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CBS 노컷뉴스에서는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제목의 사진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응원을 위해 방남한 북한 응원단이 지난 10일 있었던 코리아 VS 스위스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북한 가요 '휘파람'을 부르는 과정에서 '미남 가면'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국가주석의 얼굴을 사용한 '김일성 가면'이라는 내용이었죠. 당시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의 북한 고위급 대표단 인사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해당 가면의 얼굴이 김일성이 아니냐는 억측이 나오기 시작했고,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바른정당·국민의당이 이를 넙죽 받아 먹으며 11일 하루종일 정치권에서 공방이 일었습니다. 아무리 대화국면에 접어들었다지만 김일성은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일으킨 원흉이자 분단의 고착화, 김씨왕조 3대 세습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죠.
우선 정부의 공식 발표를 들어보죠. 통일부에서는 보도 해명자료를 통해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응원단' 제하 보도는 잘못된 추정임을 알려드린다"며 "현장에 있는 북측 관계자 확인 결과, 보도에서 추정한 그런 의미는 전혀 없으며 북측 스스로가 그런 식으로 절대 표현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보도를 한 CBS 노컷뉴스 역시 "독자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통해 "해당 가면 사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 11일 새벽 해당 기사를 노컷뉴스 홈페이지는 물론 포털사이트에서 삭제한 상태로, 독자 여러분께 혼란을 끼친 점 사과드리며 앞으로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에 더욱 힘쓰겠다"고 오보임을 인정했죠.
하지만 보수 야당은 노컷뉴스가 오보임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세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자유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우리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남북단일팀에 희생되어 운 것도 모자라 김일성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경기를 펼치게 된 것"이라며 "누가 봐도 김일성 얼굴인데 통일부 눈에만 달리 보입니까? 이젠 최고 존엄이 흰 것을 검다하고 검은 것을 희다해도 믿어야만 하는 북한식 사고방식까지 우리가 주입받아야 합니까. 하기사 미남 운운하는 변명도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어차피 저들에게 최고 미남은 김일성일 테니까"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바른정당도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권성주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그 가면이 김일성인지 배우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최고 존엄을 가면으로 만들 리 없다는 준비된 탈출구를 우리 정부가 지켜주었고 IOC는 함구하였다"며 "미국 팀 경기장에 오사마 빈 라덴을 닮은 배우 가면을, 우리 팀 경기장에 이토 히로부미를 닮은 배우 가면이 등장해도 '잘못된 추정'이라면 그만이다"라는 극단적인 비유를 들고 나왔습니다. 더불어 하태경 의원 역시 SNS에 글을 올려 "가장 중요한 본질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가면을 남북 단일팀 응원도구로 쓴 것이 적절했느냐'이다. 통일부의 발표처럼 미남배우의 얼굴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미남배우 얼굴'이 김일성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북한 기성세대에게 최고의 미남 기준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죠.
국민의당은 다소 상식 밖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김철근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감정이 더욱 악화될까 우려스럽다"면서 "정부는 김일성 가면 응원에 대해서 '김일성이 아니다' 하면서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우리 국민과 언론이 보기에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인 것이다. 국민정서를 고려한 응원이 되도록 적절한 조치가 필요한 일"이라는 주장을 펼쳤는데요. 우리 국민이 국민의당을 보고 '국민의당'이 아니라고 하면 그 당도 '국민의 당이 아닌 당'이 되는 걸까요?
한편, 이러한 야당의 공세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일성 가면 논란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 응원노래에 맞춘 단순 미남 가면이며, 최초로 보도한 언론사는 해당 기사를 이미 삭제했고, 정파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공식적으로 사과 표명까지 한 상황"이라며 "부화뇌동하여 꼬투리 잡아 재 뿌리는 야당의 행태는 심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야당의 끊임없는 평창 동계올림픽 딴지에 대해 "개막 후에도 올림픽에 대한 어깃장을 지속하는 모습을 볼 때 대체 어느 나라 정당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낡은 색깔론,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 침소봉대로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가 야당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죠.
정의당 역시 마찬가지. 김동균 정의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자유한국당은 한 언론보도를 인용하며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전 주석의 얼굴을 응원도구로 사용했다면서 북한 응원단을 돌려보내라는 둥, 사과를 하라는 둥 호들갑을 떨고 나섰다"고 비판하면서 "자유한국당이 마구잡이로 불러일으키는 광풍에 슬그머니 합류한 국민의당 역시 한심하긴 마찬가지"라고 핵심을 집어냈습니다. "국민과 언론의 눈에 김일성으로 보이면 그게 맞는 거라니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라며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이라고 팩트폭행을 해버렸네요. 민주평화당 최경환 대변인도 "북한이 자신들의 '최고 존엄'인 김일성의 얼굴을 응원에 쓸 일이 없다"면서 "괜한 트집을 잡지 말고 자제하라"고 촉구했구요.
그렇다면 전문가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이번 논란에 대해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에서 김일성은 신적인 존재로 과거 김일성 배지를 분실할 경우 정치범 수용소(행)까지 각오해야 하는 북한에서 사실 '영원한 주석'의 얼굴, 그것도 젊은 시절의 얼굴을 가면으로 만들어 응원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 자체가 신성모독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영상 하나를 소개합니다. 해당 영상은 지난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방남했던 북한 미녀응원단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요. 북한 응원단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울먹이며 버스에서 내렸는데, 알고보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이 야외에 걸려 있어 비가 오면 젖는다며 이를 떼어내 사진이 접히지 않게 '고이' 모셔가는 일이 있었죠. "하늘의 태양을 이런데다 모시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응원단원의 말이 무척이나 인상깊고 남북한의 의식 차이를 느끼게끔 하는데요.
많이 아시다시피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은 '태양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북한 최고의 기념일입니다. 김일성은 북한에서 태양이고, 신인 존재죠. 이 부분에서는 아쉽게도 반인반신 박정희가 졌습니다...반쪽짜리라... 김정일이 인쇄된 현수막이 비를 맞을 수도 있다며 울며불며 현수막을 떼어가던 북한 응원단. 과연 이들이 김일성의 얼굴로 가면을 만들어 '눈을 파내고' 이를 한 손으로 흔들며 응원을 할 수 있을까요? 가면을 땅에, 그것도 면상 쪽으로 방치해둔 사진도 있던데, 김일성 가면이었다면 저 단원은 북한에 가자마자 아오지 탄광에 가거나 공개처형을 당하지 않을까요?
오매불망(寤寐不忘) 북한과 생각으로 머릿 속이 가득찬 자유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여러분. 종북빨갱이 짓 좀 그만 하시고 대한민국의 정당답게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정권 같았으면 종북좌파로 의심된다고 국정원에서 사찰 나올 수준입니다. 그러다 태극기 집회 나오시는 애국 시민들한테 혼나요.
오늘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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