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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더러운 잠' 논란, 여성비하 프레임으로 왜곡된 표현의 자유

자발적한량 2017.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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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심판원 회부된 표창원 의원, 그는 정말 이 전시회를 주최·기획했나?



오늘 하루종일 뉴스란을 채워나가고 있는 소식은 박근혜 대통령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최순실도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당) 표창원 의원입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시국풍자 전시회 '곧바이전(곧, BYE! 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향한 외침'과 '이제는 떠나 보내야 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각종 억압'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 중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잠'은 프랑스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해당 작품을 살펴보면 나체 상태로 누워있는 여성 얼굴에 박근혜 대통령 얼굴이 합성되어 있고,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흑인 시녀의 얼굴에 최순실을 합성한 뒤 주사가 잔뜩 든 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뒤에 보이는 태극기의 태극문양에도 최순실의 얼굴이 합쳐져 있고, 배경으로는 세월호의 침몰 장면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 합성되어 있는 몸은 '올랭피아' 원작 그대로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화가인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서 따왔습니다.



해당 작품 전시에 대한 논란의 강도는 상당히 높습니다. 새누리당에서는 이 논란을 '풍자를 가장한 인격모독' '정도를 넘어선 행위는 분노를 선동하고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인격살인 행위'라고 규정하고 표창원 의원을 향해 "국회의원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행위예술가로 나서는 것을 추천한다"고 비난했습니다. 바른정당도 마찬가지. 하태경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박대통령 풍자 누드 그림은 표창원 의원이 골라서 국회에 전시한 것이군요. 표의원은 국민들 눈살 찌푸리게 하는 능력이 출중하군요. 최근 노인 폄하에 이어 이번엔 대통령 소재로 한 여성 비하까지 연타석 홈런을 치시네요. 아니 이건 성폭력 수준이죠. 만약 문재인 대표가 표창원 의원에게 쓴소리 한마디 한다면 인기 많이 올라갈 겁니다"라고 원색비난했죠. 야권에서는 국민의당도 비난에 합류했습니다. 권은희, 김삼화, 김수민, 박주현, 신용현, 장정숙, 조배숙, 최도자 의원 등 여성 의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지 여성대통령이 아니다"라며 작품 전시 철회와 즉각적인 사과를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역풍을 맞을까 노심초사하며 몸을 바짝 낮추는 모양새입니다.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작품은 예술가 자유이고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예술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은 달라 예술에서는 비판과 풍자가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품격과 절제가 중요하다"고 언급한 뒤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런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당 최고위에서는 표창원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과 관련하여 갑자기 왜 표창원 의원이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나 하는 의문이 드실 수 있는데요.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하태경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그리고 국민의당에 언론까지 해당 전시회를 표창원 의원이 주최했고, 심지어는 이 그림을 표창원 의원이 직접 골라서 전시했다고 잘못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팩트를 정리해보자면 곧바이전은 작가회의에서 주관·진행을 한 행사입니다. 표창원 의원이 이번 논란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밝힌 바에 따르면 "블랙리스트 사태와 국정농단에 분노한 예술가들의 단체인 '표현의 자유를 지향하는 작가 모임'에서 '국회에서 시국을 풍자하는 전시회를 열고 싶다'며 장소대관을 위해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의원실로 와 국회 사무처에 전시공간 승인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즉, 표창원 의원은 전시공간 승인을 위해 도움을 주었고, 작품을 골랐다거나 행사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죠. 표창원 의원이 이번 논란 및 당 윤리심판원 회부와 관련해 밝힌 입장 전문을 접어서 달아둡니다.




박근혜를 사모하는 모임(이하 박사모) 카페에는  "표창원 네 마누라도 벗겨주마"라며 '더러운 잠'에 표창원 의원의 부인인 이승아씨를 합성한 사진을 올라오기도 했고, 이번 사태가 묻히지 않도록 회원들에게 지속적인 검색을 유도하는 한편 표창원 의원을 비롯한 전시회 관련자를 공동고발하려는 움직임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수단체들이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와 격렬하게 항의한 뒤 그림을 떼어내 바닥에 내팽개치고 짓밟아 최초로 그림을 훼손한 60대 남성 A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연행됐고 경찰이 또 다른 훼손자의 신원 확보에 나선 상황인데요. 현재 논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논란,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2012년 대선 당시 역시 홍성담 작가의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 '유신의 추억 - 사악의 탄생' 당시 논란과 상당히 흡사한 모습을 띕니다. 애시당초 새누리당과 박사모 등 수구세력들이 분기탱천하여 씩씩거리며 덤벼드는 것은 그다지 신경쓰고 싶지 않습니다.



작가는 왜 굳이 '올랭피아'에 '잠자는 비너스'를 붙였을까?


