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많은 것들/일주일에 영화 한편

구원과 속죄, 자비를 베푸소서, 피에타(2012)

자발적한량 201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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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영화 상세정보는 하단부에 있습니다. 리뷰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열여덟번째 영화인 피에타가 개천절인 어제, 10월 3일 극장 상영을 마쳤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명료합니다. 바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작은 영화에게 상영기회가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며'. 그는 김기덕 감독은 9월 24일 언론사에 보낸 글을 통해서 10월 3일 상영종료를 알리며, 제작과 배급을 독식하고 있는 몇몇 영화 공룡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빼놓지 않았는데요. 해외에선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을 아실 겁니다. 이 부분은 이따 얘기하기로 하고...국내에서도 2가지 이슈를 만들었는데요. 바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국내 영화상영의 제작과 배급 문제, 그리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홍보비 문제였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언론사에 보낸 글의 전문으로 오늘의 포스팅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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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관객 분들께 감사드리는 글

 

저의 한없이 부족한 영화 ‘피에타’가 이번 주말 관객 50만을 넘었습니다. 저에게는 50만이 아니라 500만이 넘은 영화와 다름없습니다.

 

특히 피에타는 20대부터 70대 어르신 분들까지 모두 '피에타'를 골고루 관람해 주셨습니다.

 

오락영화도 상업영화도 코미디영화도 아닌 피에타를 50만 관객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저 개인의 가치보다 한국 영화문화가 선진국으로 나가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외국을 다니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20대부터 70대까지 한 영화를 보고나서 극장 앞에서 신구세대가 자유롭게 그 영화를 토론하는 모습이었는데 '피에타'를 통해 그런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피에타’ 베니스 수상으로 기자회견에서 메이저 영화의 극장 독점과 교차 상영에 대한 문제와 창작자 우선의 제작 환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멀티플렉스의 극장을 한 두 영화가 독점하고 있고 동시대를 사는 영화인들이 만든 작은 영화들이 상영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가도 받기 전에 사장되고 있습니다.

 

또 창작자의 영역이 좁아지고 투자자의 생각이 중심이 되어 감독들이 교체되고 그들에 의해 과거 성공한 외화들이 정체불명의 이상한 한국영화로 둔갑하여 극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들이 한국의 수많은 영화학교 영화인들이 땀 흘리며 공부하여 만들고 싶었던 신선하고 건강한 한국영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창작물인지 되돌아 볼 때입니다.

 

최근 10년의 그 창의적인 영화적 도전과 성과들은 지금 거의 실종되고 투자자의 직원들이 주문하는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들이 자존심 없이 관객숫자와 수익의 가치로만 평가되어 100년을 내다봐야할 영화산업이 단기생명으로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메이저는 돈이 안되면 극장을 부수어 다른 업종을 하면 그만이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창작자와 후퇴한 관객들은 누가 책임을 질 것입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한 극장에라도 걸리기를 기도하며 창작자로서 피를 토하며 어렵게 영화를 만드는 많은 영화인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영화들이 기록 갱신을 위해 몇 푼을 더 벌기위해 작은 점유율에도 극장을 놓지 않고 극장을 무리하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극장 독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당사자로서 9월6일 개봉한 '피에타'의 상영종료를 배급사와 논의하여 개봉 28일째 4주차를 마지막으로 10월3일 모든 극장에서 깨끗이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작은 영화에게 상영기회가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건강한 한국영화의 미래를 기대하는 관객 분들과 '피에타'를 관람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출처] [문화뉴스-임지;욱] 역시 김기덕, "정체불명의 한국영화, 극장 장악" ([전문] "'피에타', 10월3일 극장 상영 끝내겠다") / ‘피에타’ 관객 분들께 감사드리는 글|작성자 한 아운

 

 

 오늘은 영화에 대한 스포를 마구마구 방출해보려고 합니다. 제 나름대로의 분석 등을 적고 싶은데 그러려면 스포를 터트리지 않고는 힘드네요.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 강도는 

