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많이들 보셨나 모르겠네요. KBS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제19대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가 20시부터 22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SBS 주최, KBS 주최에 이어 세 번째 TV토론회죠. 이 외에도 25일 저녁에 JTBC 주최 토론회도 추가로 생겼다고 하니 환영할 일입니다.
송민순발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공세 막아낸 문재인
전 오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에서 시작된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논란과 관련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집중포화가 쏟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토론회를 봤습니다. 하지만 토론이 시작되기 전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더민주 김경수 의원이 관련 문건과 메모를 공개하며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이 허구임을 증명했고, 지난 2007년 11월 18일 서별관회의에 참석했던 참여정부 핵심인사 A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 확인해보자고 한 것은 송민순 장관 본인인데, 이를 문재인 후보가 제안했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다"며 메모록 등을 공개했습니다.
토론회가 시작되자마자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협공에 나섰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손팻말까지 준비해왔더군요.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오늘 공개된 관련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11월 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기권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정리지은데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까지 합세해 유승민 후보에게 "건전한 보수, 합리적인 보수를 추구하는 분으로 아는데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 공방이 아니다. 당시 남북이 평화로 가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는데 대통령이라면 그런 기회를 살리는 정무적 판단이 당연하다"며 거들었고, 더 이상 쟁점화되지 못했습니다. '제2의 NLL 포기 의혹'을 만들어 보려던 이들의 공작은 실패한 것이죠.
아쉽지만 오늘 집중하고 싶은 사람은 문재인 후보가 아니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입니다. 우선 홍준표 후보의 자서전 속 돼지흥분제 강간 모의 동참 논란과 관련해서 후보들은 일제히 홍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는데요. 그 중에서 눈에 보이는 제스처를 보여준 것은 심상정 후보와 안철수 후보 2명이었습니다. 심상정 후보는 토론에 앞서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경쟁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며 홍준표 후보와는 토론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토론 내내 아예 홍준표 후보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무시. 그런데 안철수 후보의 반응은 좀 달랐습니다. 안철수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여준 행동은 바로 '얼굴 쳐다보지 않기'. 안철수 후보는 2시간 동안 질문과 답변을 하며 단 한번도 홍준표 후보를 쳐다보지 않고 중계 카메라를 응시한채 발언을 했습니다. 아니 이건 뭐...ㅋㅋ 그런 식으로 따지면 토론회 시작 전 기념촬영을 할 때는 홍준표 후보의 손은 어떻게 잡았나 모르겠네요. 그때도 얼굴은 안쳐다보고 손만 꼬옥 잡은 건가요? 아예 심상정 후보처럼 확실하게 무시를 하던지... 할건 다하면서 얼굴 안쳐다보기는 뭔지...
"문 후보님, 제가 갑철수 입니까 안철수 입니까?"
본론으로 들어가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설전을 살펴보죠. 안철수 후보는 "미래를 향한 발전적인 토론이 돼야 하는데 언제까지 과거에 묶여 있을 것인가"고 하더니 바로 이어 문재인 후보에게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 미래를 향한 발전적인 토론을 언급하길래 '오, 좀 정책토론 가나' 싶었는데 말이죠. 안철수 후보가 질문한 것의 요지는 얼마 전 더민주당 선대위에서 안철수 후보 측을 향해 네거티브 지침을 내린 문건이 공개됐다는 보도와 관련한 것이었는데요.
"저는 그 당시(김미경 교수 서울대 교수 채용 당시) 교수출신이어서 어느위치도 아니고 아내도 독립된 전문가다. 카이스트 교수가 서울대 교수로 이직한 것이 특혜냐. 권력실세 아버지 둔 아들이 5급으로 채용된 것이 특혜냐"며 "국회에서 교문위 열고 환노위 열고 모두다 투명하게 검증받는 것이 옳다고 본다. 내일 상임위 연다고 약속해주시겠느냐"며 부인인 김미경 교수 특혜 채용 의혹과 문재인 후보 아들의 5급 공무원 채용을 엮어 국회 차원의 검증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저는 이미 다 검증됐으니 안후보도 열심히 해명하시라"며 이렇다할 대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안철수 후보는 상당히 약이 올랐을 거예요.