전 이번 논란을 두고 '여성정치인을 향한 혐오적 풍자'로 규정짓고 표창원 의원을 비판한 국민의당 소속 여성 의원들을 비롯해 이번 논란의 핵심이 '여성혐오'라고 외치는 소위 페미니스트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우선 저 역시 표창원 의원과 마찬가지로 '더러운 잠'이 제 취향은 아닙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남녀간의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풍속화인 운우도는 물론이고, 에로시즘 없이 여성의 나체에서 인간 육체 본연의 아름다움 등을 표현한 서양의 작품들도 아쉽지만(?) 제 취향은 아닙니다. 또한 '더러운 잠'을 처음 보았을 때 그 표현 수위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해 부담스러움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표 의원과 마찬가지로 이를 평가할 자격도 능력도 갖추지 못했지만,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더러운 잠'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죠. 원작인 마네의 '올랭피아'는 발표 당시 많은 논란이 일었던 작품입니다. 표면적인 비난은 '누드에서 입체감이 사라져 그림의 기본조차 안 되어 있다'는 것과 너무 외설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작품명인 '올랭피아'가 당시 파리의 고급 창부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예명이었던 '올랭프(olympe)'를 연상시킨다는 점, 그림 속 암고양이가 프랑스에서 성기나 매춘 등을 암시하는 은어라는 점, 흑인 하녀가 꽃다발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손님이 오신 것으로 보이는데, 게다가 수줍어하는 모습 없이 빤히 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다는 점과 한 손으로 음부를 가린 자세가 되려 더 끈적한 시선을 유도한다는 점 등이었죠.


마네의 '올랭피아'가 원작인만큼 해당 그림의 설정을 재구성했습니다. 흑인 하녀를 최순실로 치환하여(박근혜가 하녀였어야 더 맞는 것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를 풍자했고, 장미 꽃다발 대신 최순실이 안고 있는 주사 다발은 태반주사, 백옥주사, 감초주사, 보톡스, 필러 등으로 소위 '주사파의 거두'가 된 의료농단 사태를 풍자했습니다. '더러운 잠'이 여기서 멈췄더라면 박근혜 대통령을 매춘부에 비유를 했다는 점 등으로 여성비하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러운 잠' 속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위에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올랭피아' 속 매춘부의 몸 대신 조르조네의 작품인 '잠자는 비너스' 속 비너스가 붙었습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을 매춘부로 비하하고 싶었다면 이런 과정을 거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근혜 대통령을 미의 여신인 비너스에 대입을 시키고 싶었을리는 만무하구요. 여기서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침대 뒤 배경에 붙어있는 세월호 침몰 장면의 그림과, 이 비너스가 그냥 비너스가 아닌 '잠자는' 비너스라는 점, 그리고 제목이 '더러운 잠'이라는 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작가는 '올랭피아' 속에 등장하는 침대에 누워있는 여인과 옆에서 시중을 드는 하녀가 있다는 설정, 그리고 잠들어 있는 여인이라는 또 다른 설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끝까지 '그저 옆에서 작은 도움을 주던 사람' 정도로 주장해왔던 최순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의료농단,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잠에 빠져있는 사이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죠.


정작 '더러운 잠'의 이구영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해설을 내놓지도 않은 상황에서 제가 이렇게 해석한 것을 꿈보다 좋은 해몽이라거나, 비겁한 변명 정도로 들을 사람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분명 이구영 작가는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일련의 과정, 즉 '잠자는 비너스'와 '올랭피아'를 합쳤습니다.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을 매춘부에 빗대고 여성비하를 하려 했다면 '올랭피아' 그대로 썼어도 상관없었을 테니까요. 결국 작가는 여성비하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두 명화의 설정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세월호 참사를 풍자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들은 지금 본질을 흐리고 있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조건 나체 설정의 박근혜 대통령 모습이라고 하여 '박근혜' 개인이 아닌 '여성 정치인'에 대한 혐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들과 일부 여론들의 모습을 보면서 '뭐 눈엔 뭐만 보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와 같은 말이 떠오릅니다. 물론 해당 그림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범주 안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예술인지 여성비하인지 어느 누가 손쉽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누구 마음에 들었다고 이건 예술이고 누구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예술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위에서 얘기했듯 새누리당과 박사모 등의 발악에는 애시당초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발악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는, 그리고 오만 것에 들러붙는 여성비하 프레임이 상당히 거북합니다.


표창원 의원이 말했듯 판단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전 표창원 의원에게 '예술의 자유'가 지켜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비록 그가 주최하고 기획한 전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표 의원은 예술가들이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다고 요청했을 때 자신의 잣대가 아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취향이 아닌데도 말이죠. 표창원 의원이 정죄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번 논란을 여성비하의 프레임으로 보는 시선에 유감을 표하며, 표창원 의원의 행동을 지지합니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했으니 그 정도 비하는 받아들여야 된다'가 아니라, '더러운 잠'은 엄연히 예술적 표현의 자유 범주 안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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