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의 투수 홍상삼 선수가 뜬금없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길래 뭔가 싶었습니다. 그러고 기사를 찾아봤더니 'SBS스페셜'에서 '공황장애 투수 홍상삼 다시 던질 수 있을까'를 주제로 공황장애를 다루는 방송을 했더군요. 다시보기를 통해 쭉 보고 왔습니다. 타팬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두산 팬 사이에서도 관심이 홍상삼에게 관심이 적은 사람은 모를 수 있는 내용이지만, 홍상삼은 공황장애로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홍상삼의 공황장애가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4월 17일, 잠실에서 있었던 SK전에 깜짝 선발로 등판해 팀이 3-7로 앞서고 있던 5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승리 투수 요건 충족까지 아웃 카운트를 불과 1개 남겼던 상황에서 아쉽게 교체가 됐던 날입니다. 다행히 3-12의 대승을 거두긴 했지만, 714일 만에 얻어낸 선발승 기회를 눈 앞에서 놓쳤던 홍상삼이 눈에 밟혔는지 김원형 두산 투수코치는 "승리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정말 잘 던졌다. 상삼이가 오늘 100% 이상으로 자신의 몫을 소화했다. 이렇게만 계속 던져줬으면 좋겠다"고 밝혔죠. 그런데 경기 후 인터뷰을 하던 홍상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제가 공황장애가 있어서, 욕을 너무 많이 먹다보니까 그게 좀 마음에 응어리가 져있었어요"였습니다.
팬들은 홍상삼의 공황장애 고백에 약간 당황한 이들이 많습니다. 천지인 투구법(하늘, 땅, 사람을 향해 던지는...)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홍상삼 입스(YIPS)나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었고, 실제로 2015년 블래스 증후군을 살짝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기 때문이죠. 아무 이유없이 제구가 안되는 블래스 증후군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오는 공황장애까지 겪고 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솔직히 한 편으론 살짝 착잡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프로스포츠는 자신의 가치를 실력을 통해 경기라는 결과물로 증명을 해야 하는 세계니까요.
'SBS스페셜'에 등장한 홍상삼은 "불펜에서 팔을 풀어야하는데 사람들 앞에 나가서 던지려고 하는 상상을 하니 너무 두려웠다. 나가서 또 욕을 들으면 어떡하지 못 던지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자꾸 몸이 컨트롤이 잘 안 됐다"고 말한 것을 비롯해 "눈치를 본다. 별일도 아닌데 괜히 신경 쓰이고. 옛날 같으면 넘어갈 일도 머릿속에 남아있고. 안 좋은 시선을 자꾸 보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홍상삼의 아내인 장나윤 씨는 그가 거의 매일 집에서 밥을 먹으며, 집에서 잘 안 나가는 것을 비롯해 누가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라며 집안의 커튼도 치고 생활한다고 했죠. 정말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홍상삼은 고교 시절 충암고의 에이스이자 서울고 이형종, 장충고 최원제, 신일고 이대은과 함께 서울 4대 투수로 꼽히던 특급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2007년 덕수고와의 봉황대기 결승전 당시 0:1로 앞선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동점을 허용하자 광분해 마운드에 주저앉아 식빵(!)을 수차례 부르짖으며 통곡을 하고, 연장전에서 만루 찬스가 오자 덕아웃에서 짱구춤을 추는 등 기행을 벌여 야구 관계자들로부터 대차게 까인 적이 있을 만큼 평범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우승을 했고, 대회 MVP로 뽑혀 이후 두산 베어스(이하 두산)에 입단하게 된 것이죠.
두산에 입단한 이후 홍상삼은 페이스만 올라가면 선발 유망주로 기대를 한번에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이 가지 않지만, KIA 타이거즈 김진우에 이어 KBO 역대 2번째로 데뷔전 무사사구 선발승을 거두기도 했었죠. 하지만 투구폼 수정과 부상 등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12년에는 불펜 투수로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커리어하이를 찍는 등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죠. 물론 포스트시즌에서 그 활약상을 다 까먹긴 했지만요. 이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예비 엔트리에 들어갔지만(심지어 시즌MVP였던 박병호를 제치고)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발가락을 다쳐 국가대표 승선이 물건너가기도(...)
그리고 다음해인 2013년. 홍상삼이 방송에서 "저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때부터가 시작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던 바로 그 해입니다. 홍상삼은 2경기 연속 끝내기 홈런, 이른바 '두바이'를 시전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다른 팀에게 보약'이라는 의미로 '홍삼'을 비롯해 '홍뿌리' '홍도라지' '홍풀때기' 등 삼에서 점차 유사한 식물들을 붙인 별명이 추가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산은 우여곡절 끝에 가을잔치인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죠. 2013년 두산의 가을야구는 '홍상삼'이라는 키워드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의 상대는 창단 첫 가을야구에 진출했던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 1차전을 패배한 두산은 유희관이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7⅓이닝을 책임졌습니다. 1:0으로 앞선 1사 2루 상황에서 등판한 것이 바로 홍상삼. 일단 이택근은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데 성공했는데요. 다음 타석인 박병호를 거르기로 한 홍상삼 - 양의지. 그런데 캐치볼을 하듯 가볍게 던진 홍상삼의 공은 고의사구를 위해 일어서 있던 양의지의 키를 훌쩍 넘겨 2루주자를 3루에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후 고의사구 작전을 철회하고 승부를 보기로 했는데, 홍상삼의 공은 이번엔 땅바닥에 처박히며 양의지의 미트를 피해갔죠. 결국 3루주자 서건창은 그렇게 홈을 밟게 되어 1:1이 되었습니다.
