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2008 평창 동계올림픽,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
8일 오후 8시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회식을 시작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23번째 동계올림픽인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한국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이후 30년 만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평창은 두 차례 유치를 실패하고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개최지로 선정되었는데요. 이로써 한국은 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에 이어 동·하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연 5번째 나라가 됐습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슬로건 아래 총 92개국 2,920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참가 국가와 선수 인원에서 모두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아, 동계올림픽 역사상 100개 이상의 금메달이 걸린 최초의 대회이기도 하네요. 에콰도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에리트레아, 코소보, 나이지리아 등 6개국은 평창에서 첫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구요. 국가 주도로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러시아는 IOC의 엄격한 검증을 통과한 168명의 선수만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소속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백두혈통'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방남, 그리고 평창 외교
개회식에 앞서 가장 이슈가 됐던 뉴스는 김정은 북한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포함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이었습니다. 전용기를 타고 서해 직항로를 통해 9일 오후 1시46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KTX를 타고 평창으로 이동하여 사전 리셉션, 개회식 등에 모두 참석했는데요.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방남은 북한의 로열패밀리, 소위 '백두혈통'이 최초로 한국 땅을 밟았다는 것에 꽤 커다란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한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부터 급속도로 남북한이 해빙 모드에 접어들면서 평창 올림픽을 진정한 평화 올림픽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네요.
개회식에 앞서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최로 사전 리셉션이 있었는데요. 이 자리에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 마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이명박 전 대통령 등 국내외 주요인사 200여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를 통해 다자 외교무대를 펼치며 '한반도 운전자론'을 평창 외교의 시험대에 올려놨죠. 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나란히 지각을 해 참석자들이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고 하구요. 특히 펜스 부통령은 리셉션장에 불과 5분 가량을 머물렀다 외교적으로 결례라는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리를 떠나 김영남 위원장과 한 테이블에 배치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뤘죠. 악수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K-Pop,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 소프라노 황수미, 드론 오륜기 쇼, 김연아의 성화 점화까지
최근 한반도를 매섭게 몰아쳤던 한파로 인해 개회식을 찾은 관객들의 방한 문제가 꽤나 심각하게 불거졌었는데요. 조직위원회 측에서 수 차례 반복적으로 방한에 각별히 유의해 줄 것을 공지해 관객들이 철저하게 준비해 온데다 하늘이 도운 것이닞 당초 예상보다 기온이 높았습니다. 또한 조직위 측이 준비한 방한 6종세트(손핫팩, 발핫팩, 발열방석, 방한판초우의, 무릎담요, 털모자)의 성능이 그간의 비아냥과는 다르게 그 역할을 다했다는 평이 돌더군요. 스타디움 구조상 귀빈석이 제일 추웠다던데 해외 정상들은 어땠을지 모르겠네요.
오후 8시부터 10시 10분까지 '행동파는 평화(Peace in motion)'라는 주제로 진행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은 한국의 전통문화 정신인 조화와 현대문화 특성인 융합을 바탕으로 3천여 명의 출연진이 겨울동화 같은 이야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종소리와 함께 시작된 개막 공연은 강원도의 다섯 아이들과 백호, 단군신화의 웅녀,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인면조,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 22개 등이 등장하며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전 세계에 알렸죠. 이후 강광배, 이승엽, 박세리, 황영조, 서향숙, 임오경, 하형주, 진선유 등 스포츠 스타들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입장한 뒤 전통의장대의 연주에 맞춰 애국가가 울려퍼졌습니다.
이후 있었던 선수단 입장은 올림픽 관례에 따라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선수단이 가장 먼저 입장했고, 이후로는 한글순으로 국가별 입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선수단이 입장하는 동안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 신중현의 '미인', 한명숙의 '노란셔츠 입은 사나이', 조용필의 '단발머리', 김완선의 '리듬 속에 그 춤을'은 물론이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트와이스의 'LIKEY', 빅뱅의 'FANTASTIC BABY', 방탄소년단의 'DNA', 레드벨벳의 '빨간 맛' 등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흥겨움을 더하기도 했죠.
눈길을 끌었던 것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당시 근육질 몸매로 눈길을 끌었던 통가의 타우파토푸아가 다시 한번 오일을 바른 몸매를 드러낸 채 입장을 했다는 거. 리우 올림픽 당시는 태권도 종목에 출전했는데, 이번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로 변신, 도전 정신의 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림픽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하기도 했다는데요. 롤러 스키를 타며 훈련을 시작해 6번에 걸친 실패를 맞본 끝에 지난달 21일 아이슬란드 이사피외르뒤르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크로스컨트리 10km 프리에 출전, 6위를 기록해 평창에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선수단 입장에서 가장 기다려졌던 순간은 남북한 선수단의 공동 입장. 개최국이기 때문에 마지막인 91번째로 입장을 했는데요. 한국의 원윤종·북한의 황충금 선수가 공동기수를 맡아 한반도기를 들고 리믹스된 아리랑에 맞춰 들어오는 순간 스타디움은 환호와 박수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남북한 공동입장은 지난 2007 장춘 아시안게임 이후 11년 만이었는데요. 귀빈석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악수를 나누며, 평창 올림픽이 이끌어낸 평화의 순간을 보는 이들에게 강렬히 각인시켰습니다.
