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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나르샤 이방원의 제1차왕자의난과 정도전의 죽음, 실제 역사에서는?

자발적한량 2016.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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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14일 방송된 육룡이나르샤 47회에서는 지난 회 서막을 연 제1차 왕자의 난이 그려지며 드라마의 끝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무인(戊寅)년에 일어난 정변이라 하여 '무인정사'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이방원이 일으켰다 하여 '방원의 난', 세자인 방석이 죽었다 하여 '방석의 난', 삼봉 정도전이 죽었다 하여 '정도전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제1차 왕자의 난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무인정사의 배경


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자, 우선 정사에서는 제1차 왕자의 난의 배경에 대해 어떻게 기록했는지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실록에서는 정도전과 남은, 심효생 등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어린 세자 방석의 배다른 형제인 영안군 이방과(후의 정종), 익안군 이방의, 회안군 이방간, 정안군 이방원 등을 제거하려다 선수를 뺏겨 제거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봉화백(奉化伯) 정도전·의성군(宜城君) 남은과 부성군(富城君) 심효생(沈孝生) 등이 여러 왕자(王子)들을 해치려 꾀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형벌에 복종하여 참형(斬刑)을 당하였다. (중략) 정도전과 남은 등은 권세를 마음대로 부리고자 하여 어린 서자(庶子)를 꼭 세자(世子)로 세우려고 하였다. (중략) 장차 여러 왕자들을 제거하고자 몰래 환자(宦者) 김사행(金師幸)을 사주(使嗾)하여 비밀히 중국의 여러 황자(皇子)들을 왕으로 봉한 예(例)에 의거하여 여러 왕자를 각도(各道)에 나누어 보내기를 계청(啓請)하였으나, 임금이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중략)


도전 등이 또 산기 상시(散騎常侍) 변중량(卞仲良)을 사주(使嗾)하여 소(疎)를 올려 여러 왕자의 병권(兵權)을 빼앗기를 청함이 두세 번에 이르렀으나, 임금은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점(占)치는 사람 안식(安植)이 말하였다. "세자의 이모형(異母兄) 중에서 천명(天命)을 받을 사람이 하나뿐이 아니다." 도전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곧 마땅히 제거할 것인데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의안군(義安君) 이화(李和)가 그 계획을 알고 비밀히 정안군에게 알렸다. (중략)


김사행과 조순은 모두 그들의 당여(黨與)이었다. 정도전·남은·심효생과 판중추(判中樞) 이근(李懃)·전 참찬(參贊) 이무(李茂)·흥성군(興城君) 장지화(張至和)·성산군(星山君) 이직(李稷) 등이 임금의 병을 성문(省問)한다고 핑계하고는, 밤낮으로 송현(松峴)에 있는 남은의 첩의 집에 모여서 서로 비밀히 모의하여, 이방석·이제와 친군위 도진무(親軍衛都鎭撫) 박위(朴葳)·좌부승지(左副承旨) 노석주(盧石柱)·우부승지(右副承旨) 변중량(卞仲良)으로 하여금 대궐 안에 있으면서 임금의 병이 위독(危篤)하다고 일컬어 여러 왕자들을 급히 불러 들이고는, 왕자들이 이르면 내노(內奴)와 갑사(甲士)로써 공격하고, 정도전과 남은 등은 밖에서 응하기로 하고서 기사일에 일을 일으키기로 약속하였다. 이보다 먼저 정안군은 비밀히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 이숙번(李叔蕃)에게 일렀었다.


"간악한 무리들은 평상시에는 진실로 의심이 없지마는, 임금이 병환이 나심을 기다려 반드시 변고를 낼 것이니, 내가 만약 그대를 부르거든 마땅히 빨리 와야만 될 것이다."


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 8월 26일 기사 1번째기사



목숨을 건지고 위기에서 탈출한 이방원


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드라마에서는 요동정벌을 위해 출병하기 전날 밤 이방원이 군사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실록에서는 태조 이성계가 병이 나 이방원을 비롯한 형제들이 모여있는 틈을 타 정도전과 남은 등이 이들을 제거하려는 모습이 적혀있습니다. 위험을 경고하고 미리 준비해둔 병장기를 내어준 것은 바로 이방원의 부인인 민씨. 드라마에서는 민다경이라는 이름으로 나오죠.

