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과도 같았던 국민의힘의 어린이날·부처님오신날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 무려 두 개의 공휴일이 겹친 5일 국민의힘에서 평화와 안녕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 간 단일화를 놓고 김문수 후보 측과 당 주류 간 신경전이 이어졌습니다. 밤늦게까지 예정에 없던 의원총회까지 열고 4시간 넘게 수습방안을 논의했지만, 그들이 내놓은 결과는 여전히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첫 번째 상황은 김문수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은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입을 통해 나왔습니다. '자강파'로 알려진 김재원 비서실장은 공중파 라디오에서 "본선에서 투표용지에 한덕수 후보의 이름 없을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한덕수 후보를 압박했죠. 또한 한덕수 후보를 향해 "우리 당에 1000원짜리 당비 하나 내시지 않은 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김 후보 주도 아래 단일화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구요.
두 번째 상황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행사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자리에는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후보가 나란히 참석하며 조우하게 됐죠. 하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흘렀습니다. 한덕수 후보는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김문수 후보에게 정확히 이렇게 말씀드렸다. '(후보 선출을) 축하드린다. 김 후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오늘 중으로 만나자'. 세 번쯤 말씀드렸다"고 밝혔죠. 그러면서 "(김 후보가) 확실한 대답은 안 했고 '네, 네' 이 정도 말씀만 있었다"고 말했죠. 누가 들어도 자신은 단일화에 적극적이고 김문수 후보가 피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발언이었죠.
언론들이 이를 일제히 보도하자 다시금 김재원 비서실장이 등판했습니다. 김재원 비서실장은 "서로 간에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성 발언을 했죠. 그는 "손 인사로 '반갑습니다. 만나서 한번 뵙지요' 그렇게 얘기한 것을 '세 번이나 간곡하게 청했는데, 예 예 라고 답했다'고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과도 다르고 상호 간에 그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는 발언"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상황은 두 후보가 조계사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시각 발생했습니다. 김문수 후보 측근인 차명진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운을 뗀 차명진 전 의원은 "양 권(권영세 비대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이 김문수 후보에게 단일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당무를 보이콧했다. 후보가 지명한 장동혁 사무처장 임명 건을 공식 처리하지 않고 있다. 그 여파로 당 사무처도 선거운동 당무를 전면 스톱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선거운동 대신에 후보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11일 이전에 단일화할 것을 협박, 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당헌·당규상 불법이다. 당내쿠테타다"라고 덧붙였죠.
그리고 몇 시간 후인 오후 3시경, 김문수 후보가 선대위 사무총장으로 지명했던 장동혁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무총장직을 고사하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장 의원은 "능력이 부족한 저를 국민의힘 선대위 사무총장으로 지명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면서 "다만 이번 대선과같이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는 경험이 풍부한 분이 사무총장을 맡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죠. 이에 따라 조속한 단일화를 주장해 온 대표적인 인물인 이양수 사무총장이 유임됐구요.
네 번째 상황은 국민의힘 4선 의원들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김도읍·김상훈·박덕흠·윤영석·이종배·이헌승·한기호 등 국민의힘 4선 의원들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감동의 단일화에 김 후보와 한 후보의 빠르고 현명한 결단을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후보 등록 마감일인 5월 11일 전에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 시한을 넘길 경우 투표용지 인쇄를 시작하는 5월 25일까지 지루한 협상으로 국민에게 외면받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죠. 사실상 김문수 후보에 대한 압박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상황은 김문수 후보 본인을 통해 나왔습니다. 김 후보가 오후 4시 30분경 공식 입장문을 낸 것. 해당 입장문은 '단일화 관련 입장'과 '당무 관련 입장' 두 가지였습니다. 전자는 다소 원론적이었던 것에 비해 후자는 구체적이었죠. 김문수 후보는 단일화와 관련해선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며, 한덕수 예비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이낙연 새로운미래 상임고문 등을 포관해 반(反) 이재명 전선을 구축할 것이고, 후보가 제안한 단일화 추진 기구 구성을 중앙선대위가 신속히 받아들이면 빠르게 단일화가 추진될 수 있는데 대선 후보에 대한 당무 협조를 거부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당무와 관련해서는 당헌 제74조에 명시된 후보자의 지위를 언급하면서 "이미 대통령 후보가 수차례에 걸쳐 사무총장 임명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부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서 사실상 사무총장 임명이 불발된 것은 중대한 당헌·당규 위반 행위이며 이와 같은 과정에서 단일화의 취지가 왜곡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고,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당무우선권 침해 행위는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대통령 후보가 단일화를 위해 행사하는 당무우선권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섯 번째 상황은 김문수 후보가 사무총장으로 지명했던 장동혁 의원이 고사하면서 유임된 이양수 사무총장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이양수 사무총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과거 김문수 후보가 국민의힘 최종 경선 토론회에서 '전당대회 직후 단일화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김문수 후보가 'O' 팻말을 든 장면을 캡쳐해 올린 데 이어 "어느 법을 준용하더라도 후보자의 전권을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김문수 후보 측은 당헌당규위에 군림하려는 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일곱 번째 상황은 국민의힘 지도부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국민의힘 당 지도부는 오후 8시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습니다. 김문수 후보가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 의원총회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모두 조속한 단일화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심지어 경선 당시 김문수 후보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윤상현 의원까지도 비공개 의총 도중 밖으로 나와 "어제(4일) 김 후보의 단일화 뉘앙스가 바뀌었다"며 "시간을 끌면 당연히 필패"라고 말했죠.
