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특화시장 화재, 점포 227개가 화마에 사라졌다
22일 밤11시경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 소방 인력 361명과 장비 45대를 투입해 약 두시간여 만에 큰 불길을 잡은 뒤 대응 1단계로 하향 조정해 잔불 정리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야밤에 난 화재라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점포 227개가 모두 불에 타버렸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만한 점 하나는 수산물동 점포의 불이 농산물동으로 번지진 않았다는 점 뿐...
이후 시장 건너편 도로 CCTV 등을 분석해 본 결과 오후 10시 52분경 시장 1층 수산물동의 한 점포에서 스파크가 튀며 불꽃이 일기 시작했고, 이 불꽃이 5분 만에 점포 전체를 밝힐 정도로 커지더니 15분쯤 지난 후엔 인근 점포까지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자동화재속보기는 불꽃이 시작된 지 16분 만인 오후 1시 8분경 작동했고, 119 종합상황실로 자동 접수돼 선착 소방대도 3분 만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죠. 다만 점포들이 이어져 있는 데다 쉽게 불이 번지는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구조에 강퐁까지 더해져 불길이 급격히 확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스프링쿨러 역시 모두 적상 작동했구요.
1차 약속대련 끝? 윤석열 - 한동훈 '화마를 딛은 화해'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별다른 외부 공식 일정이 없던 날이었지만, 피해 상황을 보고받곤 직접 현장을 돌아보기로 결정, 긴급 방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날 언론에선 이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방문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날 당 사무처 순방 일정이 있었지만, 서천 화재 소식을 듣고 일정을 바꿔 현장을 방문한 것. 요 며칠간 시끄러웠던 대통령실의 한동훈 위원장 사퇴 요구 논란 등으로 인해 두 사람이 시차를 두고 화재 현장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됐었지만 한동훈 위원장이 먼저 도착해 대통령을 기다렸고, 두 사람이 함께 현장을 점검하며 그야말로 극적인 '브로맨스'를 선보였죠.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그리고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주장한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의 사천(私薦) 논란, 향후 선거 판세는 물론 장기적으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주목도가 어마어마했는데, 이렇게 극적으로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죠.
서천시장 상인들 "대통령은 우리와 마주치지도 않았다" 진실 공방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화재가 난 충남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을 방문하고도 정작 피해 본 상인들은 만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보도에 따르면 화재 현장에서 대부분 밤을 지새운 상인들에게 23일 오전 7시경 김태흠 충남지사가 나타나 "오늘 윤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께서 여러분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방문 예정"이라고 알려줬고, 상인들은 2층 먹거리동에서 이를 기다렸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먹거리동 1층을 찾아 군의회 의장 등과 얘기를 나눈 뒤 5분여 만에 건물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것.
이에 상인들은 "밤을 새우고 아침부터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냥 갔다. 상인들을 만나지 않으려면 여길 뭐 하러 왔나. 불구경하러 왔냐"고 따져 물었고, 현장의 경찰 관계자는 "현장이 어수선하고 동선이 복잡해 (안전을 이유로) 상인들과 면담이 취소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고 하는데요. 일부 상인들이 대통령을 만나려 했으나 경호원들이 상인들을 막아섰고 몸싸움까지 벌어졌었다고 합니다. 뒤늦게 김태흠 충남지사가 상인들에게 "여러분들이 2층에 모여있는 걸 전혀 몰랐다. 1층에 있던 사람들이 피해 상인들인 줄 알았다"며 "경호처도 실수했지만, 저 또한 여러분들이 2층에 있는 줄을 몰라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고 하죠.
하지만 이러한 보도가 나오자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현장에 나온 150여 명의 피해 상인들은 대통령의 방문에 감사를 표하고 눈물로 어려움을 호소했다"며 "상인 대표는 '대통령께서 직접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대통령의 방문에 화답했고 현장 상인들 모두가 대통령에게 박수로 감사를 보냈다"고 밝혔죠.
