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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계패 이세돌 9단,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을 꺾다

자발적한량 2016.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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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잽싼 손놀림으로 비숍을 들어 올려 하얀 칸들 중의 하나에 내려앉아 있던 파리를 짓눌러 버린다. 그런 다음 손가락으로 시계의 단추를 눌러 상대방의 소비 시간을 재게 한다. 그의 깃발이 막 내려가려던 참인데, 몇 초 차이로 패배를 모면한 것이다. 모두가 숨을 죽인 듯 무거운 정적이 감돈다. 남자의 좌우 심실이 단속적으로 두방망이질을 한다. 마치 느린 동작 화면에서처럼, 그의 허파가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가 한줄기 바람을 성대로 보낸다. 그의 입이 열린다. "체크메이트!" 객석에서 웅성거림이 인다. 컴퓨터는 자기 킹이 더 이상 도망칠 자리가 없음을 확인하고, 강철 손으로 가볍게 자기 킹을 잡아 옆으로 누인다.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칸의 페스티벌 궁전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뜨거운 박수가 그 뒤를 잇는다. 사뮈엘 핀처가 딥 블루 IV를 이겼다. 이제껏 체스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켜 왔던 컴퓨터를 마침내 사람이 누른 것이다! 그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감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 中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2002년 발표한 작품 《뇌》의 도입 부분입니다. 인간 대 컴퓨터의 체스 대결에서 인간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실제로 이미 체스는 1997년 5월 IBM이 만든 컴퓨터 딥 블루(Deep Blue)가 세계챔피언인 게리 카스파로프에게 승리하며 기계에게 정복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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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기의 바둑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 애당초 바둑은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많아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함이 요구되서 컴퓨터가 인간을 따라잡긴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죠. '딥 블루'가 입력되어 있는 거장들의 정보를 검색하여 수를 두었다면 알파고는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하여 해결 답안을 능동적으로 찾는 좀 더 발전된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구글 딥마이드에서는 알파고에 '가치망'과 '정책망' 등 2개의 신경망과 몬테카를로 트리 검색(MCTS) 기술을 투입했는데요. MCTS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게 하는 알고리즘입니다.


최초에 시스템의 신경망은 인간의 게임 플레이 전문 기술로 부트스트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천 만 수 정도의 데이터베이스를 사용, 기록된 역사적인 게임으로부터 기사의 움직임의 연결을 시도해 인간의 바둑 두기를 흉내내도록 훈련되었다.알파고가 어느 정도 숙달되자, 강화 학습을 통하여 또 다른 자신과 많은 대국을 하게 하는 방식으로 훈련, 경기력을 향상시켰죠. 2015년 10월 판 후이 2단을 꺾으며 핸디캡없이 프로 바둑 기사를 이긴 최초의 바둑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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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렸습니다. 3월 9일, 10일, 12일, 13일, 15일 총 다섯 차례에 걸쳐 5전 3선승제로 진행되며 인터넷을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됐죠. 우승자에겐 상금 100만 달러가 주어지며 알파고가 이기면 이는 유니세프를 포함한 구호 단체에 기부될 예정입니다. 이세돌은 대국료로 15만 달러를 받고, 승리시 한 번당 2만 달러를 추가로 받기로 했죠.


이세돌 9단은 7일 있었던 제43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시상식에서 "한판이라도 지면 알파고의 승리"라며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고, 그의 형인 이상훈 9단도 "세돌이의 5:0 승리를 확신한다"고 밝혔죠. 경기를 위해 한국을 찾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인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했구요. 네티즌들의 의견은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쪽과 인간이 완벽하게 패배할 것이라는 쪽으로 나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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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1시에 열린 제1국의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3시간반 186수 만에 흑으로 불계패. 초반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 중반 이세돌 9단이 좌중앙에 큰 흑집을 지으며 유리한 형세를 만들었다가 알파고가 102 수로 우변 흑집에 침투하는 승부수를 날렸고, 이에 대한 대응에 실패한 이세돌 9단은 결국 돈을 던졌습니다. 여기서 불계패란, 계가(집계산)를 하지 않고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세돌 9단은 대국을 마친 뒤 "충격적이긴 하지만 분명히 즐겁게 두었다. 이제 5대5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1국 졌다고 흔들리지 않는다"고 밝혀 내일로 예정된 제2국에 대한 결의를 다졌습니다. 또한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먼저 이 9단에게 크게 존경을 표한다. 오늘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번 대국은 흥미진진하고 긴장감이 넘쳤다. 알파고가 승리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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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인공지능의 대결은 언제나 많은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이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분명 엄청난 홍보효과를 거두고 있는 구글의 마케팅이지만, 소위 '우주의 진리'가 담겨있다고들 하는 바둑에서 인간이 패배하다니 씁쓸하기도 하네요. 음...드라마 '응팔'에서 택이(박보검 분)를 소환해야 할까요? 다음 대국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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