 수사를 먼저 지켜보자"는 대통령의 언급이 유의미하려면 경찰과 공수처의 수사가 원만히 이뤄지도록 전적으로 협조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가진 인식, 그리고 이를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태도로 미뤄봤을 때 과연 공수처가 정상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공수처장 후보자 지명 역시 끝없이 미뤄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 직전에야 이뤄졌죠?
윤석열 대통령은 레임덕의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이미 여당 내부의 반발로 인해 '찐윤' 이철규 의원의 원내대표 선점이 무위로 돌아갔죠. 게다가 당 일각에서는 한동훈 전 위원장이 전당대회에 출마한 후 윤석열 대통령을 '들이받아주길' 바라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고집불통 이미지의 윤석열 대통령과 자신을 대비시켜 '따뜻한 보수' 이미지를 띄우고 있구요. 여당 내 분열은 시작됐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여당 내 분열을 막을 수도, 야당의 공세를 막아낼 힘도 없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마지막 기회'였던 이번 기자회견에서 끝내 '불통'을 선택했습니다. 이제 윤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3년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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