청계천의 사채 청부업자입니다. 그냥 청부업자가 아니고 피도 눈물도 없는. 그는 채무자들에게 돈을 받기 위해 채무자들을 가입시킨 상해보험을 이용하여 그들의 손과 발을 가차없이 기계에 넣어버립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불현듯 한 여자 미선이 나타납니다. 강도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이 강도의 엄마임을 주장하는. 강도는 극도의 거부반응과 분노를 나타내지만, 강도가 어디를 가던 따라다니는 미선. 점차 흔들리던 강도는 미선을 집으로 불러 엄마임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결국엔 미선을 엄마로 인정하고야 마는 강도. 그리고 강도의 행동은 조금씩 변해갑니다. 짐승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강도에게서 인간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죠. 그런데 어느날, 미선은 불현듯 사라집니다. 미선을 찾기 위해 그동안 자신이 짓밟았던 채무자들을 한명씩 찾아가며 엄마의 행방을 찾는 강도. 하지만 영화의 반전은 미선이 강도의 엄마가 아닌, 강도에게 짓밟힌 한 채무자의 엄마였던 것입니다. 강도에게도 똑같이 가족을 잃은 슬픔을 맛보여 주기 위해 접근했던 것이죠. 하지만 강도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채 미선을 찾던 강도는 자신이 또 다른 채무자를 떨어뜨렸던 폐건물에서 미선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미선은 최후를 맞이하고, 강도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자신이 망쳐놓은 채무자 부부를 찾아갑니다.

 

 

 

영화의 배경

피에타는 청계천 4가에 밀집한 주물공장, 프레스공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 주변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죠. 과거 한국 산업 발전의 모태이자,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청계천은 교과서가 든 가방 대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청계천을 오갔던 김기덕 감독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담긴 곳입니다. 강도가 찾아다니는 수많은 채무자들은 모두 이 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어라고 일해도 그들에게 늘어나는 것은 강도에게 줘야할 빚과 한숨 뿐. 자신의 입에 그나마 풀칠을 시켜주었던 기계들은 이제 자신의 신체를 훼손시킬 도구로 사용됩니다.

 

 

 

돈(자본주의)

이 영화, 그리고 김기덕 감독 작품에 등장하는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돈. 영화에서 강도가 미선에게 돈이 뭐냐고 묻자 미선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라며 '사랑, 증오, 배신, 복수' 등을 언급합니다.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채무자들의 신체절단을 감행하는 악마의 모습을 한 강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채무자. 돈 때문에 신체를 훼손당하는 채무자들. 돈 때문에 그 후에도 강도가 던져준 돈에 술값이 생겼다며 좋아하는 채무자. 자본가와 노동자, 채권자와 채무자 어느 한 쪽이 웃으면 다른 한 쪽은 울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영화의 무대인 청계천 주변은 가장 비참한 곳입니다. 밝고 화사한 것이라고는 눈 뜨고 찾아볼 수 없는 어둑칙칙하고 음습함만이 느껴지는 공간. 돈의 세상에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어둠의 끝자락.

 

 

여성(=모성)

돈과 마찬가지로 김기덕 감독 작품의 또다른 양대 산맥인 여성. 이 영화 속에서 여성의 존재는 강인합니다. 돈에 치이고 세상에 치이며 비틀거리고 쓰러지는 남성과 다르게 자신의 남편을 먹여 살리고, 자신의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원수의 엄마가 되기도 하고, 역시 아들의 복수를 위해 늙은 할머니가 나타납니다. 강도는 30년동안 여성의 부재에 분노하며 매일 다트판에 꽂혀있는 여성의 그림에 칼을 던집니다. 자신을 범하는 대신 빚을 갚을 시간을 늘려달라며 속옷만 입은 채 서 있는 훈철부인을 비웃으며 가차없이 내쫓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존재로써의 여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성욕은 몽정으로 충분히 해결됩니다. 그에게 필요했고, 그를 변하게 만든 것은 여자가 가진 모성입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나타남으로 강도는 심적 동요를 일으키고 급기야 행동의 변화를 보입니다.

 

 

 

엄마를 만나기 전의 강도

강도는 '인간성'이 거세된 채 '돈(자본주의)'의 도구로써만 존재합니다.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나타내며 그 시스템의 부속품일 뿐이죠. 그는 인간의 기본적인 삼대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조차 엉망이죠. 그를 보면 떠오르는 것은 '악마'이지만, '인간'으로서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엄마와의 만남, 그리고 닭과 빙판길의 상징성

닭은 그가 상실하였고, 동시에 짓밟고 있는 '인간다움'을 의미합니다. 강도는 채무자에 대한 신체훼손을 감행한 뒤 닭의 내장을 직접 손질하고 이것을 먹죠. 즉, 폭력에 의한 일그러진 방식으로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빙판길(인간성을 상실해 얼어붙은 강도)과 닭내장(강도가 짓밟은 인간성)에 의해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그의 삶이죠.

