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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사망, 일본 출신의 전설적인 지휘자 별이 되

자발적한량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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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낳은 전설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지난 6일 별세했습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오자와 세이지가 도쿄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부전으로 별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향년 88세.

 

오자와 세이지는 1935년 만주국 펑톈성 펑톈(현재의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치과의사이자 만주국 협화회 장춘지부장이었던 아버지와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서양음악과 가까이 지냈다고 합니다. 1941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1945년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오자와 세이지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중학교 시절 럭비 경기 도중에 손가락을 다쳐 피아니스트 대신 지휘자의 길을 걷기로 꿈을 바꿉니다.

 

1951년 어머니의 먼 친척이자 지휘자인 사이토 히데오가 운영하는 지휘학원에 입학했고, 사이토의 권유로 1952년 토호여학교 고등부(남녀공학)에 편입합니다. 그리고 1955년 도쿄의 토호단기대학에 입학해 대학 졸업 후 1958년엔 군마 교향악단을 지휘하거나 도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하죠.

 

1959년 스승인 사이토 히데오의 조언으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그해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지휘 콩쿠르인 브장송(Besançon)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합니다. 그리고 그는 독일의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사사하고 미국의 뉴욕필하모닉에서 레너드 번스타인 재임 시절 부지휘자로 일하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하게 되죠. 1961년 카네기홀 입성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무대를 넘나들며 수많은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연주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1962년 오자와 세이지는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를 관두고 일본 최고 명문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되는데, 당시 20대 후반의 신참 지휘자였던 오자와 세이지를 NHK 심포니의 권위적인 단원들이 극심한 마찰을 겪은 뜻에 오자와의 지휘를 거부하며 파국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오자와 세이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복귀했죠.

 

오자와 세이지는 1965년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취임해 1969년까지 재임했고, 1966년에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처음으로 지휘하며 같은 해 하반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도 공연을 합니다. 1969년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를 지휘하며 오페라 지휘자로 데뷔하기도 했죠.

 

1968년엔 일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 및 음악고문을 맡았는데, 1972년 후지TV가 재정난을 이유로 운영을 포기하자 일부 단원들을 이끌고 나와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뒤 자신은 음악 고문이 됩니다. 그는 1970년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해 1976년까지 재임합니다. 1972년부터 필립스와 계약을 맺고 음반을 녹음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 악단이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죠. 당시만 해도 세계 무대를 누비는 아시아인 지휘자는 드물던 시절이었기에 오자와 세이지의 이러한 활동은 그야말로 독보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자와 세이지는 1973년 불과 38세의 나이로 미국 5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며 자신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습니다.  그는 무려 29년동안 보스턴심포니의 최장수 지휘자로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보스턴 심포니는 1994년 탱글우드 페스티벌 신축 공연장을 건립한 뒤 오자와 세이지의 공로를 기리는 의미로 '세이지 오자와 홀'이라고 명명하죠.

 

2002년에는 동아시아 출신 최초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 무대에 올라 일본 클래식계의 역사를 새로 쓴 그는 같은 해 보스턴을 떠나면서 동양인 최초로 세계 최정상 악단인 빈 국립 오페라단 음악감독에 취임합니다. 카라얀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음악감독만 맡았던 지휘자 중에선 빈 국립 오페라단 역사상 최장기 음악감독으로 재임하죠.

 


오자와 세이지는 2010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명예단원으로, 2016년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명예단원으로 추대됩니다. 또한 하버드 대학교를 포함한 5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0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하죠.

 

2010년 식도암 수술을 받은 데 이어 탈장, 폐렴 등 노후에 병치레가 잦았던 오자와 세이지. 2015년 80세를 맞이한 이후로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전반부는 악단 내 단원에게 지휘를 맡기거나 실내악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후반부 지휘만 맡는 방식으로 공연을 해나갑니다. 2016년 10월 1일 산토리홀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열린 빈 필하모닉 도쿄 갈라 콘서트를 주빈 메타와 나눠서 지휘했는데, 앵콜곡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올라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이 공연이 50년간 이어온 오자와 세이지 - 빈 필하모닉의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

 

2020년부턴 거동 자체가 힘들어져 휠체어 없인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 오자와 세이지. 하지만 2022년 11월 22일 공연 영상을 우주 탐사선으로 송신해서 생중계하는 One Earth Mission 프로젝트에 참여해 일본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에 위치한 킷세 문화 홀에서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을 연주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지휘를 마친 오자와 세이지는 연주를 마친 뒤 눈물을 흘렸고, 이 공연이 오자와 세이지의 생애 마지막 지휘이며,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죠.

 

1993년과 2004년 총 두 차례에 걸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 공연을 했고, 2007년에는 빈 국립 오페라단을 이끌고 내한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한 바 있는 오자와 세이지.  

 

제가 존경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인 오자와 세이지의 사망에 애도를 표하면서, 그의 열정은 영원히 남아 음악 속에 숨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1977년 보스턴 심포니와 오자와 세이지가 녹음한 말러 교향곡 1번을 들으면서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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