제6구도 좌타석에 꽂힌 뒤 포수 뒤편의 광고판으로 날아갔죠. 풀카운트여서 폭투로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박병호 다음 타순이었던 강정호를 상대로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또 다시 폭투를 던져 박병호를 2루에 안착시키기도 했죠. 이것이 바로 '한폭삼'(한 이닝 폭투 3회'입니다. 그렇게 2차전도 패배한 두산. 하지만 두산은 3연승을 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합니다. 홍상삼도 5차전에선 준수한 피칭을 선보여 팬들에게 희망을 갖게 했구요.
플레이오프의 상대는 잠실 라이벌인 LG 트윈스였습니다. 게다가 LG가 11년만에 가을야구를 하게 되어 관심이 무척 뜨거웠죠. 3-2로 앞서고 있던 7회초에 선발 노경은의 뒤를 이어 홍상삼이 등판하자 양팀 팬들은 모두 긴장을 하게 됩니다. 이날 LG팬들이 한 목소리로 홍상삼을 연호했던 일화가 유명하죠. 홍상삼이 방송에서 언급했었던 부분이 이겁니다. 하지만 홍상삼은 3이닝동안 무실점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첫 세이브를 챙겼습니다. 하지만 홍상삼의 포스트시즌 첫 세이브를 기념해 챙겨둔 기념구를 아무 생각없이 관중석으로... 3차전에서도 호투를 펼친 홍상삼은 플레이오프 MVP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죠.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3차전에서는 익숙한 폭투로 스코어를 내주며 패배에 기여했죠. 결국 두산은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 뒤로도 홍상삼은 꾸준했습니다. 경찰청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후로도 마찬가지였죠. 그의 복귀전이 2016년 제 생일날 직관을 갔기 때문에 기억이 납니다. 팬들은 홍상삼이 마운드에 서는 순간부터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짜릿한 긴장감을 강제로 느껴야 했죠. 2018년 커리어하이 시즌을 찍고 현재는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국내 최고의 포수인 양의지가 어지간한 공을 다 잡을 수 있도록 키운 것이 바로 홍상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홍상삼의 구속과 구위만큼은 정말 흠이 없습니다. 평균 140km 중후반대, 최고 154km/h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을 구사하죠.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제구가 안되는데요. 해설자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제구가 안되는데 구속이 빠른 투수는 얼마든지 있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투구 수 22개 중 스트라이크가 6개 겨우 들어오면 프로라는 이름은 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홍상삼을 미워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홍상삼은 두산 팬들에게 애증의 존재예요. 아픈 손가락. 플레이를 지켜보는 팬들도 이렇게 답답한데 본인은 이렇게 악순환만 반복되는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4월 17일 경기에서 홍상삼의 역투를 그토록 반가워하고 응원한 겁니다. 물론 홍상삼은 이날 한경기 폭투 5개라는 KBO 신기록을 세웠지만요. 이번 시즌 끝나면 FA 자격 획득인데, 사실상 야구 인생을 마무리 짓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죠. 방송을 보니 장나윤 씨가 "약을 처방 받았는데 약을 안 먹으려고 하려고 하더라"고 했고, 홍상삼은 "처음에 약을 먹었는데 약간 멍해진다고 해야하나 띵하면서도 몸도 잘 안 움직여지는 것 같았다. 운동선수라서 야구를 해야하니까, 약은 안 맞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약물 치료를 포기하면서까지 끝까지 야구에 대한 꿈을 놓지 않으려는 그 모습이 참 착잡했습니다.
홍상삼이 공황장애를 극복하고 다시금 잠실 마운드에 우뚝 서 위력적인 공을 뿌려댄다면 당연히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홍상삼이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하여 홍상삼에게만 특별히 아무리 야구공을 야구장 잔디 아래 심으려고 해도 괜찮다고 응원해 줄 수는 없죠. 홍상삼이 현재 소속해있는 두산 베어스는 아마 구단이 아니라 프로 구단입니다. 프로스포츠는 위에 말했듯 실력에 따라 수십 억 원의 몸값을 받기도 하고,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기도 하죠. 구단의 성적을 포기하면서까지 두산이 홍상삼을 안고 가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는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죠.
저 역시 피아노를 연주하기 때문에, 홍상삼의 기분을 작게나마 이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음악인들이 느껴봤을 감정일텐데요. 무대에 오르기 전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떨리기도 하고, 무대에 올라가고 멍해지면서 수백번 연습을 했던 곡임에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기도 하고, 평소에는 잘만 넘어가던 부분이 갑자기 꼬이거나, 항상 연습할 때도 틀리던 부분이 어김없이 틀리거나 등등. 이러한 것이 학생 때는 용납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 미완의 상태이니까요. 하지만 프로 연주자로서 무대에 오르는 순간 이러한 것들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연주자는 많고, 관객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굳이 관객들이 완성도 떨어지는 연주에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죠. 그나마 연주는, 특수한 장애를 갖은 연주자(예: 이희아)들에 대해 기준을 낮추고 그 도전 자체를 응원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음악은 성적을 두고 타 연주자들과 경쟁을 해 순위가 정해지지 않는 세계입니다. 야구에선 더더욱 감안될 수 없죠. 홍상삼이 공황장애와 싸우는 것은 응원하지만, 그것과 구단에 남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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