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일가=시게미쓰 일족?
어제는 '롯데 형제의 난, 신격호를 둘러싼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싸움' 이라는 글에서 2차전을 앞두고 있는 롯데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롯데 관련 뉴스를 읽던 중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KBS의 인터뷰 영상을 접했는데요. 여기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어로 말했습니다. '한국말을 못하다니 말문이 막힌다'는 댓글이 있더군요.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 한국에서 '롯데판 왕자의 난' '롯데 형제의 난' 등으로 불리는 이번 사태를 두고 일본에서는 '시게미쓰 일족의 난(ロッテ重光一族の乱)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 오늘은 롯데의 역사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합니다.
롯데월드, 롯데아이스크림, 롯데껌, 롯데캐슬, 롯데백화점, 세븐일레븐, 롯데마트, 처음처럼, 칠성사이다...우리에게 익숙한 국내 재벌서열 5위인 롯데의 브랜드들입니다. 롯데를 삼성, 현대, SK, LG, 두산, 한화, CJ, 신세계와 같은 대기업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겠죠. 하지만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롯데가 여타 기업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정점으로 해서 일본 롯데는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한국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 나누어 경영을 맡길 정도로 그냥 진출 정도가 아닌 양국에 걸쳐 모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재벌이라는 거죠.
밀항한 조선인 청년, 껌을 팔아 굴지의 기업을 일구다
창업주 신격호 회장. 그는 홀수달은 한국, 짝수달은 일본에서 그룹을 경영해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를 두고 '현해탄 경영' 내지 '셔틀 경영'이라고 부르죠? 그가 살아온 과정을 보면 롯데의 현 주소를 알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의 신격호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은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8세 때 노순화 씨와 결혼을 한 신격호는 어린 딸과 부인을 남겨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우유·신문 배달, 공장 청소 등을 하며 일본에 적응해가기 시작하다 징병을 피하기 위해 와세다 고등공업학교, 현재의 와세다 대학 이학부를 졸업하죠.(당시 이공계 학생들은 징집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그런 신격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하나미쓰라는 60대의 한 고물상 주인이 평소 눈여겨 본 신격호에게 "군수용 커팅오일 제조 공장을 차리면 출자할 용의가 있다"는 제안을 한 것이죠. 커다란 제안이었기에 신격호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고 공장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이 공장을 차리자마자 미국의 폭격으로 공장이 불에 타버리죠. 다시 건물을 빌려 차린 공장 역시 또 폭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신격호는 하나미쓰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다시 공장을 차려 커팅오일부터 시작해 비누, 화장품 등을 만들어 팔았죠. 그런데 이것이 대박이 나 1년 반 만에 하나미쓰에게 투자금을 갚고 이에 더해 집을 한 채 사주기까지 합니다.
당시 자신이 운영하던 공장을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라고 부르며 유지류와 고무 등을 연구하던 신격호는 "껌을 제조해보라"는 한 친구의 제안에 껌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롯데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는데요. 기업의 이름이 롯데인 것에 대해 일단 정설은 작가를 꿈꿨던 신격호가 감명 깊게 읽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것입니다...만 일각에서는 현대식 츄잉껌을 처음 만든 Wringley사의 제품 두 가지 중 하나의 이름이 바로 Lotta였는데, 당시 껌의 주 소비층인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이 두 가지가 합쳐져 '롯데(Lotte)'라는 이름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신격호 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A급 전범 시게미쓰 마모루의 외조카
시게미쓰 하츠코 ⓒ뉴시스
그리고 이 사이 신격호는 또 한 차례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1951년 노순화 씨가 29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을 하자 다음해 자신이 세 들어살던 집주인의 딸인 다케모리 하츠코와 혼인을 했는데요.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 육군 대좌(현재 대령)로 1944년 사이판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넓은 집에 적적함을 채우기 위해 찾은 세입자가 청년사업가 신격호였는데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잠시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1932년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에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전승축하기념식에서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일으킵니다. 이때 즉사한 인물들 외에 중상을 입은 일본군 장성, 관료들이 꽤나 있었는데요.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에 의해 다리를 절단해야 했는데요. 시게미쓰 마모루는 일본 제국주의의 마지막 내각인 도조 내각에서 외상을 역임했고, 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 선상에서 일본을 대표해 항복문서에 서명을 한 뒤 체포되어 A급 전범으로 분류, 복역 중 가석방 된후 일본 민주당 부총재와 외상을 거친 뒤 사망 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인물입니다. 현재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암살>에서도 시게미쓰 마모루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이 시게미쓰 마모루가 신격호의 아내인 다케모리 하츠코의 외삼촌입니다.