그러나 오일환 충남 서천수산물특화시장 상인회장은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상인들은 먹거리동 2층에 대기하고 있었다. 대부분 다 있었으니, 최소 200명이 넘는다. 대통령께서 먹거리동 1층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오히려 수행원과 경호원들에게 '나 상인회장인데 들어가야 한다, 들여보내 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윤 대통령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누군가 와서 '상인회장님 어디 있냐'고 찾아서 1층에 들어가게 됐다"며 "뵙자마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검토해 달라, 도와달라'고 했다. 대통령께서는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즉시 검토하고 혹시 어려운 경우에도 이에 준하는 지원을 하겠다'고 짧게 답변하셨다. 시간상 약 10초 정도 됐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상인 대표에게 상인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인원을 파악해 달라'고 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 해명에 대해서도 "그런 건 없었다. 사전에 전달받은 사항도, 현장에서 전달 받은 사항도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죠.
자, 그럼 윤석열 대통령이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장에 있었다던 '150여 명의 피해 상인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분명 윤석열 대통령이 꽤나 몰려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사진도 있는데 말이죠. 그것은 다름아닌 오세옥 충남도의원, 노박래 전 서천군수, 김경재 서천군의회의장, 이지혜 서천군의원 등 군의원·도의원을 포함한 지역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즉, '착각'이었든 '고의'였든 윤석열 대통령은 1층에서 이번 서천시장 화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들을 만나고, 정작 피해를 본 상인들은 2층에서 경호처에 의해 대통령과의 면담이 가로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불안돈목'은 말 할 줄 알아도 현장의 진실에 대해선 말 못하는 국민의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절규하는 피해 국민 앞에서 그걸 배경으로 일종의 정치쇼를 한 것은 아무리 변명해도 변명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 눈높이는 사과로 끝내는 봉합쇼 정도가 아니다. 뇌물을 받았으면, 범죄를 저질렀으면 수사를 받고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비판했고, 홍익표 원내대표 또한 "자신들의 권력 다툼에 대한 화해의 현장에 재난 현장을 장식품으로 사용한 게 아닌지 매우 유감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불안돈목(佛眼豚目)'을 언급해가면서 "저열한 정치 공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고통 앞에 하던 정쟁도 멈추어야 함에도 민주당은 또다시 정쟁의 불씨를 키우고만 있다"고 주장했죠. 또한 "아무리 대립이 일상화된 정치권이라 할지라도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며 "민주당에 의해 이미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국민적 슬픔에서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번만큼은 시장 상인의 아픔을 정치 선동에 이용하지 말라"고 덧붙였습니다.
보수 존객의 눈에도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나 봅니다. 정규재 전 한국경제 논설위원은 "난 현장인 서천시장에서 벌어진 윤과 한의 아주 부적절한 정치 연극"이라며 "어이가 없다. 무슨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불에 타 엉망이 되어 버린 잿더미에서 윤 대통령과 한동훈이 무슨 화해 연극을 한다는 말인가"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네티즌들 역시 "아무리 급해도 화해 이벤트 자리가 꼭 화재현장어어야만 됐나. 천벌 받는다" "화재현장 위로 하러 갔으면 피해자 위로하고 하는 것이 메인이 되어야지. 한동훈 윤석열 둘 사진 찍은 것이 메인이 되어 버렸네" "현지 상인들과 주민들 안 만나려면 도대체 왜 간 거냐? 정말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비난을 쏟아냈죠.
진짜 뭐랄까요..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손모가지 날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구라치다 걸렸는데... 불과 이틀 만에, 살아있는 권력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갈등설도 그렇고, 그 갈등이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개입이라는 점도 그렇고, 그 둘이 만나 훈훈한 브로맨스를 연출한 것이 227개 점포가 불에 탄 화재 현장이라는 것도 그렇고... 이러니까 정말 이준석 대표가 말한 약속대련이 자꾸 뇌리에 스치잖아요... 그나저나 민방위복은 왜 입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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