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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사퇴, 끝까지 고고한 척

자발적한량 2015.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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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사퇴 서울시향 서울시립교향악단 마에스트로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떠납니다. 2005년 예술고문으로 서울시향에 영입되고 2006년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정명훈은 서울시립교향학단을 아시아 정상급 교향악단의 자리에 올려놓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정기공연 유료 관람객 비율이 40% 이하에서 2014년 93%까지 올라갔다고 하죠?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2016년 시즌 재계약을 마쳤다는 뉴스가 11월 중순경 나왔었는데, 계속되는 논란을 비롯해 정명훈 감독의 부인 구순열씨가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지난 28일 서울시향과의 재계약을 보류하기로 했고, 하루만인 29일 결국 예술감독을 사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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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서울시향 재계약, 마에스트로는 이제 답을 할 차례


그는 서울시향 단원들 앞으로 A4 용지 한 장 분량의 편지를 보내 사퇴의 변을 밝혔는데요.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부도덕한 부분에 대해선 일절 사과 없이 한국 사회를 탓하고 자신은 순수한 예술인이었다는 포장으로 점철되어 있어 그저 착잡하기만 합니다. 일부 네티즌, 클래식 애호가들의 반응도 마찬가지. '한국에서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 '우리 주제에 마에스트로는 과분했다' '그의 사퇴로 한국 클래식계는 10년 이상 퇴보하는 것이다' 등...지금 정명훈 감독의 음악성과 그가 서울시향에서 이룩한 업적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유능하고 뛰어난 예술가라 할지라도, 설령 베토벤이 환생해서 돌아온다 할지라도 지켜져야 할 도덕성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서울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시향에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은 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그가 서울시향을 떠나서 클래식계가 10년 퇴보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가 계속 현재처럼 있었으면 한국 클래식계가 곪아갔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그와 서울시향이 함께 하는 마지막 공연인 '2015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나길 바랍니다.




정명훈 사퇴 서울시향 서울시립교향악단 마에스트로

다음은 정명훈 감독이 남긴 편지의 전문입니다.

서울시향 멤버들에게


저는 이제 서울시향에서 10년의 음악감독을 마치고 여러분을 떠나면서 이런 편지를 쓰게 되니 참으로 슬픈 감정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늘 세 가지로 답변을 하지요.


첫째는 ‘인간’이요, 둘째로는 ‘음악가’, 셋째로는 ‘한국인’이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의 이러한 대답에 다시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왜 ‘음악가’라는 대답이 ‘한국인’이라는 대답보다 먼저 나오냐고 말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항상 똑같습니다. 바로 음악의 순수한 위대함 때문이라고요.


오랜 시간을 거쳐오면서 음악은 세상의 많은 것을 뛰어넘어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매개체로 발전해 왔습니다. 국가와 종교, 이념과 사상을 넘어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아줄 수 있는 유일한 힘을 음악이 가졌다는 신념은 50년이 넘는 음악인생 동안 한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 음악보다 더 높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유일하게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기꺼이 음악을 통해 사람을 돕고 그로 인해 인간애가 풍부한 세상을 만들어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유니세프를 통한 아동들을 돕는 것이든 아니면 우리의 서울시향의 경우처럼 전임대표에 의해 인간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인간의 존엄한 존재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한 17명의 직원들을 돕는 것이든 말입니다. 지금 발생하고 있고, 발생했던 일들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훨씬 넘은 박해였는데 아마도 그것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허용될 수 있는 한국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다 못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는데 이제 세상은 그 사람들이 개혁을 주도한 전임 사장을 내보내기 위해 날조한 이야기라고 고소를 당해 조사를 받고, 서울시향 사무실은 습격을 받았고 이 피해자들이 수백 시간 동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수 년 동안 제 보좌역이자 공연기획팀 직원인 사람은 그녀의 첫 아기를 출산한 후 몇 주도 지나지 않는 상황에서 3주라는 짧은 시간에 70시간이 넘는 조사를 차가운 경찰서 의자에 앉아 받은 후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제가 여태껏 살아왔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에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저는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저는 서울시향 단원 여러분이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업적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그 업적은 전세계에서 찬사를 받아온 업적입니다.

이 업적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거짓과 부패는 추문을 초래하지만 인간의 고귀함과 진실은 종국에는 승리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음악감독으로서의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유감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앞에서 얘기 했다시피 음악보다 중요한 게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인간애입니다.


이 인간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여러분과 함께 음악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와 평안을 빕니다.


지휘자 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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