(전략) 이때 임금의 병이 매우 급하니 정안군과 익안군(益安君) 이방의(李芳毅)·회안군(懷安君) 이방간(李芳幹)·청원군(淸原君) 심종(沈淙)·상당군(上黨君) 이백경(李伯卿)·의안군(義安君) 이화(李和)와 이제(李濟) 등이 모두 근정문(勤政門) 밖의 서쪽 행랑(行廊)에서 모여 숙직(宿直)하였는데, 이날 신시(申時)에 이르러 민무질(閔無疾)이 정안군의 사저(私邸)에 나아가서 들어가 정안군의 부인(夫人)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하니, 부인이 급히 종 소근(小斤)을 불러 말하였다. "네가 빨리 대궐에 나아가서 공(公)을 오시라고 청하라." (중략) 정안군이 사저(私邸)로 즉시 돌아오니, 조금 후에 민무질(閔無疾)이 다시 와서 정안군 및 부인과 함께 세 사람이 서서 비밀히 한참 동안을 이야기하다가, 부인이 정안군의 옷을 잡고서 대궐에 나아가지 말기를 청하니, 정안군이 말하였다.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대궐에 나아가지 않겠소! 더구나 여러 형들이 모두 대궐안에 있으니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가 없소. 만약 변고가 있으면 내가 마땅히 나와서 군사를 일으켜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될 것이오." 이에 옷소매를 떨치며 나가니, 부인이 지게문 밖에까지 뒤따라 오면서 말하였다. "조심하고 조심하세요."


(중략) 정안군이 처음에 군사를 폐하고 영중(營中)의 군기(軍器)를 모두 불에 태워버렸는데, 이때에 와서 부인이 몰래 병장기(兵仗器)를 준비하여 변고에 대응(對應)할 계책을 하였던 것이다. 이무(李茂)는 본디부터 중립(中立)하려는 계획이 있어 비밀히 남은 등의 모의(謀議)를 일찍이 정안군에게 알리더니, 이때에 와서 민무질을 따라와서 정안군을 뵈옵고 조금 후에 먼저 갔다. 


(중략) "임금께서 병이 위급하여 병을 피하고자 하니, 여러 왕자들은 빨리 안으로 들어오되 종자(從者)는 모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오." 화(和)·종(淙)·제(濟)가 먼저 나가서 뜰에 서고, 정안군은 익안군(益安君)·회안군(懷安君)·상당군(上黨君) 등 여러 군(君)들과 더불어 지게문 밖에 잠시 서서 있다가, 비밀히 말하기를, "옛 제도에 궁중(宮中)의 여러 문에서는 밤에는 반드시 등불을 밝혔는데, 지금 보니 궁문에 등불이 없다." 하면서, 더욱 의심하였다. 화(和)와 제(濟)·종(淙)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으나, 정안군은 배가 아프다고 말하면서 서쪽 행랑 문밖으로 나와서 뒷간에 들어가 앉아서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는데, 익안군과 회안군 등이 달려나오면서 정안군을 두 번이나 부르니, 정안군이 말하기를, "여러 형님들이 어찌 큰소리로 부르는가?" 하고, 이에 또 서서 양쪽 소매로써 치면서 말하였다. "형세가 하는 수가 없이 되었다." 이에 즉시 말을 달려 궁성(宮城)의 서문으로 나가니 익안군·회안군·상당군이 모두 달아나는데, 다만 상당군만은 능히 정안군의 말을 따라오고 익안군과 회안군은 혹은 넘어지기도 하였다.