그랬던 그가 엄마를 만나게 된 것은 인간성 회복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놓쳐버린 닭(인간다움)을 되찾아주고, 닭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을 막아서는 존재가 출현하게 된 것이죠.

 

 

 

훈철부부의 성행위 장면

인간의 성욕은 단순히 본능이 아니라, 인간성과 결합하여 '관계의 결실'로서 의미를 가집니다. 강도에게 손이 뭉개지기 전에도, 뭉개진 후에도 함께 삶을 영위해나가는 부부의 관계가 성욕의 인간다운 발현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맺음이 단절된 강도는 무의식적으로 처연하게 성욕을 해소합니다. 곁에 아무도 머무르지 않는 외로움 삶이죠.

 

 

 

강도가 미선이 엄마임을 확인한 방식

식욕. 강도에게 '먹는다'는 생존 행위는 그의 직업과 닭의 상징성에 비춰보았을 때, 타인의 희생과 피를 댓가로 삼습니다. 미선이 엄마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신의 살점을 먹이는 까닭입니다.

 

앞에 등장한 훈철부부의 성행위와 달리 이는 인간성이 결여된 강도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장치로써 강도는 자신의 엄마를 범하고자 합니다.  강도에게는 일종의 시험대죠. 그를 받아들이면 미선은 '창녀'가 되겠지만, 그녀는 괴로워하며 끝내 그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도는 세상의 모든 여자는 '창녀'라는 자신의 여성관을 깨고, 그녀를 '엄마'로 인정하게 된 것이죠.

 

강도는 미선을 친모로 인정했다기보다는 엄마로 믿고 싶은 나머지 자신의 엄마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살을 베어 먹이고, 강제로 범하려고 하는 일종의 의식. 이를 통해 강도는 미선의 자궁을 통과하고 살과 피를 나눈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죠.

 

 

강도의 성행위를 도와주는 미선

미선은 애초에 강도에게 복수를 위해 접근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호의를 베풀 필요는 없죠. 그런데 그녀는 잠결에 나오는 성행위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거칠게 씻어내죠. 이는 강도를 향한 복수심과 불쌍한 그를 향한 연민이 혼란스럽게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장어와 토끼

장어는 강도에게 결여된 인간성 혹은 그 회복의 치료제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거부하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잇기 시작하는 연결고리이자, 타인의 희생(피)이 아닌 인간다운 관계에 의해 충족되는 삶(=식사)의 시작이죠. 또한 미끄러져 계단으로 내려가는, 물밖에서도 살고자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장어의 모습은 처절한 물질문명 속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약자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강도는 끝내 그 장어를 먹지 않습니다.

 

토끼는 그가 소중히 갖게 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토끼는 자식이 죽은 줄도 모르고 걱정하는 노파를 짓밟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자본논리의 도구로써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죠. 또한, 닭의 내장이 방치되어 있던 죽음의 공간인 화장실에서 무사히 살아있는 것도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줄 수 없는 엄마는 토끼를 방치하여 끝내 죽음으로 내몹니다.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이 암시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제목 : 피에타
개봉일시 : 2012-09-06
장르 : 드라마
상영시간 : 104 분

감독 : 김기덕
출연 : 

조민수(미선), 이정진(강도), 우기홍(훈철), 강은진(훈철부인)


국내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T's score : ★★★★(9.5)

 

시놉시스 

김기덕 감독 열여덟 번째 영화
<나쁜 남자> 이후 11년... 더 나쁜 남자가 온다!


끔찍한 방법으로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남자 ‘강도(이정진)’.
피붙이 하나 없이 외롭게 자라온 그에게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조민수)’가 불쑥 찾아 온다.


여자의 정체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혼란을 겪는 강도.
태어나 처음 자신을 찾아온 그녀에게 무섭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사라지고,
곧이어 그와 그녀 사이의 잔인한 비밀이 드러나는데…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두 남녀,
신이시여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PIETA is..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란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을 묘사한 미술양식. ‘피에타’에 드러난 성모 마리아의 감정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수없이 겪는 상실의 고통에 은유 되어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공감의 대상이 되었으며, 미켈란젤로, 고흐 등 세기의 예술가에 의해 재 탄생되어 왔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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