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버린 바른정당..."한 번 배신하는 자들은 두 번 세 번 배신하게 돼 있다"
바른정당이 24일 긴급 의원총회를 갖고 자유한국당, 국민의당과의 3자 단일화를 제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단일화에 대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입장이 엇갈리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됩니다.
24일 저녁 7시30분부터 시작된 바른정당 의원총회에는 이학재·김학용 의원을 제외한 31명의 소속 의원들이 참석했습니다. 애당초 선거 유세일정으로 뒤늦게 도착할 것이라 알려졌던 유승민 후보였지만 상황의 긴급함을 의식한 듯 유세일정을 축소하고 미리 의총에 도착해 의원들과 인사를 나눴죠. 이 자리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도 뒤지는 낮은 지지율이 언급되며 현실적으로 완주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나오며 단일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단일화 여론을 주도한 것은 다름아닌 김무성계 의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자유한국당과의 단일화는 어렵다며 유승민 후보의 완주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의총 분위기는 막판에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회의 결론을 내기 전 몇몇 의원들이 강하게 반기를 들며 상황이 반전된 것이죠. 회의실에서 고성이 새어나오더니 김무성 선대위원장까지 직접 나서 단일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의총이 끝난 직후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대선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간 '3자 원샷 단일화'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합니다. "바른정당은 유 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는 공허한 메아리와 함께 말이죠. 후보단일화에 반대한 유승민 후보는 의총 직후 기자들에게 "저는 오늘 아무말도 안 드리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고 맙니다.
의총에서 단일화 제안 자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유승민 후보이지만 단일화에 대한 반대 입장은 확고한 상태입니다. 의총이 끝난 직후 유승민 후보 캠프의 지상욱 대변인이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후보는 3자 후보 단일화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고 입장을 전한 데 이어 오늘 오전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성평등 정책 간담회에 참석한 유승민 후보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겨냥해 "아침부터 무거운 얘기지만 돼지 흥분제를 먹인 강간미수 공범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무슨 성폭력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나"고 비판하고 단일화와 관련해 "기존 입장과 변한 게 아무 것도 없다"며 대선 완주 의지를 피력했죠.
현재 바른정당 내의 고민은 뚜렷합니다. 친박계와 선을 긋기 위해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을 박차고 나와 개혁적 보수를 표방했는데 정작 지지율이 자유한국당은 고사하고 원내교섭단체도 아닌 정의당보다 떨어지니 맥이 빠질 수 밖에요. 선거운동비도 보전받지 못할 위기에서 김무성계가 움직였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유승민 후보가 사퇴 혹은 단일화를 하게 되면 자금 지출을 멈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과 함께 바른정당의 양대 축인 유승민 후보의 힘을 상당히 줄여놓아 바른정당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승리하기라도 한다면 다음 정권의 세 기둥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 것이구요.
사실 대다수 바른정당 의원들에 대해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침몰하는 박근혜호에서 살아남기 위해 빠져 나왔을 뿐, 결국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탄생의 주역들이며 자유한국당과 함께 청산되야 할 적폐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혹여나 하고 살펴봤지만 그런 생각을 한 제가 둔탱이였죠. 오죽하면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한 번 배신하는 자들은 두 번 세 번 배신하게 돼 있다"며 "후보가 한창 달리고 있는데 당원들이 뒤 발목을 잡아 넘어뜨린 꼴. 그럴 줄 알았다. 그 당은 정말 불쌍하다"고 조롱했을까요. 하기사, 이런 조롱 정도야 허허 웃으며 멘탈을 지킬 수 있어야 진정한 정치인이긴 하죠.
국민의당, 성배 속에 독이 들었을까 고민 끝에 "자강론으로 간다"
이러한 바른정당의 내홍 속에 여의도 정가는 각자의 계산기를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바른정당에서 단일화 추진 대상으로 밝힌 정당들을 먼저 살펴보죠. 초반 국민의당은 단일화와 관련해 의견이 둘로 갈렸습니다. 손학규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은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적폐세력론, 정권교체론 프레임을 걸어 국민의당의 외연 확장을 막고 있었다"며 "지금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바꿀 세력을 크게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으로 단일화를 지지했습니다. 이미 지난 22일 바른정당 이종구 정책위의장과 단일화 방안을 직접 논의하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주승용 공동선대위원장을 비롯한 호남지역 의원들은 "정치인들에 의한 인위적인 연대는 거부한다"며 "연대라는 글자는 구시대의 박물관으로 보냈다"는 말로 단일화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결국 박지원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바른정당에서 3자 단일화 추진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논의를 해보긴 했지만, 그 집(바른정당)의 일을 우리가 상관할 필요가 없고 우리는 그대로 가겠다고 제가 정리했다"며 "바른정당에서 3자 단일화에 대한 제안을 하더라도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기존의 자강론을 고수하겠다는 것인데요. 다만 차기정부 구성을 정당과 지역을 넘어선 통합정부로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협치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추월하려면 세 갈래로 쪼개져 있는 반문(半文)정서를 가진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시급하기에 마음같아선 단일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남 지역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로 나아가자면서 정작 지역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 호남 홀대론'을 들고 나와 호남 민심에 구애를 보낸 국민의당이 빠진 딜레마죠. 그래놓고서 정작 보수성향의 대구·경북(TK)세력과의 단일화를 추진했다가 정작 집토끼와 같은 호남 표, 그리고 중도·진보세력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설테니까요. 아무리 문재인에 반대한다고 한들 바른정당과 손잡는 순간 쏟아질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이들과 손을 잡았다'는 비난을 감내할 재간도, 명분이 없을 수 밖에요.