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 8월 26일 기사 1번째기사


이방원에게 목숨을 구걸하다 죽임을 당하는 정도전


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군사를 이끌고 온 이숙번과 함께 남은과 함께 있던 정도전을 도모하게 되는 이방원. 드라마에서는 성균관으로 숨어들어간 정도전을 찾아내 대화를 나눈 끝에 정도전을 죽이는 것으로 나오죠. 또한 정도전의 의연한 죽음에 감동받은 이방원은 '정도전이 쥐새끼처럼 도망치다 잡혀 죽었다'는 기록을 만들어 온 하륜에게 "그 내용은 빼자"고 말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하지만 실록에는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목숨을 구걸하다 이방원의 꾸짖음을 들은 뒤 목이 베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안군이 또 숙번을 불러 말하였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숙번이 대답하였다. "간당(姦黨)이 모인 장소에 이르러 군사로써 포위하고 불을 질러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문득 죽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밤이 이경(二更)인데, 송현(松峴)을 지나다가 숙번이 말을 달려 고하였다. "이것이 소동(小洞)이니 곧 남은 첩의 집입니다."


정안군이 말을 멈추고 먼저 보졸(步卒)과 소근(小斤) 등 10인으로 하여금 그 집을 포위하게 하니, 안장 갖춘 말 두서너 필이 그 문 밖에 있고, 노복(奴僕)은 모두 잠들었는데, 정도전과 남은 등은 등불을 밝히고 모여 앉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략) 소근 등으로 하여금 도로 들어가 그 집을 포위하고 그 이웃집 세 곳에 불을 지르게 하니, 정도전 등은 모두 도망하여 숨었으나, 심효생·이근(李懃)·장지화 등은 모두 살해를 당하였다. 도전이 도망하여 그 이웃의 전 판사(判事) 민부(閔富)의 집으로 들어가니, 민부가 아뢰었다. "배가 불룩한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습니다." 정안군은 그 사람이 도전인 줄을 알고 이에 소근 등 4인을 시켜 잡게 하였더니, 도전이 침실(寢室) 안에 숨어 있는지라, 소근 등이 그를 꾸짖어 밖으로 나오게 하니, 도전이 자그만한 칼을 가지고 걸음을 걷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나왔다. 소근 등이 꾸짖어 칼을 버리게 하니, 도전이 칼을 던지고 문 밖에 나와서 말하였다.


"청하건대 죽이지 마시오. 한마디 말하고 죽겠습니다." 소근 등이 끌어내어 정안군의 말 앞으로 가니, 도전이 말하였다. "예전에 공(公)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 주소서." 예전이란 것은 임신년088) 을 가리킨 것이다. 정안군이 말하였다. "네가 조선의 봉화백(奉化伯)이 되었는데도 도리어 부족(不足)하게 여기느냐? 어떻게 악한 짓을 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를 수 있느냐?" 이에 그를 목 베게 하였다. 처음에 정안군의 부인이 자기 스스로 정안군이 서서 있는 곳까지 이르러 그와 화패(禍敗)를 같이하고자 하여 걸어서 나오니, 정안군의 휘하사(麾下士) 최광대(崔廣大) 등이 극력으로 간(諫)하여 이를 말리었으나, 종 김부개(金夫介)가 도전의 갓과 칼을 가지고 온 것을 보고 부인이 그제야 돌아왔다. 도전이 아들 4인이 있었는데, 정유(鄭游)와 정영(鄭泳)은 변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 급함을 구원하러 가다가 유병(遊兵)에게 살해되고, 정담(鄭湛)은 집에서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다.


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 8월 26일 기사 1번째기사


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태조실록은 1408년 태조 이성계가 승하한 뒤 이듬해 8월인 태종9년에 편찬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춘추관 등에서 실록 편찬이 처음인 점과 쓰여질 인물들이 대부분 살아있는 점을 들어 시기상조라고 반대했으나 사초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은 사관들을 벌하면서까지 편찬 작업을 강행, 하륜 등에 의해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점. 완성된 이후에도 제1, 2차 왕자의 난의 내용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결국 태조실록은 세종 대에 이르러서야 출판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하륜이 무인정사에 대해 미리 내용을 적어오고, 이방원이 하륜에게 실록 편찬을 맡아줘야 하겠다고 말하는 내용 등이 바로 실제 역사에 대한 밑밥인 것이죠. 난을 일으킨 이들의 손으로 태조실록이 만들어졌기에 실록에 적힌 제1차 왕자의 난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그 신뢰도가 떨어지는 점이 사실이긴 합니다.


