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방검찰 임은정 검사. 1974년생으로 고려대 법학과 재학 중이던 1998년 사법시험에 합격, 대학 졸업과 사법연수원 수료 뒤 인천지검에서 검찰생활을 시작한 검사로 2007년 3월 광주지검 근무 당시 '도가니 사건(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공판검사를 맡았었습니다. 2012년 우수 여성 검사로 선정되기도 했죠. 서울중앙지검 공판부에 배치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2012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 공판에서 검찰 상부의 백지구형 지시를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화제가 되었던 논고를 한번 살펴보시죠.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 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 몸으로 민주주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의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 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 증거는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2012년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죄로 1962년 유죄선고를 받았던 윤길중 진보당 간사장에 대한 재심 결심공판에서도 무죄를 선고했죠. 사실 피고에 대한 기소가 잘못되었다면 무죄가 구형되어야 함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검찰은 관행이라는 명목하에 판사에게 형량을 일임하는 '백지구형'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검찰권을 포기하는 것이며 검찰 고유 권한을 불이행 하는 것이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로 보았을 때 무죄구형이 분명 적절하죠.
'진정한 검사' '정의로운 검사' '소신있는 검사'라는 국민들의 찬사와는 달리 임은정 검사에 대한 법무부의 길들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정직 4개월의 징계가 내려진 것인데요. 임은정 검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서울행정법원에 징계처분취소 소송을 제기, 징계처분 취소 판결을 받아내기에 이릅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항소까지 했지만 서울고등법원에서 기각됐죠. 이후 임은정 검사는 지난 4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국정농단 조력자인 우리 검찰의 자성을 촉구하며'라는 글을 올리는 등 검찰 조직의 잘못된 관행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올곧은 임은정 검사의 모습이 권력에게는 눈엣가시였겠죠. 그간 박근혜 정부에서 임은정 검사는 2차례의 정기인사에서 연거푸 승진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었는데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 단행된 지난 10일의 중간간부 인사에서 임은정 검사는 부부장검사로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사필귀정이죠. 그런데 부부장검사에 승진하자마자 임은정 검사는 또 다시 내부의 부당행위를 폭로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17일 '이프로스'에 올린 '새로운 시작-감찰의, 검찰의 바로섬을 촉구하며'라는 글인데요.
이 글 속에서 임 검사는 경찰을 상대로 수사지휘를 하는 당번 근무일에 "ㄱ씨의 음주·무면허운전 지휘 건의가 들어오면 보고해 달라"는 ㄴ검사장의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ㄱ씨는 지역의 한 건설사 대표의 아들로 검찰과 업무 협력을 하는 범죄예방위원으로 활동 중이었는데요. 경찰이 음주·무면허 전과 10범의 ㄱ씨가 벌인 위법행위를 추가 적발, 기소 의견으로 임은정 검사에게 보고했는데, 임 검사가 기록을 살펴 보니 구속은커녕 벌금만 낸 게 무척 의아한 케이스였다는군요. 문득 임 검사는 '음주 삼진아웃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지금껏 벌금만 내 ㄴ이유가 검사장이 보고 지시를 한 배경과 같겠구나'라고 짐작했다고 합니다.
임 검사의 폭로에 의하면 ㄴ검사장은 보고 지시로 모자라 ㄱ씨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종용했다고 합니다. 운전자에게 '주차의 의사'가 있을 뿐 '운전의 고의'가 없었다는 논리였는데요. 하지만 ㄱ씨가 주차하기 위해 운전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어 명확히 혐의가 입증되는 사안. 결국 임은정 검사는 ㄴ검사장이 다른 검찰청으로 옮겨갈 때까지 두달간 경찰을 상대로 불필요한 수사지휘를 하며 시간을 벌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당시에 대해 임 검사는 "제가 얼마나 귀한 경찰력을 쓸데없이 낭비케 한 것인가 싶어 그 일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고백했구요.
그 외에도 임은정 검사는 '제주지검 압수수색 영장 회수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즐비하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직후 전관 변호사가 선임되자 영장을 몰래 빼와 불구속 기소하거나 공소장이 접수된 당일 공소장을 빼와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는 말을 동료들로부터 들었다는 것인데요. "제주지검 간부들의 일련의 대처, 감찰 요청한지 두 달이 넘었음에도 결론 없는 대검 감찰의 묵묵부답, 그리고 그런 일이 마치 없었던 듯 한 중간간부 인사를 보며 과연 검찰이 스스로 고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 회의가 들어 서글프다 못해 참담하다"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 보통 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에서 붕괴된 후다. 사회 해체의 단계다. 19년. 검사로서 19년을 이 붕괴의 구멍이 바로 내 앞에서 무섭게 커가는 걸 지켜만 봤다. 설탕물밖에 먹은 게 없다는 할머니가 내 앞에 끌려 온 적 있다. 고물을 팔아 만든 3천 원이 전 재산인 사람을 절도죄로 구속한 날도 있다. 낮엔 그들을 구속하고 밤엔 밀실에 갔다. 그곳엔 말 몇 마디로 수천억을 빨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난 그들이 법망에 걸리지 않게 지켜봤다. 그들이 지켜보지 않을 땐 정권마다 던져주는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받아적고 이행했다. 우리 사회가 적당히 오염됐다면 난 외면했을 것이다. 모른 척 할 정도로만 썩었더라면 내 가진 걸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몸에서 삐걱 소리가 난다. 더이상 오래 묵은 책처럼 먼지만 먹고 있을 순 없다. (중략)
부정부패가 해악의 단계를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본이 수십, 수백의 목숨이다. 처음부터 칼을 뺐어야 했다. 첫 시작부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조차 칼을 들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시간도 아니요, 돈도 아니다.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사람의 피다. 수많은 사람의 피... 역사가 증명해 준다고 하고 싶지만 피의 제물은 현재 진행형이다.
바꿔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찾아 판을 뒤엎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미 치유시기를 놓쳤다. 더이상 침묵해선 안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다려선 안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 사방이 곧, 발 하나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 中
위의 글은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비밀의 숲'에 등장하는 이창준 서부지검 차장검사(후에 검사장으로 승진 후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영전) 쓴 유서입니다. 검사와 권력 혹은 자본가와의 유착 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했죠. 드라마 속에서 거대한 비밀의 숲을 헤쳐나간 황시목 검사(조승우 분)는 감정 기능을 상실한 두뇌를 갖고 있었는데요. 이는 검찰 내에서의 개혁이 감정 기능을 상실한 수준으로 극단적 이성을 갖춰야만 이뤄낼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이 나서서 음주운전의 무혐의 처분을 지시하는 나라, 대한민국. 아직도 대한민국의 적폐 청산은 갈길이 먼 현재진행형인 것 같습니다. 정우성, 조인성 주연의 영화 '더킹'에 나온 대사가 생각나네요. 검찰총장님, 법무부 장관님, 문재인 대통령님. 착한 사람들 옷 벗기기 전에 이 사람들 옷 벗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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