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마음을 돌리다
정명훈 지휘자 예술감독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횡령 허위사실유포 마에스트로
김인혜 전 서울대 성악과 교수의 파면 확정 이야기에 이어 연달아 음악계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네요.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2016년 시즌 재계약을 마쳤습니다. 서울시향은 정명훈 예술감독과 내년 시즌 총 아홉차례의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찾아가는 음악회'와 같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대한 재계약을 마쳤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졍명훈 감독과 '대안이 없다'는 서울시향의 끊임없는 구애 줄다리기는 싱겁게 끝났습니다.
정명훈 감독의 거취 논란은 작년 12월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서울시향의 일부 직원들이 당시 대표였던 박현정 前 서울시향 대표로부터 막말을 비롯해 성희롱을 당했다며 폭로했고, 이에 대해 정명훈 감독이 그들의 입장을 지지한 것이었죠. 하지만 박현정 대표는 자신에 대한 논란은 음모라며 그 배후에 정명훈 감독이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정 감독의 횡령 의혹을 제기했는데, 결국 박 전 대표가 사의를 표하며 정명훈 감독이 승기를 잡게 됩니다.
정명훈 지휘자 예술감독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횡령 허위사실유포 마에스트로
해가 바뀌어 2015년 1월 19일, 정명훈 감독은 신년 기자간담회를 가졌습니다. 50분동안 정명훈 감독은 자신이 부임한 이후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서울시향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밝혔습니다. 또한 취재진의 질문에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피력하며 과거 서울시가 약속했던 전용콘서트홀 건립과 서울시의 예산지원을 재계약의 전제조건으로 걸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기 직전,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된다'며 피아노 앞에 다가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와 '아라베스크'를 연주했습니다. 지휘자이기 이전에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정명훈의 연주에 미디어들은 앞을 다투어 그의 즉흥연주를 보도했고, 그 보도 속에는 예술혼에 불타는 한 음악인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틀 뒤 서울시는 정명훈 감독에게 위법사실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끝난 것 같던 논란은 일부 시민단체에서 정 감독에 대한 횡령 의혹을 고발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8월 중순, 경찰은 강제추행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받던 박현정 前 대표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그리고 8월말, 정명훈 감독은 조ㅈ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만히 있었더니 일이 엉뚱하게 돌아갔다"며 올해 연말로 계약이 종료되는 서울시향 예술감독직을 내려놓겠다는 '장군'을 둡니다. 당시 그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1월 기자회견에서 즉흥연주를 했던 것의 확장판 느낌이었습니다. 인터뷰의 핵심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한 마지막 발언이었는데요. 이를 포함한 인터뷰 내용을 몇 가지 살펴보죠.
내게는 음악이 중요할 뿐 원래 이런 책임 있는 자리(예술감독)에는 관심이 없었다.
예술감독으로서의 급여도 받지 않고, 지휘료도 시향 단원들의 복리 증진이나 인도적 사업에 쓰겠다.
이 문제(박현정 전 대표)는 기본적으로 서울시향 직원들의 인권 문제다.
이번 사태 덕분에 어려운 단어 하나를 배웠다. 나보고 '횡령'했다고 하는데…. 하나만 얘기하겠다. 이번 일 때문에 알아보니, 서울시향 연주 때문에 내가 쓴 항공료 6건, 도합 1억원 정도를 청구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단원들을 '내 천사들'(My Angels), 서울시향 단원들을 '내 자식들'(My children)이라고 불렀다. 부모 같은 심정이라는 뜻이다.
NHK 심포니는 실력이 탄탄하다. 걷기는 잘 걷고, 달리기까지 잘한다. 하지만 날지는 못한다. 서울시향은 좀 부족하지만, 날 때는 난다.
(고액 연봉 논란에 대해) 프랑스나 이탈리아, 일본이나 중국에서 모두 비슷한 수준의 지휘료를 받는다. 내 매니저는 '왜 한국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 더 좋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가 많은데'라며 불만이다. 그간 이룬 성과는 보지 않고 고액 연봉이라면서 험담만 하니 예술가로서 안타깝다.
정명훈, 8월 28일 조ㅈ선일보와의 인터뷰 中
출처: 조ㅈ선일보
정명훈 지휘자 예술감독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횡령 허위사실유포 마에스트로
조ㅈ선일보와의 인터뷰 속에서도 역시 정명훈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예술혼에 불타는 한 음악인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서울시향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정명훈을 지지하는 이들은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뛰어난 지휘자 한 명을 잃었다' '세계적인 한국인 음악가의 마지막 헝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카라얀이 살아 돌아와도 대한민국에선 결국 저렇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든다'며 안타까워 했죠. 전 이에 대해 정명훈이 아니라 베토벤이 환생했더라도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답해주고 싶습니다만. 그를 지지하는 이들의 목소리 중 백미는 바로 서울시향 단원들이었습니다. 재계약 거부 발표 당일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서울시향의 연주 후 무대 위 스크린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마에스트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마에스트로와 함께 할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떴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보지 못할 정도였죠. 저였다면 바로 재계약 문서 가져오라고 했을 겁니다. 역시 거장은 의연했어요.