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여기서 첫 번째 보너스. 정도전은 죽기 전 '자조(自嘲·나를 비웃다)'라는 시조를 한 수 남깁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와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대사로 처리하며 색다른 장면을 연출했는데요. 정도전의 '자조'는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더군요. 이걸 잠깐 소개합니다.

두 왕조에 한결 같은 맘으로 공을 세워 (操存省察兩加功)

책 속 성현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건만 (不負聖賢黃卷中)

삼심년 동안 애쓰고 힘들인 업적 (三十年來勤苦業)

송현 정자에서 한 번 취하니 결국 헛되이 되누나 (松亭一醉竟成空)



특명, 육룡과 뿌나를 연결지어라


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자, 그리고 두 번째 보너스. 이방원이 거사를 하기 전 성공의 필수 요소로 정도전의 호위 무사인 이방지를 정도전과 분리시킬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조말생과 비룡사 주지 적룡으로 하여금 화사단 연희 대방을 납치하여 이방지의 발목을 잡는데 성공하고, 연희 낭자는 이방지를 정도전에게 보내기 위해 스스로 칼에 목을 그어 죽음을 맞이하죠. 또한 47회 말미에서 이방원의 호위 무사인 무휼과 이방지가 승부를 벌이이 위해 칼을 꺼내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이방지, 무휼, 연희는 실제 인물이 아닌 작가가 창조한 가상인물입니다. 하지만 이방지와 무휼은 조선 건국의 '육룡'에 속할 정도로 드라마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죠. 위에 언급한 에피소드들은 모두 전작 '뿌리깊은 나무'와 스토리를 맞추기 위한 것들입니다. 몇 차례 포스팅에서 언급했다시피 '육룡이 나르샤'는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이기 때문이죠. 


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뿌리깊은 나무' 17회에서는 강채윤(장혁 분)이 이방지(우현 분)의 제자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무휼(조진웅 분)이 과거 무인정사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종을 지키는 내금위장이었던 무휼은 "조선제일검이었던 이방지를 분리시키고자 정도전의 여인이자 이방지가 사랑했던 한 여인을 조말생이 납치했다"고 언급하는데, 바로 그 장면에서 이 여인은 망설이는 이방지를 정도전에게 보내고자 칼에 스스로 찔려 죽게 됩니다. 그 여인이 '육룡이나르샤'에 등장하는 연희인 것이지요. 또한 5회에서는 이방지와 무휼의 대결이 나옵니다. 당시 드라마 상에서는 이방지가 무휼의 사형이자 라이벌로 소개됐는데요. 당시 대결에서 이방지는 무휼을 쓰러뜨린 뒤 유유히 사라지고, 이것이 무휼의 유일한 패배로 기억됩니다. 과연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두 사람의 대결을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하네요. 



그 외에도 성균관에 숨어있던 정도전이 팔봉아재(이상훈 분)에게 서찰 등을 주며 이를 자신의 동생인 정도광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예상으로는 이 것이 바로 '뿌리깊은 나무'에서 등장하는 밀본지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강채윤과 밀본이 엮이게 되는 바로 그 아이템이자 밀본의 본원임을 인증하는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죠...어휴 하나하나 다 '뿌리깊은 나무'와 '육룡이나르샤'를 엮으려다보니 무인정사가 무휼의 첫 출정이라는 설정도 맞지 않고...나름 치밀하게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이렇게 다 신경써야 되니 방송작가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작가님들 머리 엄청 아플 듯 싶네요.



육룡이나르샤 제1차왕자의난 무인정사 이방원 정도전 무휼 이방지 연희 남은 조선왕조실록

다음주면 종영인데...제2차 왕자의 난까지 어떻게 그려낼지도 궁금하네요. 정도전으로 그간 열연을 펼친 김명민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방원을 접신한 유아인을 기다리며 화요일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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