자유한국당, 보수의 길 걷겠다 "유승민과는 OK, 안철수와는 No"
그렇다면 자유한국당 쪽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자유한국당에서는 유승민 후보와의 단일화에는 찬성의 뜻을 밝혔지만, 안철수 후보를 포함한 3자 단일화에는 반대의 뜻을 밝혔습니다. 애초부터 홍준표 후보는 바른정당과 유승민 후보가 결국엔 단일화에 나설 것이고, 자신이 범보수의 유일한 후보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보여왔습니다. 오늘 오전 서울 종로구 이북5도민회 간담회를 마친 홍준표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단일화의 추진 범위를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통일한국당 남재준 후보,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로 한정짓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 대해서는 "거기는 단일화를 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견고한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홍준표 후보가 이러한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선기간 초반 정세는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이른바 '2강 체제'였습니다. 하지만 홍 후보는 결국엔 보수가 결집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끊임없이 밝혀왔죠. 중반으로 흘러가면서 '돼지흥분제'와 같은 악재를 만났음에도 홍준표 후보는 조금씩 지지율을 끌어 올리며 이른바 '1강 2중 2약' 체제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반등에서 안철수 후보에게 갔던 보수층의 표심이 홍준표 후보에게로 돌아서는 현상을 엿볼 수 있는데요. 문재인은 싫은데, 이번 대선에서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과거 집권세력에게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안철수를 지지하기로 한 유권자들 중에서 '가만보니 한번 해볼만 하겠어'라는 희망을 느낀 이들이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는 형국인 것이죠. 애시당초 '홍럼프'라는 별칭의 홍준표 후보에게 깨끗하고 얌전한 이미지를 바라는 것도 아니니 '돼지흥분제' 정도(?)는 지나간 과거의 일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이들일테구요. '박근혜고 뭐고 간에 일단 문재인은 싫어' '빨갱이는 안돼' 정도의 사고방식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얼핏 생각하면, 자유한국당 역시 국민의당과 힘을 합치면 그야말로 정말 문재인 후보와 맞짱 한번 떠볼 파괴력을 갖게될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고... 숱한 선거에서 승리의 경험이 체화되어 있는 이들은 인위적 결합보다는 확고한 보수층 결집이라는 목표를 잡은 듯 합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미세하게나마 시동이 걸린 보수 원심력이 사라질 수도 있을테니까요.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국민이 없는 단일화'라고 표현하는데, 결국 이를 해석하면 '집토끼가 없는 단일화'라고 읽어도 무방하죠. 그러한 측면에서 바른정당은 현재 이른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정치공학적 단일화로 상당히 악수를 두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문제는 이러한 걸 정치 9단인 김무성 선대위원장이 모를리가 없는데, 이쯤되면 김무성 선대위원장이 이번 기회에 바른정당의 또 다른 축인 유승민 후보를 아예 식물인간 정도로 만들고 바른정당을 장악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가능한 것이죠.
안철수·홍준표·유승민 3자 단일화가 문재인에게 불리? 글쎄올시다
이렇듯 바른정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이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가운데 소식을 접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 측에서는 당연스레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바른정당이 추진하려는 단일화가 단순히 문재인 집권을 막기 위한 야합에 불과하다는 반응인데요. 뜻밖의 복병을 만난 문재인 후보 측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채 탄핵 반대 세력과 손잡는 것은 결국 적폐임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아마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분당에서부터 시작된 태생적 한계와 두 당과 국민의당의 지역·성향적 한계 등으로 인해 단일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에하나 세당이 연대를 하게 된다면 문재인 후보에게는 그야말로 크나큰 암초가 될 것이기에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죠.
이번 바른정당의 단일화 추진을 지켜보면서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5%로 떨어지자 비노 진영에서 후보 교체론을 들고 나오며 노무현 후보를 흔들어댔던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 사태'가 떠오릅니다. 일각에서는 이 후단협 사태가 대북송금 특검보다도 훨씬 이전에 심어진 친노·비노 갈등의 씨앗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생각을 저만 하는 것은 역시 아니었네요. 정의당 심상정 후보 측에서 이번 바른정당의 단일화 추진을 두고 "2002년 민주당의 후단협 사태가 생각나는 정치적폐"라며 "상상만으로도 실소가 나오는 코미디"라는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이 같은 행태는 바른정당이 탄핵의 폭풍을 피하기 위해 얼기설기 만들어진 천막일 뿐이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꼴"이라고 비난을 했는데, 가장 속시원하게 할 말 할 줄 아는 정당은 역시 정의당인 것 같습니다. 단일화에 따른 이익관계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처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두근거릴 필요도 없고.
전 개인적으로 바른정당에서 설령 필패하더라도 유승민 후보로 대선을 완주하는 것이 자유한국당을 박차고 나와 대통령 후보까지 낸 정당의 정치적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자신들이 개혁적 보수라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자신들에게서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기존의 지지세력들에게도 배신자로 낙인찍혔다는 현실을 직시한 뒤 정말 환골탈태를 하든 다시 과거 적폐의 몸통으로 합류하든 할 일이지요. 유승민 후보의 완주가 문재인 후보의 당선에 유리하다는 생각에서 제가 이런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전 사실 국민의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이 단일화를 하는 것이 오히려 적폐 청산과 함께 호남을 자극해 지역감정의 망령을 되살리고 '반문'을 정치철학으로 내세운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의 기회주의적 본색을 전국민 앞에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세 정당이 단일화를 하는 순간 국민의당은 적폐 세력과 손을 잡는 '반촛불 세력'으로 공인이 될테고, 오히려 광장에 모였던 촛불 민주주의와 진보세력은 문재인 후보를 지키기 위해 똘똘 뭉쳐질 것입니다. 그러한 그림이 좀 더 극적으로 흥미진진하고, 청소도 확실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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