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저승사자' 자처한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등판
작년 12월 말, 일본 삿포로에서 폭설을 뚫고 가까스로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장에 설치된 TV를 통해 처음 접한 뉴스는 인명진 목사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갈릴리교회 목사를 비롯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및 후보검증위원 등을 맡아온 경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고. 비대위원장 내정 기자간담회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데 택시기사가 어디 가냐고 해서 '새누리당사 간다'고 했더니 '망한 당 뭐하러 가냐'고 하길래 '조문하러 간다'고 얘기했다는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전 달인 11월만 해도 "새누리당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냐"며 비대위원장 영입설에 대해 강하게 부정했던 모습이 겹치며 씁쓸하긴 했습니다. 덕분에 인명진 목사는 윤리행동강령 위반을 이유로 경실련에서 영구제명되었구요. 경실련 창립최초로.
목회자가 말을 부침개처럼 뒤집었다는 비판에도, 경실련을 X같이 알았다는 힐난에도 굴하지 않고 '망한 당'에 '조문하러 간' 인명진 비대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뿌리채 흔들리는 새누리당에 제 발로 들어간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두고 언론에서는 '새누리당을 찾아온 저승사자'라고 불렀습니다. 비대위가 출범하자마자 내뱉은 일성이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사전모의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영 의원에 대한 징계였죠. (하지만 1월 22일 현재까지 이완영 의원이 국조특위 위원직을 사임했다는 소식만 들렸을 뿐 징계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위임장이냐 면죄부냐... '인명진식 인적쇄신' 그리고 서청원과의 갈등
김무성·유승민으로 대표되는 비박계 의원들이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든 상황에서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새누리당의 심폐소생을 해야 했습니다. 바로 친박의 척결.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3대 인적 청산 대상'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직책이나 당에서 대표를 포함해 책임있는 자리에 재직하며 특권을 누린 인사 ▲총선에서 패권적 행태를 보이며 당의 분열을 조장했던 인사 ▲호가호위하며 상식에 어긋나는 인사를 보였던 인사를 특정한 뒤 1월 6일까지 자진 탈당하라고 언급했습니다. 사실상 친박계에 대한 철퇴를 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죠.
인명진 위원장의 일성을 들은 뒤 자신의 거취를 백지 위임하는 의원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탈당, 당원권 정지, 사회봉사활동 등 자신의 거취를 인명진 위원장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항복문서'인 셈이었죠. 이를 받은 인 위원장이 처분 수위를 결정하게 되는데,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판단을 인명진 위원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권한이 있는 것인지, 면죄부 쇼가 아닌지 등의 논란이 일었습니다. 또한 인적 청산 1순위로 거론되었던 서청원·최경환·조원진 의원 등은 위임장을 내지도 않아 실효성 논란도 있었구요.
인명진 위원장의 이러한 움직임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조원진 등 친박계 의원들은 인명진 위원장의 인적 청산에 대한 대처를 논의하며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재밌게도 친박계에서 선택한 길은 드잡이. '나갈 때 나가더라도 이런 식으로 밀려나듯 나갈 수는 없다'며 되려 큰소리를 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첫 실력행사는 비대위 구성을 위해 인명진 위원장이 1월 6일 소집한 상임전국위원회가 친박 측의 방해로 무산된 것. 상임위는 정족수조차 채우지 못한 채 무산되어 버립니다.
상임위 무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 한 때 국회의장까지 노렸다가 인 위원장으로부터 암 덩어리에 비유당한 서청원 의원은 아내까지 동원해가며 상임위를 무산시킨 뒤 기자회견을 열고 역으로 인명진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떠나라고 요구했습니다. 서청원 의원은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보인 당 운영이 민주적 절차와는 거리가 멀다"며 "당의 자산인 의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탈당하라며 정치적 할복을 강요하더니 위임장이라는 반성문을 낸 의원들에게는 자의적으로 면죄부를 발부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청원 의원은 인 위원장을 '거짓말쟁이 성직자' '개혁 보수의 탈을 쓴 극좌파'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죠. 가까스로 비대위가 출범된 후 열린 첫 의원총회에서는 서 의원이 인명진 위원장의 면전에서 "목사님, 제가 언제쯤 할복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비아냥대기도 할 정도였지요.
일각에서는 서청원 의원과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이러한 충돌이 정치적 쇼라고 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절친이라고 알려졌을 만큼 친분이 꽤나 깊은 사이입니다. 같은 향우회 소속인데다 일 년에 4~5번은 만날 정도이며, 지난 총선 때는 서로에 대해 "사람냄새 나는 정치인" "소신있는 보수"라며 칭찬을 쏟아냈죠. 정치권 안에서는 "워낙 절친한 두 사람이 너무 갑작스럽게 틀어져서 인격모독에 가까운 비난을 주고받다보니 '짜고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풍문도 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친박계의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인명진 위원장과 각을 세우며 이목을 집중시킨 뒤 탈당하는 식으로 최소한의 청산으로 최대한 효과적인 친박 색깔 빼기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셈법이었는데요. 7선 중진인 서청원 의원이라면 충분히 계산할 수 있는 정치적 노림수이기에 흘러나올 수 있었던 추측이었죠.
'그럴 줄 알았다' 새누리당
둘이 서로 한대씩 주먹다짐이라도 할 것 같았던 일촉즉발 상황의 갈등은 다시 갑작스럽게 소강상태가 되었습니다. 뒤이어 새누리당 윤리위원회에서는 18일 첫 번째 징계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 이한구 전 의원,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최고 수위의 징계인 제명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명박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징계 대상이었지만 전날 자진 탈당했구요. 20일 발표한 두 번째 징계에서는 서청원·최경환·김현아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3년, 윤상현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1년이 결정되었습니다. 김현아 의원에 대한 징계는 초선 비례대표 의원이 바른정당과 함께 활동하는 것에 대한 괘씸죄였죠.
두 번의 징계를 끝으로 인적 쇄신이 마무리되었다고 발표되자 정치권과 국민들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도 뭔가 대단한 인적 쇄신을 한 것처럼 행동하는 새누리당과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어이없다는 반응입니다. '1호 당원'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과 당원이 똑같은 당원이라 할 수 있느냐' '대통령은 국격이다'라며 면죄부를 준 것도 웃기는 상황이구요. 게다가 이한구 전 의원과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이 징계 결정에 대해 반발하고 있죠.
'인적쇄신'을 마무리 했다는 새누리당은 이번주부터 개헌 등 정치쇄신안으로 화두를 돌리는 것을 비롯해 당명인 새누리를 버리고 새로운 당명을 정하는 등 재창당을 추진하며 '새로운 보수가치'를 정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새누리당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그들이 진정한 반성과 쇄신을 했다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이 확 와닿는 모습입니다. 현재의 새누리당에게는 역시 해체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국가개혁에 대해 새누리당은 단 한 마디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새누리당은 개혁과 쇄신의 대상이지 그 주체가 될 순 없다는 사실, 모른 척 그만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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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인명진 #서청원 #최경환 #친박 #정당 #정치 #새누리당 당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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