여덟 번째 상황은 다시 김문수 후보에게 돌아갔습니다. 긴급 의원총회가 진행 중이던 밤 11시 3분 김문수 후보가 또 다시 입장문을 낸 것. 김문수 후보는 의총 도중 밖으로 나와 찾아온 당 지도부를 면담했습니다. 그리고 김문수 후보는 △ 당헌·당규 및 법률에 따른 정당한 요구는 즉시 집행되어야 함, △ 후보의 당무우선권은 존중되어야 함, △ 지도부가 '후보 단일화 이후에야 구성하겠다'라고 통보한 중앙선대위와 시도당선대위를 즉시 구성해야 하며, 선거운동 준비를 위해 선거대책본부와 후보가 지명한 당직자 임명을 즉시 완료해야 함 등 총 3가지 요구사항을 전제로 단일화가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죠.
밤 11시 13분, 긴급 의총이 끝난 이후 회의장 문을 빠져나오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정은 복잡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긴급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난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는 "오늘 의총 결과를 정리하면 크게 두 가지"라며 "한 후보와의 단일화가 필요한 점, 김 후보가 단일화에 대한 일정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죠. 또한 "그 외에도 많은 의견이 있었으나 지나치게 후보를 압박하는 모습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의원총회 이후 곧바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는 30분간 이어졌고, 밤 11시 41분에 마무리됐습니다. 직후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후보 쪽 요청 사항에 대해 비대위를 열어 의결했다"며 ▲상임선대위원장(권영세) ▲공동선대위원장(권성동·주호영·나경원·양향자·안철수·황우여) ▲총괄선대본부장(윤재옥) ▲단일화추진본부장(유상범) ▲각 시·도선대위원장(각 시·도당위원장) 등 선대위 구성을 발표했습니다.
사무총장 교체 건에 대해 신 대변인은 "최종적으로 후보와 의견을 교환해서 매듭짓는 것으로 했다"며 "그때까지는 선거를 준비해야 하니 이양수 현 사무총장이 맡는다. 머지않아 후보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서 사무총장을 교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단일화 시기에 대해서는 "오늘은 결론이 난 게 없다"며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구체적인 일정이 결론 나길 기대한다. 후보의 단일화 의지는 변함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죠.
국민의힘은 6일 오후 2시 국회에서 다시 의원총회를 열고 단일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인 가운데 오는 10∼11일 중 전당대회를 연다는 소집 공고를 냈습니다. 안건은 미정이지만, 사실상 후보 단일화를 거쳐 10~11일 사이 전당대회를 통해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의미로 비춰지는데, 결국 지난 국민의힘 대선 경선은 한덕수 예비 후보에 의해 2부 리그로 전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동훈 전 대표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얘기하는 게 더 놀라워"
이러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 후보의 단일화 잡음과 관련해 국민의힘 최종 경선에서 탈락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고 "저는 오히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얘기하는 게 더 놀랍다"며 허탈함을 표현했습니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김문수 후보는 한덕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열어뒀었고, 한동훈 전 대표는 단일화를 열망하는 한덕수 후보 지지층이 김 후보에 쏠려 2 대 1로 싸운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습니다.
"결국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며 "국민들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 제가 마음이 안 좋다"고 밝힌 한동훈 전 대표는 홍준표 대표의 '청년의꿈'과 같이 '정치 플랫폼'을 개설할 계획을 내비쳤습니다. 한 전 대표는 "상식적인 시민 분들과 직접 소통하고 서로 연대하고, 서로 정치에 대한 얘기, 일상에 대한 얘기,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얘기를 같이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며 "제가 직접 하는, 정치인으로서, 정치활동으로서 플랫폼을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단일화 명단에 언급되는 것은 2차 가해"
한편 김문수 후보가 단일화 대상으로 언급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싫다는데도 왜 자꾸 제 이름을 단일화 명단에 올리는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사실상 2차 가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준석 후보는 "김문수 후보님, 이른바 '빅텐트 단일화'와 관련해, 앞으로 제 이름은 입에 올리지 마시라"고 밝히면서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인격적 결함에 가까운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이번 대선을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밝혀왔다"고 언급한 이준석 후보는 "이번 대선은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소동으로 시작된 조기대선"이라며 "귀책사유가 있는 국민의힘은 애초에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마땅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정권의 장관, 총리를 지낸 분들이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과 어울려 단일화를 말하는 것 자체가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며 "저는 그들과 단 한 치도 함께할 생각이 없다"고 재차 밝혔죠.
"제가 이 정권의 폭주를 막겠다며 직을 걸고 싸울 때, 그들은 '내부총질' 운운하며 저를 비난하고, 급기야 성상납 혐의까지 뒤집어씌워 정치적으로 매장하려 했다"며 "이제 와서 제가 없으면 '반이재명 전선'이 흔들린다며 다시 손을 내미는 그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라고 반문한 이준석 후보에게서는 김문수 후보와의 단일화 의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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