이러한 줄다리기가 계속 되다가 9월 무렵 정명훈 감독이 서울시의회 간담회에 처음으로 나타나면서 재계약에 대한 예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간담회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화기애애했다구요. 그리고 결국 정명훈 감독은 재계약 문서에 싸인을 했습니다. "재계약 서류에 사인하는 순간 이런저런 시비가 이어질 것 같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던 정명훈 감독. 자신의 말처럼 이런저런 시비가 이어질 것은 당연히 예상을 하고 싸인을 했겠죠?
열띤 응원에도 불구하고 악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명훈 감독의 손 모양을 본 떠 콘서트홀을 설계하고, 정명훈 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유치하려는 계획을 세운 인천 아트센터. 2,600억 원의 사업비를 들인 이 곳의 관련 사업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정명훈 감독의 친형 정명근 씨인데요. 인천시에 각종 부동산 개발 관련 특혜를 요구한 것은 물론 41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에 39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정명훈과 갈등 빚은 박현정 전 대표를 고발했던 서울시향 직원,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
출처: 서울신문
정명훈 지휘자 예술감독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횡령 허위사실유포 마에스트로
자, 그런데 말입니다. 정명훈 감독의 재계약이 발표된 11일, 또 하나의 의미있는 뉴스가 터졌습니다. 바로 서울시향에서 정명훈 감독의 거취 논란을 촉발시킨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의 성추행 의혹. 자신이 성추행을 당했다며 호소문을 발표하고 박 전 대표를 경찰에 고소했던 서울시향 직원 곽모씨에 대해 경찰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입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거의 1년만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상황이 된 것인데요. 물론 법원의 판단이 남았지만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것은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던 과거의 사건이 결국 조작된 음모라는 것이죠. 그리고 정명훈 감독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알았던 혹은 흑막이었던...어쨌건 이를 지지한 것이구요.
정명훈 감독은 줄리어드 음악원과 메네스 음대 출신으로 74년 21세의 나이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1위 없는 2위로 입상해 한국 음악계에 쇼크를 주었고, 75년 미국 뉴욕청년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로 지휘계에 데뷔한 이후 25살의 나이로 거장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이끄는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본격적인 지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고, 2006년 서울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정식 영입되어 서울시향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누나인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함께 정트리오로 활동하기도 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죠. 한국 국적의 음악가 중 정명훈만큼 세계 음악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쇼팽 콩쿨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김연아 선수가 벤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만큼의 파장이 있긴 하지만 정명훈 감독이 가진 무게감에는 아직 다다르지 못하죠. 분명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음악가인 동시에 한국이 자랑할만한 음악적 역량을 가진 세계적인 지휘자인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정명훈 감독이 가진 음악성이 횡령 혐의를 비롯한 박현정 전 대표와의 갈등 문제 등을 모두 덮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대통령이 된 MB 정권이 4대강과 자원외교, 그 외에 무수히 많은 것들로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를 어떻게 망쳐놓을 수 있는지 두 눈으로 보았고, 온 몸으로 체감했습니다. 그가 "이것은 인권문제"라고 말했던 박현정 전 대표 사태는 허위사실임이 경찰조사에서 밝혀졌고, 그에게는 사건 당시의 배후, 흑막이었다는 강한 의혹이 남아있습니다. 그의 형은 동생의 '음악적 가치' 뒤에 숨어 국가를 상대로 횡령을 저질러 실형을 받았으며, 그 자신 역시 서울시민들의 피같은 세금을 어지럽게 사용한 흔적에 대해 논리적으로 납득할만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을 외친 정명훈, '인권'에 대해 다시 한번 입을 열어주세요
정명훈 지휘자 예술감독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횡령 허위사실유포 마에스트로
"음악이 중요할 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기자들 앞에서 피아노 연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순수한 음악의 혼'을 가진 한 음악가의 모습을 보여온 정명훈 감독. 설령 그가 당시 박현정 전 대표 사태의 배후가 아니더라 할지라도 그가 박 전 대표와의 갈등에서 '인권'을 운운하며 적극적으로 나서 이를 지지한만큼 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설단체가 아닌 공공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시향의 예술감독이라면 자신에게 쏟아진 횡령 의혹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그가 베토벤 할아버지라 할지라도 그가 만들어내는 감동만으로는 이를 덮을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음악가니까' '그가 아니면 서울시향은 어쩌려고' 와 같은 말로 쉴드를 칠 수 있는 것이 아닌거죠. 그에 비하면 먼지만큼이나 보잘 것 없는 음대 출신의 일개 블로거이지만, 더 이상 자신의 숭고한 음악을 더럽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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