신격호 회장의 일본식 이름을 아시는 몇몇 분들은 여기서 '응? 아내의 외삼촌?'이라고 하실 겁니다. 신격호 회장이 5회로 졸업한 삼동공립보통학교(현 삼동초등학교)의 졸업생 명부를 보면 당시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신격호 회장의 이름이 시게미쓰 다케오로 적혀있는데요. 마침 딱 맞아떨어지게 부인의 외삼촌과 같은 성인 '시게미쓰'죠. 롯데 측에서는 금시초문이라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격호 회장이 이후 부인의 다케모리 가문 도움을 적잖게 받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일본 방식대로 다케모리 하츠코씨는 남편 성을 따라 시게미쓰로 바꾸게 되죠. 그래서 현재는 시게미쓰 하츠코.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죠.
나가타 롯데오리온즈 초대 단장,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 신격호 회장 ⓒ국회도서관 디지털 아카이브
훗날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일본황실의 며느리감 후보로도 거론됐었던 귀족가문 출신인 오고 마나미씨와 결혼을 했는데요. 무려 다섯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일본전통 혼례식에 3명의 전현직 일본 총리가 참석해 화제가 됐었습니다. 그 세 사람은 결혼 중매를 서고 주례를 맡았던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 일본 극우파의 우두머리이자 당시 현직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그리고 오늘날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이자 박정희가 스승처럼 떠받들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였습니다.
신격호 회장의 사업 수완, 현해탄을 건너 한국으로
신격호 회장은 사업수완이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는 부동산 투자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요. 남들이 부동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시절부터 껌과 스낵을 판 돈으로 도쿄의 변두리에 위치한 황무지, 저습지 등 땅이라면 가리지 않고 조금씩 매입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이 고도 성장기에 돌입하면서 시가지가 변두리로 확장됐는데요. 당시 신격호 회장이 땅을 매입한 지역은 바로 신주쿠, 카사이, 우라와 일대였습니다.
그 외에도 1957년 현재 천황부부인 아키히토와 쇼다 미치코의 결혼식이 컬러TV로 생중계돼 일본 국민들이 앞다퉈서 컬러TV를 구입하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으며 롯데껌을 광고했습니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넣고 1등에게는 1천만엔의 상금을 걸기도 했죠. 미스 롯데 선발대회를 개최하고 롯데 가요 앨범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후 롯데는 일본에서 고공성장을 거듭합니다.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1965년 박정희 정권 당시의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비밀문서를 살펴보면 신격호 회장이 한일국교정상화에 적잖은 기여를 한 것으로 나오는데요. 한국정부의 지원 속에 롯데는 모국에서 날개를 달고 비상을 시작합니다. 한미음료, 삼강산업, 반도호텔을 인수해 롯데칠성, 롯데삼강, 롯데호텔을 만들었고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하다 심지어는 동생인 신춘호가 롯데공업에서 라면을 생산하면서 독립해 '농심'이라는 또 하나의 식품재벌을 만들게 되죠. 1979년엔 롯데백화점을 오픈하며 유통전문그룹으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합니다.