선수단 입장이 끝난 후 시작된 2차 공연에서는 김남기 소리꾼의 정선 아리랑을 시작으로 현대무용과 비보잉, 증강현실 기술 등을 이용해 한국의 미래와 현재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김남기 소리꾼의 공연 도중 붉은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무대에 난입, 김남기 소리꾼 옆에서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가 끌려 나갔죠. 그리고 이건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남성은 LED 장비를 이용한 '소통과 연결의 세상' 공연 때도 또 다시 무대로 걸어나왔다가 제지를 당했다고 합니다. 국적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
이후 이희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과 바흐 IOC 위원장이 연설을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을 축하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평창!"이라고 인사를 한 바흐 위원장은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감사를 빼먹지 않았으며, "남북 공동입장은 전세계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전세계가 함께 이런 경험을 나누기를 기대한다. 함께가요 평창!"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개회를 선언했죠.
소프라노 황수미의 올림픽 찬가 공연에도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한국의 미를 극대화한 한복 드레스를 입고 올림픽 찬가를 열창한 황수미는 2014년 세계 3대 음악 콩쿠르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 우승을 차지하는 등 홍혜경, 조수미, 신영옥으로 연결되는 3인의 소프라노를 잇는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죠. 아마 이번 공연으로 더더욱 대중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까 싶네요.
개회식에서 가장 큰 옥의 티로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 후의 공연이었던 전인권, 이은미, 하현우(국카스텐), 안지영(볼빨간사춘기)의 무대였습니다. 존 레논의 'Imagine'을 불렀는데요. 워낙 독특한 매력을 가진 네 사람이라 조화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굳이 영국 국적인 존 레논의 노래를 영어로 평창에서 불러야 했는지도 의문이었습니다. 한국에도 얼마든지 평화와 화합을 위한 노래 많잖아요? 저였으면 한영애의 '조율'을 선곡했을 겁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드론쇼.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를 드론으로 표현해 '드론 오륜기'를 만들어낸 것인데요. 1,218대의 드론들이 스노보드를 타는 사람의 모습을 공중에서 형상화하더니 순식간에 오륜기를 그려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텔의 기술로 이루어진 것인데, 드론쇼는 강렬한 바람을 비롯해 안전 문제 등을 고려, 지난해 12월 정선 알파인스키센터에서 사전촬영을 해두고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질주하는 라이브 영상과 절묘하게 결합해 장관을 연출해낸 것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화봉송 최종주자. 어느 올림픽에서건 과연 누가 마지막으로 성화를 넘겨받아 달항아리 성화대에 점화를 할지 관심이 쏠리는데요. 사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아니 세계인들은 '피겨퀸' 김연아가 최종주자로 나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세계인들의 머릿속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김연아의 모습, 그리고 벤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은반 위의 요정 같았던 김연아의 모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죠.
반전은 없었지만 감동은 더한 성화 점화였습니다. '쇼트트랙의 전설' 전이경의 손에 스타디움에 들어선 성화는 '골프여제' 박인비, '반지의 제왕' 안정환의 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인 박종아·정수현 선수에게 전달되어 성화대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섰죠. 그 성화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바로 김연아. 하얀 드레스를 입은 김연아는 성화를 바로 받지 않고 달항아리 성화대 아래 있던 빙판에서 넋을 놓게 만드는 연기를 펼쳐 보인 뒤 성화를 넘겨받아 얼음덩이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얼음덩이에서는 88 서울올림픽의 오마주인 30개의 굴렁쇠를 통해 불기둥이 올라가 달항아리에 성화가 타올랐죠.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었긴 했지만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폐회식 총예산이 600억 원으로 베이징 올림픽과 소치 동계올림픽의 1/10 수준인 것을 비롯해 밴쿠버 동계올림픽(1,715억원), 런던올림픽(1,839억원) 등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뭐 꼭 예산 문제가 퀄리티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은 그간 개최지를 상징할 만한 메가 이벤트 경향이 짙었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죠.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인 송승환 총감독과 개막식 총연출을 맡은 양정웅 감독, 폐막식 총연출을 맡은 장유정 감독. 고생하셨고, 앞으로도 남은 폐막식 잘 마무리 지어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우리 모두 평창의 열정 속으로 빠져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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