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발걸음 돌린 한덕수, '광주 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로 지칭
제21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2일 광주 북구 운정동에 위치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았다가 시민들에게 가로막혀 참배가 무산된 한덕수 후보가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사태'로 지칭한 것을 두고 폄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날 한덕수 후보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후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서울 중구 쪽방촌 방문한데 이어 광주로 향했었습니다. 하지만 내란 청산·사회 대개혁 광주 비상행동은 이날 한 전 권한대행 방문에 앞서 "내란 대행이 자신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5·18 민주묘지 참배를 악용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이를 막아섰죠.
한덕수 후보를 막아선 이들은 "내란 동조 세력 한덕수는 물러가라" "5·18 참배 자격 없다" 등을 외쳤고, 일부는 한덕수 후보 경호 인력과 경미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10여 분간 민주묘지로 들어가려고 시도한 한덕수 후보는 끝내 분향 대신 민주의 문 앞에서 고개 숙여 참배를 대신하고 타고 온 버스로 발걸음을 돌리며 "여러분 조용히 해주세요. 저도 호남사람이다. 여러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힘을 합쳐야 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달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으로 광주를 방문했을 때 시위대에 막혀 예정과 달리 대인시장을 방문하지 못하고 돌아선 데 이어 두 번째로 맞닥뜨려야 했던 광주의 민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논란의 발언은 이틀날 나왔습니다. 한덕수 후보는 3일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를 예방한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나 "5·18 광주 사태에 대한 충격과 아픔은 광주에 계셨던 분들이 가장 아팠을 거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30초 뒤 다시 "당시에는 다 이걸 검열을 했거든요. 그러면 광주 사태에 관한 건 참 알고 싶은데 당시 젊은 사병으로서…"라고 말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광주 사태'라는 표현을 사용한 한덕수 후보는 이날 17분이 넘는 질의응답 도중 단 한 번도 '민주화운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죠.
'광주 사태'는 진상규명 작업을 거쳐 더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으로, 일부 극우 세력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하할 때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5·18민주화운동 공법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와 5·18기념재단은 4일 공동성명을 내고 "중대한 역사왜곡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민주화운동'의 공적 가치를 정면 부정하고 있다"며 "5·18민주화운동을 부정·왜곡하는 내란 동조 세력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오월단체들은 한덕수 후보를 두고 "더구나 그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고위 공직 경력을 바탕으로 국무총리에 오른 인물로, 헌정을 파괴한 내란세력의 통치 질서에 복무했던 인물"이라며 "이런 이력이 있음에도 일말의 반성과 책임 의식조차 없이,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입에 올린 것은 5·18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국민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사태'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피 흘렸던 숭고한 저항"이라며 "이를 '사태'라 칭한 그의 인식은 그 자체로 국정 최고책임자를 꿈꾸는 사람의 자격을 근본적으로 의심케 한다"고 한덕수 후보를 비판했죠.
논란이 되자 한덕수 후보 캠프 측은 한덕수 후보의 '광주 사태' 발언이 '단순 말실수'였다고 해명했습니다. 한덕수 캠프 이정현 대변인은 4일 "한 후보는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5·18민주화운동이라고 표현해 왔다"며 "한 후보가 5·18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어루만지려고 한 진심은 결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출마 당일에 5·18 민주묘지를 찾은 것"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부디 정쟁의 수단으로 후보의 진심이 왜곡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4일 충북 제천 '경청투어' 일정을 마무리한 뒤 기자들과 만나 "어떤 분이 광주 민주화운동, 광주 정신을 헌법 전문에 게재해야 한다고, 엄청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비하·폄훼하는 발언을 한다"면서 "광주 사태라는 것은 (당시 광주 시민들이) 폭도라는 얘기"라고 비판하는 한편 "그런 점에 대한 문제의식도 좀 가져주면 좋을 것 같다"고 꼬집었고, 강기정 광주시장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덕수 후보가 5·18민주화운동을 자꾸 광주사태, 광주사태 라고 반복하는 것을 보며,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화가 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광주 사태가 아니다. 법에 (5·18민주화운동이라고) 되어 있다"며 "지난 45년, 겹겹이 쌓인 기억과 아픔의 첫 겹조차 모르는 '호남사람'"이라고 비판했죠.
"나도 호남 사람"이라는 한덕수, 과거엔 고향 의도적으로 숨겼다?
한편 '호남 사람'임을 주장하고 나선 한덕수 후보의 행보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덕수 후보가 캠프 대변인에 호남 출신인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를 임명하고, 5·18민주묘지 참배에 나섰지만 정작 공직자 재직 시절엔 출세를 위해 고향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심을 받아왔기 때문이죠. 한덕수 후보가 공직자 시절 보수 정권에서는 승진을 위해 전북 전주 출신임을 밝히지 않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비로소 이 사실을 거리낌 없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화는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에 의해 전해졌는데, 한덕수 후보는 "원적과 본적을 같이 쓰게 돼 있던 시기에 착오나 오해 등으로 혼동했을 수 있다"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논평을 내어 "한 전 총리가 김영삼 정부에서 특허청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1996년 12월25일 조선일보는 '서울 출신'으로 소개했다. 한 일간지는 가판에서 '전북 출신'이라 했지만 공보관실의 요청에 의해 '본적 서울'로 바꾸었다고 한다"며 "그런데 오비이락인지 디제이(DJ) 정부부터는 '전북 출신'으로 표기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가에 떠돌던 일화에 따르면, 한 전 총리가 상공부(산업통상자원부 전신) 국장 시절 전북지사가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자신은 전북 사람이 아니라면서 냉대했다고 한다"며 "정권에 따라 고향을 세탁하는 것이냐"고 꼬집었죠.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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