롯데가 한국에서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의 지원도 있었지만 탄탄한 자금력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롯데 자체가 자금력이 좋았을 뿐더러 경쟁사였던 신세계, 미도파 등이 고금리 자금을 끌어다 쓸때 롯데는 자국(일본)의 저금리 자금을 끌어와 밀어붙였죠. IMF 외환위기 당시 계열사를 정리하며 몸집 줄이기에 나선 타 경쟁사들과 달리 롯데는 단 한개도 계열사를 정리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랜드 백화점, 로손 편의점, 해태음료, 제일제당 음료부분 등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 1997년 약 8조원이었던 매출이 3년 뒤인 2000년에는 16조6,000억 원으로 두배가 넘게 뛰었습니다.
한국에서 역시 롯데의 성장공식은 일본과 동일했습니다. 신격호의 선구안은 당시 고급 빌딩과 전철이 연결되는 것을 회피하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는데요.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 롯데월드와 롯데백화점, 영등포 롯데백화점 등을 보면 모두 전철역과 한 몸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지하철의 위력을 알았던 것이죠.
신격호 회장의 영원한 샤롯데, 서미경
그 외에도 미스 롯데 선발대회 등 마케팅 전략까지도 일본에서 그대로 옮겨 심었습니다. 미스 롯데 선발대회도 개최했죠. 한국에서 열린 미스 롯데 출신으로는 원미경, 이문희, 이미숙, 차화연, 채시라, 이미연, 전도연, 안문숙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양예고 재학 당시 제1회 미스 롯데가 된 서미경은 그 전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했었는데요. 하지만 초대 미스 롯데가 된 이후 1981년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연예계를 은퇴한 뒤 도쿄에 머물렀는데요. 스폰서설을 부인해오다 1988년 그녀가 신격호 회장의 '샤롯데'였음이 알려집니다. 1983년 낳은 딸 신유미 씨를 신격호 회장의 호적에 올렸거든요. 현재 서미경씨는 약 1,000억 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신유미 씨는 롯데호텔 고문직을 맡고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 대략적인 롯데그룹의 역사를 알아봤습니다. 일본으로 혈혈단신 건너간 조선인 신격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롯데. 껌 하나로 어마어마하게 사업을 확장한 롯데그룹은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일본그룹'의 자격으로 한국에 진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그가 조선인이었기에 훨씬 수월하게 한국에서의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일본에서 성공했고 그 성공공식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시켰던 기업인만큼 회사는 일본식 그 자체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까지도 롯데 본사 사옥에는 이미 일본에선 옛날에 없어진 엘리베이터걸이 남아있었죠?
가족끼리 한국말로 의사소통 못하는 서열 5위 재벌 일가
마지막으로 오너 일가의 국적. 뭐 무수히 많은 말들이 나오지만, 일단 공식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국 국적입니다. 버린 적도 없고 걸친 적도 없고 그냥 그대로 쭉. 그리고 그 부인인 시게미쓰 하츠코는 일본 국적. 그리고 요절한 첫째 부인 故 노순화 씨의 딸인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은 한국, 시게미쓰 하츠코와의 사이에서 낳은 신동주·신동빈 형제는 한국·일본 이중 국적이었지만 1990년대에 한국 국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부인 조은주 씨는 재미교포로 미국, 신동빈 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마나미 씨는 일본입니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씨 역시 일본 여성과 결혼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가계도를 대충 듣고있자니...아무래도 한국보단 일본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죠? 일본에서 자녀를 낳았고, 학교를 다니게 했고, 사업을 했고 모든 삶이 일본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번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일본어 인터뷰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내내 일본과 미국에서 근무를 해온 터라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신동빈 회장은 그나마 1990년대 이후로 한국에서 근무를 해와서 보통 사람들이 100% 한국어 구사를 한다고 했을 때 60% 정도 구사를 한다고 하네요. 자, 어떻게 보시나요? 이쯤되면 '롯데 형제의 난'보단 '시게미쓰 일족의 난'이 더 어울리지 않나요?
P.S) 여담이지만, 지난 2014 소치 올림픽 당시 일본 롯데 가나초콜렛의 광고모델은 아사다 마오였습니다. 밴쿠버 올림픽 때도, 소치 올림픽 때도 롯데는 김연아가 아닌 아사다 마오를 열심히 응원했죠. 초콜렛으로 만든 스케이트 모형도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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