안철수 후보가 상당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국회 교문위(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는 동네 구멍가게가 아닙니다. 대통령도 입법부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데, 대통령 후보에게 뭔 국회 상임위를 열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징징거릴까요. 그리고 교문위와 환노위가 대통령 후보 검증하는 곳인가요? 본인과 아내 김미경 교수에 대한 의혹을 정리하고 싶으면 혼자 알아서 한번 상임위 열어보시던가요. 누가보면 국회의장인 줄 알겠네요.
"문 후보님, 제가 MB 아바타 입니까?
더 재밌는 건 안철수 후보 자신의 입으로 문재인 후보에게 "내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냐"고 질문한 것. 여기에 문 후보는 "항간에 그런 말도 있다. 저는 방금 안 후보가 말한 그런 얘기를 제 입으로 올린 적이 없는데 떠도는 이야기로 질문하니 달리 답할 방법이 없다"며 역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안철수 후보는 "제가 지난 대선 때 후보를 양보해드린 취지는 MB정부 정권 연장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MB 아바타냐"고 거듭 질문했구요. 이번에도 문 후보는 "아니라면 아니라고 해명하라"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이 오를대로 오른 것일까요. 안철수 후보는 더욱 구체적으로 "민주당에서 제가 MB 아바타라는 소문을 유포시키는데, 막아주셨으면 좋겠다. MB 아바타가 아니라고 확인해주는 것이냐"고 세번째로 질문을 했고, 문재인 후보는 "저는 (MB 아바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답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이 모습을 보고 네티즌들은 거의 질색팔색을 하는 수준입니다.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과 논지에서 벗어나는 발언들은 둘째치고, 마치 문재인 후보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것처럼 거의 '징징거리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네티즌들은 '울먹이며 답변하라고 내가어떻게보이는지 달라진나를봐줘 하는느낌' '전남친이면 백퍼 술마시고 새벽에 전화할삘' '삐친 전교2등' '그만해라 울겠다' 등의 반을 보이더군요. 문재인 후보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 그렇게 신경 쓰이나요? 전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뭔가를 엮지만 않으면 지금보다 훨씬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자꾸 문재인 후보와 어떻게든 엮으려고 하는지, 비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자신이 스스로 돋보이려고 하지 않고 남을 밟고 올라서야지만 돋보이는 줄 아는 전형적인 유형.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안철수 후보의 대선 토론 질문에 대해 평을 했는데 제 견해와 일치하네요. 조국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내가 갑철수입니까?' 누가 준비했는지 모르겠으나 정치적으로 최악의 질문이다. 문재인의 부정 답변에도 불구하고, 이제 시청자의 기억에는 'MB 아바타' '갑철수'란 단어만 남게 된다"고 적었는데요. 오늘 토론에서 'MB 아바타'라는 단어가 언급된 횟수가 총 7번입니다. 이 정도면 이 토론 방송을 본 사람들 중에서 'MB 아바타'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사람들까지도 안철수 후보를 떠올렸을 때 'MB 아바타' '갑철수'라는 단어가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게 될 확률이 큽니다. 굳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단어를 스스로 언급했어야 했는지... 참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안철수 후보는 최대한 문재인 후보와의 비교 등을 지양하며 순수하게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엮으면 엮을수록 '전교2등' 이미지는 고착화되지 않을까요? 국민의당 선대위 측에서는 좀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네요. 지난 토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국민을 적폐세력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승민 후보에게 질문을 해서 마치 "쟤가 이렇게 얘기하는데 욕 좀 해달라"고 토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더니, 이번에는 저런 질문을 재차 삼차 반복... 후보가 옹졸해 보이고, 유치해 보일 수 있다는 판단을 좀 미리 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뒤늦게 반응보고 후회하지 마시고... 아,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의 '초대 평양대사' 발언을 묻자 "그만 좀 괴롭히라"며 빼액거리던 것도 포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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