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교황청 "프란치스코 교황 오전 7시 35분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습니다. 21일 바티칸은 영상을 통한 성명에서 "교황이 이날 오전 7시 35분(현지시각 기준) 88세를 일기로 선종했다"고 밝혔습니다. 불과 하루 전이었던 20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렸던 부활절 야외 미사에 모습을 드러낸 지 하루 만이라 가톨릭 신자들의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대신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하긴 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후반 성 베드로 대성전 2층 중앙 발코니로 나와 광장에 운집한 약 3만 5000명의 신자 및 순례자들과 마주했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채 등장한 교황은 "형제자매 여러분, 행복한 부활 대축일입니다"라고 인사했고, 군중은 "교황 성하 만세"라고 화답하며 환호와 박수를 보냈죠. 교황은 코마스트리 추기경이 대독한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 인도적 지원을 통해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는 굶주린 이를 도와야 한다"며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전쟁 지역의 휴전과 평화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난 이후 차량을 타고 성 베드로 광장 주변을 돌며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죠. 그리고 이탈리아를 방문한 JD 밴드 미국 부통령과 비공개 회담을 갖기도 했구요.
본명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베르골료)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출신의 철도노동자였죠.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과 학사를 취득한 뒤 신학교에 입학했고, 1958년에는 예수회에 입회해 33세 생일을 4일 남기고 수사신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사제가 되기로 한 계기는 상당히 독튼한데, 12살의 어린 나이에 아말리아라는 여자아이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받아주지 않으면 신부가 되겠다"고 청혼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후 수도 고해 사제,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 산 미구엘 대학 신학교수,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주교, 그리고 대주교를 역임한 뒤 200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는 한때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에 대해 침묵했던 전적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인권단체로부터 고발된 적도 있지만, 훗날 앞에서는 침묵했지만 뒤에서 몰래 은신처를 제공하고 해외도피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그가 구한 반정부 인사는 최소 20~30명, 최대 1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전임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의 문제로 퇴위하자 치러진 콘클라베에서 이틀째인 2013년 3월 13일 오후 7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교황청은 부패 스캔들과 섹스 스캔들로 시끄러운 상황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청렴하고 교리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사회적으로는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었죠. 그는 그렇게 첫 남미인 교황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검소함이 몸에 배어있던 프란치스코 교황, 동성애 관련 논란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부터 화려한 관저가 아닌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였고, 바티칸에서 대주는 비행기 값을 빈민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으며, 운전기사도 따로 두지 않고 항상 사복 차림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식사는 직접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 손수 요리를 해서 먹을 정도로 검소했다고 합니다. 교황에 선출되자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처럼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놓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말해 폭소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죠.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예르바 마떼를 즐겨 마시는 편이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고, 아르헨티나 자국 리그 팀인 CA 산 로렌소의 열성적인 팬클럽 회원이었다고 하죠.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혼모가 낳은 자녀에게 세례성사 주는 것을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으며, 콘돔 사용을 반대해서 홍역을 치른 베네딕토 16세와는 달리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밝힌 적도 있을 정도로 진보적인 성향을 띄었습니다. 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지도자로서는 대중적인' 교황이라고 평가하죠. 교황명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삼은 것만 보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청빈을 강조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관심이 많앗습니다.
그는 가톨릭 교리에 따라 동성 간 성행위와 동성결혼을 반대하지만, 사생아에게 세례성사를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동성결혼과 동성애자 부부의 입양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 개개인들을 탄압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죠. 교회가 교리에 얽매여 신자들을 정죄하는 것보다는 교리와 실제 소외당하는 소수자들의 처지에 대한 배려를 조화시키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2020년 10월 동성애자들도 주님의 자녀들이며 하나의 가족이 될 권리를 갖고 있음을 공식 인정했죠. 2023년 1월 인터뷰에서 여전히 전 세계 많은 국가가 동성애를 법적으로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비판하며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다"라고 말했으며,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도 '하느님의 자녀'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10월 31일 스웨덴 룬드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해 서방 교회 분열의 시발점이 된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을 칭송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성직자들의 범죄에 대한 미온적 대응 및 은폐 가담 의혹 등 바티칸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2018년 9월 중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주교 임명권을 중국 정부에 양보하고 중국이 자체적으로 임명한 주교 7명을 정식 주교로 승인, 중국 주교단의 세계주교시노드 참석도 승인하면서 중국과의 무리한 타협을 했다는 비판도 받았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러시아에 우호적인 견해를 여러 차례 표명하고 전쟁의 책임이 서방에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한국 찾은 두 번째 교황,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을 잡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4일 과거 조선왕조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던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식과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바 있습니다. 이는 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방한한 지 25년 만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좌 착좌 후 두 번째 아시아 지역 방문, 첫 동아시아 방문이었죠.
그는 8월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 사전에 예고된 헬리콥터가 아니라, KTX를 이용하여 참석해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죠. 이는 교황이 생전 처음으로 고속열차를 탔던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평소에도 검소한 생활을 해온 프란치스코 교황답게 기아 쏘울을 '포프모빌'(교환의 의전차량)로 사용하기도 했죠.
또한 두 차례에 걸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났고,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는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기도 했습니다. 출국하면서 세월호 참사 실종자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한 메시지를 자신의 서명과 함께 실종자 가족에게 전하기도 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는 교황청으로 돌아가는 전세기에서 연 기자회견 중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도 말했죠.
2018년 10월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하자 "공식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하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답했고, 그해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4월29일 삼종기도 후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진지한 여정을 달성하고자 하는 남북한 지도자들의 용기있는 약속에 기도로 동행할 것"이라고도 하는 등 한반도 통일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또한 2021년 6월 유흥식 대주교를 한국인 최초의 교황청 장관으로 지명했고, 2027년 8월 세계청년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알리기도 했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 14일 폐렴 치료를 위해 이탈리아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했고, 이후 4차례의 호흡곤란 위기를 겪은 끝에 지난달 23일 퇴원했습니다. 이후 거처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지내며 치료와 업무를 병행 중이었죠. 퇴원 당시 의료진은 교황이 회복을 위해 최소 두 달간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안정을 취해야 하며 대규모 인원을 만나는 일정을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교황은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제한적 범위 내에서 대면 활동을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었죠. 교황청은 이달 초 흉부 X-레이 검사 결과 교황의 폐 감염 상태가 다소 호전된 사실을 확인했으며, 운동 능력, 발성 기능, 호흡 상태 등 또한 개선되고 있다고 알리기도 했구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함에 따라 교황청은 15일 안에 콘클라베를 열 예정입니다. 전 세계 총 253명의 추기경 중 나이가 80세 미만인 추기경 140명이 콘클라베 일정이 확정되는대로 바티칸의 시스타나 성당으로 집결해 콘클라베를 시작하게 될 예정입니다. 차기 교황은 누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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