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 금호타이어 사태를 잉태하다
금호타이어 매각 사태의 진원지는 무려 12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당시 국내 건설업계 1위였던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M&A의 귀재'라고 불렸죠. 하지만 국제 금융위기와 더불어 대형 매물을 인수하기 위해 끌어다 쓴 막대한 빚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면서 2010년 1월, 금호타이어 등을 비롯한 4개 개열사가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016년, 금호타이어 매각 절차가 본격화됐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그룹의 모태가 된 금호고속을 1년 8개월 만에 되찾는 등 그룹재건에 나섰고, 금호타이어인수는 금호아시아나 그룹 재건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 초기 꽤 많은 글로벌 타이어 회사들이 눈독을 들였지만, 박삼구 회장이 갖고 있던 콜옵션(매입권리)로 인해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오너가 나중에 회사를 되찾아올 수 있다는 심리 때문이었죠. 채권단은 적극적인 기업 회생을 위한 동기부여 차원에서 박 회장에게 콜옵션을 부여했는데, 2014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이후 다시 실적이 악화되는 등 금호타이어의 경영평가도 좋지 못한 데다가, 인수자금 조달 실패로 박삼구 회장은 결국 콜옵션을 포기하며 결국 금호타이어 재인수 의사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또한 박삼구 회장의 금호타이어 상표권 사용 문제는 그간 금호타이어 매각에 상당히 껄끄러운 걸림돌이었습니다. 소위 '겐세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난해 9월 금호타이어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상표권 문제로 회동을 한 끝에 구두로 상표권 사용을 허락했지만, 산은 측은 이를 상표권 포기 및 무상사용으로 보는 반면 금호아시아나 측은 사용을 협조하겠다는 의미일 뿐 무상사용이나 양도를 약속한바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죠. 상표권 사용료가 연간 60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박 회장 단독으로 결정하면 회사 손실이 커 횡령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는 논리. 지금은 잠시 잠잠해졌지만 매각 절차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다시 불거져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국 더블스타의 인수 시도와 노조의 해외매각 반대, 그리고 타이어뱅크의 등장
알려지다시피 산업은행은 중국의 타이어 제조사인 더블스타의 협상을 진행하는 상황. 더블스타 측은 국제 관례에 따라 3년간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을 비롯해 노조 보장, 단체협약 승계 등을 약속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습니다. 중국 지리자동차가 스웨덴 볼보자동차를 인수한 사례처럼 한국 경영진이 경영계획을 정하면 주주의 허가를 받는 방식으로 더블스타는 대주주로서 주주권을 행사하고 사외이사를 파견하는 독립경영 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구요. 또한 먹튀 논란을 잠재우고자 노력했죠.
하지만 금호타이어 노조는 10년 고용보장과 이를 뒷받침할 경영계획 제출을 요구하고 나섰고, 급기야 해외매각 철회 및 체불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지난 14일부터 총파업을 시작해 상경투쟁, 부분파업을 진행했고 24일부터는 2차 총파업에 나선 상태입니다. 하지만 채권단은 노조가 30일까지 자구계획과 함게 이번 매각 방안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자율협약절차를 중단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라고 못박은 상태죠. 채권단 실사결과 금호타이어의 회생가치는 청산가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법정관리로 가게 될 경우 회생보다는 청산에 가깝기 때문에 그야말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상황.
이렇게 금호타이어 노조와 더블스타,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한발 떨어져 있는 박삼구 회장까지 피말리는 혈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갑툭튀' 타이어뱅크가 나타났습니다.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은 오늘(27일) 오전 10시 대전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호타이어가 중국 더블스타에 통째로 매각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금호타이어 매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국내 기업으로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없어 인수를 추진하게 됐다"고 밝히며 금호타이어 인수 추진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타이어뱅크. 국내 최초의 타이어 유통 전문점으로 1991년 설립된 회사입니다. 길가다 '앗 타이어 신발보다 싸다'라는 광고 문구를 한번쯤 보신 적 있으시죠? 모든 타이어를 취급하는 컨셉으로 유통 단계를 과감히 축소하여 소비자에게 공급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타이어 시장을 공략, 전국 4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죠. 창업 당시 김정규 회장의 나이는 불과 20대 후반이었고, 2015년부터 KBO리그 타이틀 스폰서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앞서 2016년 금호타이어 매각 공고 당시에도 타이어뱅크는 인수전 참여 의지를 보였지만, 채권단에선 자금조달 여부가 불투명하고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타이어뱅크의 금호타이어 인수전 참여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적으로 회의적입니다. 산업은행과 더블스타가 합의한 금호타이어 인수 금액은 6천463억원인데, 타이어뱅크의 매출은 2016년 기준 3천729억원. 좀 더 자세히 회계감사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영업이익은 664억원, 당기 순이익은 272억원에 불과합니다. 당장 금호타이어 중국법인 정상화를 위한 7천500억원 조달 방안조차 불투명하죠. 이에 대해 김정규 회장은 "타이어뱅크를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타이어뱅크를 통째로 담보로 맡기고 채권단에게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고 밝혔구요.
추가로 김정규 회장이 명의 위장 수법으로 종합소득세 80여억원을 탈세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 서울지방국세청은 타이어뱅크 매장 300여곳을 위장사업장으로 판단하고 자진 폐업 신고할 것을 통보하는 한편 750억원을 과세했죠. 물론 김 회장 측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지만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일각에서는 타이어뱅크가 불발될 것이 뻔한 인수전에 뛰어들어 이름값만 높이려는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KDB산업은행·채권단 "타이어뱅크 등장 황당, 이미 늦었다"
갑작스러운 타이어뱅크의 등장에 산업은행 측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우리쪽으로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것도, 면담을 요청한 것도 아니다"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금호타이어의 유동성 문제로 자율협약 절차 중단 시한을 늦출 수도 없는 상태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새 인수 주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늦은 시점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나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금호타이어의 사정을 고려하면 회생보다는 청산 쪽을 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타이어뱅크의 금호타이어 인수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타이어뱅크가 상장, 회사 담보 대출, 해외 자본 유치 등의 인수자금 조달 방안을 내놨지만 상장은 성사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며, 타이어뱅크의 기업가치를 담보로 조달할 수 있는 대출 규모 역시 인수자금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되기 때문이죠. 더욱이 산업은행은 판매 네트워크 훼손과 중국 정부 보조금 정리 비용 등을 이유로 분리매각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호타이어 노조에서는 "타이어뱅크 이외에도 복수의 국내 인수자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해외 매각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밝혔듯 채권단은 3일 뒤인 30일을 데드라인으로 정했으며, 극적인 변화 없이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다면 회생보다는 청산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금호타이어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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